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60
460
아우리스와 비니스는 잡화점 안에서 느긋하게 앉아있는 데모르테를 바라보며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본래 데모르테를 붙잡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내가 한 말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아내기 위해 자문을 구하는 것인데. 금기를 어겼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뻔뻔하게 있는 데모르테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해 예지를 해달라고? 아까 전에는 잡화점을 부셔가면서까지 난동을 부리더니, 이번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거 아냐?”
“시끄럽다. 우리도 지금 귀중한 것이 걸려있기 때문에, 앞으로 마신이 깨어나고 벌어질 일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귀중한 것은 카일의 싸인이 담긴 백장미 최신화인 거야?”
“이번에 카일의 간곡한 부탁과 공물로 너의 죄를 감형하는 것이니까, 마신이 깨어났을 때 무슨 일이 터지는지 알려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300년간 지상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봐주지. 그러니 운명의 여신인 데모르테여. 미래를 밝혀보아라.”
비니스가 아우리스를 대신하여 데모르테에게 재촉하듯 입을 열었지만, 여전히 300년씩이나 지상에 내려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한지 자연스럽게 제안을 하기 시작하고….
“300시간. 300시간이면 가능할 것 같아. 300년은 너무 하잖아? 카일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을 보게 될 거라고?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말이지?”
“왜 저를 보면서 그런 소리를 내뱉는 거에요. 우선 저는 관여하지 마시고 세분께서 알아서 맞춰주세요. 밖에 나가서 무너진 잔해나 쓸어 담아야 하니까. 시나와 레시아는 잠깐 저와 같이 이야기 좀 하죠.”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는 총총 걸음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뒤에서 들려오는 루니아 누나의 목소리로는“별거 아니지만 쿠키를 만들어보았어요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저게 말로만 듣던 죽음의 협상인가.
“주인이 루니아에게 요리를 시킬 줄은 몰랐노라.”
“정확하게는 데모르테가 이 일을 전부 예지를 하고 루니아 누나에게 시킨 거겠죠.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른 방향으로 해결할 문제가 또 하나 있어요.”
3명의 상위 여신이 잡화점에서 비밀리에 회의를 하는 동안, 무너진 잔해와 땅은 천천히 복구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벽의 달밤이 아직까지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 밖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한 명의 여신이 안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사실 후드에 가려져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모습으로부터 안쓰러울 정도로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걸 추측했다.
“거기서 뭐해요?”
“데모르테가 무사히 천계로 올라가주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카일이 보여준 협상은 저에게 꽤나 흥미를 가져다 준 요소이기도 하며, 이후 천계에는 더욱더 밝은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다만, 인간계에서는 아리엘이라는 소녀가 마신의 그릇이 되어 마신이 깨어난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문이군요? 어째서 당신은 아리엘을 직접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던 거죠?”
2쌍의 날개를 지닌 여신은‘어째서’라는 말을 사용하여, 아리엘을 직접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조를 했다. 그 외에도 어차피 천계는 상관이 없지만 인간들은 모조리 혼돈의 도가니로 가도 내 알 바는 아니라는 뉘앙스까지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인간과 절대 친하지 않은 여신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는데.
아리엘을 왜 보호하지 않은 가에 대해 물어봤으니, 내 나름대로의 대답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아리엘을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와중에, 마신이 되어 잡화점부터 날아가면 안 되기 때문이니까요. 마신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영혼으로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이미 시체협회에 있는 집단자살의식으로 거의 맞춰진 상태였고 1개의 영혼만 남았어요. 지금쯤이면 켈모리아가 그 사람까지 죽였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아직 깨져나가지 않는 이유라면...글쎄요. 뭔가 더 필요하다는 소리인 거 같은데.”
그보다 켈모리아가 도망칠 장소를 제거하는 것이 1순위다. 아리엘을 데리고 와서 보호를 한다면 우리가 오히려 발을 묶이는 형태가 된다. 언제 각성할지 모르는데 각성하는 순간 무슨 일이 터지기도 전에 잡화점이 날아갈지도 모르니까. 혹은 파이론이 지도에서 지워지는 끔찍한 순간을 한번 더 맞이하면 안 되니까.
“마신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마도서가 필요하지. 마침 별의 아이가 잘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혹시 데모르테 대신 운명의 여신으로 된 거에요?”
“아니. 카일이 하멀을 알고 있고 에밀리를 알고 있다면, 과거에 카일이 얻었던 금단의 마도서를 둘 중 한 명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하멀을 자주 만나지 않고 에밀리를 만나는 것으로 보면, 에밀리에게 마도서를 줬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나는 운명의 여신이 아니라 레이비스 가문이 숭배하는 여신이야. 이름은 들어봤겠지?”
레이베리아가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너는 내 힘을 받는 걸 거부했다고 들었어. 아무리 루니아가 양녀라고 해도 그녀는 레이비스 가문이니. 평민인 너는 귀족의 이름을 따는 것이 좋다고 보는데?”
“저는 어처구니 없게도 잡화점에 귀속된 몸이거든요.‘카일 레이비스’라기보단...제가 네이밍 센스가 없어도 아마‘카일 엘티노스’로 되야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위대한 영웅은 천계로 가서 신이 되어있고, 그의 이름을 널리 기리기 위해 성을 꼭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엘티노스라는 성을 사용할 거에요. 그러니 루니아 누나의 경우에는‘루니아 엘티노스’가 되는 경우겠죠.”
“흠~ 잘 빠져나가는구나. 확실히 엘티노스의 말대로 너에게는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은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런데 엘티노스가 자신의 이름을 너의 성으로 쓰는 것은 반대할 것 같은데?”
“그건 제가 어떻게든 납득시켜봐야죠.”
검은 고양이는 앞발로 내 볼을 툭툭 건드렸다. 건드릴 때마다 숨겨진 손톱이 살살 긁고 있었는데...
“주인. 그러면 짐은 레프리시아 엘티노스가 되는 것인가? 주인은 성이 없어서 간편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뒤에 글자가 달리는 것도 숙명인가 보군?”
“아니. 레시아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럼 마스터. 저는 람파시나 엘티노스로 호적에 써놓으면 되는 것인지요?”
“어째서 이럴 때만 둘이 호흡이 잘 맞는 건데. 서로 싸우면서 말이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할 때. 천천히 밖으로 나오고 있는 아우리스와 비니스는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데모르테와 회의를 했는데. 우리는 카일이 이번 한번은 다른 구역에서 난동을 부려도 눈을 감아 줄 것이다. 다만, 딱 한번뿐이고 그 이상은 인간들의 불만이 이곳까지 오기 때문이니, 실수 없이 일을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니 이 팔찌를 받고 우리들과의 언약을 어기지 말아다오.”
“그런데 이 팔찌는 뭐에요? 매우 위험해 보이는데?”
아우리스가 말을 끝마치고 내가 질문을 했을 무렵. 비니스 여신이 차근차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레테의 단검과 교환할 물건입니다. 딱 한번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그 팔찌 안에 모두 담아놨으니까요. 저의 권능이 담겨있는 팔찌이며, 그 팔찌를 착용하고만 있어도 신벌의 대행자라는 뜻이 됩니다.”
팔랑크스는 이 팔찌를 착용한 적이 없었는데. 신벌의 대행자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내가 받은 팔찌는 본격적으로 다른 대륙에 공격을 나가거나 침략할 때, 단 한번만 천계에서 개입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뭐라 할 수 없다는 소리라면.
“고맙습니다. 성원에 힘입어서 꼭 성공하도록 하죠.”
“당연히 성공해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이 세계는 파멸을 맞이할 테니까요.”
아우리스와 비니스, 레이베리아가 순서대로 천계에 올라가는지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심판자와 발키리가 모조리 사라지듯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한숨이 한 가득 몰려오고 여신들에게 받은 팔찌를 아공간 속에 넣어 보관을 한 뒤에서야. 일단락 마무리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주인은 뒤에 엘티노스라는 성을 붙이고 싶은 건가?”
“그럼 어떻게 해요? 딱히 좋은 성도 생각나지 않는데.”
여전히 이름에 관련된 이야기로 물고 늘어지는 레시아와 시나는 나를 따라 잡화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정문을 열었을 무렵. 쓰러져 있는 데모르테와 왼손에 들려있는 것은 무시무시하게 요염한 빛을 띠고 있는 무지개 색의 쿠키였다.
“그러니까 대체 이걸 먹는 이유가 뭐냐고...”
아직까지 산처럼 쌓여있는 무지개 빛 쿠키를 베어 물고 있는 루니아 누나는, 나에게 권유하듯 한 손으로 쿠키를 들면서 오른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나는 배고프지 않아서 먹지 않겠다고 자연스럽게 후퇴했다.
“그런데 루니아 누나. 데모르테가 왜 그 쿠키를 만들어 달라고 한 거에요?”
“그거는요오. 데모르테의 예지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으로 만들 것이 필요하다고 했어요오.”
“무슨 수면침에 맞아야 추리를 푸는 탐정도 아니고, 의식을 잃어야 예지를 발현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무시무시한 거 아니에요? 그 전에 지금 의식을 잃은 건지, 아니면 스틱스 강에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당연히 천계의 존재는 불멸의 존재라서 어떻게든 돌아오겠지만, 여신마저 날려버리는 루니아 누나의 요리실력은 매번 무섭기만 했다.
“그런데 카일은 단 한번의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 거에요오?”
“그걸 좀 생각해봐야죠. 어떻게 해야 이 일을 단 한번에 끝낼 수 있는지. 우선 팔찌를 받아서 막말로 카멜롯 그 자체를 지워버려도 상관은 없지만, 지금 잘못한 것은 켈모리아 하나뿐이니까. 켈모리아에게 항복을 받아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제거를 하기 위해서, 검은 높새바람의 힘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엘티노스도 만나러 가야하고요.”
엘티노스를 내가 스스로 만나러 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내일 당장 최후의 결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문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무지개 빛의 쿠키를 먹고 싶지는 않으니. 직접 천계로 가거나 이곳에 엘티노스를 불러야 하는 것이 옳은 방법.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찾아갈 수 없는 이유라면 잡화점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며, 내일 아침에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자. 켈모리아의 입장에서는 내가 급하게 뛰어가다가 넘어지길 바라는 상황이니까.
“생각을 해보니까. 2층과 3층에 있는 물품도 전부 확인해봐야겠네요. 이 상황에서 좋은 물품이 존재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안 좋은 상황을 전부 역전시켜줄 수 있는 물품도 있을 거에요.”
엘티노스 잡화점에 있는 모든 물건은 위험하기도 하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관을 하고 봉인을 하는 거지만, 이것들을 적절하게 사용만 할 수 있다면 저주받은 물품에서, 유능한 물건으로 바뀌기도 하니까.
제발 내일 별일 없이 아침 해를 맞이하기를 바라며, 조용히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토요일은 엔비디아 지포스 데이에 가게 되어서 쉽니다.
'취미로 글쓰는 중?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62 (0) | 2017.06.26 |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61 (0) | 2017.06.25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59 (0) | 2017.06.22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58 (0) | 2017.06.20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57 (0) | 2017.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