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74
474
거대한 충격으로 인해 내 뼈가 부러졌는지 확인하기 전에, 남자로 다시 되돌아갔으니 확인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바보 같은 마법소녀 옷은 왜 남자일 때 입어야 하는 가?’에 대해선 양피지 80장 분량의 논문이 필요할 정도로 고찰을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간단한 티셔츠와 바지 위에, 뼈로 이루어진 경갑을 입고 있는 상태. 그런데 나더러 프릴이 바보같이 달린 저 옷을 입으라고?
절대로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을 할 수 없어요. 엘티노스 씨도 그렇고 이걸 입는 건 루니아 누나가 입어야 할 정도로 기묘한 옷이니까요. 어째서 제가 이걸 입어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말하면 생각만 해보도록 하죠.”
“그야. 아리엘의 정신을 번쩍 차리기 위해서는 네가 여장을 하고 있어야 하거든.”
“무슨 근거에요!”
내 여장과 아리엘이 제정신으로 되돌아오는 거와 무슨 상관이길래?
“뭐. 애석하게도 아리엘의 생각으로는 네가 평상시에 있는 모습보다는, 여장한 모습이 가장 반응을 이끌어내기 쉽기도 하고, 그때마다 폭주해서 너를 인형이라던가 애완동물로 만들려고 했던 거 기억 안 나냐?”
“아니. 폭주한 사실까지는 알고 있는데...잠깐만? 생각해보니 아리엘은 루니아 누나보다 더 한 애였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롱기누스로 제거할까요?”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살려서 지금 아리엘을 살려놓는다면, 언젠가 나의 평화와 평온을 단숨에 때려부수는 위험인물로 머리에서 지정했지만, 엘티노스의 일리 있는 말과 나를 썩어버린 사과를 보듯이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저 애를 살리는 게 목적이라며? 그런데 롱기누스로 대뜸 죽이면 되겠냐? 그리고 아리엘은 살아있는 편이 가장 좋다면서, 저 안에 있는 세피르라던가 저 뒤에 있는 신수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그렇긴 하죠...잠깐? 신수요?”
“삑삑!”
“으아악! 젤나가 맙소사! 엘티노스 씨! 혼종이에요! 혼종이 나타났어요! 지금 당장 아둔의 창에 연락해서 첫 번째 자손을 이쪽으로 좀 불러주세요! 아니면 그냥 아몬이라도 괜찮으니까 제발 저 존재를 공허속으로...잠깐? 저게 신수라고요?”
아까 전의 공격적인 성향과는 달리 느긋하게 엘티노스 어깨에 올라오면서,“삑삑!”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 뒤에 하얀 뱀이 따라오면서 의기양양한 어조로 내 귀를 때렸다.
“어떻습니까? 카일 씨. 제가 저 기이한 뱁새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하하!”
“자, 잘했어. 그런데 어떻게 친구가 된 거야?”
“아. 그건 말이죠. 저번에 잡화점에 갔을 때 기괴한 하얀 책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불쏘시개로 사용할까? 생각해서 미리 삼켜놨었는데, 때 마침 저 뱁새가 절 추격해와서 그 책들로 공격하기 위해 뱉었는데, 알고 보니 카일 씨가 여장해서 찍혀있는 백장미라는 책이...으아아아아악!”
머리와 꼬리를 붙잡고 이제 찢어져라 늘리고 있었다. 나의 분노로는 하얀 뱀을 찢을 수 없는 걸까? 고무처럼 쭉쭉 늘어나는 기괴한 느낌에, 땅바닥에 냅다 던져버리고는 왼발을 빠르게 움직여서 뱀의 머리를 밟고 천천히 생각했다.
이 녀석을 대체 어떻게 제거해야 하지?
“아, 아무튼! 그 책 때문에 제정신을 찾았는지 도와주겠다고 따라온 거에요!”
백장미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는 말이 내 귀에 흘러 들어왔고, 허탈한 감각이 머리에서 한숨으로 치환해버리는 놀라운 기적이 시행되는 순간, 내가 여장을 하면 아리엘의 정신이 되돌아온다는 그 말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기 보단 저 신수는 맨 정신인 것 같던데?”
“삑삑!”
“이건 대체 뭐라는 거냐?”
하얀 뱁새가 울고 있어서 하얀 뱀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빨리 여장을 하지 않으면 근육질 몸매로 코브라 트위스트를 걸어버리겠다고 하는데요?”
그게 신수가 할 소리냐?
“사건이 이렇게 심각한데 제가 여장을 한다는 그런 여유가 어디에 있나요?”
천천히 저 옷으로부터 떨어지는 거다. 머리에서는 타당할 정도로 당연한 말을 잡아 늘려서 시간을 최대한 벌고, 말과는 다르게 행동으로는 점점 아무도 모르게 멀리 멀리 떨어지는 것.
“게다가 저는 잡화점의 주인으로 조만간 잡화점을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그렇게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이런 바보 같은 일 때문에, 지금 해야 하는 아리엘의 구출작전을 이렇게 소홀히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지금은 모두가...”
“주인. 그 뒤로 도망간다면 루시피나와 루니아가 제압을 하고 옷을 갈아 입힐 것을 명하겠노라.
제길. 레시아가 벌써 눈치를 챈 건가?
“하하핫! 제가 왜 도망을 간다고 생각하나요?”
태연하게...모두를 속이는 행동과 여유로...1초라도 긴장이 늦춰지면 그때가 찬스다.
“저는 잠깐 물을 마시기 위해 잡화점으로 돌아가려는 것뿐이에요.”
“물통은 마스터의 허리 쪽에 있지 않습니까?”
“내 물통은 비어있...”
“마스터의 물통은 아직까지 70%용량이 저장되어있습니다.”
...이거 어쩔 수 없겠는데?
“크하핫! 이것이 나의 도주경로...”
***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른 반사속도와 타이밍 때문에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지금은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분위기에도 꼭 그렇게 여장을 시켜야만 했을까? 지금 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루니아 누나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지만, 이 분노를 과연 누구에게 풀어야만 할까?
지금 이 분노는 천 개의 태양보다 더 뜨겁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 같은...
“역시 주인이로군. 그 전에 이 고양이 귀도 착용한다면...냐아아아앗!”
순식간에 검은 고양이의 귀를 낚아채서 잡아 늘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비명과 앞발로 이리저리 휘둘러 할퀴려고 했지만, 이리저리 울리는 레시아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천히 그리고 터져나올 것만 같은 분노를 짓누르며 소리를 냈다.
“무슨 고양이 귀를 착용해요? 절 여기서 얼마나 더 비참한 꼴로 만드시려고? 나중에 돌아오게 된다면 레시아를 교육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주인은 그렇게 안 봤는데 짐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니.”
“네? 느닷없이 짜증나게 무슨 소리죠?”
“짐을 교육한다면 그래도 단 둘만 있을 때 느긋한 밤이 좋...냐아아아앗!”
뭘 착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거에 레프리시아를 교육할 때처럼 훈계를 하겠다는 소리다. 지금에 와서 그게 통할지 잘 모르겠지만...
“마스터. 냥캣 말고 저를 먼저 교육시켜주시죠. 가급적이면 상냥하게...”
-덥썩! 꽈아아아악!
“너도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교육과는 거리가 좀 머니까 조용히 해.”
“마스터. 여전히 아이언 클로는 아픕니다. 그러니 좀 풀어주시죠.”
세상의 멸망이 눈 앞에 찾아와도 농담을 할 줄은...
“그런데 지금 이 모습으로 아리엘에게 붙잡힌다면, 무시무시한 일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오?”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루니아 누나가 입을 열자. 천천히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으로는 역시 지금 당장 롱기누스를 사용해서...
“아니. 내가 만든 봉인 장치에 들어가면 어차피 둘 다 의식을 잃게 될 거야. 그 안에서 제 2차 창작물이 나올법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그런데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 여장한 남자와 여자 둘만 있다니. 의외로 부럽네.”
“뭐가 부러워요? 저는 재능을 다 포기하는데.”
“재능이 아니라 마법만 포기하겠지. 그래도 마나를 끌어 모으는 체질은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언제라도 마왕에게 부탁하면 다시 마나의 활로를 열 수 있을 거야.”
“그 전에 페어링이 끊어지게 되면 레시아와 시나는...”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를 바라보며 걱정하는 것이 있었으니.
“걱정 말거라 주인. 짐과 비둘기는...”
“올빼미 입니다.”
“그거나 그거나 다 똑같지 않는가?”
“다릅니다.”
이래서 내가 걱정한다는 거야. 내가 없으면 죽어라 싸울 것 같으니까. 지금 하얀 올빼미와 검은 고양이가 서로 파문의 호흡을 하고 있는데, 내가 없으면 이제 누가 말리냔 말이지...
“모두 싸우면 안 돼요오. 사이 좋게 지내셔야죠오? 화해의 기념으로 제가 만든 쿠키를...”
“아니다! 루니아! 우린 배도 고프지 않고 싸우지도 않았노라!”
“그 기괴한 무지개 빛 음식은 머나먼 시공 속으로 던져버리시길 바랍니다.”
당분간은 나 없이도 잘 지낼 것 같지만, 사역마가 아니게 되면 레시아는 다시 마계로 가야하고, 시나의 경우에는 본래의 차원으로 되돌아가거나, 천계에서 머물고 있겠지만...지금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할까?
아무래도 저 둘 때문에 느긋함이 옮았는지, 별 쓸 때 없는 생각을 하게 되어버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본래의 일에 집중을 하자면, 핑크 빛의 바보 같은 마법소녀 복장으로 여장을 해서, 아리엘의 의식을 차리냐 마느냐 실험을 좀 하다가, 엘티노스가 만든 석상으로 유인해서 같이 들어간다.
“누가 보면 무식한 자폭공격을 그대로 실현하는 줄 알겠네요.”
“그런 자폭공격을 먼저 생각한 게 너야.”
지금쯤이면 카멜롯에 있는 모든 괴수들이 자고 있을까? 슬슬 시간이 되었으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티노스 씨. 행운 좀 빌어줘요. 신이잖아요.”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둘러 쌓이려고 내가 행운을 빌어주냐? 시끄럽고 빨리 해결이나 하러 가.”
엘티노스의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듣고 한숨을 내쉬며, 카멜롯으로 다시 향하고 있을 무렵.
“마법학원 쪽으로 이동하는 걸 보니, 결계가 해제 된 건가?”
작은 뱁새는 조그마한 몸집으로 내 주변을 계속 날아다니면서, 길을 알려주고는 있었는데 마법학원 방향으로 나를 계속 이끌면서, 정신 사나울 정도로 “삑삑!”이라는 소리만 계속 울려 퍼졌다.
“알았어. 지금 가고 있잖아. 대체 뭐가 그리 바쁘길래?”
“어서 와. 카일. 어라? 지금은 마법소녀 복장이네? 나를 위한 걸까?”
생글생글하게 웃고 있는 켈모리아가 정면에 서서 맞이해주고 있었다. 붉은 색 드레스는 흠집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결계 안에서 잘 지냈으리라 생각했지만, 왜 지금 결계에서 나왔을까?
“반 강제로 입혀진 것뿐이지 너를 위한 건 아냐.”
“그래? 그래서 지금은 아리엘을 봉인하러 온 건가? 그거 정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감동의 장면인걸?”
지금은 켈모리아를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계획이 무산이 되는 걸까?
“그보다 괜찮을까? 아리엘은 마신이 되어서 그나마 저주가 발동하지 않고 있지만, 마족이 되면 곧바로 저주가 발동할 거야?”
“저주라고? 정말 쓸 때 없이 저주를 잘 사용하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저주인데? 아니면 내가 직접 포장까지 뜯어야 확인이 가능하던가?”
켈모리아의 저주마법은 어처구니 없게도 너무 강한 건 사실. 아리엘을 봉인시키는 것과 동시에 죽거나 내 목숨을 위협하는 저주를 걸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리엘을 봉인하기 전에 새벽<Daybreak>으로 정화하고 난 다음인가?
엘티노스가 만들어준 석상 안에서도 발동되는 저주라면 귀찮아지니까.
그걸 알고 켈모리아는 지금...
“그렇네. 날 죽이기 위해 나타난 거군.”
“카일의 새벽은 모든 것을 해제해버리는 무자비한 능력이잖아? 의도적으로 응집된 마나를 해제한다면, 당연히 내가 걸어놓은 저주마법까지 해제하겠지. 하지만 아리엘은 마신에서 되돌아오면 저주가 발동되어야 내가 좀 더 편해지거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죽일 수 밖에 없지. 노아스!”
“이프리트! 실피드!”
땅의 정령왕을 소환하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프리트와 실피드를 불렀다.
“이프리트. 실피드. 정령왕의 일은 너희들끼리 해결하도록 해. 나는 저 앞에 있는 이상한 쾌락주의자에게 한방 먹이고 와야 하니까.”
“한방 먹이고 오다니? 카일 씨도 정말 대담하시...아야야야야!”
전투 전에 실피드가 쓸 때 없는 농담을 하자마자, 아이언 클로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는데, 되도록이면 진지한 부분에서 농담으로 무마시키려는 행동은 눈치껏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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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