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83
83
잡화점 오픈.
저녁 8시에서 항상 열고 다음날 새벽 4시에 닫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나는, 카운터에서 손님들이 와서 물건을 사주지 않을까? 하는 거대한 기대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30분만 지나도 손님은 오지 않고, 지나가는 벌레들이 불빛에 옹기종기 날아드는 것만 보면, 눈물이 나는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자기는 어떤 향기가 좋아?”
“그걸 왜 나에게 물어봐요?”
릴리스는 손에 든 입욕제를 내 앞에서 고르면서 물어봤다. 나에게 그걸 물어본다고 그게 다음날 인기상품이 되어 팔릴 것도 아닌데...
“그래도 좋아하는 향기를 알아야 침대에서 같이 자기 더 편하지.”
“내가 침대에서 같이 잔다는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하시면 곤란합니다. 손님.”
애초에 댁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규제대상이니까. 여전히 남자를 홀리기 위해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릴리스는, 모든 행동이 요염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듯 했다. 눈빛부터 무의식적인 몸짓. 심지어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하는 검은 뿔까지.
만일 내가 지금 릴리스의 옷을 서술한다는 가정하에, 나는 이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술하지 않는다.
분명 이야기 속은 다른 이들의 눈에 보기 편하도록, 혹은 그 연령대에 맞도록 서술하는 것이 좋은 서술 방식이다. 하지만 늘 확실한 것은 이야기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게 현실이란 것과 그 현실을 모두 적나라하게 서술하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루시피나~. 카일이 좋아하는 향이 뭐야!”
“신랑에게 또 무슨 꿍꿍이에요!”
릴리스는 다시 입욕제를 들며 루시피나 씨에게 다가갔고, 거기에 루시피나 씨는 으르렁거리며 경계를 하고 있는 모습. 마리아는 여전히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레시아와 루인의 카드쌓기를 보고 있었다. 물론 어떻게 지금도 안 끝나느냐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아까도 쌓으려고 하면 고의적으로 반칙을 하여, 마치 의도하지 않은 듯한 실수로 포장하는 것만 이 시간이 되도록 계속 되고 있었다.
물론 가면 갈수록 카드쌓기의 실력은 늘어나기 때문에, 얼마 안 있으면 저런 바보 같은 경기도 끝나게 되겠지.
-딸랑딸랑!
손님을 알리는 작은 종이 오랜만에 세차게 흔들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와서 다행이
“음...카일 여기 있었군. 역시 엘븐 포레스트에서 살아서 그런지 인간 마을은 오랜만에 오는구나.”
거대한 판금투구까지 써서 누군지는 알아보지 못했으나, 뒤에 있는 클레이모어를 보고 난 뒤에 나는 대충 때려 맞췄다.
“세실리아? 거기서 뭐해요? 그 전에 그 거대한 판금갑옷 왜 입고 온 거에요?”
“몰랐나? 이게 나의 완전체다.”
“마왕이 육포 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일단 여기에 오셨으니 투구라도 벗으시죠?”
“뭐라! 나에게 하나 하나 벗도록 명령하는 건가!”
“그렇게 잘 안 들리면 투구를 벗으라고!!!”
아무리 못 들어도 적당히 못 들어야지. 날 모르는 사람이 이 소리를 들으면, 완전히 인간 쓰레기 취급을 할 것이 분명하잖아. 투구를 벗자 억압된 금색의 실들이 아름답게 흩날리며 다시 가라 앉았다. 여전히 하얀피부가 잡화점의 전등에 비춰지면서 더욱 뽐내고 있는가 하면...
“그 판금갑옷은 정말 자비가 없도록 디자인이 형편없네요.”
마치 이건 세실리아가 쓰기보다는 뚱뚱한 사람이 착용해야 할 정도로 허리 부분이 불룩 튀어나왔다. 물론 이게 어두운 영혼2에서 나온 갑옷이긴 하지만, 용캐도 그 날씬한 몸으로 이런 허술해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니.
“전에 찍었던 사진과 화해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칸포리우스 제국까지 뛰어갔다 왔으니까, 목이 좀 마르긴 하네, 여기에 혹시 탄산수라도 있나?”
엘븐 포레스트부터 칸포리우스 제국까지 뛰어갔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칸포리우스 제국과 엘븐 포레스트의 거리를 설명하자면, 파이론을 지나서 프리트론 왕국에서 리베리티아 고원으로 도착하고, 거기서 북쪽으로 나간 이후에 좀 오래 가야, 겨우겨우 칸포리우스 국경에 도착할 수 있다.
“애초에 타조나 로드러너만이 가능할 만한 가속도와 지구력을 겸비해야 할 텐데요? 혹은 그냥 마법을 써서 날아다니거나.”
“옛 현자가 나에게 허공답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 몸으로 날아오른다고요?!”
하긴 루니아 씨의 친구니까, 하나 같이 전부 괴물들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종족이라는 의미로 괴물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평범한 사람들의 이해 영역 밖을 뛰어 놀고 있는 의미로 괴물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카일. 그대도 충분히 괴물이 아닌가?”
“그건 잡화점 때문이고.”
이 마을 사람들은 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잡화점이 무서워서 그렇게 말하는 거랍니다.
“그나저나 세실리아는 여기서 무엇을 사려고요?”
“모험의 서.”
“그건 다른 게임에서 저장하는 용도고!”
여전히 말이 잘 통하다가 안 통하는 사람이다.
-차라라라락!
“칫! 짐의 마왕성! 에잇!”
“아앗! 비열한 마왕! 또 나의 오벨리스크를!”
저 경기는 다시 초기화가 되었고, 마리아는 작은 입에서 한 숨을 폭 하고 쉬었다. 아무리 오랜 전통이 있는 엄청난 전투(고작 카드쌓기인데)를 계속 지켜보기만 하면 지루한 것은 시간문제.
나도 그건 지켜보는 게 힘들더라...
그리고 세실리아는 마왕님과 루인의 모습을 보면서, 흥미를 가진 눈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나는 세실리아가 카드쌓기를 구경하는 동안, 얼음과 탄산수, 레몬즙, 설탕을 찾아서, 간단한 레몬 에이드라도 만들어 줘야겠다.
이곳이 조만간 잡화점인지 용병의뢰소인지 찻집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만일 내가 이 건물을 다시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카페로 만들어버려서, 평생 커피나 갈고 음료나 팔면서 지내고 싶다.
물론 다른 곳에서는 커피인지 빵집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곳들도 많지만, 어쨌든 잡화점이 이렇게 장사가 잘 안 되는데, 다른 거라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점점 나에 대한 미래를 내가 설계를 할 때는, 레몬 에이드가 완성이 되어 있었고, 열심히 구경중인 세실리아에게 가져다 줬다.
세실리아는 고맙다고 말을 하며, 빨대를 꽂아놨음에도 불구하고 벌컥벌컥 들이켜 원샷을 하는...세실리아는 목에서 톡톡 튀는 스파클링에 전율하는 모습을 귀여운 표정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내가 이 맛에 전령을 하고 있지! 앞으로 이 카페에는 자주 와야겠군.”
“세실리아? 여긴 잡화점인데요?”
조만간 카페로 개조도 해보자.
반응이 좋으니까.
“아니! 짐의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니?”
“애초에 내가 카드상자를 30개나 가지고 온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나의 계략에 빠졌구나!”
“뭣이! 루인 이 녀석!”
저기는 카드쌓기만 아니라면, 상당한 전투가 탄생했으리라 생각했다. 솔직히 눈만 감고 이들의 대화 내역을 들어보면...
“자 나의 반격이다! 받아라 마왕!”
“하지만 그것에 대해 반격의 수는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그 반격에 대해서 묘책이 있다!”
“그러나 그 묘책에 대한 또 다른 기책이 있다! 어서 패배를 인정해라 인간!”
“큭! 강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믿고 응원하는 동료가 있어! 그들의 의지를 받아서라도! 이번 싸움에선 패배란 없다!”
그래 잘하는 짓이다.
애초에 이건 지기 싫어하는 어린애들이 싸움놀이 같은 걸로 해서, 자기가 이기려고 유치하게 싸우는 그런 대화잖아? 그리고 루인에게 믿고 응원하는 동료가 있었나? 대체 어느 만화책을 보고 대사를 읊었는지 궁금할 때.
“오벨리스크가 5층이 쌓이면! 이 게임에서 승리한다! 받아라! 파멸의 진혼곡을!”
“크윽! 졌다!”
먼저 카드 성을 튼튼하게 쌓았지만, 30개의 트럼프상자를 사용해서 바람에 안 날아가도록 방벽을 새운 체, 5단을 쌓았나 보다. 그보다 이건 반칙 아냐? 하지만 레시아가 패배를 인정했으니, 결과적으로는 루인은 마왕을 꺾고 오벨리스크를 새웠다고 한다. 정말 길나긴 승부에 레시아는 지쳐서 쓰러졌고, 루인은 뭔가 허탈감에 손을 축하고 내렸다.
“그럼 이제 저는 돌아가는 건가요? 언제쯤?”
“그야 물론 지금 당장이지 않는가?”
레시아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제서야 루인은 자신이 여기서 해온 일을 돌아보듯, 천천히 잡화점 밖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별이 느닷없이 찾아온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찢어놓는 그런 경우가 많다. 밖에 나가자 시원하고도 상쾌한 공기를 받지 않으려는 것인지, 고개를 푹 숙인 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떠나는 구나...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루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놨다.
“네가 잘 했으니까.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어쩌다가 이곳에 왔는지는 잘 몰라도, 마지막의 마왕을 쓰러뜨렸으니까. 충분히 좋게 마무리가 된 거지.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어둠의 방랑자가 이런 사소한 이별에 그렇게 기죽어 할 필요가 있나?”
애초에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다.
누구든지 이별은 하게 되니까.
“하긴!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나에게, 이런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이정표! 잘 있도록! 그 세계의 균형이 무너지는 날엔, 나는 또 다시 돌아올 터이니!”
나에게 이세계인에 대한 평을 루인이 다시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면서, 루인은 그렇게 서서히 사라졌다.
“돌아갔군...주인도 아쉬운가?”
레시아는 차분하게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루인이 돌아가서 아쉬운 가에 대한 질문은, 나의 개인적인 감정을 서술할 수가 없고, 대신 다른 말로 돌려서 말했다.
“애초에 사람이란 것은 누군가와 친해져서 행복해 하다가, 이별을 하면 아쉽고 다시 만나고 싶어하니까요. 물론 저도 사람이고...”
“그건 사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도 다 똑같으니까. 하지만 이별은 곳 다른 만남의 시작이다. 분명히 이상혁...그러니까, 루인도 돌아가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을 것이다.”
***
어느 차원에 있을 법한 병원.
이 곳에서는 젊은 남자 환자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체, 고요히 자고 있었다. 물론 그 옆에 있던 중년의 여성은 그 환자를 지키는 가족. 여전히 자신의 아들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기도를 해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설령 악마에게도 영혼을 팔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은, 곧 그 환자의 의식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엄마?”
오래 자고 있는 동안 잠긴 목소리는, 드디어 발성을 하기 시작했고,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한 여성은 눈이 커지면서, 자신의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울기 시작했다.
“사...상혁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상혁이를 돌려보내주셔서!”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기억 속에서는 학교에 가는 와중에 신호무시를 한 자동차에 들이 받은 것을 기억해냈다.
그 이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눈물로 밤낮을 보낸 어머니의 부은 눈을 보자, 자신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와서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그래도 상혁이가 꿈에서 본 것 중에, 처음 보는 자신을 동생으로 취급해준 고마운 사람의 말을 떠올렸다.
네가 잘 했으니까. 돌아갈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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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뭘 쓸까나?
요청할 것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