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죽음은 인간의 종착지다.

늘 죽기 위해 인간이 태어나는 것 같은 생명은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필사적으로 루니아에게 도망가려는 카일의 생각.

----------------------------------------------------------------------------------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들은 어떤 기분으로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하면,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가 있는데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단계로 올라간다고 한다. 뭐 가장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면 정작 예언으로 나의 운명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5단계를 밟고 있는 것은...

 

마스터가 죽을 운명이라니요. 저는 그런 어설픈 예언에 확신할 수 없습니다!”

주인. 말해보거라! 지금이 모두 몰래 카메라라는 사실을! 그리하면 짐이 아껴놓은 육포를 선사하겠노라.”

 

내 양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사역마였다. 나중에는 정말로 대리 임사 체험이라도 해줄 것마냥 잡화점에서 이리저리 떠들고 있는 사이에, 아직까지 작아진 몸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머지않아 돌아온다는 정체불명의 희망을 끌어 안고, 아직까지 살아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아니, 솔직히. 내가 지금 죽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루시피나는 방에 박혀서 울음소리를 이리저리 퍼트리고는 나오질 않았으며, 더군다나 루나와 카렌은 지하 1층에 들어가서 무슨 일을 벌이는지 모르겠지만, 음침한 기운이 문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을 무렵. 나는 꼬리 3개씩 사용해서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의 얼굴을 감싸서 조르고 있어서, 양 옆에서 숨을 못 쉬겠다는 소리가 꼬리에 묻혔다.

 

데모르테는 그저 담담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의외로 카일의 운명 축은 점점 기울고 있다고나 해야 할지...이른 나이에 정말 안 되긴 했네. 칸포리우스 제국의 사건에서 점점 멀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지만, 카일이 그 사건에 개입하지 않으면 점점 트리니티 쪽으로 전세가 기울게 되어버리니까. 어느 쪽에서도 배드엔딩은 바뀌지 않아. 카일은 벌써부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줄은 몰랐는데?”

 

나는 양 옆에 사역마를 묶은 꼬리를 풀어주고 한숨 디럭스 에디션을 풀어서 내쉬었다. 애초에 이미 내가 죽는다는 전제로 굳어지고 있는 모습에 한탄할 뿐. 아직까지 칸포리우스 제국에 관련된 사건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고, 내가 희생하는 것은 사건의 거의 막바지라는 뜻인데, 지금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많으며, 어째서 지금 내가 이곳에 붙잡혀서 사역마들이 내 대신 죽음의 5단계를 밟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 트리니티의 얼굴도 못 봤는데, 게다가 제가 막바지에 희생해서 모두를 구하는 거잖아요? 지금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불치병에 걸린 시한부 환자마냥 다루지 말아줬으면 좋겠네요.”

 

팔랑크스는 거대한 몸으로 다가오면서 입을 열었다.

 

카일의 심리상태. 매우 안정적임. 애초에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꾸미고 있는지 의문.”

 

아니. 운명이 절대적이어서 피할 방법은 거의 없어. 일단 내가 죽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확실해진 것 같아.”

 

마스터...”

 

하얀 올빼미가 울먹이면서 나를 애절하게 부르자, 나는 머리를 쓰다듬고는 웃음을 지었다. 뭐 죽는다는 것은 무섭기도 하고 언젠가 도착해야 할 끝이라고는 하지만, 마음의 정리는 아직 되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떠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마음이 평온했다.

 

당장 죽는다고 해도 냉철한 그 정신은 본받을 만하군. 주인. 애초에 우리가 호들갑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레시아는 어이 없다는 어조로 앞발을 핥으면서 입을 열고 있었다. 아우리스 앞에서 느닷없이 변신을 하고 내 손목을 붙잡아서 잡화점으로 끌고 가더니, 잡화점에서 내가 죽는 걸로 이리저리 불처럼 화내다가, 루니아 누나가 난입을 해서 엉망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그날 잡화점에 돌아오자마자 루니아 누나의 귀에 들리는 바람에, “백장미 마지막 호라뇨오!”라고 울부짖으며 집에 간 줄 알았는데, 5분 뒤에 다시 되돌아와서는 300가지의 옷을 가지고 영정사진 대신 이 옷들을 찍겠다고 해서, 3시간동안 도망가야 했잖아요.”

 

그래도 우리들에게는 큰일이다. 애초에 주인은 우리를 두고 떠나고 싶은가?”

 

그야 당연히 싫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여러모로 할 일이 좀 많이 바빠지겠네요. 잡화점도 이제 새로운 주인을 선택해야 하고, 저도 후배를 위해서 조금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엘티노스가 이상하게 써 놓은 규칙도 수정해야 하고, 칸포리우스 제국에 대해서 수사를 또 해야 하고...저의 마지막 날은 아직까지 많이 남은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직 나는 할 일이 많다는 것.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직 나는 많이 굴러야 한다는 것.

 

죽는 순간까지 쉬지도 못하고 일이나 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태클 걸고 싶어지는 기분이네요.”

 

내 말에 모두가 침묵의 강에 빠져버렸다.

아니. 지금 내가 당장 크윽! 숨만 쉬면 죽는 병이...쿨럭쿨럭!”이러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에 트리니티가 날 뛰는 날이 아직까지 모르니까, 길게 살아갈지 짧게 살아갈지 명확하지도 않는데, 물론...길게 보았을 때는 1년 안으로는 죽겠지만...그래도 아직까지는 삶의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레시아!”

 

, 뭐냐. 주인.”

 

기운이 없는 고개를 나는 소리쳐서 강제로 들게 만들었다. 어린 모습의 내 손은 확실히 작았지만 고양이 얼굴 하나 감싸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 그대로 나는 아이언 클로를 레시아에게 했다.

 

아파! 아프다! 주인! 느닷없이 무슨 짓인가!”

 

그렇게 침울하게 있을 시간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그나마 절대적인 운명을 살짝 빗겨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마왕의 일 아니에요? 레시아는 마왕이잖아요?”

 

레시아는 손톱으로 내 팔을 긁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긴, 운이 좋게도 짐은 마왕이다. 절대적인 운명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야 수도 없이 많이 연구하고 있으며, 그것은 짐이 수많은 용사들의 신성주문을 피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애초에 짐은 주인보다 더욱 더 많은 세월을 살아나갈 수 있는 몸이며, 주인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절대적인 운명일지라도 말이다.”

 

지금 누구 하나라도 침울하게 있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이니까. 베니는 왠지 몰라도 계속 내 곁에 꼭 붙어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슬라임인지 아메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젤리 같이 매끈해 보이는...뭐라 말해야 하지? 세포막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아무튼 쓰다듬어 주고...

 

. 이런. 마리아가 했던 수작이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전에 마리아가 내 목에 검은 달의 문양을 새겨놨고, 영혼은 자신이 직접 회수하겠다고 뭐라 한 것 같았는데. 제길 나는 죽어서도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할 처지인 것인가? 안 되겠다. 나는 죽을 때 영혼마저 소멸해야겠어.

 

[정말이지 누가 보면 마지막 운명을 듣지도 않고 계속 살아갈 남자로 보이는 군. 정신방어가 강력하면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인가? 아직까지는 카일이 할 일이 많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들이 카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1%정도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아뇨. 지금 돌아볼 때가 아니라서 이러는 거에요. 지금은 트리니티를 처단하는 쪽이 우선이니까.]

 

[그리 굳건하고도 냉철한 자가, 전에 마리아 앞에서는 여자애 마냥 울부짖...]

 

[아랑! 대체 무슨 소리를!]

 

[확실히 정신감응은 무서운 거로군.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섞여버리는 마법이라니. 그걸로 밤에 사용할 필살기를 사용한 그 자체가...]

 

[애초에 아랑은 그 자리에 없었잖아요!]

 

[내가 있는 곳은 카일의 의식공간이라고? 의식공간에서 녹아 있는 무수한 정보는 다시 기억공간으로 처리가 되고는 하지, 그 기억공간은 의식공간에서 얼마 있지도 않고, 많이 가까워서 가끔가다 다른 여자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데 간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하지마!]

 

내 머릿속에서 무시무시한 일을 하고 있었다니, 빨리 내가 어린 모습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야 될 것 같다.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아랑을 내쫓고는 싶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가만히 있도록 하자.

 

[그런데 그렇게 끈적끈적하게 할 수 있으면서, 평소에는 왜 그렇게 피하...]

 

[조용히 하라고 했지! 유부 안 준다!]

 

[알았다. 조용히 하겠다. 정말이지, 요즘 어린것들은 뭐만하면 소리를 지르는구먼...]

 

소리를 지르게 만들잖아.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내 모습이 우연히 거울에 비추어졌을 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 운명 속에서도 한숨을 내쉬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상시와 다를 것이 없는 나의 모습으로 천천히 되돌아오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나저나. 루시피나는 어떻게 하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을 만큼, 루시피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 매우 걱정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나에 대한 일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루시피나를 위로하러 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나는 어느 사이에 머리 위에 있는 베니를 내려놓고, 루시피나가 있는 방으로 천천히 향했다.

 

신사다운 매너를 위해 노크를 3.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훌쩍거리고 있는 소리일 뿐이었다.

 

들어갈게요? 루시피나.”

 

나의 대답에는 침묵이 답을 해주었다.

 

아직 해가 중천임에도 불구하고 대체 어떻게 방안을 꾸몄는지 모르겠지만,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거의 밤과 비슷한 환경을 자아내고 있었고, 침대에서 엎드려 울고 있는 루시피나에게 천천히 이동했다.

 

루시피나? 아직 그렇게 울기에는 시간상 맞지 않아요. 그러니까 머나먼 미래에 그렇게 울어주...아니 이게 아니라.”

 

침대 옆에 앉아서 어처구니 없는 말은 다시 부정하고, 내 작은 손으로 루시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항상 밝게 웃고 있는 사람이 하늘이 무너져라 울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 이게 전부 레시아가 나를 잡화점으로 억지로 끌고 가서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신랑...”

 

왜요? 루시피나?”

 

신랑은...정말...희생되어야만 해?”

 

저는 잘 모르겠네요. 제 운명의 날이 언제인지 몰라도 그때 한번 봐야죠.”

 

엎드리면서 소리가 다 죽은 목소리로 물어보고 있으니 나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신랑...부탁이 있어.”

 

우울한 것을 틈타 밤에 사용할 필살기를 저에게 사용하는 것은 그만둬 주시겠어요.”

 

루시피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혀를 쑥 내밀면서 입을 열기를...

 

들켰어?”

 

당연히 들켰지요. 그래서 제가 지금 적정거리를 유지하면서 머리를 쓰다듬는 거잖아요. 물론 충격 받아서 진짜로 운 것은 확실하니까, 위로는 해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곳에 온 거고요.”

 

루시피나는 내 얼굴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신랑은 의외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태연하게 생각하는구나. 내가 다쳤을 때는 불을 일으키며 돌아다니는 불의 정령처럼 화를 냈는데.”

 

아직 곧바로 죽는 것도 아니고...병으로 고통스럽게 죽는 것도 아니니까요.”

 

루시피나의 붉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루시피나의 눈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랑이 내가 어떻게 할 줄 알면서도 그런 애매한 거리유지로 괜찮을까?”

 

당연히 괜...”

 

잠깐만 나는 애초에 루시피나를 위로하러 갔는데, 그게 루시피나가 노리고 있는 것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곳에 왔지? 제길 안 되겠다. 나는 어디 누군가가 시간을 정지하고 도망간 것처럼 나도 시공의 눈을 발동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 모았다.

 

이것이 나의 도주 경로...!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하지만 순식간에 나를 낚아채는 루시피나의 양 손에는 마나를 차단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사기야.’라고 보고 있는 나는 소리를 외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괜찮아. 나는 약혼녀인걸? 이제 이걸로 정식 부부가 되는 거겠지?”

 

정식 부부고 뭐고 일단 좀 놔요! 루시피나! 옷 속에 손 넣지 마!”

 

내 목 언저리를 날카롭게 핥은 루시피나의 입으로부터 기괴한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은 다음 아래와 같았다.

 

루시피나 마마가 온 몸 구석구석 씻겨줄게?”

 

무슨 얼어 죽을 마마소리가 왜 나오는 거에요! 그 전에! 언제 다시 목욕탕으로 보내진 거야!”

 

그 짧은 시간에 정확히 텔레포트를 하는 것도 놀랍기도 하고, 내가 어려진 것을 틈타서 절대적으로 불러서 안될 법한 호칭까지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을 시작으로, 경악이 끊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또 다시 시간이 날려지는 기분을 느꼈다.

 

-적절하지 못한 수위는 내가 날려버렸으니 안심하라고! By.킹 크림존.-

=============================================================================================

고마워! 킹 크림존!

 

블로그 이미지

FNL-Phantasm

카테고리

판타즘의 공간 (757)
글쓰기 관련 공지 (2)
취미로 글쓰는 중? (753)
즐거운 스트리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