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77

FNL-Phantasm 2017. 7. 25. 10:43

477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시간은 열쇠가 아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 석상 안에서 언제 나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나와 아리엘은 빨리 문을 열리길 기다리면서 방금 전에 들었던 사회자와 각본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 모든 것은 각본에 의해 지정된 전개라는 말을 켈모리아에게 들었다고 했다. 100번이상 회귀를 한 것도 결국 지루한 각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쾌락주의자의 이상행위라고 하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리고 켈모리아는 이번 싸움을 포기하는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 머릿속에 나타날 수 있는 결론.

 

그러면 지금까지 이것만 100회이상 일어난 일인가? 세계가 부셔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100회이상이 아니라면 지금은 어떤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켈모리아의 경우에는 엘티노스를 넘어 영웅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을 테니, 실질적으로 주 목표가 영웅을 뛰어넘는 것. 부 목표가 반복되는 회귀를 부수는 것이 되겠지.

 

꽤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어. 이 정도로 내 머리가 돌아가본 적은 처음이야. 각본가와 사회자라...유랑극단의 인원은 어릿광대, 맹수 조련사, 각본가, 사회자. 이렇게 4명이 있었지.”

 

어릿광대와 맹수 조련사가 저희를 도와주는 이유도, 그저 각본에 그렇게 적혀있기 때문이라고 켈모리아가 말했어요. 그러니 지금은 이 봉인에서 빨리 풀려서 카일 씨와 해결하지 않으면...”

 

해결? 미안하게도 나는 이제 이곳에서 나가면, 마법을 못쓰는 민간인으로 완벽하게 전직하게 된다고?”

 

? 그건 또 무슨 자다가 트롤의 허파가 빠지는 소리에요?”

 

트롤도 허파가 빠지면 생명이 위급하다고...

터무니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상황설명을 요구하는 주홍빛의 눈이 나를 쏘아봤다. 빠르게 고개를 돌린 아리엘의 은색비단은 아름다운 곡예를 하듯이 따라왔고, 숨길게 없는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이곳은 엘티노스 씨가 만든 봉인장치야. 네가 가진 마신의 힘을 봉인하고 본래 마족으로 되돌리는 것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먹는 일이라고, 원래는 너를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속셈이었지만, 내가 이렇게 들어가면서 너는 마족으로 유지하며 위급상황에 곧바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이며, 나의 경우에는 그 동안 잘 유지해왔던 모든 마법과 페어링, 어쩌면 모든 계약과 낙인이 사라지게 돼. 모든 것을 잃는다고 봐야 할 거야. 지금도 그 상태라서 이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너에게 의존하는 거라고.”

 

그런...말도 안 되는...그럼 내가 카일 씨를 지배해서 여장을 시킬 수 있다는 소리인가요?”

 

눈을 반짝이며 무시무시한 소리 하지마. 아무리 여름이라고 하지만 더위를 날리기 위해서 그런 소리를 한다면, 정말 귀신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아니, 솔직히 지금까지 만나온 것이 좀 많아서 귀신이 찾아와도 안부인사는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나를 여장시킨다는 말부터 계획, 행동, 범죄까지 모두 금지야.”

 

!”

 

저런 고운 얼굴로 혀를 찰 줄이야.

그런데 의외로 잘 어울리는 건 뭘까? 귀엽다고 해야 하나?

무의식적으로 아리엘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면서 다시 허세가 2000%담긴 말을 내뱉었다.

 

마법과 모든 계약을 잃었지만, 지금까지 겪어온 고생과 경험, 지식은 나의 가치가 되어주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나중에 모든 것을 잃어도 그리 걱정하지는 말아라. 살아갈 길은 궁리만 하면 어떻게든 나오니까. 지금 켈모리아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숨어있겠지.”

 

숨어요?”

 

아리엘은 나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귀엽게 반응을 하고 있지만 그 눈에서는 분노가 아니라 슬퍼하는 눈을 하고 있었으니.

 

나에게 묻지 말고 좀 머리 속으로 생각해. 켈모리아는 이번 카멜롯에서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어. 그리고 이 사건은 검은 높새바람에 의해 천칭들의 모임이 주목을 하게 되면서, 지금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켈모리아를 당장이라도 화형을 시키지 못해 안달이 나겠지. 신인류에 이어서 유난히 세계의 평화가 자주 흔들리니 상당히 예민할거라고?”

 

비록 내가 엘티노스에게 한 소리 들었을 때의 첫 부분을 응용했지만, 아리엘은 그래도 자신을 받아줬던 켈모리아의 따듯한 모습에 더욱 마음이 끌리고 있나 보다. 이런 세계로 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시원할 정도로 받아주고, 힘의 사용방법을 알려줬으니 부모를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인 걸까.

 

너도 아직 어리네. 빅터와 같이 다니려면 10년은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전 이미 어른이라고요. 머릿속에서는 이미 세상물정에 대해 다 알고 있고, 아직까지 지식이 쌓이고 있어요.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카일 씨를 습격할 수 있으니 잘 때 조심하시죠?”

 

잡화점을 안 열어주면 되지.”

 

릴리스와 같이 갈 건데요?”

 

결계 그리는 방법이 뭐였더라?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머리와 몸은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 결계를 그리기 위해선, 중급 이상의 마법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여전히 강한 정신방어네요. 카일 씨는 저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야 당연하지. 네가 비록 몽마라서 남을 홀린다고 할지라도, 내 체질은 월식 때문에 뒤틀려버렸으니까. 뻔해 보이는 유혹이나 함정 같은 건 걸리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습을 받거나 습격을 받죠. 그것도 밤에.”

 

마지막 단어를 강조해서 안 좋은 기억을 들쑤시지마.”

 

지금까지 당해왔던 것을 생각하기 싫으니, 빠르게 빠르게 기억을 덮어 눌렀다.

 

그리고 너는 빅터와 잘 지내고 있는데 다른 남자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나의 경우에는 기혼자라고? 여자가 여러 남자에게 손을 뻗는 거 아냐.”

 

그래도 그 발언 좀 이상하지 않아요?”

 

뜬금없이 날아온 아리엘의 발언에 한숨을 내쉬며 뭐가?”라고 대답해줬다. 그래도 지금은 흥미진진하니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는데.

 

카일 씨는 모두의 카일 씨잖아요? 모두에 저도 포함되어있는 거 아닌가요?”

 

그럼 너는모두의 아리엘이냐? 이상한 모두 다 같이 하는 마블을 할 거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려.”

 

제가 모아온 백장미에 싸인이나 하시죠?”

 

말뚝이 심장에 박힌 것같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저 말뿐인데 몸이 진짜로 아프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만 같았다.

 

너도 그 이상한 흑장미인지 뭔지 찍고도 아무렇지 않는 거냐?”

 

카일 씨가 백장미를 찍도록 협력하는 것뿐이니까요. 빅터는 이미 탄탄한 근육과 훈훈한 이미지를 띈 얼굴이 여장에 방해되지만, 카일 씨는 트릭스 씨와 비슷하게 최소한의 근육만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내면서도, 중성적인 외모에 의외로 여장이 잘 어울리는 몸을 지니셨으니까요. 만약 맨 처음에 카일 씨에게 구조가 되었다면, 저는 잡화점에 눌러 살면서 여장을 시킬 기회를 모색했겠죠.”

 

너를 맨 처음에 구조한 것이 빅터라서 정말 다행이군.”

 

아리엘이 어설프게 남장해서 찍는 그 이상한 잡지는, 나를 백장미 찍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소리인가. 루니아 누나와 레이나 씨가 어떻게 애를 버려놨길래, 순수하고 착했던 시절의 아리엘이 그립기까지 하네. 어라? 손수건이 어디 있더라? 눈물이 나오려고 해.

 

농담은 이 정도로 끝낼까요?”라고 자신의 치마를 툭툭 털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묻는 곳이 아니니 상관은 없지만, 이곳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도 찾은 것일까? 아리엘의 작은 고개는 나를 내려다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6번째 양이 있는 장소라면 꿈의 세계라고 보면 편하겠네요. 어째서 엘티노스 씨가 카일 씨의 마법과 페어링을 모조리 소비시키면서, 저를 몽마로 남겨두려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어요.”

 

이제야 알았다는 소리는 지금까지 나와 대화를 하면서, 이곳을 어떻게 나가야 할지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건가? 그냥 포기하고 시간이나 때울 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리엘은 서서히 자신의 명치부근에 손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옷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법학원의 교복이 아니라, 움직이기 편한 활동복.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나와 비슷하게 검은 바지와 회색으로 된 가죽외투. 외투 안에는 검은 블라우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민무늬이기 때문에 아무런 특징도 없고, 수수한 모습의 차림으로 바꿨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저기. 아무리 옷이 없다고 해도, 나처럼 스타일 없이 입으면 안 돼. 나의 경우에는 언제나 실용성을 우선시로 하기 때문에...”

 

저도 실용성 우선인데요? 카일 씨의 옷을 복사하듯이 바꾼 이유라고 한다면, 마법학원의 복장은 치마가 짧아서 아슬아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증명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바꿔버린 것도 있어요.”

 

아리엘은 몽마니까 꿈의 세계에서는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 강한 의지로 이곳에서 깨어나고 싶다는 염원을 이루는 것이,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는 건가?

 

제 힘은 아직까지 작용하니까. 카일 씨와 저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 거에요. 다만, 부작용이 있으니 미리 방지를 할까요? 아니면 부작용을 나중에 해소할까요?”

 

뭘지? 뭘 골라도 내가 손해인 것 같은 제안은?

 

그 부작용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그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지 않을까?”

 

대답을 들은 아리엘은 순간 눈빛이 요망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이미 느낌이 오기 시작했고, 어설픈 계략에 너무 어설프게 말려 들어가버린 나를 내가 저주하기 시작하며 귀는 마저 내용을 들었다.

 

그것도 그렇네요. 우선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고 하셨으니, 설마 카일 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리는 없고. 제 생각에는 이공간에서 깨어나려면 상당한 양의 정기가 필요한데? 어떻게 지불하실 건가요?”

 

정기를 어떻게 지불하냐고 물어봐도, 화폐처럼 꺼내서 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어쩌잔 걸까? 치켜 뜨는 눈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낳았다.

 

좋아. 다른 해결방안을 생각하자. 아무리 꿈속이라고 해도 너의 도움 말고 다른 방법으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네가 무리해서 힘을 사용해 이곳에서 꺼내준다는 말은 없는 걸로 하고, 나의 명석한 두뇌가 제대로 일하길 기대하면서 귀엽게 바라보는 포즈는 그만둬.”

 

합리적인 판단은 이쪽이 더 빨랐...

 

“30분이에요. 30분동안 못나가면 강제로 카일 씨의 정기를 흡수하고 밖으로 나갈 거에요. 게다가 지금은 약간 춥기도 하고, 릴리스가 눈에 불을 키고 카일 씨를 원하는 이유도 알고 싶고...”

 

다고 생각을 했는데, 느닷없이 떨어진 선전포고 때문에, 생각의 속도는 시공간을 뚫어버릴 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채찍질을 해봐도 제대로 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리엘마저 나를 가볍게 여기면, 유일한 도피처인 꿈에서마저 6번째 양과 이별하고, 정기 공급소가 될 것만 같은 불안한 미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미 무시무시할 정도로 처참한 이명이 붙었는데, 창고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난잡한 별명이 붙었는데, 내가 그 흔한 감자도 아니고!

 

우선 실험을 하자. 30분동안 할 게 많으니 좀 기다려.”

 

기발하지 않지만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실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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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보다가 잠을 못자서 지금 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