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51

FNL-Phantasm 2017. 12. 20. 19:58

551

 

 

 

중구난방으로 난동을 부렸던 뇌를 진정시키고, 천천히 정리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리제로트는 유랑극단의 단원 중. 인형사를 맞고 있는 간부 직책. 어릿광대와 자주 접하고 정보를 교환했으니, 카일이라는 남자가 어떠한 경우로 여자가 되는 일이 있거나, 여장을 했는데 잘 어울리더라.’라는 정보는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리제로트 또한 나를 잘 알고 행동했으니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고, 복잡해지는 건 내 머리지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리제로트겠지.

 

게다가 만찬에서 한번 마주하면 편할 것을 내 스스로 하루라는 시간을 더 줬다. 이것은 리제로트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내가 멋대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말로 빼기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책임지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욕을 얻어먹어도 잡화점 멤버마저 욕을 먹일 수는 없다. 그러니 이건 내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 보면 된다.

 

처음부터 놀아난 거였어. 하긴, 그때 인형들이 습격했을 때도, 나의 능력은 어느 정도 보았겠지. 하아...”

 

결국 키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변하고, 외형도 변해버린, 거울 앞의 소녀는 탄식의 한숨을 내쉬기만 바빴다. 시나가 나와 동화를 하고 있으니 지켜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저녁만찬에 끌려 다니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한 일.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6층 엘리베이터에 멈추자.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음식을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지도 않는 여성용 드레스나 옷은 움직이기 힘드니, 검은색 면바지와 스웨터를 입은 상태로, 회색 코트는 중간 단추 하나만 잠근 체, 연갈색의 겨울용 부츠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시나가 동화했기에 백색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백은의 눈동자가 남아있는 상황.

 

그 한 가운데에 금발의 소녀와 연분홍 빛의 서로 마주보며 앉아있었다.

 

오후에 봤다고는 말을 못할 정도로 잘 어울리네요?”

 

의도적인 괴롭힘이네. 선생님께 일러도 되는 건가?”

 

다만, 같은 동성으로 변해서 그런지 아까 마주했던 것과는 달리, 매우 차분한 음색이 들려왔다. 아이리스가 퍼트린 말이 진짜였던가? 믿지 않았는데.

 

의도적인 괴롭힘이라뇨? 저는 칭찬을 한 것일 뿐이죠. 그건 그렇고 시간 내에 맞춰왔으니, 내기는 달의 관리자님께서 이기셨네요?”

 

그러면 당신이 잡아간 달 토끼 30마리는 모두 해방하는 거 맞죠?”

 

잡아가기 보단 보살폈다라는 말이 더 좋겠네요. , 좋아요. 돌려드리죠. 어차피 하룻동안 잡화점의 주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좀 더 값싼 대가라고 생각하니까요.”

 

내일은 너의 장난감이 되러 가는 것이 아닐 텐데?”

 

장난감이 되어 줄 생각은 없다만, 내기의 내용은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보다...

 

눈은 렌즈로 색상을 바꾼듯한데.”

 

사소한 것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렌즈를 낀 것과 끼지 않는 것의 차이는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시나가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고 내 머릿속에 말을 걸어온 것.

 

의외로 안목이 뛰어나시네요? 이게 컬러렌즈라는 걸 아셨다니. 다만,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눈을 좀 감아줘야겠네요. 렌즈를 빼고 제 눈을 정면으로 받아낸 사람은 없으니 말이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동자에 살짝 가져다 댔다. 하늘 빛의 렌즈가 떨어지고 나니, 짙은 보라 빛의 눈동자가 번뜩이기 시작했다. 살며시 미소를 짓는 리제로트를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뒤틀릴 것 같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정도였다.

 

어머나? 그 모습으로는 자랑이셨던 정신오염에 대한 방어가 철두철미하지 않나 보네요?”

 

아니. 눈에 뭐가 좀 들어가서.”

 

눈만 바라봐도 정신이 섞여버리는 기분. 그나마 시나와 동화가 된 상태니 이 정도로 끝났다. 리제로트가 인형사인 이유를 설명보단 몸소 체험해서 알아버렸다. 루나는 계속 눈을 감으며 이제 다 끝났나요?”라고 말하고 있었고, 리제로트는 다시 컬러렌즈를 눈에 끼워 넣고 답했다.

 

. 이제 눈을 뜨셔도 되요. 역시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할지. 단숨에 제 인형으로 바뀌지는 않으시네요.”

 

초능력치고는 너무 과해. 게다가 조절하지 못하는 걸 보아하니. 이미 폭주하고 있나 보군.”

 

능력이 폭주를 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고, 리제로트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장시간 컬러렌즈를 빼고 다닐 수 없으리라 추측했다. 애초에 맨 처음부터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야 여러 가지 있고, 컬러렌즈를 사용하는 걸로 능력이 폭주 되는 것을 연기한다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맨 처음 봤을 때도 이미 컬러렌즈를 이용하고 있었고, 자신의 능력을 절대로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초능력이라는 것이 이름만 밝혀져도 장, 단점이 모두 드러나기 마련. 남들에게는 별로 알려져도 좋을 것이 없다는 의미다.

 

달 토끼들은 잘 돌려 받았어?”

 

이번엔 루나를 마주보며 이야기를 했다. 순수해 보이는 연녹색 빛의 눈동자는 나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남은 30개체의 달 토끼들을 돌려받는다고 내기를 했었으니까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기를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이러다가 모내기하는 것도 내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마스터.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시답지 않은 개그를 할 정도로 여유가 있어서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칭찬을 할지 태클을 걸지 둘 중 하나만 해. 그리고 시답지 않는 개그라고 자각할 수 있으니, 너에게는 리제로트의 능력이 통하지 않나 보네?]

 

[그녀는 인간이니까요.]

 

신이라도 되면 신도 홀릴 수 있다는 건가? 그건 자세히 모르겠지만 인간끼리 통하는 능력인 만큼, 나는 최대한 몸을 사리는 처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정신방어에 대한 것은 둘째치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인형이 되어버린다면, 그 정도로 불합리한 사기 능력이 또 있을까? 달 토끼도 엄연히 인간형이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지능이 있고 사람처럼 2족보행을 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지성체들은 리제로트의 인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능력이야. 그 능력으로 내가 오기 전에 루나를 먼저 인형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는걸?”

 

당연히 그러려고 했죠.”

 

자신감이 넘치는 어투.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와서 루나가 내기에 졌다면, 루나를 넘어 관리하고 있던 달까지 빼앗길뻔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저 눈을 바라보고 이성을 버틸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기적인지라, 악몽에서도 나오고 악몽에 깨어난 뒤에 안심하던 찰나, 장롱에서 나와 기겁하게 만들고 그 악몽에서 다시 깨어나서, 한숨을 내쉬자마자 침대 밑에서 튀어나올 법한 기괴함.

 

그 장황한 설명은 리제로트의 눈을 단 1초만 바라봐도 생기는 현상이다. 정신이 섞이고 자아가 불분명해지기 시작하면, 천천히 자아의식을 잃고 인형이 되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 도대체 누구와 정신이 섞이는 건지도 모르겠거니와, 평범한 인간이 1초 이상만 바라봐도 자아붕괴가 시작된다.

 

루니아 누나마저 불리한 극상성의 관계.

모든 것을 다 집어치우고 내가 그저 인간이기에 걸려버릴지도 모르는 마법과 같았다.

 

속을 까봤더니 무시무시한 사람이란 걸 그 몸으로 알았나 보죠?”

 

의식하지 못했지만 내 몸이 부자연스럽게 떨고 있던 걸 감지한 듯, 환하게 웃으면서 청색의 눈동자가 나를 반겼다. 컬러렌즈를 빼고 늪지대 같은 보라 빛의 눈동자만 조심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목소리를 겨우 가다듬고 가출한 정신을 내 두개골로 다시 들여보냈다.

 

무시무시한 수준이 아니라 코스믹 호러야. 쿠툴루 신화가 그대로 펼쳐지는 줄 알았다고? 눈만 바라봐도 정신이 갈려서 인형이 된다는 전례는 어디에서도 없을 거야.”

 

그래요? 하지만 당신은 내일 하루 종일 나와 같이 놀러 다니면서 매번 이 눈을 마주해야 하는데?”

 

순간 시력을 잃어도 좋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아냐, 그래도 인형사가 무서워서 눈을 포기할 수는 없지. 별의 아이가 아닌 이상 미래를 볼 수 없지 않는가?

 

돌아가자마자 대책을 새워야겠군.

 

그래도 오늘은 만찬을 즐기러 온 것뿐이잖아요? 어서 앉도록 하시죠?”

 

만찬을 즐기러 온 게 아냐. 그리고 너와 나의 관계도는 잘 알고 있을 텐데?”

 

당연하죠. 그래도 천리 길도 식후경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그런 옛말 없거든!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옛말을 멋대로 합성하지마!”

 

다만 뜻이 너무 명확하게 나타나는 말이다 보니, 위화감이 일을 하지 않고 자연스레 넘어갈 뻔했다. 한 차례 태클을 걸었지만 여유롭게 웃어넘기는 리제로트. 분명 내가 남자였을 때 대면했을 때는 저런 분위기가 아닐 텐데.

 

어쨌든...

 

여기서 명확하게 선을 긋도록 하지. 아까 전에는 시간이 없어서 대충 끊고 갔으니까.”

 

음식은 먹기 싫지만 루나의 옆 좌석으로 앉았다. 제대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리제로트와 눈높이를 맞췄다.

 

선을 긋는다는 것은 뭐죠?”

 

나에게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기대하는 리제로트는 잠시 후에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지금 당장 카렌을 해방한다.”

 

지금 뭐라고요? 그건 약속과 다르잖아요?”

 

애석하게도 너의 진가를 알아본 이상 카렌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때어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거든, 게다가 카렌에게 무슨 장난을 쳤으리라는 가정하에, 잡화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며, 오랫동안 메인터넌스를 받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카렌은 매우 위독한 상태라고 판단할 수 있어. 이건 내 독립적인 의사이기도 하고, 비록 체세포 복제로 태어났지만 하나의 부모의 마음이 담긴 제안이야. 만약 카렌을 데려왔을 때 이미 망가져서 죽은 거와 다름이 없다면, 나는 모든 것을 다 버릴 각오로 너희들을 몰살할 테니 알아둬.”

 

몰살할 수 있다는 협박이 장난이 아니란 사실은 저쪽에서도 알 거다.

잡화점 멤버 하나 하나가 세상을 잡고 뒤흔들 수 있는 명인이자 거대한 재앙의 근원.

나 또한 계획을 세운다면 온 세상에 새벽<Daybreak>이나 황혼<Dusk>를 아낌없이 작은 개미집도 빠짐없이 구석구석 퍼트릴 수 있다.

 

좋아요. 지금은 시간이 좀 걸리니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주세요.”

 

그러면 두 번째...”

 

두 번째가 있어요?”

 

첫 번째가 있으면 두 번째가 있지. 나는 기본으로 세 번째까지 잡아 늘어지니까.”

 

겉과 속은 완벽한 소녀인데, 정신상태는 변하지 않는 모양이군요.”

 

내심 아쉽다는 어조가 내 귓가에 감지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니니 철저하게 진행하도록 하자.

 

두 번째로는 너의 집에 초대받지 않아.”

 

이유라도 알 수 있을까요?”

 

너는 단신으로 아무런 무장도 없이 적진에 간다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생각해?”

 

명랑하게 외치는 내 말을 듣자마자 리제로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은은한 음악이 고요하게 흐르고, 주변에 사람들은 여전히 잡담을 하며 식사를 하고 있으니. 마지막 세 번째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세 번째로. 지금 이곳에 묶여 있는 사람들 전부 다 풀어.”

 

“......정말 못 당하겠네요.”

 

작은 손바닥으로 커다란 박수가 두 번 울러 퍼졌다. 다른 사람들이 먹고 음악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분위기에 휩쓸리도록, 그리고 무거운 주제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어색해지는 분위기로 만들도록, 또 다른 이가 왔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레 주변과 동화할 수 있도록. 3가지의 노림수를 단 한마디로 제거했다.

 

박수를 2번 들으니, 먹다 남은 음식은 눈에 거들떠 보지도 않고, 우루루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저녁만찬에 표면상 남은 사람은 리제로트와 뒤에 있는 남자, 나와 루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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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운전 연습해야 하는데...

차가 없어서 장롱면허가 된 터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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