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21
521
자신이 머물고 있는 보금자리는 안전한가?
동물들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 보금자리를 공들여 짓지만,
맹수는 그것을 알고 오히려 이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묻는데, 지금 머물고 있는 보금자리는 안전할까?
-겨우 도망쳐 나온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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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뒤의 세계는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정글이 많다. 파이론에서도 가장 높다는 건물에 올라가서 밑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사람들은 개미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말하는 소리는 전혀 귓가에 도달하지 못했다. 높이에 따라 바람은 매섭게 부딪치고, 새들은 그 위에서도 자유롭게 날아간다. 좋겠다. 저 새들은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겪지 않아서!
잡화점에서 도망치듯 뛰쳐나가 숨어있는지 1시간이 경과하면서, 그나마 내 본래의 모습을 손거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크나큰 인기를 얻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여자애로 바꿔버린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터무니 없는 소리니까.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기 위해, 레시아나 시나, 루니아 누나 3명이서 영상을 찍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멀쩡하다 못해 매력적인 존재들을 놔두고, 내 성별을 바꾸고 어린애로 만든다는 그 시점부터,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생각하고 있지만, 언젠가 떠오를 기발한 해결방법을 위해. 꾸준히 머리를 돌리고 과부화시키고 냉각하는 것을 반복하며, 뇌 신경을 전부 태워버리더라도 노력해야 한다.
“잠깐만? 뇌 신경을 전부 태우면 생각은커녕 죽잖아?”
뜬금없이 혼잣말로 내 생각에 태클을 걸어 중지가 되었다. 고뇌의 늪에서 나와 현실을 자각하고, 시선은 다시 정면을 향해 바라봤다. 잡화점에서는 내가 그녀들의 남편이지만, 그녀들은 나를 남편이라 생각하지 않고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관계는 수정해야 할 방안일까? 그렇다고 국이 짜다고 해서 밥상을 엎을 수가 없다. 애매하게 못하면 그런 일을 할 생각만 가지고 있지만, 루시피나의 요리는 흠잡을 때가 없을 정도로 매우 잘하며, 3명은 독극물을 창조하는 것에 도가 터버렸다.
요리를 하라고 했더니 암흑물질과 형광물질, 그 사이에는 무지개가 놓여져 있으니까.
아무튼 당분간 갈 곳도 없는 이곳에서 멍하니 앉아, 이미지를 띄우고 체내에 있는 에너지를 회전시키자, 내 몸에 알맞은 회색 빛의 코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에 알았던 거지만 명계에서 레시아와 닮은 뱃사공에게 다녀온 이후로, 엉망진창이었던 힘이 안정이 되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 시나와 레시아처럼 물질을 창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마나로 이루어진 형상은 불안정하고 공급이 끊어지면 바로 사라지는 것과는 다르게, 내가 창조하는 것은 생성과정에서 한번이면 충분했다. 제거하는 것도 내가 하면 되는 것일 테니, 다음에는 골드를 좀 복사해서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
“이런 힘이 있다고 해서, 전혀 기쁘지 않은 것은 왜 일까?”
분명, 어릴 적에 나는 신기한 힘이 눈을 뜬다면, 그에 맞춰서 다양한 일을 해보고, 생활이 편해질 것이라는 걸 생각했지만, 그 신기한 힘은 그에 걸 맞는 부작용도 존재하는 것을 모르던 순진무구한 시절이었다. 지금 당장 나에게 처한 위기는 신기한 힘과는 아무 상관 없지만...
뒤쪽에서 옥상의 문이 열렸다. 잡화점 문과는 다르게, 나무가 아닌 합금으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 문에 있는 마법진과 결계를 뚫고 올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후우...이거 혼났네.”
발목까지 오는 검은 코트를 입고 온 레인은, 흠집이 이리저리 생긴 가면을 쓴 상태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 카일 씨. 여기 있었군요.”
“그 가면은?”
“카일 씨가 있는 잡화점에 놀러 갔는데, 느닷없이 공격이 들어와서...하마터면 인생에 단 한번밖에 없을 줄 알았던, 성전환 패턴을 그대로 당할 뻔했어요. 지금쯤 이 삼각자가 없었다면, 모든 마법을 직격으로 맞고 끌려갔겠죠.”
레인이 들고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거대한 삼각자. 어처구니 없게도 그 삼각자의 절반이 사라진 체 옥상 바닥에 버려졌다.
“제 삼각자가 부셔질 정도로 퍼붓는데, 평소에도 카일 씨는 이렇게 맞고 다니나요? 가정폭력 아닙니까?”
“넌 그게 가정폭력의 수준으로 보이냐? 마법 맞고 눈떠보니 잡화점으로부터 1km정도 날아간 게?”
가정폭력을 뛰어넘는 애정행각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내 근처로 다가가서 내가 보고 있는 경치를 따라보고 있었다.
“카일 씨는 그래도 좋겠네요. 찾아줄 사람이 있잖아요?”
“그래. 그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다만,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장난감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만 뺀다면...”
레인은 내 말에 생각났는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카일 씨. 아까 그 이상한 꼬마에게 들은 말로는, SNL에 내보낼 귀여운 영상을 찾는다고 했는데, 어쩌다가 그런 이야기로 변한 거에요?”
마리아에게 들은 건가? 이상한 꼬마라고 말하는 거 보면, 이질적인 감각을 정면에서 맞이했겠지만, 그건 둘째치고...
“넌 토요일 밤에 라이브로 어딜 보낼 생각이냐? SNS겠지.”
“이야. 300년 전에 사람이 SNS에 대해서 알다니, 장족의 발전이 아니라 급성장이라고 봐야겠어요.”
“그렇게 볼 생각하지마. 이 정신이 출타한 녀석아.”
그런데 레인이 이곳에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그저 우연히 겹쳤던 것뿐일까? 어느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가서 현실이 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불꽃이 튀어 오르고 청명한 강철의 충돌이 옥상 위에서 울려 퍼졌다. 내 고막이 찌르는 듯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레인의 손에 들린 것은 트라이앵글이었는데,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소리가, 사방으로 뛰쳐나오며 내가 있는 위치를 간접적으로 알리게 되어버렸으니...
“너. 누구의 사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제가 잡화점에서 어마어마한 폭격을 맞고도 살아왔을 거라 생각해요? 당연히 거래를 함으로써 절 풀어준 거죠.”
“날 데리고 오라는 말을 들은 거냐?”
“그건 아니고, 시간만 벌어달라고 했거든요. 제가 카일 씨를 어떻게 이깁니까?”
뻔뻔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손에는 벌써 사브르를 들고 있었다.
“너는 왜 잡화점 1호점에 찾아와서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거냐고...”
“심심하면 놀러 가는 게 1호점 아니에요?”
“지금이라도 날 놔주면 필요 없는 희생은 줄일 수 있을 거야.”
“카일 씨. 하늘을 보세요. 저 사조성이 보일 겁니다.”
지금은 대낮이라 사조성은커녕 별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에 조그마한 점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하면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나에게 날아드는 것만큼은 확인했다. 검은 흑발을 날리며 고속으로 내려오는 소녀.
“사조성이 아니라 죽음의 별이잖아 그냥!”
마리아를 보자마자 어쩔 수 없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곧 이어 거대한 폭음과 함께, 건물 옥상에 있는 콘크리트의 파편과 흙먼지들이 사방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레인은 과연 살아있을지 의문이지만, 뒤를 돌아보며 붕괴위기의 건물은, 시간이 역행하듯 천천히 돌아오면서 낙하하던 잔해까지 모두 원상복구가 되었고,
갈고리 사슬 하나를 아까 뛰어내린 옥상에 던진 후에, 겨우겨우 매달리면서 옥상으로 다시 올라갔다.
“여전히 반응이 빨라서 잡기 힘들군. 그만 포기하고 이곳에 와야 하지 않는가? 그러면 본래 30개를 녹화해야 하는 영상을 3개로 줄여주겠노라.”
“밝은 미소로 폭력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니, 이번 계획은 무산으로 만들어 주시죠?”
말 그대로 밝은 미소로 작은 손에 검은 성배를 들고 있는 마리아는, 잔을 살짝 기울자마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 기이한 검은 촉수 같은 것을 피했다.
검은 성배에서 안에는 문어도 살고 있는 건가?
“애석하게도 카일이여. 첩에게는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장비를 겨우겨우 빌렸는데 빨리 찍어야 한다고?”
“그건 나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거잖아요. 멀쩡한 사람의 성별과 나이를 변화시켜버린다는데, 그걸 어떤 인간이 허락해요?”
“첩이 허락한다.”
“하지마! 그냥!”
마리아의 경우에는 거리를 유지하는 마법사형이니, 내가 먼저 근접해서 공격을 해도 상관이 없지만, 그걸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레인이 근처에서 근접공격을 막아주고, 마리아가 원거리에서 결정타를 먹이는 것이, 가장 유효한 타격방법이라고 한다면 꽤 힘들겠지만, 다행히도 이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마리아의 경우에는 내가 도망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지.
이 세계가 멸망해도 끝까지 따라올 것 같아서 더 무섭다.
“생각을 해보면 카일과 첩은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지 않는가? 애석하게도 그건 당연한 일인데, 첩이 진심으로 힘을 끌어올리는 것은 그 세계가 멸망할 때일 뿐이니까.”
“멸망 당하지 않을 정도로 힘을 내본 적은 없나 보군요? 저번에도 그 소녀의 모습에서 성인으로 변했을 때는 진심으로 힘을 끌어올린 게 아니에요?”
“그야 당연하지 않는가? 첩이 휘두르는 힘은 극미량에 불과하다. 그 극미량의 힘으로 땅이 갈라지고 산이 쪼개지는 것뿐이지. 아주 미세하게 힘 조절을 하지 못해서, 이 건물도 옥상부터 주저앉아 무너질뻔하지 않았는가?”
살아생전에 저런 무식한 먼치킨은 처음 봤네.
마리아가 지니고 있는 힘이 거대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을 따르는 자들은 세계가 멸망할 때 찾아와서, 안전한 땅으로 인도해주는 역할이니까. 그래도 급을 따지자면 신에 위치할 수준은 되겠지.
신비롭고 경이로운 정신기생체이지만...
“아무튼 시간을 더욱 더 지체할 수 없으니, 첩이 살짝 힘을 끌어올릴 테니까. 죽지 말거라.”
성배에 담긴 검은 물이 나에게 쏜살같이 튀어나오자마자, 옆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검은 물에 닿은 콘크리트가 서서히 기이한 형태로 뒤집어지기 시작하면서, 기괴한 생명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니. 저건...
“슬라임이 검은 물에서 튀어나오다니...그 물은 얼마나 많은 생물이 들어가있는 거에요?”
“잘만 들여다보면 카일도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지.”
그 검은 물 안에서 내가 수영이라도 하고 있다면 끔찍했겠지만, 그 슬라임이 점점 인간의 형상을 지니기 시작하더니, 나와 쏙 빼 닮은 형체의 남자 3명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아...이런.”
순식간에 벌어진 공격에 반응은 하려고 했지만,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이후, 내가 다시 눈을 뜨니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첩의 말에 반항하지 않고 순순하게 따라왔으면 좋지 않았는가? 카일도 슬슬 말을 듣지 않고 튀어나가려니 잡기가 힘들구나.”
“그나저나, 카일 씨는 감이 예리하네요. 조금이라도 더 은밀하게 다가가지 않았으면, 트라이앵글을 못 울렸을 거에요.”
재기불능이 되어버린 내 두 다리를 각각 한 명씩 잡고 끌고 가고 있을 무렵. 태클은 걸고 싶어도 머지않아 어마어마한 피로가 다시 내 눈꺼풀의 무게를 증가시키고 있었다.
뭐에 맞았는지 몰라도 3명의 분신의 손 앞에 마나가 모이는 걸로 보아, 검을 들어서 근접전을 하겠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원거리에서 포격을 한 모양이로군.
이대로 끌려가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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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카일의 분신 3개를 소환했다.
카일의 분신1 마나 캐논!
카일의 분신2 마나 캐논!
카일의 분신3 마나 캐논!
카일은 쓰러졌다.
대략 이렇게 전투가 흘렀다고 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