취미로 글쓰는 중?/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02

FNL-Phantasm 2016. 5. 23. 09:49

102

 

 

 

끔찍한 사냥(?)을 피해 달아난 곳은 리베리티아 고원.

언제나 나의 활동경로가 뻔했지만, 그래도 넓은 고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욱 이로운 판단이었다. 5월의 이상기후는 모든 곳을 덥게 만들었지만, 오직 이곳은 특유의 바람이 항상 1년 내내 시원하고 상쾌하게 불었기 때문에, 리베리티아 고원에만 있다면 피서를 갈 필요가 없다.

 

물론 밤에 강강수월래를 하는 몬스터들만 뺀다면 최고지만...

 

아무튼 밤에 강강수월래를 하건 말건, 지금은 아직 오후라서 태양이 떠있고 몬스터의 출몰시간대도 아닌 만큼, 우리는 느긋한 오후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누군가는 낮잠을 자면 하루에 4시간을 자도 끄떡없다고 하였으니, 이래도 자고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

 

제대로 뛰어 넘으란 말이야 6번 양!”

 

여전히 내가 잠을 잘 때마다, 6번양이 울타리에 돌진해서 뛰어넘지 못하는 처참한 모습을 보며 일어나는, 나의 정신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가끔 내가 언제 잠들었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잠에 쉽게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는 그냥 말도 안되게 피곤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꽤나 길게 이것저것 말했지만, 내가 이렇게 길게 말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니 이유는 없다. 그냥 혼자라서 지루한 감이 많으니 그냥 이것저것 말한 것뿐이다.

9번동안 추격을 받으면서 한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사람들도 꽤나 지쳤는지 아니면 그냥 무료함을 달래고 싶어서인지, 어느 사이에 추격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것도 모른 체 20분 동안 전력질주로 더 달려서, 이런 고원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느긋하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찾아왔으니, 최근의 고민은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어릿광대가 매우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히 지내고 있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여전히 내 품 속에서 웃는 얼굴만 그려져 있는 가면이다.

 

어릿광대는 그날 레시아가 한 번 잡화점을 날려먹은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2개월 3개월이 지나도록 안 나타난 것은 아니고, 1개월 미만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라면 분명히 한 나라를 말아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다음에 이 가면은 저주를 반사시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 지니고 있었지만, 얼마나 강력한지 시체협회에 있던 협회장님의 저주마저 반사시킬 정도. 이 가면은 어릿광대가 줬다고 하는데, 무슨 목적으로 이걸 나에게 쥐어준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

 

카일이잖아? 여기서 다 보네?”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하면 이건 베가프의 목소리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워서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는데...베가프 머리 위에는 여우 귀와 뒤에는 9개의 꼬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랑을 너에게 보냈었지?”

 

지금 보면 알잖아? 덤으로 매료의 주술인지 뭔지 때문에 최근에는 빛의 대성당에 가는 길도 험난하다니까?”

 

아랑이 또 매료의 주술을 활성화 시킨 체, 끄지도 않고 계속해서 신앙을 모으고 있는 중인가보다. 물론 베가프는 성직자니까 여자들이 몰려오는 것은 고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구나. 그래도 반 정도 신격화가 된 걸로 봐서는 베가프와 아랑도 조합이 잘 맞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여기서 뭐해?”

 

베가프의 백발이 바람에 나부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잡화점 안에서 사냥을 당할 뻔했거든. 그래서 9차례에 걸쳐서 추격자들에게 도망을 간 뒤에, 고원에서 지쳐 쓰러져서 잠을 자다가 6번째 양이 뛰어넘질 못해서 거기에 태클을 걸었어.”

 

아니 그렇게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냥 1줄로 요약해줘.”

 

그냥 자다 일어났어. 그나저나 지금 몇 시지?”

 

베가프는 자신의 손목에 있는 금색의 시계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4 20.”

 

해가 아직 떠있어서 몰랐는데, 꽤 오래잔 모양이다. 나는 곧 일어나서 바지에 붙은 풀을 털어냈다. 슬슬 이곳에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니까.

 

베가프. 너도 파이론으로 가는 길이지?”

 

그건 그렇지. 웨인즈 경과 같이 신학에 대해서 연구 과제를 끝내고 왔으니까.”

 

웨인즈라면...그 팀의 체력을 책임지는 성기사를 말하는 거야?”

 

그건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성기사는 맞지만.”

 

아 팀의 체력을 책임지는 성기사는 다른 곳에 있었구나. 그건 둘째치고 신학에 관한 연구 과제라면 뭐가 있을까?

 

신학에 관한 연구 과제라니?”

 

아우리스 교에는 여신 하나가 이 곳을 다 만들었다고 설명하지 않아. 여러 여신이 있고 또 여러 신이 함께 있으니까. 유일신 신앙이 아니라 신이 엄청나게 많은 신화에 속해있는 우리 교단은, 그 외에도 다른 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하는 연구 과제가 있었어.”

 

그런 것들도 밝혀내는 것이 사제가 하는 일인가?

 

게다가 카일이 보내준 아랑으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은, 다른 신적인 존재가 오래 전에 이곳으로 건너왔다는 것. 그렇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때 세상을 삼켜 제거하려고 했던 신이 존재했다고 해.”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신적인 존재가 와서 이 곳을 삼키려고 했었다는 건가? 그거야 끔찍한 일 중 하나겠네. 물론 다른 존재가 그것을 막았기에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소리인가?

 

그래서...잠깐 저기에 인큐버스가?”

 

한참을 걸어가다 눈 앞에 본 것은 인큐버스와 아이니스가 같이 서 있는 장면이었다. 물론 베가프는 급하게 작은 단검과 왠지 신성력이 담겨있는 듯한 책을 왼손에 꺼냈으나, 급하게 베가프의 행동을 막고 포복을 했다.

 

카일? 왜 그래? 지금 여자 아이가 인큐버스에게 매료된...”

 

아니 매료된 것이 아냐. 게다가 저 인큐버스는 여성공포증이라고.”

 

무슨 노예가 주인에게 파업할만한 설정을 서슴없이 말하는 거야? 그보다 너와 아는 사이야?”

 

사건이 좀 있어서, 말하자면 긴데...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기 있는 아이니스도 매료된 것이 아냐. 근데 지금 이것들 뭘 하고 있는 거지?”

 

꼭 숨어서 볼 필요가 있냐고 물어보는 베가프의 말을 무시한 체, 서서히 귀에 집중을 해서 점점 말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확인 했다.

 

그러니까. 아저씨를 이기기 위해서 염동력 하나만을 연습해야 한다는 거야. 옛날 구식 마법사들은 원소 마법이니 뭐니 해서, 여러 가지 속성을 한꺼번에 익혔다고 했지만 그건 엄청나게 비효율 적이란 거지.”

 

자기가 마법 선생이라도 되는 듯이, 인큐버스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걸 또 좋아라 듣고 있는 인큐버스는 궁금하듯 아이니스에게 물어봤다.

 

근데 왜 카일 씨를 이기려고 노력하는 거야?”

 

아이니스는 인큐버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특유의 소악마 미소를 보인 아이니스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야 사랑하는 사람을 정복 하는 것이 내 사명이니까!”

 

...?

???

 

베가프.”

 

?”

 

내 귀가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 해줄래?”

 

네 귀가 잘못 된 거야.”

 

고마워.”

 

내 귀가 잘못된 것이라고 판정을 받았으니 저 위에 있는 대화는 무효가 되었다.

 

아이니스는 카일 씨를 좋아하는 거야?”

 

뭐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거지. 그런 것 있잖아? 좋아하는 상대에게 괜히 심술 부리고 싶고, 시비 걸고 싶고, 죽이고 싶은 거.”

 

마지막은 아니라고 보는데...?”

 

인큐버스는 조용히 아이니스에게 태클을 걸었으나 속으로는 매우 실망을 하고 있는지,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저나 베가프가 내 귀가 잘못 되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잘못된 내용들이 계속 들리는 걸까?

 

저기...카일?”

 

베가프는 나를 부르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혹시 저 여자아이 카일을 좋아하게 되면, 은팔찌를 차게 되는 거 아냐?”

 

그건 다른 차원의 법이니 신경 쓰지 마. 그보다 보통 좋아하는 상대에게 자기 몸보다 큰 바위덩어리를 던지고 다니는 것은 정상이 아니지?”

 

그래...그건 정상은 아니지. 그건 왜?”

 

아무것도 아냐.”

 

내가 베가프에게 확답을 듣고 안심한 사이, 인큐버스는 마음을 먹은 듯이 갑자기 일어났다. 물론 아이니스는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고, 인큐버스 목소리에는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럼. 최소한 내가 카일 씨보다 강해진다면, 나를...사랑해 줄 꺼야?”

 

아이니스는 즉답하기를...

 

당연하지.”

 

그보다 왜 최소 나를 넘어서려고 하는 거야? 나 약한데? 내가 가장 만만해서 이러는 건가?

 

알았어. 그럼 내가 많이 많이 강해져서 돌아올게! 카일 씨뿐만이 아니라 내가 모든 몽마를 다스리는 왕이 되어서 올 거야! 그때가 되면 꼭 너를 다시 찾아올게!”

 

-!

 

아이니스는 인큐버스 볼에 뽀뽀를 시전하고, 인큐버스는 순간 내가 대체 뭘 당한 거지?”라는 표정으로 멍하니 있다가, 또 다시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진 체, 격파 당해서 쓰러져 있었다.

 

그 기세라면 몽마의 왕은커녕. 사람 하나 이기기도 힘들 것 같은데?”

 

씨익 하고 웃는 아이니스를 보며, 대체 누가 인간이고 누가 소악마인지 모르는 시점에서, 인큐버스는 다시 일어선 후에 마법 기동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카일 씨에게 전해줘. 릴리스 님을 따라서 몽화관으로 갔다고. 물론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한번 뜻을 세웠으면 갑자기 떠나는 것도 남자다운 일이겠지?”

 

그래. 멋지다. 아저씨에겐 내가 꼭 전해줄게.”

 

아이니스의 말 한마디에 인큐버스는 다시 활짝 웃었다. 루니아 씨의 예언이 적중하는 순간이라고 봐야 할까? 아이니스에게 인큐버스를 맡겨 놨더니, 만화 주인공처럼 하나의 동기가 되어버린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게다가 의연하게 격려하는 아이니스의 행동은 나보다 더욱 훌륭했다.

 

그럼 나중에 또...”

 

인큐버스의 마법 기동식은 자신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귀환마법이라고 추측했다. 릴리스의 곁으로 빠르게 돌아간 것이 되겠지. 그나저나 뭘 했길래 리베리티아 고원에 있는 걸까?

 

아이니스는 이내 한 숨을 내쉰 후에 입을 열었다.

 

아저씨들?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숨어서 보다니 최악이네요.”

 

뭐야? 들켰나?

나는 다시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그보다 아저씨들 아냐. 오빠들이라 불러.”

 

소녀의 감은 무시하면 안 된다고요? 애초에 아저씨들이 부랴부랴 숨은 것부터 이미 눈치를 챘거든요?”

 

그 정도의 소란이었다면 인큐버스도 눈치를 챘을 텐데...하긴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그 여자밖에 안 보인다고 하더니 진짜였나 보다. 아이니스에게 우선 솔직히 입을 열었다.

 

정말 고마워. 그나마 내 동생 같은 녀석을 격려하고, 새로운 동기까지 심어서 보내줬으니까.”

 

애초에 남자라는 생물은 다루기 쉬운 생물이거든요.”

 

엣헴!”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뽐내기라도 하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은...

 

애초에 인큐버스의 동기를 부여시킨다고 할지라도, 나를 좋아한다는 거짓말을 할 이유는 뭐야? 다른 멋진 사람 많잖아? 웨인즈 씨라던가 그 외에 다른 용사들이라던가?”

 

그 인큐버스는 아저씨 빼고 다른 남자는 모르잖아요. 게다가 왠지 아저씨와 인큐버스 사이를 깨뜨리고 싶은 그런 충동도 있었고.”

 

그건 또 무슨 위험발언이야.

 

게다가...”

 

아이니스는 살짝 뒤를 돌면서 마지막 말을 읊조렸다.

 

거짓말도 아니고...”

 

이건...

못들은 걸로 하자.

은팔찌 차기는 싫으니까.

마음만 감사히 받아도 되려나?

 

그 이후에 리베리티아 고원에서 베가프와 아이니스. 이렇게 셋이서 파이론에 돌아왔다. 각자 집으로 간 뒤에 나도 잡화점에 돌아와보니 아무도 없

 

포획 개시!”

 

을 줄 알았으나, 잡화점에서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해 은폐를 하고 있었던, 4인방에게 또 다시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하루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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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3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