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61
461
천계는 어떻게든 회유를 했으니 상관은 없고 지금은 검은 높새바람의 공중요새에서 에밀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 토끼 인형으로 가득한 에밀리의 방은, 정말 살아 움직일 것 같은 토끼 인형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작은 무릎 위에서는 하얀 토끼 하나가 에밀리의 사랑을 받는 듯이 우월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인형주제에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하고 있다니.
그 옆에는 페트리가 차를 나에게 내밀면서 말을 걸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에밀리 님께서는 철저하게 어떻게 하면 모든 지도자들을 자신의 밑으로 둘지, 생각을 하고 계시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말을 걸고 건드려도 응답을 하지 않으니까. 차라리 나중에 오시는 게 어떨까요?”
“얼마나 걸릴 거라고 예상하는데?”
여전히 명상하고 있듯이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무 말 없이 2시간이 지났다고 했지만, 페트리가 말한 정보로는 최소 30분에서 최대 6시간이나 걸린다고 했다. 그럼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예민하게 구는 상황인 것 같은데. 그래도 조용하게 명상을 하듯이 있는 모습을 본다면, 별의 아이답게 천체를 돌려서 진리를 파악하듯이, 이 세계도 큐브퍼즐처럼 끼워서 돌리고 맞추고 있었다.
“카일 씨. 예정대로 하멀 수사관에게 가는 건 어때요?”
“카일. 졸려.”
정령계로 역소환 된 이프리트와 윈디 메르아를 다시 소환했지만, 이런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좀 많이 들게 했다. 당연히 나와 계약을 맺어서 내가 부르면 오는 것이 정령들이지만, 이 정령왕들은 자기 멋대로 밖에서 뛰어 놀 수 있으니, 여전히 잡화점에서 지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에밀리의 무릎에 하얀 토끼인형이 있다면, 내 무릎 위에는 이프리트가 베개로 삼아 누워있는 모습.
내 뒤에서 윈디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주위를 산만하게 만드는 1등 공신의 역할을 맡았는지. 아니면 뭘 잘못 먹었길래 에너지가 넘치는 바람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토끼인형들을 이리저리 만지고 보면서 나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윈디. 너 그것만 59번 말한 거 알고 있어?”
“그럼 60번을 채우도록 하죠. 예정대로 하멀 수사관에게 가는...으읍 으으읍읍!”
결국 아이언 클로가 참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양손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윈디의 입을 가리고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압박용이라고 해야 하는 게 좋겠지. 적당하게 1분동안 압박을 주자 축 늘어진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건어물...아니. 윈디를 무시하고 이프리트의 머리를 빗으로 천천히 쓸어 넘기기 시작했다.
레시아와 시나의 경우에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잡화점을 지킨다고 했지만, 레시아의 경우에는 마계에 있는 군대를 소집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리라.
“아무래도 윈디의 말처럼 하멀 씨부터 찾아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이제 다 해결했거든.”
토끼안대에 가려져있으니 전혀 눈치를 못 챘지만, 지금 퍼즐을 다 풀었는지 토끼인형을 무릎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나 봐? 하늘에서 뭐라도 쏟아져 내려온 거야?”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지. 그건 둘째치고 곧바로 본론으론 넘어가서, 우리들은 지금 여신으로부터 한 지역을 몰살시켜도 눈감아준다는 물품을 얻어놓은 상태야. 다만 귀속이 되어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가장 은밀하게 움직여줘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네. 하지만 곧 필요 없어질 것 같은데?”
에밀리의 말에 내 귀가 살짝 움찔거린 것 같았다. 곧 필요 없어진다는 말을 해석하자면, 우리 누구나 다 알 수 있듯이 켈모리아가 아리엘을 마신으로 각성시킨다면, 모든 천계와 마계가 파멸을 막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니까. 굳이 카멜롯을 지금 당장 지도밖에 지워버리려는 나의 의도라면, 초기진압이라는 말이 더욱 더 큰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필요 없어질 거라는 말은 내가 실패한다는 소리인가?
“내가 초기진압에 실패한다라는 소리야? 아니면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아리엘이 각성을 한다는 소리야?”
“둘 다 아냐. 아리엘은 이미 각성한지 오래였고, 카멜롯 전체는 그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지. 애초에 이 허무맹랑한 상황에서 진실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 사람은 하멀과 나 밖에 없어.”
하멀 씨와 에밀리 밖에 없다는 말이라면? 진실과 똑바로 마주할 수 없다는 소리인가?
“레이베리아의 힘을 이어받았으면 지금 초기 진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너무 늦어버린 뒤라서 말이지. 이런 아슬아슬한 경계를 만약 카일이 스스로 깨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카일이야 말로 영웅이 되는 거지. 우리는 위험하니까 깨어나지 않는 척. 인지하지 않는 척을 하고 있어도. 카일은 그런 참혹한 현실을 받아드릴 이유는 없잖아?”
무슨 소리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뭔가 뒤틀려 있는 장소에 있다는 소리일까? 아리엘이 각성한지 이미 오래라면 지금 당장 막아야 할 텐데.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이게 가상의 세계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
“바보 같은. 그럴 리가 없잖아? 현실인지 꿈인지 확인하고 싶으면, 동전이라도 돌려보던가?”
그럼 대체 뭘 대한 인지라는 걸까? 뭘 깨어나야 한다는 소리지? 나는 머리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는데, 에밀리는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확실히 별의 아이가 유별나다고 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어린애는 주스를 마셔야 하는 나이인데, 차를 마시면서 즐기고 있는 모습에 이질적인 기분이 내 등을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선문답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뭘 조심하라는 거야? 뭘 인지하고 뭘 깨어나야 한다는 건데?”
“공포야.”
공포?
“카일은 공포에 대해서 똑바로 마주봐야 제대로 된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지금 당장 켈모리아를 처단해야 할지. 아니면 카멜롯 그 자체를 날려야 할지. 선택은 카일의 몫이지만 이번엔 제대로 해결해주길 바래.”
“이번엔?”
에밀리가 말하는 것은 하나하나 숨겨진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반인의 청각으로 받아들이면서 뇌에서 아무리 집어봐도, 그에 근접한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별의 아이라서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의 모든 이치를 보게 되는 것일까?
내가 답답해 하는 것은 이프리트를 통해 할 수 있었는데.
“카일? 무릎 떨지마. 자는데 방해돼.”
“이제 낮이니까 좀 일어나요. 이프리트.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에요?”
“하지만 나의 일생에 있어서 잠은 중요해.”
여전히 오랜지 빛의 몽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 중 하나인 내 무릎을 베고 다시 자려고 했지만….
“이프리트. 동화할 준비나 하세요. 이 장소에서 곧 나가야 하니까.”
“알았어. 대신 5시간만 더.”
“놓고 가기 전에 당장 안 일어나!”
소리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 에밀리는 휘파람으로 분위기를 쓸어 내렸다. 그 휘파람에 멈춘 나는 서서히 에밀리를 올려다 보았고, 언제부터인가 내 앞에 서있는 에밀리는 조용히 이프리트에게 손을 뻗어내면서, 다음과 같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다른 정령왕에 비해서는 너무 어리니까. 카일이 잘 보듬어 줘야 한다고?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카일이 혼자 독점하는 것은 너무하지만, 그래도 엘티노스 잡화점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로 엘티노스의 이름을 이어받겠다면, 카일 옆에 붙어있는 모든 사람들을 굽어살펴야 한다고? 그러니 이프리트가 응석을 부린다면 받아줘야 하고, 마왕과 빛의 여신이 밤자리를 요청한다면 그걸 피하지 말라고? 그 외에도 주변 여성들에게 좀 자비를 준다면, 이번 일은 매우 쉽게 진행이 될 거라 생각해.”
“느닷없이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는데?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발언 아냐?”
“그것도 다 필요한 수단이야. 카일 씨는 일이 유연하고도 빠르게 진행되면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에 대한 제시를 한 것뿐이지. 여전히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카일 씨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부탁을 하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에밀리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이유라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겠지.
“유연하게 일이 진행되면 좋아하지만, 너도 아직까지 어리다고 생각해.”
이프리트와 윈디를 동화시키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앉아있을 때는 에밀리와 비슷비슷한 키로 있었지만, 역시 일어나보면 나의 키가 더 컸다.
“작전이 잘 먹히는 것은 매복이 있다는 거야. 내가 안심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전에, 차라리 내가 고생을 하고 말지. 그리고 비장의 카드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사람이 이기는 거야.”
어린애에게 충고를 하는 심정으로 말했지만, 에밀리가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그러면 카일 씨가 항상 바라는 이상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으면 알아서 하도록 해. 확실히 어린애의 충고를 듣는 것은 어른으로서 할 게 못 되지?”
그 말을 뒤로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나보다 강한 사람들은 사방에 널려있으니, 힘 차이로 인한 무력함으로 내 발이 무거워진 것은 아니고, 차라리 에밀리를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휘어잡았다.
공포와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부터, 아리엘은 이미 각성한지 오래라는 말. 차라리 모르고 진행했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은 말밖에 없었다.
“하긴, 켈모리아가 내가 간 이후에는 곧바로 아리엘을 각성시킬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평화롭게 지내고 있단 말이야? 뭐 부셔지는 일도 없고, 잡화점에는 공격도 들어오지 않았지. 오히려 천계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여신들을 진정시킨 것밖에 없어.”
“그게 뭐가 이상한 건가요? 카일 씨?”
윈디의 질문에 대답이라고 한다면...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이야. 마신을 각성시켰다면 이곳이 먼저 난장판이 되어야겠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니까. 그게 더 어처구니 없다는 소리가 되는 거야.”
아니면 지금 아리엘을 통제하지 못하는 켈모리아가 일시적으로 봉인한 상태라던가. 머릿속에서 모든 에너지를 활용해서 추측이란 추측은 다 뽑아내고 있었다.
“너무 미래에 있는 일을 걱정하는 건 아니에요? 아까 전에 그 별의 아이가 하는 말도 그렇고, 그냥 잡화점 안에 있는 다른 분들에게 부탁해보는 것이 어때요?”
“내가 부탁할 일은 따로 있어.”
“좀 더 중요한 일을 부탁하라는 소리에요. 예를 들어서 적진 한가운데에 정보를 꺼내오거나,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1성구부터 7성구까지 다 모아서 신룡을 부른다거나.”
“그 사람들이 다른 차원에 가면 난장판이 될 것 같으니, 그런 일은 시키면 안 돼. 아무래도 하멀 씨가 좀 더 쉽게 알려줄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는 프리트론으로 가야 할 것 같으니 부탁할게 윈디.”
천칭들의 모임에 모여드는 지도자들을 규합하고 통제하는 일은, 에밀리가 알아서 해줄 것이니. 에밀리와 하멀 씨가 인지하고 있는 위협에 대해 묻기 위해, 떨어지는 빗물과 함께 땅으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
비와서 그나마 덥지 않은 듯한...아 에어컨을 틀었구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