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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루니아 누나까지 귀환을 하게 되면서, 광란의 물결이 단숨에 잡화점 분위기를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대략적으로 내가 입어야 할 옷이 50벌이 넘어가기 시작했고, 장신구와 더불어 화장까지 한다고 하는데, 차라리 나를 불태워서 화장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 모든 계획이 천계와 마계의 전쟁을 대비해서 초동 조치를 한다고 하지만, 내가 꼭 여자아이로 변해야만 했을까? 레시아나 시나가 귀여운 편에 속하기도 하고, 마리아 본인을 직접 찍으면서 퍼트리면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다행이라면, 루니아 누나가 백장미를 찍어왔던 경험이 많기에, 촬영과 편집에 달인의 경지까지 올라와서, 10시간 걸릴 것 같은 작업이 3시간으로 줄어드는 기적을 보고 있었다. 다행이네. 10시간 뒤에 남자로 되돌아가는 줄 알았더니,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아서...

 

주인. 수고가 많군. 그런데 아직까지 쓰러져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몸으로 체력이 버티질 못하니까 이러고 있죠.”

 

그나마 다행이야. 사진을 찍었으니 이제 남자로 되돌아갈 수 있...

 

카일이여. 이제 동영상으로 녹화를 하도록 하겠다.”

 

마리아가 말한 내용 때문에 신경의 끈이 끊어질 뻔했다. 조금이라도 이성을 꽉 붙잡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천계든 마계든 한 곳을 뒤집어버릴 뻔했다. 나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거기에 간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어째서 동영상녹화가 있는 거죠...제 일정에...”

 

괜찮다. 말만 잘 듣는다면 빨리 해방시켜주도록 하겠다. 첩은 약속을 잘 지키는 존재 중 한 명이니까. 그래...말만 잘 듣는다면 말이지. 크흐흣.”

 

뒤에 있는 말과 표정을 합쳐보니, 순순히 되돌려줄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따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시나와 레시아에게 바로 부탁하면 되돌아갈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되돌아간다고 이야기를 할까?

 

덤으로 마왕님과 빛의 여신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기라도 하면, 카일은 하루에 8시간을 여자로 살아가야 하는 번거로운 저주를 걸 테니, 그냥 참고만 하고 있어두면 고맙겠다.”

 

흑발의 소녀는 웃고 있었지만, 내용은 웃고 있지 않은 냉소함이 담긴 말. 번거로운 저주는 어차피 어릿광대에게 받은 가면이 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마리아가 말하는 것은 빈틈이 보일 때마다 번거로운 저주를 걸어버리겠다는 소리다. 100년을 살아가는 인간이 건강하게 산다고 한들 100년동안 아프지 않고 장수할 리가 없듯. 마리아의 말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되돌아가면, 남은 평생 동안 빈틈을 보이자마자, 번거로운 저주를 걸려고 하는 마리아를 상상하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알았어요...찍으면 되잖아...찍기 싫은데...”

 

점점 소리가 줄어드는 혼잣말은 짜증이 계속 솟구쳤지만, 마리아와 루니아 누나는 지금 내 모습이 뭐가 좋은지 키득키득하고 웃고 있었다.

 

그런데 마왕님께서 당분간 남성체로 변하면서 카일을 보호하기로 했다면서요?”

 

안 되는가?”

 

검은 고양이는 엄격하고 근엄한 자세로 진지한 말을 내뱉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동물로 변해서 익숙한 모습이지만, 남성체로 변신한 레시아의 경우에는 거북하다기보단, 마리아가 쓸 때 없는 암시를 걸어버린 탓에, 침착하지 못하고 당황하게 되니까.

 

마왕님께서 꼭 참고하실 옷이 있는데...”

 

능숙하게 기계를 꺼내, 무언가 누르면서 보여주는 마리아. 레시아는 화면을 보고 나서 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마기에 휩싸여서 남성체로 변신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마왕에 걸 맞는 짙은 검은색의 슈트에 보이지 않을 듯한 회색 선들로 마무리를 하고, 검은 면장갑, 그리고 검은 구두까지. 연하늘색 와이셔츠를 안으로 감싸고, 군청색의 넥타이는 검은 줄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련된 느낌을 자아냈다.

 

앞으로 이런 옷을 입고서 카일의 옆에 서있으면 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사진을 찍을 때, 마왕님도 같이 찍었으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했지만...”

 

마리아의 검은 눈동자가 슬그머니 굴러가자, 하얀 올빼미가 비춰지기 시작했다.

 

빛의 여신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고 있는지 잘 모르겠군요.”

 

은근슬쩍 시나를 도발하는 행위는 너무 간사했고, 충동적이었다.

나도 시나를 따라 보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내 앞에 다가와서 그림자를 만들어줬고, 고개를 돌려보니 레시아가 내 앞에 바로 눈높이를 맞추며 앉아있었다.

 

주인도 이런 옷이 좋은가?”

 

잘 어울리네요.”

 

또 무슨 말할 것이 있지 않는가?”

 

무슨 말을 원해요. A, B, C, D중에 골라보세요. 공통점은 아이언 클로에요.”

 

나의 말에 레시아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전히 짐 앞에 있으면 떨리는 나머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그런 유치한 행동을...냐아아아앗!”

 

남자로 변한 레시아도 비명을 지를 때는 저렇게 지르는구나. 짧은 집행이 끝나고 하얀 올빼미가 다시 내 어깨 위에 앉았다.

 

마스터. 저도 변신하라고 명령하면 변신할 수 있습니다. 허락해주세요.”

 

아냐...괜찮아. 내가 이런 모습으로 있다고 해서, 남자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헛된 판단은 제발 그만둬줘.”

 

나도 본래 남자란 말이야...

슬픈 진실은 생각할수록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고, 여전히 하얀 올빼미는 자신도 변신하고 싶었는지 계속 입을 열었다.

 

마스터께서 엄지손가락을 올리시고 파이널 퓨전! 승인이다!”라고 말하시면...”

 

네가 가오가이거는 아니잖아.”

 

삶의 안식처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따듯한 장소, 따듯한 밥, 따듯한 사랑.

3개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안식처라는 건데...

 

틈만 나면 이상한 좌표로 귀환해서 떨어뜨리는 무자비한 집.

무지개 음식과 형광물질, 암흑물질이 공존하는 우주식 식단.

사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려는 무자비한 사랑.

 

결국...내가 살아가는 곳은 안식처 따위는 없다.

 

시나는 제발 변하지 말아줘...”

 

변화란 것은 너무 갑작스러우면 놀라기 마련이기에, 놀란 마음을 다스리는 차원에서 하얀 올빼미를 꼭 껴안았다.

 

마스터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찰칵!

 

카메라의 섬광이 또 번쩍이는 방향으로 바라보니, 루니아 누나가 기묘한 마법공학 물품을 한 손으로 두드리고, 다른 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정말 귀여워서 찍어봤어요오. 이건 개인소장 해야지이.”

 

이거야 원...

 

주인. 비둘기에게 너무 붙어있지 말거라. 사역마인 짐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

 

아이언 클로의 후유증에서 돌아왔는지, 정신을 차린 레시아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 허리를 확!하고 끌어당겼다.

 

, 잠깐만! 뭐 하는 거에요!”

 

주인의 성분을 채취하고 있노라.”

 

강한 남성용 향수와 특유의 페로몬이 심장 고장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지만, 차분하게 가라앉혀 명경지수와 같은 평온을 유지해야만 했다.

 

은팔찌 차고 싶어요? 지금 뭐 하는 거에요!”

 

짐과 주인은 부부이지 않는가? 서로 붙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서로 붙어야 한다면, 저는 잡화점 멤버 대부분과 같이 붙어있어야 한다고요.”

 

상황이 혼란스럽게 되면서, 심신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루시피나가 그리워졌다. 저녁에 장을 보러 나갔으니 나중에 돌아오게 되겠지. 그때 동안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켜줄 사람은 없는 건가?

 

주인. 달콤한 향이 난다.”

 

그만 좀 맡고 떨어져요. ...”

 

고양이나 강아지는 자신의 주인을 채취로 기억하는데. 평소에 레시아는 그러지 않아도 잘만 구별했는데, 지금은 주인을 인식하려고 하기보단, 내 반응이 재미있으니 장난을 치고 있는 경우다. 완력으로도 떨어뜨릴 수도 없는데, 말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그렇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매우 유감이다.

 

세간의 눈을 좀 생각해주세요. 레시아. 지금은 이렇게 붙어있으면 레시아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요?”

 

상관없다.”

 

역시 마왕.

이미 일반인이 보기에는 나쁜 쪽으로 비범하다는 것인가?

 

레시아가 남자로 변하면서 유난히 더 붙어있으려는 경향을 보였고, 시나를 끌어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뒤늦게 시나의 상태를 보려고 했지만, “숨막힙니다. 떨어지세요. 냥캣.”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을 뿐이다.

 

아리엘과 릴리스는 루니아 누나 뒤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을 때, 잡화점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루시피나가 들어왔다.

 

신랑~! 나왔어!”

 

모두가 밝고 명랑하게 들어오는 루시피나를 보며, 각자 인사를 했지만 루시피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레시아와 나의 모습에 멍하니 있을 뿐.

 

어라? 잘못 찾아왔어요.”

 

아니! 잘 찾아온 거 맞아요!”

 

갑작스러운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급하게 돌아가려는 루시피나의 발목을 소리쳐서 붙잡아 세웠다.

 

신랑?! 그 모습은 뭐야? 그보다 마왕님은 왜 남자로 변해있는 거에요? 오늘이야 말로 전국적으로 반대로 하는 날이에요?”

 

그런 날도 있는 건가?

기념일이나 공휴일에는 그런 날이 없는데?

 

지금 카일은 전쟁을 멈추기 위해 저런 모습으로 희생하고 있는 거다. 첩도 카일의 희생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지만...”

 

웃기고 있네! 느닷없이 붙잡아놓고 뒤바꿔버린 사람이!”

 

억지로 잘못된 정보를 나누는 마리아의 말을 막는 동안, 매우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완전히 소녀가 되어버렸어. 귀여워라~”

 

지금은 가을인데 화사한 봄처럼 웃는 루시피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는 눈물만 흘려야 했다. 비록 입은 있어도 비명은 마음속으로 질러야 하는 이 참사에 대해, 한숨을 크게 내쉬고 있었지만, 루시피나는 레시아에게 입을 열면서 화를 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저에게 바로 알려달라고 했잖아요! 지금까지 사랑스러운 신랑이 귀여운 옷을 입고 사진도 찍은 거 같은데!”

 

꼭 화내야 할 부분이 그것일까? 나머지는 아무래도 넘어갈 수 있나 보네.

 

어쨌든 지금부터 영상을 찍어서 퍼트릴 테니, 슬슬 마왕님도 카일을 놔주세요.”

 

알았다. 그런데, 지금의 주인은 이름 그대로 올릴 것인가?”

 

아뇨. 저 모습에는 카린으로 부르도록 할 겁니다. 300년전에도 카린이라는 이름은 암흑가에서만 유명했었지요.”

 

암흑가에서만 유명하다니? 카린이라는 이름은 크툴루에서 나오는 아우터 갓이에요?”

 

잡화점의 일처리는 외부에 많은 사람이 모르도록 처리하지 않는가? 카린이라는 이름보단 공식적으로 류연이라는 이름이 더 퍼졌으리라 본다. 수려한 외모로 많은 이들의 머리에 남아있겠지만, 비공식적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활동한 것은 그때였을 뿐이지.”

 

그래서 카린이라는 이름을 사용해도 별 의미는 없다는 건가.

300년 전에 사람이 살 가능성은 거의 없긴 하니까.

 

그러면 카린으로 한다고 쳐도, 어떤 레퍼토리로 찍어서 올릴 건데요? 이런 모습을 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야 당연히...최근 유행하는 ASMR로 하려고 한다.”

 

그런 거라면 마리아 혼자서 해도 상관 없었다고...

 

다만, 시청자 시점의 ASMR이라고 해야 하겠지. 카일이 카메라의 시선과 맞춰서 하는 것이 어떠한가?”

 

다시 말해, 카메라와 종종 눈높이를 맞춰서 혼잣말로 이야기를 하거나, 혼자서 젠가를 해야 하는 행위를 해야 하잖아.

 

누굴 외톨이로 만들 거에요?”

 

괜찮다. 첩이 영상을 녹화하는 동안, 카일의 무릎도 베보고 귀이개도 당해보고, 여러 가지 실험도구가 되어줄 테니까. 쿠후훗!”

 

, 그래서 1인칭처럼 보이게 만드는 건가?

그 전에, 마리아의 사심이 너무 많아서 입을 강제로 연다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화면도 보여주지 않고 목소리로만 하는 것이, 상상력 자극에 좋지 않아요?”

 

눈과 귀를 동시에 즐거우면 더욱 좋지 아니한가? 오히려 카일의 귀여운 모습을 보러 소리에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니라.”

 

그거 ASMR의 목적과 정반대 결과잖아요.”

 

따라서 시각이든 청각이든 둘 중 하나라도 암시만 걸 수 있다면, 이번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니라.”

 

무슨 자신감으로 외치는지 몰라도, 한숨을 내쉬며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나와 키가 엇비슷해 보이는 마리아는 천천히 다가와서, 내 양쪽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밝은 웃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잘 부탁한다. 카린이여.”

 

시작하기 전에 아이언 클로가 무작정 튀어나와 작은 소녀의 얼굴을 감싸버렸다. 내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는지, 허공에 떠다니는 손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마리아를 한동안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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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터널 증후군이라니...

글을 쓸 때마다 욱신거리는 왼손이란..

어라? 흑, 흑염룡이 날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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