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74
274
막상 눈을 뜬 것은 내가 붕대를 감아서 “뭐야? 이제 미이라를 찍는 건가?”라고, 어처구니 없는 혼잣말을 내뱉었을 무렵. 검은 고양이인 레시아가 내 배 위에서 엎드린 체 눈을 감고 있었다. 레시아가 접근을 했다는 것은 데모르테가 어디로 사라졌다는 소리인가? 뭐 그래도 정상적으로 눈을 뜨니 얼마나 다행인가? 다시 한번 잡화점의 검은 나무벽을 보면서 레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작은 고양이가 살며시 붉은 눈을 뜨자, 내 시선과 마주치면서 말 하기를...
“주인. 이제서야 일어난 건가?”
“적어도 눈을 뜬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시죠. 그 폭발은 일반인이 맞았으면 죽어버릴 정도로 강력했으니까요. 평생 눈을 못 뜨는 줄 알았잖아요?”
오랜만에 뱃사공인 그 사신을 만날 뻔했으니까.
“어머니는 다시 천계로 돌아갔다. 다시 계승식이 있는 날에 찾아오겠다고 하더군.”
별의 아이 계승식은 아직까지 이틀하고도 얼마나 더 남은 것일까? 루멘은 정말로 죽는 것일까?
“어이. 주인. 지금은 다른 이의 생각을 하는 것은 그만둬라. 지금은 주인의 몸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행히 마법이 폭발하기 전에 보호막을 친 것은 상당히 좋은 판단이지만, 평소의 주인이라면 좌표마법을 사용했을 것이라 본다.”
“애석하게도 그때 당시에 제가 날아가는 운명을 봤거든요. 잡화점하고 같이 우주 저 끝으로 날아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지나가던 울트라 맨이 저를 구해줘서 다시 이곳으로 수송하는 운명이요.”
“어머니의 ‘운명의 관측자’인가. 그거라면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군. 운명의 관측자를 본 내용은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는 미래예지니까. 이미 봐서 다른 행동을 취하려고 해도, 그 이전에 운명이 발동해서 죽거나, 다치거나, 정조를 잃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은 아니에요.”
마지막은 정말 터무니 없잖아요. 그나저나 내 몸 상태를 보아하니, 왼팔은 골절로 보이고, 오른다리는 부러지거나 골절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금이 간 모양으로 보아, 마법을 맞고 저 멀리 추락을 한 데미지가 더 컸나 보다. 항마의 축복을 몸에 지니고 있는 나에게는, 일정 이하의 마법 데미지는 받지 않지만, 마지막에 내가 봤던 것은 레시아, 시나, 마리아, 루시피나가 합동으로 마법을 한꺼번에 날린 것. 그게 뭉치고 폭주해서 폭발하게 된다면, 본래 거기서 한줌의 먼지로 사라지는 기적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인간의 몸은 너무 연약하군. 그 정도의 마법을 맞고도 이렇게 뼈가 부러지다니.”
“레시아는 마왕이라서 잘 모르겠죠.”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주인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레시아는 배에서 가슴까지 올라와 말을 하면서도, 인간을 왜 이해하려고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은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에요. 다양한 변수와 가능성을 어떻게 일일이 전부 이해할 수 있나요?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이해가 되는 거라고요. 그건 그렇고.”
잡화점에 있는 검은 나무벽은 확실히 익숙한데, 원래 바닥에서 자는 것과 달리, 이번엔 처음 보는 침대 위에 내가 누워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레시아. 여기 어디에요?”
“무슨 소리인가? 당연히 잡화점...”
“아니. 잡화점인 건 알겠는데. 여긴 잡화점에서 정확히 어느 곳이냐고요?”
“그야 당연히...”
검은 고양이가 순식간에 본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나서, 언제나 눈이 가는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이 나를 향해 내려오며, 천천히 뭔가 사냥감을 드디어 잡은 듯한 눈으로, 입가에는 붉은 그믐달과 함께 속삭였다.
“짐과 주인 둘만이 있는 장소이니라.”
좋아. 천천히 생각을 해보자. 그러니까 여기는 지금 2층도 3층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잡화점 1층에서 내가 늘 자던 곳도 아니고, 마리아와 루시피나가 쉬는 공간도 아니며, 지하 1층에 루나가 사용하는 방도 아니니까.
“2층 계단 옆에 있는 모의전투의 방이잖아!”
모의전투로 시뮬레이션을 해서 전략과 전술을 가르치고, 다양한 환경을 설정할 수 있어서 적응력과 변수를 계산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지금은 레시아가 어떻게 해놨는지 몰라도 나를 1분 1초라도 더 속이기 위해서, 잡화점과 유사한 공간으로 만들어놓았다.
“오랜만에 주인을 독점을 해보는 구나. 요즘 그 비둘기 때문에 이렇게 둘이 달라붙는 날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이. 여길 청소년이 못 보게 할 생각이에요?”
“어른들의 놀이는 다 그런 것 아닌가?”
“어른들의 놀이라고 하지마! 그리고 지금 당장 내려오고!”
“불허하다. 짐은 확실히 말하자면 마왕이니라. 마왕은 언제나 인간들에게 있어서 공포의 존재. 주인은 짐을 사역마로 사용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주인도 결국은 인간이며 짐에게 언젠가는 굴복해야 한다. 가위바위보로.”
“가위바위보를 하기 위해서 마나의 반을 빼서 본모습으로 돌아가고, 제 배위에 앉아서 “잡았다!”라는 듯한 눈으로 보는 것이 정상이냐!”
레시아의 눈빛은 다시 평상시처럼 되돌아가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석하게도...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짐은 주인을 치료하기 위해 이렇게 방해 받지 않는 공간에 있는 것뿐이니라. 간호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더욱 혼잡하고 주인은 쉴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거겠지. 그러기 위해서 짐은 오히려 혼란을 틈타 바닥에 있는 주인을 끌고 와서, 이 장소로 순간이동을 한 것이다. 이곳이라면 확실히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시행하다니? 무엇을? 회복마법이요?”
회복마법 중에서도 일시적인 체력만 상승시키거나, 상처를 아물게 하는 그런 방법도 있고, 사제는 축복을 그 사람에게 내려서 상태이상을 치유한다. 그 이외에 중상이나 치명상을 입은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크나큰 시간과 마나가 소요하기도 하는데, 레시아는 내가 많이 다친 것을 알고, 확실하면서도 거대한 회복마법을 준비하려는 듯 했다. 이렇게 보면 나도 사역마를 잘 만났다는 생
“방중술이다.”
......각을 했다는 것은 전언 철회한다.
댁 정말 미쳤...아니...
“걱정 말거라. 피임마법은 확실하다. 저번에 그 로리콘 도마뱀이 했던 크나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
“진짜 레시아 정말 진심으로 확실히 정신줄 놨어요!? 지금 대체 무슨 아이디어를 했길래 그 머릿속에서 생성하고 입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단어에요? 그리고 피임마법은 또 뭔데! 당장 저로부터 반경 25만km정도 떨어져요!”
“반경 25만km면 이미 우주 밖이니라. 그리고 이건 주인과 짐의 결속을 더욱 강화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페어링이 더욱 강화가 되면, 주인은 이제 무리 없이 짐의 권능의 대부분을 빌려서 사용할 수 있고, 마기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짐은 주인의 능력치를 확실하게 강화할 수 있으며, 얼마나 떨어져 있어도 주인의 옆에 곧바로 나타날 수 있...”
“결속이고 나발이고 떨어지라고 말했잖아요!”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안 되잖아?
레시아의 고운 손이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내 볼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느긋하게 그리고 매우 차분하게 입을 움직였다.
“괜찮다. 모든 것은 처음이 있는 법. 짐도 처음이니라. 그래도 주인이 많이 다쳤으니까 가만히만 있거라. 천국이든 지옥이든 어디든지 짐이 확실하게 대려다 줄 테니까.”
“이거 만 15세이상 청소년마저 볼 수 없는 내용으로 가고 있거든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노선이라도 좀 바꿔요!”
“그렇게 싫다고 앙탈부리는 것도 지금까지니라. 주인의 견고한 마음이 우선일지, 아니면 몸이 결국 본능에 굴복하게 되어 타락할지는 천천히 알아가 보도록 하지.”
오늘 제발 내가 레시아를 사역마로 소환하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되질 않기를 빌어야겠다.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과거로 가는 마법을 배워서, 나란 존재를 지워버리거나. 그런데 일단. 이 거대한 위기로부터 벗어나야 하잖아!
레시아의 얼굴이 천천히 가까워지면서 마치 서서히 단두대를 올리는 듯한 서늘함을 받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이대로 당해야 하는 것인가? 나의 미래는 대체 어떻게
-콰앙!
“칫! 비둘기 녀석. 짐의 8중 결계를 이렇게 빨리 뚫다니. 앞으로 30분 정도는 더 오래 버티는 줄 알았는데.”
“마스터로부터 당장 떨어지세요!”
좋아. 미래는 보장받았다.
다행이네.
마나의 반이 더 빠져나간 이유가 뭔가 했더니, 시나 또한 여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레시아의 결계를 파괴하고도 사무적이며 태연한 얼굴이었다. 마치 결계를 부수는 것에 별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았다는 듯이.
“그 혼란을 틈타서 짐에게 도달할 줄은 몰랐노라. 마침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갔으면 주인을 짐 없이 못사는 몸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마스터는 그 누구에게라도 넘겨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냥캣을 소멸시킬 수도 있습니다.”
거대한 투기가 레시아와 시나 사이에서 빠르게 흘러 내려오면서, 주변에 있던 대기가 마치 도망가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참에 서열이 누가 더 위인지 확실하게 정하지 않겠는가? 계속해서 애매하게 실력을 겨루느니, 차라리...이 기회에 누가 주인의 정부가 될 수 있는지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자고?”
“좋습니다. 건방진 고양이가 상자 속에서 죽은 채로 나오는 것을 보여드리죠.”
이래도 아마 서로 봐주지 않게 싸우게 되면, 분명히 일방적으로 피해보는 것은 나밖에 안 되겠지. 그렇게 되면 지금 이 상태에서 더 다친다는 소리 아냐?
“레시아! 시나! 싸우지 마요!”
난 더 다치기 싫다고!
“없어져라!”
“사라지세요!”
어둠과 빛이 서로 섞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한번 의식을 잃어야만 했다.
***
“잘못했다. 주인. 한 번만 봐달라.”
“죄송합니다. 마스터. 용서를...”
이제 완전히 전신에 붕대를 감아버려서, 곧 있으면 이모텝이 부활할 때 나도 따라서 부활하는 미이라가 되어버렸다. 물론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다른 미이라와 다르게,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 이모텝은 여기에 없다는 소리겠지.
나는 어처구니 없어서 말을 할 수도 없었고, 화가 잔뜩 나서 가슴속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불덩이가 온몸을 태우고 있었다. 잡화점이 이제 겨우 빠르게 수복을 완료했으며, 카렌은 레시아와 시나가 싸울 무렵에, 뒤늦게 와서는 내가 땅바닥에 다시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겨우 겨우 그 둘을 뜯어말렸다고 했다.
마리아는 거의 숨이 끊어져가는 나에게 응급처치를 했고, 루시피나는 베가프를 부르기 위해 칸포리우스 제국까지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루나는...그걸 보고 또 스케치하고 있고.
결국 서로 머리카락이 엉망진창이고 부분 부분 검게 그을린 얼굴과, 해져버린 옷을 입고는 무릎을 꿇고 있던 레시아와 시나 중에서, 레시아를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레시아.”
“무엇인가? 혹시 용서를 해주는 것인가?”
“한달 동안 육포 금지에요.”
“그...그런!”
어디선가 내려치지도 않는 번개가 밖에서 내려쳤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는지 레시아는 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주인! 짐의 유일한 동반자인 육포를 한달 동안 금지를 시키겠다니! 그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재앙이니라!”
“그럼 오늘부터 그 재앙이 있겠네요.”
나의 단호한 대답에 레시아는...어라?
울고 있잖아!?
“흐윽...! 흐아앙! 육포를 못 먹다니! 주인은 어째서 짐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가아아! 으아아앙!”
마치 어린 아이가 때를 쓰듯이 다 큰 미녀가, 바닥을 구르면서 울부짖는 모습을 보며 정말 딱하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마왕이 육포 하나 때문에?
확실히 마리아의 말에 따르면 레시아의 지금 나이는 마계에서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다. 오히려 젊었으면 더욱 젊은 나이지.
“시나는 앞으로 1달 동안 내 몸 속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레시아와 같이 잘 것.”
또 한번 뭔가 벼락을 치지도 않는 하늘에 벼락이 떨어졌다.
오늘따라 왜 날벼락이 많은 거야?
“마...마스터. 그런...참혹한...훌쩍! 명령을 내리면...훌쩍!”
너도 우냐...
그보다 얼마나 레시아를 싫어하는 거야.
빠르게 다시 수정을 해야겠군. 이러다간 정말 잡화점이 울음바다가 되어 또 난장판이 될 거야.
“물론. 벌은 다음에 이 일이 다시 반복했을 때에요. 그때는 정말 가차없이 위와 말한 것처럼 시행할 거에요.”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라는 의미로 수정을 가하자, 레시아는 울음을 멈추고 다시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짐은...그럼 지금 육포를 먹어도 되는 건가?”
그 말을 눈물을 머금고 진지하게 말하지마.
“먹어도 되요. 그리고 다 큰 마왕이 왜 어린애처럼 울고 있는 거에요? 타락의 표식을 이어받은 마왕 레프리시아잖아요.”
훌쩍거리는 레시아의 눈가에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오른팔로 눈물을 닦아줬다.
“그리고 시나. 나를 구하러 온 것은 기쁘지만, 레시아를 너무 싫어하지는 말아줬으면 해. 그냥 보면 서로 이를 갈고 달려드는 앙숙이 아니라, 적어도 같은 편이라고 생각은 해달라는 거야.”
또한 시나의 얼굴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마스터...흐아아앙!”
“주이이이인!”
레시아와 시나가 서로 울면서 나에게 달려드는 바람에, 금이 갔던 갈비뼈가 부러져버리고, 한 동안 고통 속에서 베가프가 나를 구해줄 때까지 비명도 못 지르고 꾹 눌러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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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게오는 교대자에게 결국 팩트 폭력을 가했습니다.
물론 사장님께서 허가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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