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밀리아를 다시 데리고 와서 상처를 보았을 때는 팔에 감겨있는 붕대 빼고 전부 정상처럼 보였다. 심리적인 충격이나 그런 건 나중에 눈떴을 때의 이야기지만, 지금 밀리아를 걱정하는 것보다는 나의 정신상태부터 걱정하는 것이 좋았으니…….

 

나도 오빠라고 불러줘! 솔직히 200년은 더 살았으니까!”

 

삑삑!”

 

이비에게 그런 호칭을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아무튼 작은 소년으로 다시 탈바꿈을 한 세피르는 내 팔을 붙잡아 흔들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고, 어디서 녹음했는지 아르트 오라버니!”라고 부른 내 목소리를 계속 틀면서 황홀해 하고 있는 아르트리옴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은 계속 되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야. 곧바로 불러줘서 내가 아리엘을 지켜냈다는 것에 나 자신도 기특해 하고 있어. 그리고 애절하게 외치는 목소리 고마워! 아리엘!”

 

놀리려는 듯한 어조는 200%정도 듬뿍 담겨있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올 때만큼, 마신이고 뭐고 그냥 다 찢어버리고 싶다는 충동만 한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이후에 도서관 한 쪽에서는 마법진이 빛을 내기 시작하면서, ‘향수 대신 와인을 뿌렸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적포도주의 향이 이곳까지 울리면서, 홍조를 띈 켈모리아가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보다 지금 저녁 6시인데?

 

아리엘! 아우! 우리 이쁜이!”

 

술을 마셔서 그런지 예측할 수 없는 패턴으로 날 끌어안아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술 냄새가 나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나까지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켈모리아! 여태 어디에 다녀온 거에요!”

 

그야. 조사하러 갔었지. 검은 높새바람인가 바람개비인가 한 녀석들.”

 

조사를 하는 건 좋은데 왜 술에 떡이 되도록 마셨냐고요!”

 

그야! ……. 정보원이 술고래라서?”

 

대체 어느 정보원이야?

 

사람이 취하게 되면 거짓말은 잘 하지 못하게 되잖아? 그런고로 우리 정보원 씨는 서로가 취하면 그때부터 비즈니스를 시작하지이. 그나저나 오늘은 또 무슨 고생을 했길래 아리엘이 이렇게 어두운 표정으로 있었울까?”

 

서서히 발음마저 어눌해지는 켈모리아의 술주정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간 밀리아에게 벌어진 일과 더불어, 검은 높새바람의 일원들이 이곳 근처에 집처럼 드나드는 말을 했다. 분명 이 일은 내부자가 너무 잘 도와줘서,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타격을 한다고 설명을 했지만…. 계속 웃으면서 고개만 힘겹게 끄덕이는 켈모리아의 모습으로 보아, 이 일은 나중에 술이 깬 다음 한번 더 말하도록 하자.

 

그렇구나. 이번에는 밀리아 무슨 경우로 습격을 당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심하고 자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왜 도서관에 아직도 남아있엉?”

 

그야. 안전한 곳이 켈모리아의 집보다는 도서관이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켈모리아의 집이 노출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행동이었지만, 켈모리아는 나를 기특하다는 얼굴로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면서 한 마디를 했다.

 

아리엘. 밀리아의 붕대를 제거해줄래?”

 

?”

 

술에 취해서 실실거리고 있던 얼굴표정에서 날카롭게 그지 없는 눈으로 밀리아의 왼팔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의식을 잃고 있는 밀리아의 붕대를 전부 풀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보라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밀리아의 왼쪽 팔은 대부분이었고, 상의단추를 풀어서 확인을 해보니, 이미 어깨를 넘어가고 있었으니까.

 

역시나 독이네. 지금 내가 오기 전까지 밀리아는 계속 자고 있었어?”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속에서는 울분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크로우는 결국 살려줄 마음이 없으니까, 밀리아의 팔에 독이 든 단검을 찌르고 나서 검은 서신을 켈모리아나 나에게 주라고 했을 테니까.

 

해독제는 만들 수 있어요?”

 

그야 당연하지. 연금술도 마법의 영역 안에 포함되니까. 엘릭서 하나는 재료만 있으면 순식간에 만들어 준다고?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이곳은 도서관이라 재료가 전혀 없어. 집에도 이걸 해독할 수 있는 약을 만들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해. 그러니 재료를 모으기 전까지는 밀리아가 버텨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너무 많이 퍼지는 바람에 어떻게 될지는……”

 

나는 결단을 했다.

 

제가 짊어 질게요. 그러면 시간을 벌 수 있죠?”

 

남을 위해서 독을 짊어지겠다는 것만큼 무식한 일도 없지만, 내 몸은 본래 다른 인간의 몸보다 튼튼하기도 하고, 밀리아의 몸에서 독이 퍼지는 속도보단, 내 몸에 담아서 독을 퍼트리는 속도가 더 늦을 거라고 판단했다. 켈모리아는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군. 의도는 파악되었어. 하지만 너의 몸에 독을 옮기려고 하는 순간, 가속마법이 활성화 되면서 밀리아의 몸을 전부 잠식해버릴 거야. 만약 옮기는 것을 성공한다 할지라도 너를 잃는 일은 할 수 없어. 그러니 다른 방법을 사용할 거야.”

 

다른 방법이라고 하면서 켈모리아는 나에게 말하기를….

 

그 부위를 절단하면 돼.”

 

그건 제가 허락 못해요!”

 

. 그럼 큰일이네. 그렇지. 세피르보고 밀리아의 꿈에 들어갔다 나오라고 하는 동안, 너는 지금 막 들어온 잡일 좀 대신 처리해줄래?”

 

나는 켈모리아가 말한 대로 세피르에게 명령해서 밀리아의 꿈속으로 침투시켰다. 분명 기억을 헤집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잡일을 처리하면……

 

잠깐. 잡일이라고요? 5층석탑분량의 잡일이 드디어 끝나나 했더니 또 하라뇨?”

 

그야. 오늘 새로 갱신 되었거든.”

 

잡일이 무슨 일일 퀘스트도 아니고 왜 이렇게 많이 쌓여있는 거에요!”

 

정신을 차리고 켈모리아의 책상을 보아하니 천장에 닿을 듯하게 서류가 올라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위기이며 이걸 전부 다 처리하려면 새벽을 꼬박 보내야 하겠지. 어쩔까? 나는 가만히 아르트리옴을 바라보며 무언의 구조요청을 보내려고 했지만, 이미 명계로 갔는지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왠지 아르트리옴도 일하기 싫어서 지상에 올라온 것처럼 보였는데, 이곳에서 나의 부탁만으로는 잡일을 처리하기 싫겠지.

 

결국에는 시간을 들여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절망적인 서류처리를 도서관에서 할 때. 이비에게 언제 시켰는지 삑삑!”하는 울림과 함께 재료를

 

-붸에에에에에에에에엑!

 

토해냈다.

 

삑삑!”

 

이비는 내 근처에 날아다니면서 가만히 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잘했다고 칭찬해 달라는 건가?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을 때. 켈모리아는 알 수 없는 액체범벅이 되어버린 유리병들을 거침없이 만지면서 이름을 확인했다.

 

. 다 맞아. 이비가 제대로 가져왔네. 다행히도 유리병에 담아서 내용물이 이비의 뱃속에 녹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였어.”

 

그럼 그거 위액이잖아.

켈모리아는 곧 이어 마법을 사용해 깨끗하게 자신의 손까지 헹궈내고, 연금술을 하고 있는 동안 세피르는 밀리아의 그림자 속에서 스르륵!’하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외로 골치 아프게 생겼는데?”

 

수고했어. 세피르. 그보다 뭐가 골치 아프다는 거야?”

 

세피르의 한 마디가 나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면서 결제 도장을 쥔 체 물어보았더니, 그 다음 날아온 답은 다음과 같았다.

 

밀리아의 집안이 검은 높새바람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기억을 보고 왔어. 밀리아 본인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가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정보야.”

 

증거 인멸을 위해서 독을 집어넣은 건가?”

 

그건 아냐. 켈모리아가 살려낼 거라고 믿고 방치해놓은 것뿐이래. 예언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오라클 타입의 마법사들은 수가 적어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아마 우리를 공격한 이유부터 시작해서 너의 존재까지 다 알고 있겠지.”

 

이미 몇 수 앞을 보고 나서 공격을 행하다니.

그러면 이게 실패할 거란 것을 알고도 했단 소리라고 한다면, 무슨 이유로 이런 공격을 했는지 알아내야 하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네. 켈모리아. 이번 일은 엘티노스 잡화점에도 의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글쎄.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바쁜 인생이라서, 우리가 괜히 끼어들다간 더 골치 아파질 거라고 생각해. 가봤자 수많은 잡화점 멤버의 눈치 밥을 먹긴 싫고, 내가 파이론에 도착하자마자 이사벨 언니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진심펀치를 날리러 올 것 같거든.”

 

이사벨 씨는 원펀맨이 아니잖아요.

 

그저 귀찮은 것뿐이죠?”

 

정답~”

 

해독약을 전부 다 만든 켈모리아는 어디 한번 볼까?”라며, 자신의 입에 액체로 된 약을 머금고 곧 이어 밀리아의 입 속으로 가져갔다. 애초에 약을 먹이려는 의도는 10%도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수치는 90%처럼 보였다.

 

으읍...? ! 으우웁!”

 

약의 효력은 확실했는지.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왕자님의 키스를 처방으로 눈을 뜨는 기적을 내가 실제로 생생하게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차이점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는 백마를 탄 왕자님이 없다는 것과, 비명을 지르려고 해도 이미 켈모리아의 혀가 침투했다면 늦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심정과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눈물까지 흘려야만 했던 밀리아는, 켈모리아가 입을 때자마자 억장이 무너지도록 울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첫 키스가! 내 첫키스가아아아!”

 

여자끼리니까 카운트로 치지마. 괜찮아 밀리아.”

 

나는 멀리서 위로해줄 수 밖에 없었고, 켈모리아는 도전과제를 완료했다는 기쁨에 오른손에 주먹을 힘껏 쥐며 임무 완료!”라고 조용하게 읊조렸다. 임무라고 한다면 해독이 아니라 밀리아의 입술을 빼앗는 것인가?

 

혹시 아리엘이랑 키스 했니? 아직이겠지? 첫 키스 상대는 아리엘이 아냐! ! 켈모리……아악!”

 

나는 결제 도장을 켈모리아에게 던져버리면서 소리쳤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은근슬쩍 저와 밀리아의 사이를 뭐로 만드는 겁니까!”

 

결제 도장을 던져버린 까닭에 쓰러져있는 켈모리아 근처까지 다가가서, 땅에 있는 도장을 주워야 하는 순간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 위화감을 나의 표현방법으로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손쉬운 예를 들자면 남자들이 샤워하고 있는 장소에, 어떤 남자가 오이비누를 땅바닥에 흘린 그런 기분이랄까?

 

지금 이 도장을 주우려고 몸을 숙인다면 엄청난 일을 당할 것 같았다. 게다가 켈모리아가 결제 도장을 맞았다고 해서 기절할 사람도 아니고. 내가 횡포를 부렸다면 반드시 복수하러 오는 사람이니까.

 

그런고로 나는 옆돌기를 하면서 바닥에 있는 결제도장을 잡

 

-파지지지지직!

 

꺄아아아아아악!”

 

음과 동시에 일어난 전기충격으로 몸이 무너져 내리면서, 관성에 법칙에 따라 책이 쌓여있는 장소로 몸이 날아갔고, 켈모리아는 크크큭!”하면서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리엘은 정말 재미있는 거 잘 보여준다니까? 괴롭히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지금의 몸 개그로 봐주도록 하지. 아무튼 밀리아?”

 

“……훌쩍.”

 

어느 사이에 울음을 뚝 그친 밀리아를 부르는 켈모리아는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은 무거워서 나나 세피르가 함부로 내뱉지 못할 것을, 너무 가볍게 질문하는 바람에 위압감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 말고도 이 학원에서 그 녀석들을 도와주고 있는 내부자는 몇 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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