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43
543
아이리스와 레인. 그 둘은 어디서 만나고 어떻게 인연을 같이 했는가? 내가 알아도 중요하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다. 다만, 내가 행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이들에게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을까? 품속에서 검은 고양이가 꼼지락거리는 사이에도 머릿속에선 다양한 생각이 겹치기 시작했다.
“카일 씨는 마왕님과 데이트 중인가요?”
“데이트로 고양이 카페에 고양이모습으로 오겠냐. 그리고 시나도 동화된 상태로 대기하고 있어. 그리고 데이트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얼어붙은 상태로 오지 않겠지.”
밖에서 어마어마한 추위를 겪고 오던 찰나였다. 매번 겨울이 시작된다고 알려주는 늦가을의 날씨라도, 대비를 하지 않으면 온 몸에 한기가 쌓이기 마련. 추위는 결국 상대적인 거고 적응에 따라 달라지는 감각이 다르다.
“무슨 일로 밖에서 있던 거에요? 아저씨 꿈이 눈사람이에요?”
아이리스야 말로 여전히 신경 긁는 말을 잘하고 있으나, 저게 나름대로의 개성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기보단, 아이니스의 후손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저씨 아니라고. 오빠라고 불러. 레인과 거의 비슷한 나이란 말이야.”
“아저씨는 이미 결혼 했다고 했으면서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아저씨지 아저씨가 아니면 아저씨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아저씨력이 없어지게 된다고요 아저씨.”
7콤보를 먹인 아이리스의 머리를 아이언 클로로 으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타이밍 좋게 점원이 따듯한 레몬차를 내놓았다. 그렇게 레몬차를...
“잠깐. 아직 시키지도 않았는데요?”
“서비스입니다. 고양이가 귀여워서 주는 거에요.”
고양이가 귀여워서 주는 거라며 말을 들었을 때, 레시아가 내 품에서 나와 난로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긴, 고양이에게 없던 붉은 눈과 마왕의 카리스마가 다 숨겨지지 않는지, 한쪽에서는 3명의 여학생으로 추정되는 소녀들이, 간식과 육포로 흔들어도 도도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마왕님은 인기가 많네요.”
“타락의 마왕이니까. 모든 이들을 자신 밑으로 타락시킨다는 일념으로 살고 있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 마왕이지. 지금 마왕은 실베스 씨니까.”
본래 시간대에 다시 돌아가도 전 마왕일 뿐. 이제 마왕의 이름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일만 남은 레시아가 부럽기만 했다. 그리고 아까 서비스로 나에게 레몬차를 준 점원 또한...
“아~ 귀엽다! 너도 우리 애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양이를 잘 아는지 레시아가 멀뚱멀뚱 쳐다봐도 손을 대거나 만지지 않았다. 고양이가 직접 다가오며 호감을 보여야 친해질 수 있다는 신호니까. 그렇게 모든 이들의 마음을 고양이의 모습으로 뒤흔들어놓고,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흥. 저쪽이 따듯해서 기분 좋게 불을 쬐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몰려오니 주인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구나.”
“그래도 인기는 많네요. 나중에 여기 고양이 카페에 간판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아서라. 짐은 언제나 주인의 남편이니, 주인 앞에서만 간판이 될 생각이다.”
“아니. 그러니까 남편이든 뭐든 제발 사전적인 의미를 찾고 나서 이야기 하라고요.”
아직까지 나를 신부라고 생각하고 부르고 있으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루시피나는 제대로 신랑이라고 불러주고 있는데.
“짐이 잠깐 가는 동안 저 둘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이야기라뇨?”
레인은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지만 가면에서 빨대를 빼고 질문을 했다.
“라 캄베리에 대한 이야기니라. 지금 우리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상현상에 대해 조사를 하던 중. 유랑극단이 모든 것을 꾸미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문제는 그 유랑극단의 실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며, 그들을 지지하는 자가 꽤 많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 라 캄베리가 들어갔다는 소리면, 다른 대기업도 그에 관련된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거네요?”
속 시원할 정도의 명쾌한 정답을 말한 레인. 그러고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이번엔 나에게 입을 열었다.
“라 캄베리에 들어가실 생각이라면 안 하시는 게 좋아요.”
“무슨 이유이지?”
레인답지 않게 진지함이 묻어 나오는 말에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대답은 그 건물 안에 들어가기 힘든 것이 아닌, 다른 요소로 인해 들어가기 힘들 다는 것을 이야기 해줬으면 좋을 뿐.
“그 안에 있는 정예요원들이 모두 실종되었으니까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내부는 침투하기 쉬워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뭔가가 차질이 있었나 봐요.”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검은 가면을 쓴 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리스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생각을 하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 맞아! 라 캄베리의 영애는 동성애자에요!”
순식간에 모든 이들이 아이리스에게 집중되었고, 나는 따가운 시선에 못 이겨서 양손을 얼굴에 가리며 푹 숙이고 있었다. 주제를 아름답게 탈선하는 바람에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관광까지 가버렸으며, 돌아오기 위해선 3분의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다.
“아이리스.”
“왜요? 아저씨?”
“기어가는 달팽이 속도의 머리로 결승선에 도달한 건 좋은데, 남들이 듣기에도 평범한 것이 아닌 정보는 소리치지마. 아이니스는 적어도 자신이 말하는 것에 있어선 분별할 줄 아는 아이였는데.”
“왜요! 이 정도면 커다란 정보라고요! 왜냐하면 아저씨가 저번에 소녀로...으읍!”
근처에 있던 도넛을 아이리스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 모르겠지만, 저 입을 막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막음을 한 상태로, 일부로라도 음침한 목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이야기 했다.
“한번만 그 따위 소리를 내 앞에서 내뱉는다면, 다음엔 아이언 클로가 너의 두개골을 꾹꾹 눌러 담아 놓을 거야.”
실질적으로 아이리스가 내가 소녀로 변한 사실은 본적이 없지만, 아마 레인이 아이리스에게 말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유추겠지. 목이 막혔는지 자신 앞에 있는 오렌지 주스를 한 가득 비우고 나서, 공기를 차분하게 흡입한 뒤에서야 “아저씨! 누구 죽일 생각이에요!”라며 눈물을 머금고 소리쳤다.
누굴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일부러 옆 테이블에 있는 도넛을 뺏어왔을까? 청산가리나 다른 독극물을 집어넣었겠지. 태연하게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약간 식은 차를 목에 타 집어넣었을 무렵.
“뭣하면 아이리스. 네가 다녀오던가? 친구가 되든 어떻게 만나든 동성애자는 아니든. 네가 찾아가서 정보를 뽑아온다면 개인적으로 사례를 좀 해주도록 하지.”
“흥! 아저씨가 주는 사례는 필요 없거든요! 메롱!”
“아저씨 아니라고. 그보다, 아이니스가 읽었던 마법의 기초에 관련된 책을 빌려주려고 했을 뿐이야.”
“하지만 저는 초능력자에요. 마나가 아니라 특수한 의지로 움직인다고요. 레인오빠도 초능력자라서 제가 마법사가 될 필요는 없거든요. 초능력 커플이라는 사실만 이어진다면 저는 오빠와 함께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아이리스의 뇌는 벌써 레인과 결혼을 하고 남았을 시간이군. 그나마 아이리스를 보내서 정보를 얻어올 생각이었다만, 어쩔 수 없이 정보에 관련된 문제는 그리티스 씨에게 부탁하도록 하자. 슬라임이라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마물.
분신개체가 사방에 퍼졌으니 물어보면 바로 대답해주리라 본다.
“주인이 직접 움직이는 편이 좋지 않는가?”
“저는 가급적이면 평화롭고 느긋한 생활을 꿈꾸고 있거든요. 지금 당장 집에 돌아가서 이불을 돌돌 말고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외치고 싶을 지경이에요. 게다가 추워죽겠는데 이게 무슨 헛고생을 하는 건지.”
대낮부터 얼어붙을 뻔한 날씨에 밖에서 라 캄베리 앞에 가서 구경하다가, 회장의 딸인지 사장의 딸인지 모르는 고위급 신분에게 눈으로 퇴짜맞으니, 정신상태는 넝마가 되어 굴러다닐 지경이다. 가장 위안이 된다면 레시아와 시나가 붙어 다니면서, 그렇게 강한 추위는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추운 것은 춥다고 말할 수 있다.
“아저씨가 소녀로 변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귀여웠다고 레인오빠가 말했다고요. 아저씨의 성격으로 보면 되기 싫어도 억지로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레인오빠는 안 되요. 못 줘요. 안 줘요. 돌아가요.”
“언제까지 망상의 나날에서 보낼 거냐. 그만 현실을 좀 직시해라. 아이리스.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검은 고양이는 앞발을 할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주인이 소녀였을 때. 짐이 꽤 고생했노라.”
“하긴, 그때는 제가 제대로 전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 절 지켜주느라 좀 힘들었으리라 생각해요.”
앞발을 할짝이던 레시아는 뜬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마냥, 고개를 내 쪽으로 천천히 돌리기 시작하더니, 당황한 듯한 어조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짐이 말한 것은 호위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짐은 누구보다 강력한 마왕이니라. 300년 뒤에 숨어있는 강자가 많을지라도, 그들 중에 짐을 능가할 만한 자는 별로 없으리라. 짐이 진정으로 힘들었다는 것은 주인을 향한 알 수 없는 욕구가...”
“조용. 알았어요. 그만 좀 해요. 이야기는 끝까지 안 해도 제가 다 이해하기만 할게요.”
이해만 하도록 하자.
그때 레시아는 남성의 삶을 잠깐 살아가면서도, 사고 하나 안 터진 게 용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레시아. 그리티스 씨도 이곳에 불러주세요. 정보전은 빠르면 좋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주인이 부를 것 같아서 미리 불러왔다.”
불러왔다고 한들 내 주변에는 그리티스 씨가 보이지 않는데?
“자라나라 머리머리. 자라나라 머리머리.”
어디선가 멋진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더니, 자연스레 머리 위로 눈동자가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시야의 한계상 정수리는커녕,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 길게 자라나버린 앞머리의 일부만 보였으니, 그 상태로 입을 열기로 하자.
“그리티스 씨. 제 머리 위에서 뭐해요?”
“아. 잡화점의 주인이여. 놀라운 소식을 알려주지. 이곳에 비밀리에 약을 개발하는 연구소에서, 드디어 탈모를 완벽하게 방지하는 약품을 개발했다네. 그래서 지금 잡화점 주인의 머리카락에 골고루 그 약품을 바르고 있지. 덤으로 머리 마사지도 하고 있는데 좋은지 묻고 싶군.”
“어쩐지 머리가 시원하다고 생각했는데 고마워요. 그리티스 씨.”
...잠깐?
이게 아니잖아.
“언제 제 머리 위에 올라온 거에요!!!”
너무 자연스러운 대화에 깜빡 넘어갈 뻔했다.
능청스러움이 한 단계 더 진화한 건가?
아니면, 그에 관련된 무언가를 포식한 건가?
“언제라니. 마왕님께서 난로에 있다가 돌아왔을 때부터 쭉 함께였지 않는가? 이렇게 있으니 전생에 나는 잡화점의 주인과 가장 친한 형제였을지도 모르는 깊은 관계를 느끼고 있다네.”
“제 머리에 탈모를 방지하는 약품을 발라주는 건 감사합니다만, 그것만으로 전생의 관계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으니, 슬슬 책상으로 내려와주시면 안됩니까?”
레인과 아이리스는 태연하게 태클을 걸고 있는 나와, 그에 맞춰서 “허허허!”하고 멋진 웃음을 선사하는 그리티스씨를 보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슬라임이 말을 하잖아?”
아이리스가 보기엔 신기한 듯 눈이 커져있었다.
슬라임을 본 적도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서 제가 들을만한 정보는 다 준비된 거에요?”
“잡화점의 주인 덕에 은혜를 받은 폭식의 공작인 본인. 그리티스는 언제나 잡화점 주인에게 정보를 줄 수 있도록, 머리에 붙어서 마사지를 하고 있는 것을 알리고 싶군.”
“아니. 정보를 알려주신다는 건 감사하지만, 제 머리 위에 대체 뭐가 있길래 계속 올라가는 거에요?”
“항상 윤기 나는 머리는 유지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가끔가다 주변에 휘몰아치는 마나를 삼키는 것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 어쨌든 뭔가 알고 싶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이제 슬슬 물어보도록 하게나.”
정보를 나눠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남의 머리 위에 말도 없이 올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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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가는 길에 눈이 펑펑 쏟아졌는데...
너무 추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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