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09
509
거창한 일에 휘말릴 뻔했으나, 레인의 도움으로 눈에 띄지 않고 잡화점으로 돌아갔으니 다행이었다. 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다음날 아이리스가 가져온 신문에서는 레시아의 정체를 알고 있을 듯한 증언과 진술이 있는 기사가 보였다. ‘전설의 13대 마왕 레프리시아가 현현하다.’ 라는 이런 기묘하게 짝이 없는 소리를 신문기사에 제대로 실어서 보냈으니, 편집장이 제대로 일을 안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부러 이런 기사를 띄워서, 사람들의 이목을 잡는다면 그거야 말로 프로가 아닐까?
그렇다고 전부 좋은 인상만은 지닐 수 없는 이유가 있는데, 그 기사를 보고 나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입장에서는 나쁘게 보이는 이유라면...
“어떠냐! 짐은 300년이 지나도 모든 피조물들의 공포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마왕이니라!”
“역시 마왕님이십니다! 차라리 14대 마왕을 제거하고 다시 마왕성을 탈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허무의 공작이여. 애석하게도 짐은 숨어서 살아야 하는 방관자와 같은 몸. 300년이 지나 새로운 마왕의 자리를 빼앗을 정도로, 무자비한 자가 아니니라.”
레시아가 기고만장해진 분위기와 꿍꿍이가 있는 얼굴을 한 마리아가, 분위기를 띄우고 올리고 하는 사이에 내 한숨을 본 시나는, 펭귄인형처럼 보이는 잠옷으로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부드러워 보이는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얼굴은 무표정하더라도 분위기는 편안해 보였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봐도...제대로 설명할 길은 없지만, 시나의 근처만 있으면 편안하고 불편하다는 것을 바로 감지할 수 있으니. 이제서야 막 일어난 백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펭귄소녀가 내 팔을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났습니다.”
“꽤 오래 자고 있었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백은의 눈망울이 나를 비추며 말하기를...
“잠옷이 너무 편해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잤습니다.”
얼마나 편하길래? 지금 아침 11시라고?
“설마 아직도 피곤한 거야?”
“피곤해서 졸리는 것이 아니라, 너무 편해서 저절로 눈이 감기는 겁니...”
도중에 말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보고 있는 시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오른손으로 시나의 눈 앞을 휙휙 지나치면서 판결을 내렸다.
“시나. 시나! 지금 자는 거 아냐!”
“앗! 죄송합니다. 마스터. 마스터를 이용해서 잠을 깨려고 했지만, 잠옷과는 다른 포근함과 상쾌함이 겹쳐서 오히려 잠을 유도하...”
아니, 도중에 말이 끊어질 정도로 자고 싶어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무표정한 상태로 눈을 뜨고 자면 무섭잖아!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이미지라고!
“어이! 비둘기!”
“올빼미...”
잡화점을 관통하는 레시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말이 끊어진 걸 보면, 레시아에게 태클을 걸다가 다시 잠든 모양이다. 올빼미가 눈을 뜨고 자던가? 그런 적은 없을 텐데.
“주인에게 떨어지지 못할까! 주인이 불편해하고 있지 않는가? 흔들의자는 옆에서 주인의 팔을 붙잡고 자는 것이 아니다!”
레시아가 힘껏 소리치자 시나는 다시 고개를 까딱이기 시작하더니,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목이 잠겨버린 채로 다시 사과를 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마스터. 안 그래도 흔들의자에서 이렇게 붙잡고 있으니 많이 불편하시겠군요.”
“뭐. 들어가서 더 자려면 더 자도 상관없어. 오늘은 편히 쉬고 있으라고?”
“알겠습니다.”
스르륵!하고 내 흔들의자 위로 올라오더니 그대로 내 가슴에 안기며 잠을 자려고...
“멈춰! 날 어디로 보내고 싶은 거냐!”
“어디든 보내지 않습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당장 안 일어...”
“쿨~”
잠에 빠져버린 사람치고는 끌어안은 팔의 힘이 너무 강하게 고정되는 바람에, 석고상이 날 끌어안고 흔들의자에 같이 있는 줄 알았다. 펭귄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후드까지 쓴 상태로 조용히 코를 골며 자고 있으니, 지금 당장 일어나라고 집어 던지고 싶지만, 그런 일은 불쌍해서 하지 못했다.
“그보다 10대 중반이든 20대 초반이든 외형이 어찌되었든 간에 이런 모습은 위험하다고...”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흘리는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벌써부터 한숨 공장이 발 빠르게 돌아갔고, 입안에서 튀어나온 한숨이 허공으로 뿔뿔이 흩어지자마자, 잡화점 문이 열리며 이상한 가면과 검은 코트를 입은 레인이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꽁냥질이에요?”
“꽁냥질이 뭐냐? 바른 말 안 쓸래?”
300년이 지나서 신조어가 많이 생긴 걸까?
“카일 씨에게 죽창 하나 선물해야겠네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네가 꽂으면 아프다는 말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실제로 죽고 싶지도 않고.
“아이리스는?”
“아이리스는 다른 곳에서 육포를 팔고 있을 거에요. 그보다 신문기사는 보셨어요?”
본론을 말하려는지 내 앞에 있는 둥그런 의자에 앉아 말하기를...
“여기 레몬에이드 주세요!”
“여긴 잡화점이야!”
음식점이 아니라고! 그보다 내가 소리지르면서 태클을 거는데도, 시나의 얼굴이 매우 평온해 보였다. 혹시나 깨는 것이 아닐까 조마조마했지만, 어느 정도 큰 소리로는 일어날 생각이 없다 보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려는지...
“지금 13대 마왕 레프리시아가 이곳에 현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곳에서 비상이 걸렸어요. 10명의 강도가 마트를 습격한 그 사건 중에, 10명모두 중경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 중에 한 명이 마왕님을 알아본 모양이에요.”
어차피 10명중에 한 명이 알아봤으니 신문이 나왔다고는 생각했지만, 내가 궁금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생겼다.
“10명 모두 중경상? 원래 4명이 중경상이 아니라?”
“남은 6명은 카일 씨와 마왕님의 데이트를 방해한 거잖아요? 그러니 제가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티아라를 원반던지기처럼 날렸어요.”
“안 죽은 게 더 신기하다.”
레인은 집는 물건은 죄다 무기화시키는 되어버리기에, 비어있는 물병이라도 살인도구가 될 수 있는 무식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딱 봐도 그 6명은 초보범죄자였는데 티아라를 날려서 상대를 중경상으로 만들어놓다니?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오히려 그게 기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레인이 힘껏 던진다면, 이 세상에서 사표를 내고 저승으로 가니까.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독보적으로 튀어나가는 레인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레인이 말한 것을 들으면서 질문을 했다.
“레시아를 아이돌로 만들려고 한다고?”
“좀 웃기죠? 그런데 요즘에는 어여쁜 애들이나, 멋진 애들을 보면, 무조건 자기 소속사로 데려가서 아이돌을 만들려고 하는 정신 나간 애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레시아의 초상화를 보고 한눈에 꽂혀버린 인간이 존재해버려서...”
“그 인간이 누군데?”
“하겐티라고 했던가? 과거에는 맹수 조련사라고 엄청 유명한 사람 있잖아요.”
맹수 조련사의 뜬금없는 생존신고를 듣고는...
“그 녀석 아직도 살아있든?”
“네. 자신만의 동물원을 설립하고 나서 어마어마하게 때 돈을 벌더니, 지금은 달 토끼들을 이길만한 아이돌을 준비하겠다고...그 있잖아요? 아이돌의 마스터가 된다나 프로듀서가 된다나 뭐라나.”
아마 레시아를 영입하려는 의도라면, 진짜 레시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 사복차림을 보자마자 버릇처럼 본능이 움직인 걸까?
“300년이 지나니 카린은 잊었나 보군.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정말 뜬금없게도 나타나네.”
어느 누가 저런 식으로 나오리라 생각했는가? 지금은 마왕이 아니니까, 전 마왕에게 직업을 주려는 의도치곤 어이가 없었다.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
“나도 알아. 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래.”
“머릿속에서 지옥불길로 들어가지마! 어이!”
“지금 누구와 대화해요?”
머릿속에 있는 ‘어이’에게 태클을 걸자마자 레인은 이상한 사람을 대하는 어조가 흘러나왔지만, 다시 분위기를 붙잡고 주제로 돌아가려는 듯이, 헛기침을 한 레인의 목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어쨌든 지금은 마왕님을 아이돌로 할 생각이 없으시죠?”
“그야 당연하지. 레시아가 아이돌로 나가면 상황이 너무 꼬여버려. 그리고 아직 양도받은 목걸이에 누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어.”
어제만해도 마트에 있는 직원들이 절하게 만들었는데, 레시아가 아이돌로 나가면 그곳은 콘서트 장이 아니게 된다. 기이한 오컬트 집회로 되어버려서, 모든 사람이 레시아를 보고 죽거나 심하면 침을 흘리겠지.
“그런데 왜 아이돌이 뭐길래? 달 토끼만으로는 부족했던 거야?”
“300년이 지나면서 인간들은 여흥에 관심이 많아졌거든요. 삶이 서서히 풍족해지면서 유희거리도 발달하기 시작했죠. 그건 지금 당장의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은 달 토끼들이 멸종직전까지 가버렸거든요.”
달 토끼들이 멸종직전까지 갔다고? 이곳에 있으면서 빨리 과거로 가야 하는데, 사건 사고가 너무 많아 과거로 가기 전에 문제를 다 해결한다면 3년 뒤에 과거로 가지 않을까?
“그 건은 레인. 네가 처리해라. 달까지 가는 방법을 모르면 내가 알려줄게.”
앞에 가면 속에서 “네?”라고 의문을 토해낸 레인이 이어서 질문했다.
“달까지 가는 방법이 있어요?”
“당연하지. 안 그랬으면 내가 이곳에 있었겠냐?”
달 토끼들의 옷 갈아 입히기 인형이 되기 전에 해결한 사건이니까.
“그런데 이상하네? 달 토끼들은 본래 루나의 체세포로 배양하면서 개체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달의 기술은 300년 뒤의 세계보다 더 기술이 발달해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진보된 문명이 살아 숨쉬는 장소인데. 달 토끼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면 달에 문제가 생긴 거나 다름이 없다.
“너도 사키엘의 문은 가지고 있냐?”
“그야 당연하죠.”
“그럼 세린에게 물어봐서 달로 이동할 수 있는 좌표를 기억해내라고 해. 그 뒤에는 세린에게 사키엘의 문고리를 돌리라고 지시를 한다면, 달 기지에 쉽고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으음...마스...터...”
내 가슴팍에 잠이 들어있는 시나가 잠꼬대를 하는 동안, 느닷없이 세린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야. 난 달로 이동할 수 있는 좌표 따위 몰라.]
[하아...그럼 내 기억을 들춰서 엿보면 되잖아. 달 기지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면 사키엘의 문이 알아서 해줄 거야.]
[그런 귀찮은 일을 왜 내가 해야 해?]
[그래야 내 앞에 있는 레인이 미래의 너에게 도움을 받고 달 기지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되니까. 그러니 당장 하기나 하셔?]
[흥! 귀찮은 녀석.]
세린의 칼날과 같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레인은 일어섰다.
“돌아가려고?”
“네. 덤으로 카일 씨 위에서 자고 있는 소녀를 보고 경찰에 신고 좀 하려고요.”
“그러지마. 이건 불가항력이야. 오히려 내가 잡혀가는 게 아니라 나이만 따지면 시나가 잡혀간다고.”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살벌한 주제가 오고 가는 것도 있고, 레인이라면 정말 신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이기에, 다음에는 시나를 방에 재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찼다.
=============================================================================================제가 교육을 받고 오면 집을 7시 20분정도에 도착합니다.
집에 오자마자 글을 써도 지금처럼 늦게 되긴 하네요. 죄송합니다.
'취미로 글쓰는 중?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11 (0) | 2017.10.01 |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10 (0) | 2017.09.29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08 (0) | 2017.09.25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07 (0) | 2017.09.23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06 (0) | 2017.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