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00
500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천계로 먼저 가서 엘티노스를 구한다고 결정한지 1시간이 흘렀을까? 잠깐 자리를 비워서 루시피나에게 잡화점을 맡기고, 시간의 흐름이 비정상적인 천계에 시나와 같이 입성하기 시작했을 무렵. 레시아의 경우 마리아와 릴리스를 이끌고 마계로 가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시나와 동화가 될 필요는 없었으나 지금은 시나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동화를 했고, 걸어 나아가는 다리가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발키리와 심판자들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보다 이곳에는 영체가 전혀 없잖아?”
예전에는 영체가 주변에 많아서 몰려다니고, 천사가 나타나면 그곳으로 전부 집결해서 신의 복음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분명 예전에 시나와 동화해서 올라갔을 때도 영체들이 나에게 몰려들었지만...
[시나. 샤이어는 어느 쪽에 있어?]
[아마, 전에 엘티노스가 살았던 영역에 있으리라 봅니다. 아직까지는 감지가 되지 않지만, 감지가 되면 표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손과 다리에는 붕대가 다 풀렸지만, 여전히 얼굴 쪽에는 붕대가 풀리지 않아 답답할 지경이다. 주변에는 마나가 없기에 시나가 대신 눈이 되어주면서, 주변에 있는 지형과 형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나는 눈을 볼 수 없는 걸까? 혹시 이 눈은 어디 마을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만화경 사륜...
[마스터. 그런 눈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이상한 상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길. 이래서 동화를 하면 멋대로 생각할 수 없다니까. 무엇보다 생각이나 상상은 그 사람의 자유니까 하나하나 지적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헛된 마음가짐은 사람을 나태하게 만듭니다.]
[내가 한 것은 헛된 마음가짐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그냥 장난으로 생각했던 것이 나태하다는 진단을 받아버렸다. 지금은 엘티노스가 갇혀있는 이유를 알고 있을만한 신이 아우리스나 비니스, 데모르테, 레이베리아, 샤이어정도.
“이유는 알 수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또 이상한 걸로 붙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네. 창조주마저 엘티노스를 봐줄 수 없는 중범죄라면 뭐가 있을까?”
혼잣말을 하면서 비어있는 공터마냥 휑한 장소를 걸어나가 샤이어를 발견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곳에 미이라가 출몰하다니! 분명 이것도 창조주께서 노하신 것이 틀림없어!”
“난 미이라가 아냐. 그리고 샤이어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하면 알아듣나?”
“잡화점의 주인? 설마 카일 씨가! 그래서 정부인 람파시나 님께서 이곳에 계시나요?”
“나와 동화를 하고 있긴 한데...”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불순물이 끼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텔레파시를 보냈다.
[정부는 대체 또 뭐야?]
[그런 냥캣과 달리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저는 정실부인이 맞지 않습니까? 그녀들보다 유일하게 오랫동안 동화할 수 있고, 리스크도 없으니 몸과 마음이 잘 맞는다는 뜻이며, 궁합도 잘 맞는 증거이니 매번 샤이어에게 세뇌했습니다.]
[세뇌!?]
[아뇨. 실언했군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샤이어가 시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나가 세뇌를 할 정도로 화가 난 것일까? 분명 둘이 천계에 상황으로 이야기 하는 동안, 느닷없이 샤이어가 나와 시나의 관계를 두고 무슨 말을 했음이 틀림없다.
“아하! 그렇군요. 그보다 이곳에 온 이유는 안에서 듣도록 합시다. 최근 여신들이 너무 무서워서 이곳에서 잘못 말하면 엘티노스 님처럼 끌려갈 수 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이고 전에 엘티노스가 있던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꺄악! 미이라다!”
하긴 천사들은 미이라를 그리 많이 본 적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곳에 왜 여천사가 있는 거지?
“죄송합니다. 잠깐 옷 좀 갈아 입히고 보낼게요.”
이 녀석...엘티노스에게 무슨 교육을 받은 거야?
“갑자기 찾아와서 놀랬지만 이곳은 잡화점처럼, 자동으로 물건을 정리하는 기능이 있으니 편하게 계세요.”
천계에서 편하게 있으라고 해도 지금은 1초라도 빨리 본론에 들어가고 싶었다. 마음이 성급해지면서도 그걸 파악하고 다스리려는 내 심리상태에, 시나가 도와주는 듯이 천천히 진정이 되어가면서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엘티노스는 뭐하다가 붙잡힌 거야? 낙서라도 했어?”
“낙서정도면 붙잡을 이유는 없지만, 레이베리아 여신님께서 직접 죄를 물어 붙잡은 걸로 알고 있어요.”
“직접 죄를 물었다고? 이번엔 무슨 일로?”
“지금 14대 마왕과 긴밀이 손잡은 이유 하나로 집어넣었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겠지요. 그래서 저도 엘티노스 님을 도와 조사하려고 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끌려가던 엘티노스 님께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상급신의 권위에 올라와서도 후드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샤이어였지만, 목소리에서 들려오는 분함과 억울함은 그대로 전해졌다.
“그러니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레이베리아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건 그렇네. 하지만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을 상대하기엔, 나도 직접 대면하기가 버거워. 차라리 샤이어를 만나기 전에 레이베리아를 만났으면 좀 더 많은 정보를 유추해서,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텐데. 이런 사실까지 알아버렸으니 지금은 레이베리아를 만나면 안 되겠네. 그러면 지금 엘티노스는 어디에 있지?”
“천계에 있는 감옥은 탈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레이베리아 여신님의 성역에서 봉인 당하시고 있을 겁니다.”
“레이베리아에게 봉인까지 당했다고?”
좀 더 중요한 정보를 알아낸 건가? 하지만 천계에서는 무의미한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상호간의 힘이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보면, 레이베리아가 엘티노스의 비밀들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이 아닐 테고, 무슨 영문으로 붙잡았는지가 더 의문인데.
“그렇다면 직접 갈 수 밖에 없나?”
“아뇨! 그러지 마세요! 카일 님마저 잡히면 미래가 없습니다.”
“하긴, 내 존재는 지금 이곳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지. 당장 내일 걱정을 해야 하는 내가, 300년씩이나 뛰어넘어가면서 일을 해결해야 할 줄은 몰랐지만, 그러면 지금은 엘티노스 씨를 빼오는 것조차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내가 직접 시나와 신격화를 해서 레이베리아와 만날 수 밖에 없겠네.”
“신격화를 하시려고요? 그러면 이곳에 또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
“난리가 나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아우리스 여신은 어디 있지?”
“지금은 아우리스 여신님마저 부재중입니다.”
뭔가 묘하군.
엄청나게 이상해.
신성 아우리온이 살아있는데 아우리스 여신이 부재중이라고? 지상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자리에 없는 것조차 이상하게 여겨야 한다.
“나는 레이베리아와 이야기를 하고 올 테니, 만일을 대비해서 근처에 대기하고 있으면 돼. 만일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평범하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좀 골치가 아픈 것뿐이겠지.
***
레이베리아의 성역 안에는 별 다른 심판자와 발키리가 없었는데, 그런 점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보통 여신이 들어간 성역 안에는 수많은 영체와 심판자, 발키리들이 머물고 있기 마련. 언젠가 마계에서 공세를 이끌고 올 때, 최우선으로 보호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라곤 하나. 레이베리아의 주변에는 그 수가 매우 적었다.
만나러 왔으니 손님이 왔다는 것은 알려줘야 하겠지만,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경우라면...
“내가 온 걸 알고 있었잖아?”
문이 크게 열려있는 것이 함정에 제 발로 찾아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호랑이 굴에 들어갔을 때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만, 지금은 호랑이 굴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을 차려도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걸을 때마다 울려 퍼지는 음향이 난반사가 되어 다시 내 귀로 울릴 때. 문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하고 옥좌 위에서 레이베리아는 눈을 감은 체 작은 입술을 움직였다.
“잘 왔어요. 카일. 머나먼 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었어요.”
“머나먼 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니?”
신격화가 되어서 눈보다 하얀 머리로 바뀌고, 붕대로 감겨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알 수 없어도, 레이베리아는 내가 누구인지 어느 시간대에서 왔는지 알고 있나 보다.
“속마음을 읽지 못하게 신격화를 하셨으니, 지금 안에 있는 분은 창조의 여신인 람파시나 님이로군요. 확실히 다른 차원의 여신은 이곳에서 힘을 제대로 내기가 어렵긴 하죠. 그나저나 이곳에 온 이유라면 엘티노스 때문인가요?”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그렇지만, 지금은 본론으로 바로 가기는 싫고 몇 가지 이야기를 해줬으면 해.”
“뭔가요?”
“이곳에는 초능력자들이 많이 있던데 그건 천계에서 진행한 일 중에 하나야?”
“‘당연히 아닙니다.’라고 해도 믿지는 않으시겠지요.”
“아냐. 믿어.”
그러자 레이베리아는 조용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실크로 자신의 몸을 가리며, 머리 위로 흐트러지고 있는 밝은 금색의 머리카락들이 몰아치듯 일어났지만, 미소는 여전히 따듯하게 맞이하면서 입을 열기를...
“그러면 제가 한 말은 믿으셔야 할 겁니다. 좀 충격적일지는 몰라도...이 모든 것은 엘티노스가 꾸민 일입니다.”
엘티노스가?
“엘티노스의 본래 의의는 마법을 쉽고 간편하게 사용함으로써,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고 모든 이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것. 그로 인해 카일이 없는 기나긴 300년간 ‘초능력자’라는 인간을 만들게 됩니다. 지금은 그 세대가 살아남을수록 더욱 강력한 초능력자가 탄생하게 되고, 천계와 마계에서 가장 주시하고 있는 것은 ‘레인’이라는 남자였죠.”
“그 녀석과 엘티노스가 무슨 관계라도 있나요?”
“엘티노스는 천계와 마계로부터 인간계를 지키기 위해, 인간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티르라는 연금술사가 왜 사람을 호문쿨루스로 전부 교체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면서요. 필요 이상으로 인간계에 천계와 마계가 규약을 어기고 영향력을 너무 많이 끼친다는 이유로, 초능력자를 이용해서 천계와 마계를 모두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죠.”
분명 아이리스의 말로는 초능력자야 말로 천계에 피해를 줄 수 없다고 들었는데.
내 의문을 간파한 듯 레이베리아는 차분하게 말을 다시 열었다.
“당연히 지금 초능력자는 특정 일부만 빼고는 천계에 피해를 전혀 줄 수 없습니다. 사실 엘티노스의 프로젝트 ‘미화원’을 동의한 것이야 말로, 인간은 언젠가 천계의 힘을 보태기 위해 싸워야 하며 강화를 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천계까지 무너뜨릴만한 비밀병기를 생산하는 것이었죠.”
레인의 능력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게다가 잡화점의 주인이니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어떻게 작용하는 가에 대해 상상을 하면, 종말 하나는 확실할 정도로 끔찍한 미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천계와 마계가 군세를 모아서 인간계로 동시에 쳐들어가려고 하는 거군? 모든 인간을 전멸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그런 일을 하려면 좀 더 시간을 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시간을 들이면 저희가 죽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애초에 신성 아우리온의 규모가 크니 초능력자가 나와도?”
“아뇨. 그건 무른 생각이에요. 지금은 편리함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신들에 대한 경외와 신앙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요. 점점 풍족해지기 시작하면서 균형을 파괴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인간들의 세상이 오게 될 거에요. 그 전에 모든 인간을 전멸시키고 다시 재창조를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건 현명한 게 아냐. 엘티노스와 이야기를 하게 해줘. 진정한 해결책은 언제나 그 사람의 머리 속에 있을 테니까.”
레이베리아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역시 당신도...저의 말을 믿지 않는군요.”
레이베리아의 사소한 약속을 어긴 대가로 커다란 비수가 가슴에 꽂히는 기분이 들었지만, 무슨 일인지는 서로 이야기를 해봐야 알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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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어쩌다가 이게 이렇게 되었죠?<-니가 모르면 어떻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