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06
306
아직까지 초대까지는 이틀 정도가 남은 시간에 어릿광대의 소식을 기다리며, 오늘도 티아에게 시공간 마법을 배우고 있을 때. 기초만 2년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예정과는 다른 응용편을 다루고 있었다. 애초에 시저도 비눗방울로 응용해서 햇빛으로 공격한 것이 응용이지 않는가? 시공간에 관련된 응용편은 상당히 많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시공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점.
애초에 5초만 개방해도 내 머리는 금방 용량을 채워버리고 과부화를 일으키니...
“시간마법은 아직까지 간섭하기에는 좀 힘들 것 같네.”
티아가 입을 열었을 무렵. 나는 과부화가 된 머리를 부여잡고 시공의 눈을 해제했다.
아직까지 시간마법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흐름을 보거나 느낄 수는 있어도 간섭을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시간이 정지되었을 때 인지를 할 수 있지만, 거기에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의미가 된다.
“제길...머리가 익어버릴 것 같아.”
“그래도 절제력은 대단해. 아슬아슬하게 한계까지 버티다가 취소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여전히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티아는 그래도 아낌없는 칭찬을 했는데, 시공간마법에 입문한 인간은 과거에 엘티노스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촉매가 매우 뛰어나고 자원이 많으면, 그걸 중심으로 일시적인 시공간마법의 극히 일부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엘티노스가 마법진을 두루마리에 작성하고 뿌려서 이용하게 만든 다중시공간이동마법이며, 현재 대륙에서 아낌없이 엄청 비싼 가격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금 쉴까?”
“아니. 아직 5초밖에 안 지났잖아?”
“그래도 이미 머리는 한계라고 외치고 있는 걸? 지금 더 하다가는 기절하거나 죽거나 심하면 침을 흘리게 될 텐데?”
“아니. 어째서 죽는 것보다 심한 게 침을 흘리는 거냐고?”
새로운 기준점이 자리를 잡기 전에 태클을 걸었다. 머리가 과열될 때는 베니를 머리 위에 올려놓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베니와 접촉을 하고 있으면 상당히 행복한 기분이 든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은 이만한 것도 없다.
“이 생물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몰라도 굉장히 행복해보이네.”
“나도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도 루니아 누나의 요리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지금 이렇게 보니 루니아 누나의 요리는 요리가 아니라 창조같은 기분이 들어. 전생에 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도, 요리만 하면 내가 죽거나 심하면 잡화점이 춤추는 그런 기묘한 일이 발생하지.”
“그래서 시간역행을 배우면 뭐에 써먹으려고 하는 거야?”
“우선 루노아 씨부터 구출해야지. 그 다음에는 좀 신경 쓰이는 애가 있어서.”
티아는 급속도로 냉각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거. 여자야?”
“...맞긴 한데. 그건 왜?”
내 직감이 지금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사실대로 말하자 티아는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호오?”라는 말을 늘어뜨렸다.
“그렇구나. 여자아이가 신경 쓰이는구나. 그러면 카일이 더 이상 신경 쓰는 일이 없도록 이야기 좀 해볼까나? 크흐흣.”
“내가 말하는 것은 개인적인 관심이 아니라, 내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의뢰에 관해서야!”
“그 여자의 독을 빼지 않으면!”
“허공에서 칼을 소환하는 것은 그만둬! 네가 어딘가에 나오는 영웅왕이냐! 그만두라고! 잠깐만! 으아악!”
자기 멋대로 폭주하고 있는 티아의 공격으로부터 도망가고 방어하는 것만 10분정도 흘렀을 무렵. 겨우겨우 진정한 티아는 내가 말한 것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아이란 소리지?”
“어렸을 때가 트라우마에 걸리기 가장 쉬운 시기잖아? 여린 마음에 충격적인 일을 많이 당하면, 누가 다정하게 다가와도 과도한 경계를 하는 것이 당연해. 그러니까 이번 루노아 씨가 감옥에 잡혀간 것 이외에도, 무언가가 또 있으니 그것에 대해 조사를 해보려는 거야. 좀 다방면으로 조사할 가치가 있지. 이번 칸포리우스 제국에서 뭔가 일어나려고 해.”
“음. 그렇구나. 지금도 제거해야 할 여자들이 많은데, 하나 더 추가 되는 줄 알았어.”
대체 저 사고방식에 대해 뭐라고 말해줘야 잘했다고 입소문이 날까?
“애초에 내 사역마까지 제거하려는 거냐.”
“그래도 카일은 내가 소유해야만 한다고? 그것도 영원히.”
“소유한다는 말은 그만둬. 그것도 영원히.”
내 인생의 미래가 좀 어두운 모양이지만, 지금은 미래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집중을 해야 할 때이므로, 이 이야기는 그만 두고 느긋하게 어릿광대를 기다리면서, 찻주전자 안에 아직까지 온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허브티를 마셨다.
머리가 평온해지고 있을 때. 잡화점의 문은 느닷없이 열리며 칸포리우스 제국에 있을법한 메이드 하나가 공손히 찾아왔다. 애초에 그런 제국에서 메이드를 잡화점까지 보낼 일은 없으니, 누구인지 대략적으로 짐작이 간 나는 무덤덤한 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 의뢰를 완료했구나. 어릿광대.”
“그야 물론이지. 그나저나 이 메이드 얼굴 어때? 예뻐? 청순하고 가련하게 생겼어?”
“안리아스의 수정구나 확인해 볼까.”
“자기야! 무시하지 마!”
-파파파팡!
나도 무시하지 않고 태클 걸고 싶었지만, 어릿광대에게 겁을 주기위해 일부러 빗겨나간 검들이 검은 나무 바닥에 그대로 박혀있었다. 티아는 살벌한 눈으로 어릿광대를 노려보면서 노기가 서린 어조가 공기에 퍼졌다.
“카일에게 떨어져.”
그런데 어릿광대의 반응은 그런 것에도 불구하고...
“오오! 요정이다! 와아!”
신기해했다.
목숨에 위협을 받아도 어차피 밝고 건강하고 기운차게 움직이는 것이 어릿광대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의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는 것도 포함이 되는 걸까? 게다가 순식간에 내 모습으로 변한 어릿광대가 티아에게 입을 열었다.
“이 상태라면 다가가도 저항이 없다는 소리겠지?”
“무슨! 카일이 둘이라니!”
“애초에 어릿광대는 도플갱어야. 누가 보기에는 크툴루의 그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대상을 바라보기만 해도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어릿광대의 일이잖아?”
“그 말 그대로! 하지만 자기의 착 달라붙는 태클은 못 하겠는걸?”
“내 모습으로 나를 보며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냐.”
상당히 거리감이 느껴지니까.
어릿광대가 고생을 한 것으로 칸포리우스 제국에 침입하는 경로가 상당히 많아졌고, 경보를 울리게 하는 마법진의 위치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의외인 것은 어릿광대가 침투부터 시작해서 탈출까지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았다는 것.
“DNA까지 따라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런 건가?”
“도플갱어는 모든 것을 투영하는 것이 원칙이지. 물론 모습과 생물학적인 구조만.”
“그러니까! 내 모습으로 있는 것은 그만두라고!”
“요정님! 카일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해볼래?”
“할래!”
“하지 말라고!!!”
결국 분노로 인해 이성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본래 가면을 쓴 어릿광대에게 아이언 클로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티아는 내 옆에 소리치면서 “그만둬! 이러다가 죽겠어!”라고 외치고 있었고, 내가 힘을 풀고 내려놨을 때는 가면만 멀쩡했다.
“크...크윽! 추워...다리에 감각이 없어...다리가 잘린 것인가.”
“아이언 클로를 했는데! 왜 다리가 잘려나가!”
아직까지 맑고 건강하고 활기찬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다음에는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럼 이제 제국탐험이나 해볼까. 우선 루노아 씨의 방부터 잠입을 하는 것이 좋겠네. 시간역행을 사용해야 하니까 슬슬 시나를 좀 깨워야 하는데.”
문제는 시나가 내 몸 안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잤던 이불을 그대로 치우지 않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 올빼미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형태로 말이다. 아직까지 10대 중후반의 소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하얀 눈과 같은 긴 머리카락의 소유자가. 왠지 알게 모르게 어디서 볼법한 백설공주의 옷을 입고 눈을 감고 있었다.
“시나. 눈 떠. 슬슬 작전을 시작할 시간이라고?”
“마스터. 저는 지금 독사과를 먹은 관계로 키스를 해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급적이면 그날의 밤처럼 저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 난폭한 키스도 상관없습니다.”
“의식을 잃은 사람이 정말 말 하나는 잘하는군. ‘그날의 밤처럼’이라는 말은 왜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다만, 내 뒤에서 겨누고 있는 티아의 검들은 대체 어떻게 해줄 생각인데?”
“마스터.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 아무리 대답을 해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네가 눈을 감으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독사과도 없는데 어떻게 독사과를 먹었다는 거야!”
“루니아가 준 사과를 먹었습니다.”
“루니아 누나는 요리를 할 때 그 능력이 발생하는 거지! 평범하게 주는 건 발동이 안 되거든!”
여담으로.
사과로 애플파이 했다거나 사과주스를 만들었다고 루니아 누나가 보낸 적이 있는데, 그거 먹고 3일간 사경을 해맨 기억은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루니아 누나와 시장에서 과일을 보고 있을 당시에, 사과 하나를 사서 나에게 먹여준 것은 아무런 지장이 없었던 것이니. 이것은 확실하게 믿어도 되는 말이다.
아무튼 느닷없이 레시아가 검은 고양이에서 20대 초반인 성인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내 옆에 다가가며 하는 말은 다음과 같았다.
“무엇인가 주인? 짐이 한참 기분 좋게 벽난로에서 가위바위보 트레이닝을 하고 있을 뿐인데 소란을 피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 가위바위보 트레이닝은 또 뭔가요. 아니. 그보다...이제 시나와 함께 칸포리우스 제국에 잠입을 해야 하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대체 어디서 보고 구해왔는지 모르는 백설공주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고, 덤으로 일곱 난쟁이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는 새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고요?”
“혹시 주인에게 키스를 요구하는가?”
“‘혹시’가 아니라 지금 저러고 있잖아요. 난폭하게 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르겠지만.”
레시아는 빤히 시나의 얼굴을 보고 난 뒤에 천천히 다가가고는 시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흐음~”이라고 소리를 늘어뜨리기 시작하더니.
-즈큥!
“뭣!?”
“저, 저질렀어!”
어릿광대와 티아가 동시에 ‘저질렀어!’라는 말을 외쳤고, 동시에 효과음뿐만이 아니라 만화책에서 볼법한 글자들이 튀어나왔다. 처음 봤어...
“읍! 으읍!!! 우우웁!”
“과연 마왕님! 우리가 못 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시다니! 그 점이 흥분돼! 존경스러워!”
“그런 걸로 진짜 패러디까지 가져오지 마. 어릿광대.”
완전히 당황한 것은 시나도 마찬가지. 설마 레시아가 그대로 강습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떨어지라고 어깨를 밀고 있는 시나였으나, 레시아의 밑으로 누르는 힘이 더 강하다보니, 1분 정도의 짧은 저항 끝에 시나는 완전히 패배하게 되었다.
“비둘기의 라이벌은 주인이 아니야! 바로 짐이DA!”
“날 보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리고 보통 라이벌에게 키스하는 것도 아니고요.”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과 백색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수놓은 듯이 펼쳐졌지만, 곧바로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이 중력을 거슬러 공중으로 급부상했을 때는, 시나가 왼손으로 입술을 닦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향해 이미 주먹을 휘둘렀을 때였다.
그리고는...
“흐아아앙! 마스터!”
나에게 달려와서 껴안고 억장이 무너지는 듯이 울고 있었다.
나 이외에 천장에 박힐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보면 목이 먹혀버린 마법소녀처럼 천장에 박혀버린 레시아의 몸은 힘없이 매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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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은 것이 아니라,
목에 걸린것 뿐인데 왜 질식사로 죽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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