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35
335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가장 인성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엘티노스에게 멋대로 끌려간 곳은, 저번에도 한번 반강제로 끌려와 본 엘티노스의 집이었다. 이 안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면 청소를 하고 있는데, 이는 엘티노스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천계임에도 불구하고, 이 새...아니, 이 양반이 멋대로 인간계의 물품을 가져와놓고 제대로 치우지 않는 바람에, “네가 걸리면 너도 죽어.”라는 협박에 의해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다. 시켜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사실에, 분통이 차올라 입 밖으로는 불을 내뿜을 것만 같지만, 아무리 화를 내어 입을 열어본들 만화에서 나올법한 화염방사는 내 입으로 실행할 수 없는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도 모자라서 나에게 앞치마까지 입혀놓고는 이게 무슨 일인가? 쓰레기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는 아랑의 아주 극미량만 빌려서 입으로 외쳤다.
“여우 불!”
녹색보다 더 연한 옥색으로 천천히 피어 오르고 있을 무렵. 내가 태우기를 원하는 쓰레기는 모조리 다 태우고, 이 집마저 태우고 싶지만 신앙을 빌린 불이기 때문에, 감정조절에 특히 조심을 해야 한다. 정말로 원하면 전부 다 태워버릴 테니까. 그래도 보통 여우가 사용하는 불은 푸른색이나 그런 것인데, 내 마나가 첨가된 것을 보아하니 에메랄드 빛의 불을 형성하고 있었다.
어떻게 첨가를 하면 이런 불이 나타나는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것은 신경을 끄도록 해보자. 아무튼 엘티노스가 오기 전까지 나는 이 천계에서 발이 묶여있는 상태라고 하지만, 설마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그건 그렇고...
“왜 하필 분홍색 앞치마지?”
이렇게 집안일에 대해 싫어하는 엘티노스가 앞치마를 이런 앞치마를 입고 가사일을 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말이 안 된다. 좀 더 뭔가 이 옷에는 다른 쓰임새가 있다는 소리이고, 이에 진정한 쓰임새에 대한 생각까지는 0.3초도 걸리지 않게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양반은 대체 몇 명의 여천사와 발키리들에게 이 옷을 입힌 거야.”
만약에 엘티노스에 대한 취향에 대해 논문을 쓴다면, 모든 마법사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지. 이런 사람이 마법에 대한 것을 간단하게 체계화 시키고, 여러 마법을 일반화 시키기 위해 노력한 영웅이란 사실에 대해 말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 낮잠을 잔다면 괜찮을 것만 같은데?”
나의 신조는 평화롭게 산다는 일념 하에, 지금까지 잡화점에서도 낮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적이 많기도 했다. 애초에 공간침식마법과 좌표마법으로 모든 쓰레기들을 한 곳에 모아 소각을 시켰으니, 내 할 일은 엘티노스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뿐이고, 나는 아무 쇼파에 드러누워서 양손을 깍지를 껴 배게 대신 받치고 있었다.
차를 마실 수만 있다면 편안한 오후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엘티노스가 보유한 것은 대부분 인간계에서 볼 수 있는 물품들, 정확히 말하자면 엘티노스 잡화점에서 일부를 빼온 듯한 물품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똑똑!
누군가 엘티노스에게 볼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 엘티노스는 어디에 있는지 부재중이기에, 지금은 집에 없는 척을 했
“카일 공! 샤이어 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른 것에 대해 깜짝 놀라 쇼파에 떨어질 뻔했다. 샤이어는 내가 지금 이 위치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천천히 문 앞까지 이동을 한 뒤에 문고리를 잡아 비틀었다. 천천히 열리는 문 틈으로 하얀 눈과 같은 머리를 가진 남성은 나를 보며 반가움에 미소를 피웠다.
“람파시나 님의 첫 번째 추종자. 샤이어 입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어라?”
“당연히 알고 있지. 샤이어가 당황한 이유도...”
엘티노스가 없는 곳에서 내가 주인행세를 하기에는 뭐하니까 문만 살짝 열어둔 체, 나는 용무만 듣기로 마음을 먹고 우선, 이 일에 대해 어찌 되었는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려고 했지만, 샤이어는 먼저 내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람파시나 님께서는 어디에?”
“단독행동 중이야. 인간계에서. 지금쯤 잡화점에서 박쥐처럼 쉬고 있겠지. 시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다면 내가 전해줄게.”
“아뇨.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고 따로 정기적으로 기도를 드릴 때 말씀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복장으로 있는 겁니까?”
“샤이어. 엘티노스와 몇 번 마주해봤어?”
“아직. 엘티노스 님은 상급신이기 때문에, 저 같은 하급신은 아직까지 만날 수도 없습니다. 아 물론 내일부터 엘티노스 님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럼 내가 왜 이런 복장을 하면서, 무언의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게 될 거야.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담당부서를 바꿔달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아직까지 세상물정에 대해 모르는 샤이어에 대해서 크나큰 충고의 말을 던졌다. 엘티노스가 없는 이 기회에 지금 당장이라도 더 많은 것을 알려줘야 한다.
“엘티노스 님은 좋으신 분이라고요?”
“대체 무슨 약을 먹으면 그렇게 판단하는 거야? 엘티노스는 말이지 자신이 해온 업적과는 다르게, 하는 일이 그냥 동네 건달 수준이란 말이야. 어, 그러니까. 인간계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보다 더욱 더 악질...”
“어이. 지금 나에 대해 험담을 했냐?”
내 시야 밖에서 엘티노스의 노기가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완전히 열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시야확보가 어려웠던 것이 크나큰 실수였다니.
설마 샤이어하고 동행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럴 때일수록 겁을 먹어서는 안 되고, 더욱 더 강하게 문을 열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맞잖아요! 지상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저를 제멋대로 데려와서 청소나 시...아야야야야얏!”
내 볼을 잡아 올리면서 그 들어올려지고 있을 때, ‘내 얼굴가죽이 뜯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고통의 강도를 알리는 내 양쪽 다리의 움직임은 경공술을 사용하는 무림인과 같았고, 10초 뒤에 나를 던지다시피 땅에 내려놓고는 샤이어를 보며 “들어와.”라는 말과 함께, 엘티노스는 무심하게 내 옆을 지나갔다.
“야. 차나 타와.”
“제길. 어째서 이런 인성이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거야...”
아직까지 얼얼한 내 볼을 붙잡고 차를 타야 하는 운명을 지닌 나를 뒤로한 체, 샤이어와 앞으로 자신과 같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투덜이 입니다. 건들지 마시죠.’라는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놔도, “미지근해. 다시 타와.”라는 말이 곧바로 날아왔고, 대략 3차례에 걸쳐서 겨우겨우 “뭐. 죽지는 않겠지.”하고 마시고 있는 엘티노스의 반응을 관찰했다.
“어쨌든 지금은 네가 맡아야 할 위치는 일이 그만큼 많지 않다는 소리야. 알아듣지?”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냥 자기 일을 다 건네주고 ‘나는 쉴 테니 알아서 해보거라.’라는 정신이 뻔히 보이는데, 일이 많지 않다고? 차라리 ‘발키아 산맥은 너무 짧다.’라는 헛소리를 해보시지?
“야. 너 나에게 뭐 불만 있냐?”
“별로요.”
“귀가 내려가 있는데?”
“이건 제 귀가 아니라서 저의 감정의사가 아니거든요.”
하여간 눈치는 상당히 빨랐다.
“그나저나 데모르테에게 들었어. 운명의 날이 좀 일찍 왔다면서?”
엘티노스는 샤이어가 있는 눈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말했다.
“뭐. 절대적인 날이기도 하죠. 근데 그게 왜요?”
엘티노스는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죽지 않기를 빌어야 할 걸? 네 아래로 들어오면 너는 완전히 끝장이니까?”
내 생에 처음으로 죽으면 안 되는 이유가 나타나게 된 원인이 여기 있었구나. 보통 사람은 죽음을 받아들이면 삶에 대해 무감각해진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그 상태였는데 어느 사이에 죽기 싫다는 감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죽어서 명계로 가며 뱃사공에게 인도를 받아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죄를 고백해서 마계로 갈지 천계로 갈지 지상으로 갈지에 대한 3개의 문중에 천계로 가게 되면, 그냥 거기가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수 없는 과로사에 시달려야 하다니.
“제길! 나는 필사적으로 살아남아 보이겠어!”
지금에 와서야 큰 깨달음을 얻고 나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내 세상을 향해 외쳤다. 정확히는 세상이 아니라 천계에서 외친 것이니, 분위기 상 뭔가 맞지는 않아도 그것에 대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이제서야 평소와 같은 얼굴이 나오는 군.”
평소와 같은 얼굴이라니?
나는 엘티노스의 말을 듣고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엘티노스는 곁눈질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말 하기를...
“어린 녀석이 삶에 대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살지 마라.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우울해 보이고 초초해 보이니까. 쓸 때 없이 해탈하지마 아직 넌 젊어. 그리고 절대적인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피해갈 방법은 있어. 최대한 살아남을 생각이라도 하고 살아라.”
아무 말도 못했다.
엘티노스가 나에게 살아남으라는 말을 할 줄이야.
분명 다음 해는 서쪽에서 뜨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엘티노스는 영웅이잖아요? 잡화점을 이어받았으면 저도 영웅이 될 자격이 있는 거 아니에요?”
순간 격하게 내 멱살을 들어올리며 엘티노스의 눈에는 핏발이 선체로 소리쳤다.
“쓸 때 없는 소리로 나에게 토론을 한다면 그 입부터 지퍼로 닫아버리겠어. 그리고 영웅은 그리 좋은 아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 지키는 것이 뭐가 멋있어? 따지고 생각하면 그냥 다 개고생이지. 누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거냐? 제 아무리 불이 멋지게 타 들어가서 사람의 눈에 기억된다고 한들, 다 타버리고 남으면 그 불은 더 이상 기억해주지도 않아. 그런 소모품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그 전에 내가 널 직접 죽여버리겠어.”
처음으로 엘티노스에게 진심 어린 분노를 느끼고야 말았다.
처음 마주하는 분노에 온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생각조차 일시적으로 멈추게 만들었다. 나를 쓰레기 봉투처럼 집어 던지면서 엘티노스는 입을 열기를...
“나도 좋아서 영웅이 된 것이 아냐.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인간이 살기에는 무리한 나이도 있었고 그때 당시에는 한계도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너는 아직 전부 성장하지도 않았고 여전히 전성기야. 용사들이 꿈꾸며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이 되도록 노력하지마. 모든 일이 끝나고 태연하게 너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주인공’이 되란 말이야.”
나름대로 나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엘티노스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없이.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조용히 할 뿐이었다. 절대적인 운명이라고 한들 내가 어째서 죽어야만 하는가? 꾸준히 생각하고 노력하고 관점을 비틀면, 언젠가는 빠져나갈 구멍 하나쯤은 존재할 것이라 본다.
“애초에 엘티노스 씨. 그 검은 액체로 쓴 글자는 본인이 쓰기에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엘티노스는 코를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잡화점으로 보내줄게. 앞치마는 잘 걸어놔라. 오늘 예약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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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달 이후에는 풀근무 서라는 사장님의 말씀이 있는데...
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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