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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06

FNL-Phantasm 2017. 9. 21. 01:09

506

 

 

 

잡화점에서 항상 고민을 하는 것이 있다면, 세계를 지키는 사명보다는 지금 당장 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당연히 가화만사성을 철칙으로 하는 나에게 있어서, 필수불가결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상황에, 현실적으로 시각을 옮긴다면 집안의 평화는 무슨 나 하나 지키지도 못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 1대 주인 쟁탈전을 실시한다.”

 

나를 상품화한 쟁탈전이라서 놀랐다고 생각했지만, 저항할 틈도 없이 구석에 묶어놓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입까지 막아버렸다. 게다가 혹시라도 혀를 깨물어서 죽지 않도록, 입 안에 뭔가 집어넣어놓긴 했는데, 그것 때문에 기도가 막혀서 죽을 위험이 더 높지 않을까? 애당초에 혀 깨물어 죽는 것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니까.

 

차라리 이빨 사이에 청산가리라도 심어놓는 게 더 좋을 지경이다.

 

그러면 주인을 쟁탈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게임을 고르도록!”

 

시나가 옆에서 상자를 들고 있고, 루시피나가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뽑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일의 근원이라면 이 시간대에 살고 있을만한 후손을 위해서라나 뭐라나?

 

얼굴도 모르고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는 후손을 위해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건 아니지만 레시아는 이 기회에 뭔가 쐐기를 박으려는 듯한 거침없는 행동력을 보여줬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누군가가 봉인 되어있을 법한 목거리에 시선을 돌렸을 때.

 

카일 씨는 정말 인기가 많네요. 하지만 인기가 많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닌가 봐요.”

 

노을 빛을 머금은 듯한 아리엘은 수수한 표정으로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리저리 살피는 아리엘의 얼굴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은색의 머리카락들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동안, 아리엘은 나에게 한마디 던지기 시작했는데...

 

카일 씨. 우리 거래 하나 하지 않을래요?”

 

거래라면 여기서 날 풀어주는 건가?

 

카일 씨의 성격이라면 분명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해요. 카일 씨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고, 제가 원하는 것도 단 하나니까요. 만약 거래에 응하겠다면 고개를 끄덕여주세요?”

 

거래를 무작정 응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입이 막혀있어서 듣고 생각해볼게.”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리엘을 제외하고, 남은 6명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제가 요구할 것은 저랑 데이트나 하러 가요. 오늘 하루는 제가 카일 씨를 독점하겠지만, 적어도 저 6명에게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는 것보단 자유로울 거라 생각해요.”

 

데이트라니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하지만 지금 이 요구를 듣지 않는다면, 정말 저 6명 중 하나에게 고문을 당할 테니, 아리엘이 내 몸을 붙잡고 마나를 일으켜서 다른 곳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시야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어디 나무에라도 걸렸는지, 아직 땅과 나의 거리는 멀기만 했고 아리엘이 뒤에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잠깐만 참으세요. 입을 먼저 풀어줄게요.”

 

내가 도망치는 것을 방지해서 손과 발을 먼저 풀지 않고, 입을 먼저 풀어주는 아리엘의 행동에 대해 치밀함을 느꼈지만, 드디어 마리아가 내 입에 쑤셔 넣은 기묘한 물체를 뱉어내고서야 신선한 공기를 들이켰다.

 

푸하앗! 후욱! 후욱! 풀어주려면 손과 발을 먼저 풀어줘야지.”

 

그러면 카일 씨 도망가잖아요?”

 

안 도망가. 애초에 데이트라니? 뜬금없는 제안을 네가 하는 이유는 뭔데?”

 

제가 근처에서 맛있는 카페를 발견했는데 커플이면 50%나 할인을 한다고 해서요. 게다가 다른 남자를 꼬시는 것은 제 성격에도 안 맞고, 기왕이면 아는 사람과 같이 가서 먹는 게 더 맛있을 것 같아서요.”

 

다른 남자를 꼬시는 것이 성격에 안 맞는 게 아니라 어색하다는 거겠지.

 

그보다 입에서 튀어나온 건 뭐에요?”

 

몰라. 마리아가 내 입에다 느닷없이 집어넣길래 확인도 못했어.”

 

내 타액으로 질척거리는 정체불명의 물체를 아리엘이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내 눈이 고장이 안 났다면 분명 저건...

 

왜 카일 씨 입에서 스타킹이 튀어나오는 거에요?”

 

분명 아침에는 저 연한 갈색의 스타킹을 신었을 터인데,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맨발이었던 이유가 저거였던가.

 

그야 마리아가 집어넣었으니까.”

 

변태.”

 

시원스럽게 내가 대답을 했더니, 아리엘은 정색을 하며 위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억울함이 내 머리 끝까지 채워져서, 문장을 만들자마자 기관총처럼 쏟아 부었다.

 

나는 피해자야! 그런 말은 오히려 가해자에게 해야지! 마리아에게 그 차가운 얼굴로 변태라고 말하라고!”

 

무시무시하네요. 카일 씨도...항상 다른 멤버들에게 스킨쉽이나 대쉬를 안 받아서, 그래도 신사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보니 다른 의미로 신사가 맞네요. 뿌리가 깊은 신사 말이죠.”

 

뭐가 뿌리가 깊은 신사야! 그리고 손과 발은 풀어줘야 할 거 아냐!”

 

아뇨. 저는 하드하게 당하는 것이 취향인 카일 씨를 존중하는 면에서, 일부러 기어오라고 풀어주지 않는 거에요.”

 

누가 하드하게 당하는 것이 취향이야?

 

웃기지 말고 풀어!”

 

혹시 제 스타킹도 원하세요? 이 자리에서 벗어서 입에 넣어드릴까요?”

 

누가 그걸 원하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해방이야!”

 

욕망으로부터?”

 

손과 발을 좀 풀어! 누가 욕망으로부터 해방을 원하냐고! 지금 상황에서 그런걸 바라는 녀석은 없어!”

 

겨우겨우 설득을 해서 손과 발이 자유로워졌지만, 아리엘은 나를 놀려먹은 것이 기분 좋은 듯 조용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릴리스 밑에 있는 애들은 다 저러지 않던데? 청순하고 가련한 외모 안에는 소악마가 꿈틀거리고 있다니.

 

그런데 카일 씨. 후손들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리엘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질문은 머릿속을 감고 있었다.

 

그야 궁금하지. 하지만 100년도 아니고 300년의 세월이 흘렀으면, 내 핏줄도 세계 어딘가에 많이 퍼져있을 거야. 내 집안은 애초에 단명을 하는 저주가 걸렸거나, 역마살이 있어서 방랑을 해야 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거든, 그냥 평범하게 아주 약간 오래 살면서, 손자를 보고 세상을 떠나시는 분이 많아. ...내가 잡화점의 주인이 된 그 순간부터는, 내 부모님이 나를 버렸지만...”

 

잡화점 하나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버려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리엘의 머리 위로, 내 손이 올라가서 이리저리 쓰다듬었다.

 

그때 당시...아니, 지금의 잡화점도 솔직히 오는 사람마다 이상한 녀석들 뿐이잖아. 초기에는 사신이 찾아와서 꽃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나. 지금 마왕인 웨어울프는 마물을 전문적으로 학살하는 여기사에게 큐피트의 화살이 잘못 박혀서 난리를 쳤고, 날 해부하려고 탐내고 있는 역병의사나, 기묘하게 생긴 할머니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은 적도 있어. 대부분 레시아가 맨 처음부터 있어줬기 때문에, 그런 위기들을 많이 넘긴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 마왕님이나 다른 멤버의 대쉬를 받아주지 않는 이유가 뭐에요?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면 남자가 먼저 권유를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나 아리엘이 말한 의도는 알고 있어도, 잡화점 멤버들에게 습격을 당했던 트라우마가 머릿속에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온 몸에 식은땀이 분수처럼 분출되고 있었다.

 

잡화점 멤버는 기본횟수가 일반인과 다르거든...행동만 다르지 그것도 거의 전쟁터야. 사람이 두, 세 번 정도는 쓰러져야 겨우겨우 끝난다고. 맨 처음에 레시아가 습격을 했을 때도 내 삶의 마지막이 그때인 줄 알았어. 포식을 당하는 동물들의 기분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고? 결국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해서 살아남은 거지.”

 

그래요? 다른 멤버들에게 들었을 때는 전부 카일 씨에게 당했다고 설명하던데?”

 

가끔가다 기억에 없는 부분이 있는데, 나도 모르는 내가 있나 보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카일 씨가 수인척 하는 공이라고 하잖아요.”

 

시끄러워. 아무튼 파이론에 있는 카페야?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쪽이 맞아?”

 

2층으로 이루어진 카페라니.

300년전과는 다르게 바닥과 카운터에 광이 나는 진귀한 경험을 보고 있었다. 너무 깨끗하게 관리를 해서 비어있는 테이블에서도 먼지 하나 없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카페 안에 들어가서는 아리엘이 느닷없이 팔짱을 끼는 바람에, 내 몸이 왼쪽으로 살짝 기울여졌다.

 

카일 오빠? 뭐 먹을까?”

 

아리엘의 말 한마디에 내 몸이 석상으로 되는 줄 알았다. 메두사의 눈이라도 마주쳤는지 입이 떠지지 않았는데, 아리엘의 표정을 보니 연인인척을 하지 않으면, 아까 마리아가 했던 것을 이곳에서 집행하겠다.”라고 하는듯한 살벌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 그래. 우선 테이블에 앉고 생각을 하도록 하자. 그리 급하지 않잖아? 그렇지?”

 

!”

 

평상시에 침착하고 냉정했던 아이가 밝게 웃으면서 귀엽게 보이기 위해, 텐션을 높여서 말하는 모습에 넋을 잃을 뻔했다. 귀여운 것도 귀여운 거고, 옷도 잘 입고 와서 앞에 프릴이 달려있는 셔츠와 빨간 리본이 걸린 것도 그렇고, 소매에도 프릴이 달려서 손을 작게 보이는 듯하면서도 가련한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도 그렇지만...

 

내가 가장 놀랬던 것은 불과 3분전까지만 해도 카일 씨?”라고 정중하게 불렀던 애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카일 오빠!”라고 부르니, 주변에서 나를 신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마저 마주한 것 같았다.

 

저기. 아리엘.”

 

? 오빠?”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가슴속에 불덩이라도 심어져서 괴로웠기에 시원한 음료를 대충 고르기로 했고, 겨우겨우 이성을 유지하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그 태세는 뭐야?”

 

이거? 이렇게 밝고 명랑하게 대해주면 괴로워하는 녀석이 마법 기동반에 있었거든!”

 

아 그래?

그보다 바로 옆자리에 꼭 붙어서 초근거리로 마주할 줄은 몰랐다. 귀여웠다기 보단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해야 할까? 아리엘이 시야에 들어오면 손쉽게 다른 곳으로 돌리기가 어려웠다.

 

카일 오빠? 아리엘은 이 쵸코 파르페가 먹고 싶은데?”

 

귀가 충격을 먹었나 보다. 지금 내 뇌가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사이에, “이거 하나 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점원이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다른 곳으로 나아간 사이에...

 

카일 씨? 뭐 하는 거에요?”

 

다시 평소처럼 냉철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항의할 게 많은지 아까 전부터

 

너의 극악무도한 이미지 체인지에 뇌가 현실을 부정하고, 어이가 지옥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겨우겨우 막고 있다. ? ? 싸울 거냐?”

 

쵸코 파르페 2인분 나왔습니다.”

 

카일 오빠! 같이 먹자! 물론 오빠가 먹여줄 거지?”

 

파르페를 소환하는 것도 아니고 뭐 이리 빠르게 나오는 건지. 그보다 더 가관인 것은 아리엘의 빛보다 빠른 태세전환속도에 어이가 다시 지옥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쵸코 파르페라고 할지라도, 파르페에 쵸코 시럽과, 초콜렛으로 이루어진 과자, 바나나 딸기 포도 등 여러 과일을 장식하고 있었으나, 2인분인 주제에 파르페는 하나고 스푼은 2.

 

~”

 

어미에게 먹이를 받아먹으려는 새끼 새마냥, 입을 벌리고 눈을 감으며 자신에게 달콤함을 기다리고 있는 아리엘을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아이언 클로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니, 한 스푼 뜨고 입에 넣어줬다.

 

후으으! 맛있어!”

 

아리엘의 기뻐하는 얼굴이 퍼지자마자, 다른 테이블에서 오빠? 왜 저 애 쳐다봐?”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맛있냐?”

 

나도 한 입을 떠먹으려고 스푼을 움직였는데, 손목을 내리치면서 강아지에게 주의를 주듯 눈이 매서워졌다.

 

뭐 하는 거야? 훈육이라도 하는 거냐?”

 

오빠도 참~ 아리엘이 떠먹여줄게~”

 

그러고는 왼손으로 내 뒷목을 거칠게 잡아 고정을 시키더니, “오른손에 있는 스푼에 쵸코 파르페가 올려진 상태로, 아리엘이 . ~”라는 주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심이 없는 표정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놀라웠지만, 이미 내 입은 아리엘의 주문 때문에 개방된 상태였고, 파르페가 입 안에 들어오고 나서야 내가 입을 벌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달콤한 크림과 쵸코가 퍼져나가는 것뿐이지만, 오히려 기분은 더 들뜨고 좋았으니...

 

맛있지? 오빠?”

 

, 그래. 맛있네.”

 

경직되었던 나의 긴장은 쵸코 파르페로 인해 풀리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아리엘이 권유한 데이트에 잘 따라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이 시간대라면 분명 누구 한 명에게 붙잡혀서 새로운 트라우마가 생성될 시간대니까. 아리엘에게 고맙다는 말을 직접 하는 것은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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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의 태세전환 속도는 불과 0.3초만에 이루어지는 거시여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