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63
563
“명계로 가죠.”
늦은 아침에 일어나 내 생각을 알렸다. 그 말을 듣고 레시아와 시나는 멍하니 날 보고만 있었고, 루시피나는 찻잔에 차가 넘치는 줄 모르고 계속 들이 부었다. 마리아의 입에서는 레몬 맛 사탕이 미끄러지듯 빠져 나왔고, 루니아 누나가 내 어깨를 붙잡아 흔들며 소리쳤다.
“어, 어째서인가요오! 아직 우리가 찍어야 할 백장미들이 많이 있잖아요오!”
“잠깐만! 그만 흔들어요! 어깨가 부셔지겠어!”
조용히 말하고 싶어도 고통으로 인해 데시벨이 올라가는 중이다. 노래 음역대가 약간 높은 내 목소리는 어느덧 한계를 돌파하여, 메조소프라노까지 치솟고 우주를 뚫고 가기 전에, 루비아가 루니아 누나를 뜯어 말렸다.
“언니. 그 이상 흔들면 카일의 어깨가 분자단위로 쪼개져요.”
“그치만! 그치만 루비아! 카일이 더 이상 백장미를 찍지 않는다고 하잖아요오!”
저기 있는 자매를 보았을 때 누가 언니고 동생인지 분별이 안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어깨가 진짜로 분자단위가 되어 온 우주에 흩어질뻔한 일이니까. 그리 오랫동안 생각하지 말자. 언제부턴가 백장미를 찍지 않으면 충격을 받아서 루비아에게 안겨 우는...척을 하는 게 버릇이 된 건가?
매번 흘깃 보고 있는 루니아 누나의 붉은 눈이 유난히 섬뜩하게 보였다.
“지금 카일 씨는 어떻게 하면 명계에서 촬영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니 안심하세요.”
“그, 그래! 맞아! 명계에서도 백장미를 촬영하는 거에요오! 저승으로 가는 스틱스 강 앞에서 찍으면 매우 몽환적인 분위기가 되니까 좋은 필름이...”
“누가 미쳤다고 거기까지 가서 여장을 할까 보냐!”
나를 소리지르는 만드는 재주를 지닌 자매였다. 아까 전에도 아파서 소리를 질렀는데, 태클을 걸기 위해 있는 힘껏 질러버렸다. 뭐, 중요한 것은 그 저주받을 백장미를 찍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염라대왕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가 되리라.
염라대왕이라는 자는 명계에 유일무이한 심판자도 된다. 사람의 업보는 일평생 쌓이고,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데.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하나하나가 전부 쌓인다. 나는 염라대왕 앞에 선다면 편히 환생을 하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니라 가는 방향을 찾는 거다.
“마스터. 명계와 사키엘의 문은 어떻게 연결하실 생각입니까?”
“나야 항상 다녀왔었잖아.”
루니아 누나의 음식이 명계로 가는 티켓이니까.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것만 수십 번이며, 루니아 누나가 요리를 계속 한다면 명계가 제 2의 고향이 될 뻔했다. 그 정도로 친숙하기에, 사키엘의 문을 연다면 명계가 나와 마중 나오리라 생각했다.
“기다리거라.”
검은 고양이의 말이 내 발을 붙잡았다. 고개까지 돌리게 만드는 근엄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으니...
“주인이 명계에 갔을 때는 의식만 갔기에 별 탈 없이 돌아온 것뿐이지. 산 사람의 몸으로 가면 곧바로 육신이 소멸하게 된다. 그러니 맨몸으로 들어가는 것보단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 않는가?”
“그래도 육체와 정신이 따로 분리된 상태로 오래있으면 위험하다고요?”
게다가 사람이 정신을 차리게 되면 말 그대로 밧줄에 묶여서 올라오게 되는 기분인데, 더 오래있겠다고 버티다가 밧줄을 끊어먹기라도 한다면, 영원히 현실세계로 못 돌아가게 되는 거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이득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대로 지금은 죽기 싫으니 레시아 말대로 다른 방법을 찾자. 명계에 살아서 들어가는데 육체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방법이라...
죽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공간에 산사람을 끼워 맞출만한 규칙이 없는 건가? 예외적인 방법이 있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 끝에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인? 왜 2층으로 올라가는가?”
예전에는 위험한 물건이 있어서 폭발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건드리지도 못했다면, 이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설령 지도 밖으로 날아갈만한 물품이더라도 사용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상당히 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잡화점 물품마다 품고 있는 강력한 독에 중독된 것이 아닐지...
세린에게 정신적인 검사를 요청해봐야겠다.
그러나 현재에 충실한 나는, 보류할 것은 안드로메다로 택배 붙여버리고 명계로 가는 참신한 물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과거 엘티노스도 명계에 가봤다고 하는데, 분명 죽어서 가는 방법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방법을 채택했을 거에요. 그것도 자신과 같이 여행하던 모든 사람들하고 갔다는 가설 하에, 거대한 힘을 지닌 물품을 사용했을 텐데...”
문제는...
“음. 잘 모르겠네요.”
잡동사니들이 한 가득 쌓여있는데 그 중에 어떤 물품이 명계로 가는 물품인가? 혹은 명계로 갈 때 진짜 도움은 주기나 할까? 거대한 의심의 산이 내 앞을 가로막고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 받는 기분이다.
아까 전에 신경 쓰지도 않았던 “섣부르게 건드리다간 다 날아간다.”라는 경고메시지가 머리 속에서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으니, 미약하게나마 손끝이 살살 떨리기 시작하면서, 레시아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어느 거에요?”
“짐이 어찌 아는가?”
“마왕이잖아요.”
“짐은 강대한 마왕이나 아는 것만 안다. 마족은 살아생전에 자동으로 지식이 쌓이긴 하지만, 이런 잡동사니를 쌓아놓으면 엘티노스도 찾아와서 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여기에 있는 물품들은 레시아도 모르는 것들 투성이란 소리구나. 이름이나 어떤 효과가 있는지 설명조차 되지 않는 물품이 대다수라, 건드려서 사고가 터져봐야 아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만일 이것들이 연쇄작용을 한다면...잡화점을 제외한 모든 것이 먼지로 되돌아갈지도 모르겠으나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명계에 가서 염라대왕을 만난다고 한들 무슨 이유로 설득을 시킬 것인가? 아직 주인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란으로 티타늄을 부수려는 격이다.”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에요?”
“짐이 던졌을 때 계란으로 바위를 폭발시켰기 때문이니라.”
어떻게 던져야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그래도 레시아가 지적한 말처럼 사전준비가 아무것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명계의 최고 권위자를 무모하게 만나러 가겠다고 했으니, 만일 이 소식을 들은 저승사자가 있다면 소식을 들은 시점으로 24시간 내내 웃다가 3번정도는 질식사로 죽을 만큼 재미있는 말이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아마 있을지도 모르지...
“그것도 미쳐 생각하지 못했네요. 지금 인간계와 천계, 마계가 뒤섞여서 잘 살아가다가, 유랑극단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날아간다고 한들, 명계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고 오히려 일거리만 늘어나게 될 테니 말이죠. 게다가 선악과 거짓말의 유무를 판단하는 염라대왕 앞에 제안을 하려면, 심증보단 확고한 물증이 필요할 지경이에요.”
보통 어린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를 한번에 구별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염라대왕은 누가 착한 영혼인지, 나쁜 영혼인지를 한 순간에 판별하여 형벌 밑바닥까지 구겨 넣는 능력자다.
염라대왕 앞에서는 모든 영혼들이 분리수거 당하기도 하고, 산 사람이 무턱대고 찾아와서 ‘내 말 좀 들어 보이소!’라고 소리쳐봤자 개죽음만 당하리라.
“굉장하네요.”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왔다. 하얀 올빼미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고, 어느 사이에 도착한 윈디 메르아가 잡동사니 산 안에서 물건을 마음대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시간에, 검은 고양이가 “무엇이 말인가?”라고 유일하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질문을 받은 입장이니 경쾌하게 입을 열도록 하자.
“생각을 해보세요.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명계가 비상이 걸리거나 제약이 걸릴만한 일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살아생전에 마족을 소환하는 경우도 있고, 신탁을 받아 신과 여신을 마주하는 경우가 있지만, 명계의 존재들은 오직 죽어서만 볼 수 있으니 말이죠.”
인간계는 인간들이 중점으로 살아가지만, 마계에 있는 마물들이 인간계로 빠져 나와 몬스터까지 공존하며 산다. 천계는 신과 여신, 창조주와 더불어 신탁으로 이어지거나, 신과 여신에게 선택을 받은 자만이 천사나 발키리가 될 수 있고, 그 이전에는 하얀 구체상태로 떠돌게 된다.
마계는 말 그대로 마물들의 세계로 다양한 종족들이 거기서 투쟁을 벌이며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으나, 마왕의 통치와 마계공작 12명의 통솔아래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혀있지만, 아직까지도 야생상태의 몬스터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300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는 실베스 씨가 마왕이며, 그리티스 씨에게 들어본 바로는 천계와 전면전을 시작했다는 정보를 받았다.
조용한 이유라면, 아마도 눈에 띄는 곳에서 싸우면 난장판이 되니까, 서로 구역을 정해놓고 싸우고 있으리라 본다.
그럼 명계는 어떨까?
그나마 요약해서 설명한 인간계, 천계, 마계와는 다르게 명계에는 염라대왕이 있고, 망각의 샘물이 있고, 뱃사공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오직 내 뇌에서 나온 추측일 뿐이다.
진실의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인간들 중에서 그 장소에 잠깐 다녀온 자들이 있으니, 이름도 거룩한 대마법사 엘티노스와 그의 동료들이다. 자서전에서는 죽을 수 없는 불사의 저주를 제거하기 위해 명계에 한번 가서 염라대왕에게 부탁을 했다고 하는데.
가장 놀란 것은 그 엘티노스가 부탁을 했다는 점이다.
언제나 어디 동내 건달 아저씨마냥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서 제발 저주를 지워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세상이 7개 조각으로 등분된다고 한들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농담은 이 정도로 하고, 염라대왕을 만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적혀있다.
위험한 일과 나는 멀리 떨어져야 할 관계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지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꽤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성장하기 위해선 위험한 절벽도 극복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데...
“주인! 위험하다!”
“네?”
-피이이이이이잉!
귓가에 울리는 고주파가 쓸 때 없는 독백을 하지 말라며 뇌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하는 초음파 공격한방에 모두가 귀를 부여잡고 쓰러지거나, 애석하게도 동물로 변신하고 있던 레시아와 시나는 귀를 제대로 막지도 못한 체 바닥에 쓰러져서 뒹굴기만 했고, 윈디는 바람을 이용해서 소리를 차단했는지, 혼자 멀쩡하게 돌아다니며 나에게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들리는 게 함정이지...
“아아악! 빨리 꺼! 끄라고! 윈디!”
나의 비통한 외침은 거대한 굉음을 뚫고 간신히 뻗어나갔는데, 고개만 갸웃거리면서 호박 빛의 눈동자를 깜빡였다. 아까 내가 서술했던 것 중에 바람을 이용해서 소리를 차단했다고 말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도 소리쳐서 막으려고 했다니...
그날 이후 300년이 지난 미래에서 표류하고 있는 잡화점에 날아온 신문으로, ‘우주적 존재의 외침!’이라는 타이틀의 신문이 사방팔방에 퍼져나가고야 말았다. 멸망의 신호탄이라고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표정이 창문을 통해 훤히 잘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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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에선 명계로 가겠네요.
저도 과로사를 한다면 명계로 가겠죠.
...그래도 첫월급을 받았으니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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