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32
232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다 기다려온 결승전이라고 하지만, 결승전을 치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마음가짐일까? 과연 이걸 기대하고 있을지? 혹은, 끝에 가서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을지? 분명 한 번쯤은 상상을 하고 있어야 할 전개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서 모든 순간이 결승전과 같은 순간일 테니까. 잡설을 이렇게 오래한다는 의미는 나에게 있어서는 도피하고 싶은 순간이라는 소리인데,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 카린 양이군요? 저에게 취재를 당하고 싶어서 결승까지 올라오셨나요?”
윈디 메르아.
정보상인으로 모든 곳을 여행하며 그 돈으로 대체 어디에 쓰는 지는 불명이지만, 회색의 나부끼는 긴 머리카락은 사뭇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언제든지 여유만만한 호박 빛을 머금은 은은한 눈동자를 보아...
아마 나를 어떻게 구워 삶아먹을지 생각 중일까?
“엘라임이 경고한 사람이 너였군. 확실히 정보상인이 전 대륙을 휘어잡듯이 여행을 하는데, 오히려 약하면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이긴 했는데...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경우가 몇 가지 있어.”
“음? 뭔데요?”
“어떻게 정령왕 그 자체로 이곳에 존재할 수 있는 거지?”
엘라임이 윈디 메르아를 아는 시점부터, 바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윈디를 바람의 정령왕으로 결정한지 오래다. 하지만, 물의 정령왕도 해연의 몸과 동화해서 일부의 권능을 발휘가 가능한데, 문제는 윈디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인간계에서 정령왕의 권능을 100%사용이 가능하단 소리가 된다. 숙주도 없고 촉매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느닷없이 인간계에서 “야! 나는 피카추다!”라고 외치는...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정정해서 “야! 나는 바람의 정령왕이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맥없이 듣고 있는 당사자의 입장이다.
“애초에 바람은 자유로움의 상징. 정령왕이 인간계에 힘을 제약하고 나타나야 하는 이유는, 힘을 제대로 컨트롤할 자신이 없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저는 이 대륙의 흙 속에서 잔재하고 있는 공기마저, 수족처럼 다를 수 있을 만큼 힘 조절이 가능하거든요.”
“흙 속에 있는 공기? 그보다 땅은 네 권한이 아니잖아?”
“뭐...비유로 표현하면 그런 미세한 것까지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말이잖아요? 그런 걸로 태클을 거는 것은 카린 양 답지 않아요? 아니면...”
여태 볼 수 없었던 윈디의 잔혹한 웃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떨고 있나요?”
떨고 있냐고?
그거 당연한 거 아닌가?
지금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여기서 빨리 도망가서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전설의 보호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인. 기권할 생각인가?]
레시아는 나에게 텔레파시로 담담하게 말했다.
[상대는 바람의 정령왕 그 자체다. 100%의 힘을 발휘하며 그녀가 휘두르는 손 한방으로 주인은 마치 개미가 죽듯이 허무하게 숨을 거둘 수도 있지. 그런데 주인은 기권을 할 생각인가?]
[무슨 소리에요? 결승이잖아요? 어떤 사람이 결승전에서 기권하는 바보 같은 일을 하겠어요? 물론 좀 처참하게 질지도 모르겠지만...오히려 정령왕 본인이 왔다면 거대한 마나로 이루어졌겠죠?]
[새벽<Daybreak>을 사용할 생각이로군. 하지만 그 틈을 줄지...]
[사용하긴 해도...좀 다르게 사용할 거에요.]
오른손에 들린 사브르에 비어있는 왼손을 옮기고 천천히 검면을 쓸어 내렸다. 짙은 푸른 빛의 마나가 사브르 주변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기 시작할 무렵. 윈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하~! 그러고 보면 이곳에 존재하기 위해 거대한 마나를 응축해서 고정해야 하는 존재였지? 정말 머리 잘 쓰시네요? 카린 양. 근데...저를 단 한번이라도 맞출 수 있을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은 마나는 모두 신체가속을 위해 활용할 예정이다. “시작!”이라는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윈디에게 거침없이 달려가서 대각선으로 그어
-파팡!
“큿!”
옆에서 다른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왼쪽으로 튕겨나가듯 날아갔다.
“여전히 잘 고쳐지지 않네요? 카린 양의 검은 늘 직선적인 움직임이라니까요?”
방금 주먹에 맞은 건가?
“저야 늘 항상 모두와 함께 놀기 위해서 장난기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저도 할 때는 하는 정령왕이랍니다~? 게다가 오늘은 결승전인만큼 카린 양의 한계를 하나씩 하나씩 속살을 드러내듯이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방출!”
검기가 튀어나가는 속도는 빠르지만, 윈디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정말 터무니 없는 녀석이 최종보스라는 복선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 뒷통수를 쳐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위에요!”
분명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자연스럽게 위를 보았지만, 느껴지는 살기로는 뒤쪽에서 날아오는 발차기를 검으로 막으며 다시 튕겨나갔다. 오히려 지금 날아가면서 자세를 곧바로 잡은 후에, 새벽을 다시 사브르에 부여하고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음? 이런 술수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전에 바람을 조종하는 자를 상대한 적이 있군요? 지금 저의 비장의 헥토파스칼 킥을 막아낸 것도 대단한 거지만.”
“태풍을 끌고 와서 발차기에 실어 담지 말란 말이야!”
윈디의 모습이 다시 사라지고 내 위에서 휘두르는 주먹을 우측으로 피하고, 다시 내가 휘두르려고 하면 또 다시 사라졌고, 왼쪽 다리와 오른쪽 어깨에 강한 타격을 받고 나는 다시 넘어져야 했다.
“느려요. 아직까지도 느려요.”
장난기가 많은 만큼 성격도 잔인해지기 시작하면 끝없이 잔인해진다. 뺨과 턱을 쓸어 내리는 윈디의 부드러운 손을 의식하고 위를 올려다보면, 싱글벙글 웃고 있는 윈디와 눈이 마주치는 시점이다.
“카린 양? S인 사람이 M이 될 수도 있고, M인 사람은 S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듣기 좋은 비명소리를 들려줄 준비는 되셨나요?”
“N극과 S극 이야기라면 나는 사양이야!”
검을 땅에 꽂아 폭발시키는 것만으로 윈디와 거리를 떨어뜨리기에는 충분했다.
“이런...N극과 S극은 나침반 이야기잖아요?”
“뭐...그것도 서로 성질이 반대잖아?”
아무래도 이 개그는 더 이상 꺼내지 않기로...
“재미없는 개그 -1 점이에요?”
날카로운 소리가 전방에서 들렸다는 소리는 보호막을 펼쳐야 한다는 신호. 마법방패도 같이 전개를 해서 앞에 새워놓기는 했으나, 버터를 자르듯이 잘려나가는 마법방패와 보호막을 뒤로 하고 다시 위로 도약했다.
“애초에 저는 바람과 공기 그 자체. 어디를 도망가든 카린 양 근처에 소환하면 그만이라고요?”
날카로운 통증이 동시에 퍼져나가 다시 지상으로 추락했다. 이렇게 맥없이 당한다는 것은 무섭다기보단 오히려 억울했다. 온 몸에 흘러내리기 시작한 피와 더불어, 착지도 부정확했는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너. 준결승전 때도 이렇고 놀았냐...”
“그때는 마침 상대가 고운 목소리를 하고 있어서요. 물론 정신적인 건강으로는 좀 문제가 되어버렸겠지만...”
“적당히라는 걸 모르네.”
“네? 적당히요? 어디가 어디서부터 적당하고 적당하지 않는 건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시끄러워. 적당하게 아이언 클로를 집행하기 전에. 그 전에 옷도 완전 난리 났잖아...”
“보기 좋아요!”
“닥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윈디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척을 하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오른편에서 나타난 윈디는 다급하게 다시 모습이 사라졌고, 내가 있는 공간에 충격파가 느닷없이 터져나오면서 다시 한 번 날아가서 굴렀고, 윈디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환호성을 외치기 시작했다.
“오! 정말 대단해요! 어째서 제가 옆에 나타날 것을 알고 거기에 휘둘렀지요?”
“네가 생각하는 것이 뻔하지...쿠흣!”
얼마나 구르고 내던져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이 상태라면 3분만에 결판이 질 것이라 생각한다.
뭐...그건 그렇다고 쳐도.
[레시아...레시아는 저에게 상대가 누구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었죠?]
[그렇다.]
[지금도 그런 말 할 수 있어요?]
[그렇다.]
레시아는 즉답했다.
[잊었는가? 주인. 짐은 매우 강력한 마왕이니라. 주인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짐이 붙어 있는 이상 저런 날파리 정령왕이 어디서 날뛰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고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 모든 것은 늘 짐의 계획대로 잡혀있었노라. 그러니 이제 슬슬 버티는 작업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레시아의 말을 끝으로 사브르는 다시 귀걸이 형태로 되돌려놓고, 빈 손으로 천천히 일어섰다. 그야 당연히 이런 내 모습에 윈디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어라? 카린 양. 항복인가요?”
“설마. 그러면 재미 없지...게다가 이렇게 두들겨 맞고 항복을 한다면 억울함만 남길 뿐이야. 게다가 기사들은 자신의 싸움에서 절대로 항복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는다고 했어. 이건 세실리아를 보면서 배운 건 아니지만, 계속되는 싸움에서도 정신을 차리면 언젠가 탈출구는 보이기 마련이야. 그러니 도망가지 않는 걸지도 모르고...”
주변에 흩뿌려진 내 혈액들이 요동치면서 검은 안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레시아가 하란국에서 퍼트렸던 마기처럼 주변 공기를 오염시키고, 레시아가 보내준 마법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악몽의 조율. <Tuning of Nightmare>”
***
오늘은 사정상 잡화점을 쉬는 날.
물론 내가 몸이 좋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불 안에서 누워있는 체 끙끙 앓고만 있어야 했다.
아직까지 쑤셔오고 있는 두통과 어지럼증은 나를 괴롭히고, 시나는 내 옆에서 계속 빛을 내뿜으며 나를 치료하고 있었다.
결과만 따지고 말하면 결승전은 이겼다. 악몽의 조율은 세상의 모든 것보다 우선시로 조정되는 조율인 만큼, 정령왕의 힘을 제거하고 일반인으로 만든 윈디에게 아이언 클로를 시전해서 항복을 받아냈으니까.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마기로 이루어진 마법을 사용한다는 뜻은, 자신도 마기에 잠식당한다는 소리고, 인간의 몸에 마기가 축적된다면 그거야 말로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소리다.
시나의 말로는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마기가 축적되었다는 소리를 들었고, 마리아는 서둘러 응급조치를 취했으며 상금은 나중에 초량이 따로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아직까지 신인류가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레시아의 말과는 다르게 매우 조용하게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신인류가 많이 있어서 많이 위험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주인과 짐이 비무대회를 진행하는 동안, 릴리스와 마리아, 루시피나 그리고 그 뺀질이가 전부 포획하거나 죽였다.”
“아...그렇구나.”
...
“잠깐? 뭐라고요?”
“릴리스와 마리아, 루시피나 그리고 그 뺀질이가...”
“아니! 내가 그 말을 못들은 것이 아니에요! 그보다 전부 죽이거나 포획했다는 말에 더욱 초점을 두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포획이라는 뜻은...”
“단어의 뜻을 알려달라는 것이 아냐! 비무대회에서 제가 날아다니고 구르는 동안, 신인류와 싸웠다는 소리잖아요!”
“양동작전이라는 말이 있지. 그거대로 시행했을 뿐이니라. 게다가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이는 작업도 해야 하니까, 사전에 그 뺀질이가 먼저 계획을 짠 것뿐이다. 짐은 그것에 대해 움직인 것이고...”
...나중에 하멀 씨에게 따질게 많아지고 있구나.
“...그런데 한가지 물어볼 것이 생겼는데. 레시아와 동화를 풀었는데도 왜 저는 카린의 상태 그대로에요?”
보통 검은 고양이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은 나도 본래의 성별인 남자로 변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어째서 여성의 몸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소리일까? 게다가 앞에 거울을 보며 확인한 결과, 아직도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아...일시적으로 항마의 축복의 기능이 마비가 되었다. 물론 마기가 좀 많이 누적된 것뿐이니까 신경 쓰지 말도록.”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소리지르다가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꾹 눌러 참은 체 시나에게 입을 열었다.
“시나. 앞으로 얼마나 남았어?”
“약 이틀 정도 남았습니다.”
이틀을 이 모습으로 지내야 한다고?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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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7에서 만나요.
그나저나 뭘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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