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0 [Refresh]
10
나의 추측에 뒷받침 되는 증거는 없다만, 레베카 씨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뭔가가 있을 것이라 분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나는 5실버를 주고 신문을 읽었다.
레시아는...
"아저씨! 그러니까 왜 제가 릴리 기사단을 취재해야 되냐 구요!"
아이니스가 살쾡이 같이 앙칼진 목소리로 나에게 항의하는 동안, 레시아는 아이니스가 주는 육포를 받아먹고 있었다. 엄청 맛있게도 먹네...대체 뭐가 들었길래 그리 맛있게 먹나요?
"아저씨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냐? 오빠라고 부르라고!"
결국 아이니스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잡화점 물품 중에 마법책을 몇 권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릴리 기사단에 취재하라고 했다. 물론 아이니스는 어리고 기자도 아니지만, 루니아 씨의 성격으로 봐서는 갑자기 차 한잔을 하기 위해 대려 가려고 기를 쓰겠지.
내가 제안한 거래에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 쪼그려 앉아있던 아이니스는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그런데...어깨부분과 치마부분에 일정 간격을 접어서 마치 꽃 모양으로 강조가 되어있는 옷이라니? 게다가 옷 전체가 검은색으로 깔끔하고 멋져 보였다.
"아이니스? 그 옷은 뭐야?"
"이거요? 르블랑 원피스에요. 혹시 반했어요?"
거기서 '반했어요'가 어떻게 나오는 거야?
깜찍하게 돌지마! 지금 뒤에 있는 저 아저씨 눈이 빛나고 있으니까!
"아니. 취재하러 갈 때, 그거 입고 나가라고. 어울리긴 하네."
"쯧. 이걸로 아저씨를 함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린애가 나에게 혀를 찼다. 이런 무서운 것을 봤나...
벌써부터 아이니스가 어려 사람들을 꼬드길 가능성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공략 대상이 아냐.
[이 꼬마가 벌써부터 짐의 주인을 공략하려고 하다니, 꽤 큰 거물이 되겠구나.]
[레시아? 이미 레시아는 육포로 공략 당했거든요?]
[이런 육포로 짐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적어도 앞으로 3개면 바뀌겠지만...]
[마왕이 왜 이렇게 잘 공략 당하는거냐!]
정말 그 험난한 마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넘어갈 뻔한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아저씨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되냐!"
바로 이거...
하지만 아이니스는 내 말을 무시한 체 자기 할 말만 했다.
"그러면 거래는 성립 된 거죠? 마법책과 아저씨를 빌려준다는 조건으로 제가 릴리 기사단에 가짜 기자로 취재하는 것..."
"내가 왜 거래조건에 끼어있어! 은근슬쩍 바꾸지마!"
"역시나 빈틈이 없네..."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작은 소리라도 다 들을 수 있는 내 귀는 기겁을 했다.
평소에 아이니스와 자주 하는 만담이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 레베카 씨의 혼약에 대해서 물어보면 되는 거죠?"
아이니스는 녹음이 되는 수정구를 집어 넣었다.
물론 저 수정구도 내가 대여해주는 것이지만, 저 물건도 2층에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제발 부셔지지 않게 돌아와주면 좋겠다.
아이니스가 가고, 아침의 태양빛이 가게를 밝히는 시간이 되는 오전 11시.
왕국의 상황을 잘 아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딸랑~딸랑!
"저기 손님? 아직 개점을 안 했..."
"여기가 명성이 자자한 잡화점이고 그쪽이 주인인가?"
짧지만 고풍스러운 은발에 황금을 녹여 만든 듯한 눈.
"나는 뭐...잘 알고 있지? 신문에도 많이 나오는데?"
사신을 연상하게 만드는 검은 제복주변에는 금색의 테두리가 제복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여기에 잠시 조사를 하러 나왔거든? 그러니 협력해줄래?"
왼쪽 가슴에는 금과 백금으로 이루어진 해골문양의 휘장
"아니면..."
기이하게 생긴 총으로 내 머리를 겨누며 싸늘하게 웃었다.
"공무집행방해죄로 죽던가."
건방진 말과 거기에 잘 어울리는 중저음으로 남을 기선을 제압하는 목소리.
왕국 마법 수사관 하멀 레이비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막 나가는 인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 총은 내려놓으시고, 차나 마시면서 말할까요?"
"흠...좋아. 적어도 다른 민가 집에 있는 사람들보단 좋군. 마음에 들어."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한 거냐? 이게 수사야 협박이야?
공권력 남용으로 처벌 받아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레이비스 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의자에 앉아서 거만하게 다리를 꼬면서 오른손에 있는 권총을 빙빙 돌렸다.
"빨리 만들어. 그리고 온도는 90도로 유지하고, 일부러 내가 꼴 보기 싫다고 뜨겁게 하면 알지?"
왜 저런 녀석이 마왕이 안 됀걸까?
결국 허브티를 내놓고,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나 봐야 했다. 물론 실없는 소리를 한다면 내쫓아 버릴테지만...
"이 편지. 누군지 몰라도 릴리 기사단에 침입해서 레베카 경이 읽은 모양이야."
실베스 씨가 친필로 쓴 편지가 내 눈 앞에 떨어졌다.
"그래서 누군가 릴리 기사단 숙소까지 침입할 수 있는 변태가 있을 거 같아서 수사를 벌이는데, 아무도 안 잡혀서 결국 파이론이란 깡촌까지 오게 된 거야."
...
그거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라곤 하나...그거 내가 했던 거잖아.
"물론 지금 내 호위 2명이 저 집 앞을 지키고 있지만, 같이 들어가자고 해도 무서워서 못 들어가는 꼬라지 하고는...이건 둘째치고! 그때 알리바이를 알고 싶어서 왔는데, 확실히 너는 왕국에 놀러 온 적 있지?"
누가 나의 신상정보를 팔아 넘겼는지 몰라도 저 눈은 "이미 다 알아봤어. 거짓말 하면 죽는다."라는 눈이다.
"예...그때는 제 고양이도 같이..."
"거기서 뭐 했어?"
만일 여기서 "강제로 여장 입혀지고 침입했다" 라고 하면, 레이비스 씨가 웃으면서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다른 말을 했다.
"그냥 구경 좀 하다가, 잡화점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탕!
방금 발포소리에 내 뒤에서 자고 있던 레시아도 깜짝 놀랬는지 일어나다가. 다시 잠들었다.
내 머리 바로 앞에서 허공으로 회전하던 마력탄은, 비니스의 목거리에 새겨진 방어마법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누...누구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 말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마력탄을 쏘는 거에요!"
"이상하네...원래 기억을 지우려고 쏜 건데?"
뻔뻔하게 고개를 갸웃 거리는 레이비스 씨에게, 주먹으로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물론 그런 짓을 하면, 잡혀가는 건 나겠지...
"아무튼 이름이 뭐였지?"
"카일이라고 합니다."
"좋아! 카일. 그러면 수사는 이걸로 마치고, 다음에 내가 올 때는 차를 더 잘 끓이도록. 단,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면 안 돼."
레이비스 씨는 천천히 자리에 일어서서 잡화점 밖에 나갔다. 물론 잡화점 밖에서 작은 총성소리가 들려온 것만 뺀다면, 상당히 평화로운 하루가 되었다.
***
베가프를 찾아가기 위해, 작은 성당에 갔는데...
"망령이 나타났다!"
이제 제발 잡화점을 괴물의 집 취급하는 것은 그만 뒀으면 좋겠다.
또 다시 5분도 안 되자 경비병들이 나를 포위를 했...이거 데자뷰인가?
"망령이여 물러가라!"
"뜨거운 물 그만 뿌려! 베가프!"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수습하는데 내 인생에서 10분이라는 시간이 소비 되었다.
"미안해. 성수는 살균을 위해서 항상 끓이거든..."
성수에 무슨 살균이 필요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가정적인 사람이다. 사제 모자를 벗고 눌려진 갈색머리를 정리하는 베가프에게 혼약에 대한 것을 물어봤다.
"왕궁에서의 혼약? 혹시 릴리 기사단에 몰래 들어가봤어? 그래서 반한 거야?"
요즘 사람들이 왜 이리 감이 좋은지 모르겠다.
몰래 들어가봤지만, 반한 건 아니야.
여장을 당하고, 기사단 숙소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오로지 거기엔 괴물 뿐이였어...
"아니. 그냥 내 친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데..."
나는 실베스 씨를 익명의 친구로 바꾸고, 사정을 다 설명했다.
물론 레시아는 베가프의 시야로는 보이지 않는 저 구석에서 웅크린 채 가만히 있었다.
"요즘 왕궁에서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릴리 기사단을 겨냥한 귀족들의 강제 혼약이 많나 봐."
"릴리 기사단이 표적이라고?"
그거 못 들은 이야기인데?
"릴리 기사단원들은 전부 외모가 좋잖아?"
"그렇긴 하지."
루니아 씨가 귀여운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괴물이기 때문에...
"귀족들은 자신의 옆에 항상 수호기사를 두고 싶어하는데, 최근에 릴리 기사단에서 계속해서 수호기사를 요청을 하다 보니, 인원수가 모자라게 되어 거절을 했거든. 왕국에서도 그것은 받아 들여줬어. 그런데 문제는 릴리 기사단에 있는 한 여성과 귀족이 혼인을 하면서, 그 것을 악용하려는 귀족들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릴리 기사단원을 지목해서 혼약을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저 말은 즉, 예쁜 기사를 얻고 싶지만, 왕이 안 된다고 하자. 혼약을 빌미로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것으로만 하기로 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 레베카 경의 상태는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거든..."
"그건 무슨 소리야?"
좋은 상태가 아니라니?
"최근에, 몬스터 토벌에서 레베카 경이 이끌던 부대가 몬스터의 함정에 빠져서 겨우겨우 살아나온 과정에, 허리를 다친 모양이야. 덕분에 무리한 행동을 하면 두번 다시는 걷지 못한다고도 하고, 사무직이나 훈련만 하고 있는데, 그걸 노린 알벤토 가의 아들이 혼약을 한다고 해서, 레베카 경은 시집도 가야하고, 기사로서 은퇴도 해야 되."
"알베톤 가의 아들이라면 공작이잖아?"
베가프는 다시 끄덕이고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마른 듯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문제는 알벤토 가의 아들인 벤다이어 알베톤은...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새디스트로 알려져 있으니까. 실제로 하녀가 고통에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실베스 씨가 들으면, 당장 자신의 부족을 이끌고 공성전을 할 법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려고?"
"그야. 레베카 씨가 그쪽으로 시집가서 맞기 전에 혼약을 깨야지."
하지만 어떻게?
기발한 아이디어가 없을 려나...
"베가프...우리 한 번 연극 찍어볼까?"
"무슨 소리를?"
"너의 소질을 되살릴 기회가 있다는 거야. 잘만 하면 대사제로 갈 수 있고. 어때?"
친구를 꼬드기는 내 모습이 악마와 닮은 것 같아.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야 가망이 있다고나 할까? 베가프는 친구인 나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레시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만약 알벤토 가에 시체가 있다면, 그 시체를 되살릴 수 있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짐은 마왕이다. 네크로맨서의 길 또한 심심하게 독파하여, 모두 마스터를 했노라.]
[그러면 지금 알벤토 가로 숨어들어가서, 무엇이 있나 봐야겠네요.]
***
허공을 가르는 채찍소리는 하녀의 하얀 피부에 붉은 자국을 새기며 농락했다.
오히려 비명을 더 지르라는 듯이 눈을 가려버리고, 위에서는 일정 주기마다 촛농이 떨어지는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광경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참담한 광경이라 생각한다.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휘날리는 붉은 머리와 상의를 탈의하여 다져진 근육을 자랑하는 남성은 하녀의 비명이 더 잘 나오도록 하녀의 피부에 칼집을 내다가 튀어버린 핏자국들이 얼굴과 몸 곳곳에 남아있었다.
광기에 물든 붉은 눈을 잠시 감으며, 귀족은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자신에게 흐르는 땀이 시야를 방해하자, 비어있는 왼손으로 쓱 닦아냈다. 잠깐 동안 휴식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체력이 약한 하녀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다 몸에 경련이 일어나더니 이윽고, 숨이 끊어지는 것으로 보고는 재미없다는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길...3일동안 쉬지 않고 고통을 주면 죽어버리다니. 또 하나 배웠군."
이렇게 사람이 죽은 것을 본 것이 32번.
32번씩이나 하녀 뿐만이 아니라, 납치한 평민들도 똑같은 죽음을 맞이 했으리라...
자신 옆에 있는 의지가 돋보이는 레베카의 사진을 들어올리며, 자신이 레베카를 구속시킨 체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흥분하던 찰나...
"벤다이어 님..."
온순해 보이는 인상의 늙은 집사가 사진을 천천히 내려놓는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라며 벤다이어 알벤토가 짜증나는 목소리로 말하자 집사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막 새 장난감을 가져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식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띈 벤다이어는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오호라. 때 마침 잘 됬군. 레베카 경이 나와 혼인 할 때까지 심심풀이가 필요했거든."
집사는 손짓을 하자. 검은 르블랑 원피스를 입은 아이니스가 의식을 잃고 끌려온 것이었다.
벤다이어는 "예쁜 비명을 잘 지르겠구나."라는 상상을 하며 의욕이 다시 돌아왔지만...
"그래도 나중에...지금은 레베카 양에게 점수를 좀 따야하거든...르웰로! 샤워할테니 알아서 묶어놔!"
벤다이어는 아쉽다는 듯이 기절한 아이니스의 뺨을 쓰다듬으며 웃다가, 시간 내에 데이트 장소에 나가야 하는 사람처럼 벤다이어는 빠른 발걸음으로 이동했고, 르웰로라 불린 늙은 집사는 벤다이어가 지하실에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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