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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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몸을 맡기고 흐르듯이 손을 휘두르면 무심결에 마법이 나갈 정도로 친화력이 높아진 상황이라면,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여성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지금은 전략상으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 이 결정은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닐까? 여성의 모습으로 마나의 친화력을 더욱 더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해결방법이 있는 것이 아닐까?
막상 변하고나니 전신거울에 비추어진 연약한 모습을 보며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코발트블루의 색상과 함께, 눈은 그나마 검은 색이긴 한데, 머리색상이 바뀌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의 색상이 그냥 랜덤으로 이리저리 바뀌니까. 최근에는 검은색으로 정착한 것 같지만, 예전에는 검은색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인. 전투복이니라.”
“고마...가 아니라! 웨딩드레스잖아!”
“이 지팡이를 들고 변신을 하면 웨딩피치가 되어...냐아아아아!”
내가 굳이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고, 허공에 떠다니는 마나가 거대한 손으로 응집되기 시작하면서,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작은 머리가 거대한 손에 압박을 받아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에, 하얀 올빼미는 내 어깨로 날아와서 잠깐 앉았다.
“마스터. 정찰을 끝마쳤는데 결계가 굳건하게 미치는 공간이, 카멜롯 말고 다른 섬 지역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곳에 마스터와 아테리카 학원측에서 지금까지도 찾지 못한 마법 기동반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네. 그럼 그쪽으로 이동해야겠지. 레시아. 거기서 자고 있으면 버리고 갈 거에요?”
“짐을 버리다니. 주인의 사랑도 이제 식었군. 사람이 변하면 이렇게 매정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인가!”
“진짜 버리기 전에 당장 안 일어나?”
레시아는 벌떡 일어나더니 내 어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따끔거리는 손톱이 복부와 등으로 등반하는 동안, 사키엘의 문을 이용하게 위해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달에서 대기중인 루니아 누나와 루시피나가 없기 때문에, 식사는 내가 직접 차려서 먹어야 했다.
그래도 시나와 레시아에게 요리를 만들게 해서, 사람이 먹지 못하는 최악의 물질이 탄생하는 것보단 괜찮으니까. 의외로 혼자 살기 위해 요리를 연마해온 사람으로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 생각으로 식빵의 겉면을 자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간단한 샌드위치인가? 하지만 겉면을 자르는 건 좀 아깝군. 냠냠.”
“그래도 마스터는 먹기 더 편하기 위해 배려하고 있는 겁니다. 아까워도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합니다. 냠냠.”
아니. 너희들이 다 먹고 있잖아.
“버려지는 것은 아까워서 이거라도 먹고 있는 거에요?”
그래도 평화가 오게 된다면 이런 삶이 계속 이어지는 건가? 일단 내가 남자로 제때 돌아와야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게 가능할 텐데. 문제라고 한다면 일이 다 끝나고 다시 남자로 돌아가는 걸 도와줄지...
그건 나중에 생각을 하고 10개의 샌드위치를 만들었지만, 삶은 계란을 자른 것과 베이컨이 들어있는 샌드위치는 6개정도. 나머지는 시나와 레시아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미 변종을 만들어버려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수준까지 나오고 있었다. 남은 4개를 만들기 귀찮다고 해서 맡기는 것이 이렇게 뼈아픈 실수가 될 줄은 몰랐지만, 10개씩이나 만든 이유라면 각자 2개씩 먹기 위함. 이프리트와 윈디는 지금 정령계로 돌아가 힘을 축적하고 있는 중.
시끄럽고 북적거리던 잡화점에서 지금 이렇게 조용한 잡화점을 보니. 예전과는 다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시끄럽긴 하지만 사람이 적으니까, 눈을 돌리면 비어있는 공간이 내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빨리 마법 기동반을 만나러 가죠.”
배를 어느 정도만 채우고 사키엘의 문을 이용하기 위해 3층에 올라가기 전. 잡화점에 있는 베니와 팔랑크스에게 말해두기로 했다.
“혹시나 이곳에 하멀 씨나 다른 사람이 왔다면 나중에 다시 오라고 전해줘. 그리고 문도 열어주지 말고.”
“이해불능. 잡화점은 카일...수정. 카린이 아는 사람이라면 멋대로 들여보냄. 정문을 열고 닫는 것은 우리에게 자율적인 권한이 존재하지 않음.”
“그러면 그냥 돌아가라고만 해. 베니도 팔랑크스와 잘 지키고 있어야 한다?”
연노랑 빛의 슬라임처럼 생긴 베니는 안에 샌드위치가 둥둥 떠다닌 체 특유의 마찰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러니까...이건 긍정의 의미로 봐도 괜찮은 거겠지? 그나마 불안한 마음이 걸음거리를 느리게 만들었지만, 착실하게 3층으로 올라가고 있는 내 몸은 사키엘의 문 앞에 멈추고 시나에게 문고리를 돌리게 만들었다.
문고리를 돌리자마자 강한 바람이 나를 날려버리듯 뿜어져 나왔고, 푸른 바다 한 가운데에 섬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서, 리바이어선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괴수가 그 주변을 뒤덮었다.
“맹수 조련사가 있는 건가? 귀찮아지겠는데.”
귀찮은 이유를 읊진 않겠지만 레시아가 먼저 뛰어내리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레시아를 쫓아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시나가 내 몸에 동화하면서 거대한 날개가 등 뒤에서 돋아나고, 천천히 리바이어선의 등으로 내려와 등 뒤에 있는 거대한 괴물들 사이에 안착했다.
“얼마나 많은 괴수들을 수용하고 있는 거야? 이 토끼는 또 뭐고?”
괴수들 사이에 영락없이 귀엽게 뛰고 있는 토끼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다리에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다만, 이게 정상적인 토끼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의 뇌는, 일처리를 똑바로 했는지 답변이 금방 나왔다.
“보팔래빗이잖아...이런 애까지 있는 건가.”
그러자 토끼의 얼굴이 위 아래로 쩍 갈라지더니, 거대한 이빨과 바로 내 앞까지 튀어나온 거대한 턱과 얼굴. 그런 와중에도 기다란 혀로 내 볼을 핥아서 애정표현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애가 애정표현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면, 지금 이 괴수들은 전부...
-꺄우우우웅!
-크르르르릉!
맹수 조련사가 쓸 때 없는 내용으로 조련한 거 아냐? 아무튼 내 주변에서는 나에게 1초라도 예쁨을 받기 위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고, 내 눈에서도 전부 채워지지 않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압박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크라켄의 기다란 다리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면서 봐달라고 요청한다면, 드레이크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라고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내 말이 통할 것 같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맹수 조련사는 어디에 있어?”
그러자 모두가 밑에 있는 조그마한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그러면 나는 밑으로 내려갈 테니까. 나중에 만날 수 있으면 다시 만나자.”
다시 뛰어내리는 레시아의 뒤를 쫓아 리바이어선의 등에서 도약했다. 떨어지는 동안 레시아가 내 앞에서 입을 열었는데.
“주인은 괴수들에게 면역이 강한가 보다. 보통 여자애라면“꺄악!”이라던가 “오...오지마!”라는 비명을 먼저 지를 것 같은데...”
“레시아. 내 본래 성별은 남자라는 거 잊었어요?”
“...아. 그렇지.”
이 고양이가 진짜...
우주로 올려 보내서 냥캣으로 만들어버릴라.
서서히 지상이 보이고 별채로 추정되는 집을 발견함에 따라, 거대한 날개가 천천히 접히기 시작하면서, 땅에 발을 대고 마법 기동반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맹수 조련사를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죽기 살기로 공격한 나머지 맹수 조련사의 로브가 찢기고 팔이 잘려나가도, 로브까지 재생시켜버리는 괴물 같은 능력은 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공포에 가까웠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에요?”
등 뒤에서 말을 걸자마자 모두가 멈추고 맹수 조련사의 고개가 돌아가기 시작했는데...그거 180도로 돌고 있잖아!
“오오! 나의 여신이시여! 그 동안 카린 님께서 저를 보살펴주시지 않아 외로웠습니다!”
내가 댁을 왜 보살펴야 하는데?
아무튼 언제나 그렇듯 맹수 조련사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숭배하려는 듯 절을 하기 시작했고, 저 앞에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마법 기동반은 한숨을 내쉬면서 주저앉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고 있던 거에요?”
“이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지옥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훈련 중에 실제로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을 했으니 봐주지 않았던 것이죠. 그나저나 이런 누추한 곳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뜨거운 태양을 피하시길 바랍니다.”
“저기. 맹수 조련사. 그건 내 집인데?”
“시끄럽군. 지금 이런 비상사태에 니 꺼, 내 꺼가 어디 있나?”
두 남자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싸우는 동안, 한 명 빼고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3명이 있었으니. 마법 무투제에서 내 제자들과 호각을 다퉜던 아이들이었다.
“카린 선생님? 오랜만에 뵙네요? 찾으려고 하면 없길래 죽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봐서 정말 기뻐요.”
그거 기쁜 거냐? 아니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선력에 맞춰서 회전시킨 거냐?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한 인사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월식의 파편에 물들은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를 보며 말했다.
“아테리카 학원에서 너희들을 찾고 있을 텐데. 맹수 조련사를 상대로 특훈을 하고 있다는 말은 처음 봤어.”
“그러고 보면 맹수 조련사는 카린 선생님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던데, 둘이 어떤 사이에요? 혹시 사귀는 사이라도 되나요?”
요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가까이 다가오는 소녀에게 답했다.
“처음으로 널 때리고 싶은데 허락해주겠니?”
“웃으면서 그런 잔혹한 말씀을 하시다니. 여신의 귀감이 되지 않는답니다?”
“첫 번째로 말하지만 나는 사람이야. 그리고 월식의 파편에게 침식을 당하는 몸으로 아직까지 살아있는 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그 안에 있는 파편을 정화해야 할 날이 올 거고. 만약 위험해지는 나를 찾아오도록 해.”
“아뇨. 저는 언젠가 월식의 파편을 제 것으로 만들어서, 모두가 선망하는 마법사로 재탄생 할 거에요.”
월식의 파편만으로도 괴로울 텐데? 의외로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까?
“그런데. 팔에 감겨있는 하얀 뱀은 뭔가요? 키우는 건가요?”
잠깐 고개를 돌려 확인을 하자 하얀 뱀이“안뇽. 난 뱀이얌.”이란 말과 함께 인사했다. 생각을 해보면 요즘 인사법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데, 왜 이런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걸까?
“너 대체 언제 따라 온 거야? 생각을 해보니 너에게 줄 샌드위치는 없는데?”
“샌드위치를 먹으면 본격적인 사망루트라고? 그런 무시무시한 음식을 내가 먹을 이유는 없잖아? 오히려 팬케이크가 그 다음을 진행하기에는 좋은...”
“조용히 해. 그 소재는 예전에 써버렸으니까.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내 앞에서 샌드위치가 어쩌고 저쩌고를 말한다면, 네 가죽을 벗겨서 그물망으로 만들어주지. 알아들어?”
두 번 다시는 거론되면 안 되는 말이 하얀 뱀에게 입에서 튀어나와 주의를 주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힘없이 걸어오는 소녀가 내 몸을 무작정 끌어 안았다.
“아리엘...돌아와서 다행이야...”
“잠깐만. 나는 아리엘이 아냐. 아리엘은 나보다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다고? 그보다 너는 처음 보는데 마법 기동반의 신 멤버니?”
“아리엘. 장난이 심해. 나는 언제나 너의 뒤를 지켜주는 리첼13이야.”
“넘버 안 붙여도 되니까!”
이 애가 어쩌다가 이런 식으로 망가진 거지?
“아무래도 카린 선생님께서 뱀에게 헐뜯는걸 보고 아리엘이라고 착각한 모양이지만, 지금 리첼의 마음은 산산이 조각난 상태라고 봐도 되요. 친한 친구를 잃게 되면 모두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하잖아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리첼을 안쓰럽다는 눈을 하고 있지만, 리첼이라는 소녀의 마음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아니. 아리엘을 완전히 잃은 건 아냐. 되돌릴 방법은 있어.”
“네? 카린 선생님. 그게 정말이에요? 아리엘을 되돌릴 수 있다니?”
“그건 안에 들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리첼이라고 했던가? 나는 카린이라고 하고 예전에는 아리엘과 마법 무투제에서 같이 춤을 췄던 사람 중 하나란다. 그러니 네가 나를 도와줘야 해.”
나는 눈빛이 거의 죽어가는 리첼의 대답을 기다렸고...
“알았어. 아리엘.”
“아리엘 아니라고!!!”
소녀의 마음은 소년보다 복잡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나의 바보 같은 발언에 급히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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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얼마 안남았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