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56
456
집단자살로 이루어낸 의식은 영적인 에너지를 뭉쳐서 영웅을 만들기 위함. 그렇다면 지금 그 에너지는 누구에게 들어가서 영향을 주고 있을까? 아니, 후보라면 이미 하나가 있던가? 또 여김 없이 카멜롯에 가야 하겠군.
“주인? 어제는 많이 피곤했는가?”
“마스터는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니 건들이면 안 됩니다. 냥캣. 저번에 상이라고 저희들에게 귀 마사지와 귀청소를 풀코스로 해주시고, 고생한 페트리에게도 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무리가 있는 것은 당연...”
“아니. 제가 멍하니 생각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피곤한 거는 아니에요. 뇌는 오히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레시아와 시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어올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이제 슬슬 임계점이 다가오기 시작했으니 고백하려고 한다.
“제 팔을 억지로 팔베개로 쓰는 거 슬슬 그만두지 않을래요? 다 자란 모습으로 팔 하나씩 피가 통하지 않게 저려오는 고문이라면 완벽하게 성공했으니까. 이제 슬슬 동물의 형태로 돌아가세요.”
“짐은 그냥 고양이 귀만 사용해도 좋은 건가?”
“수인 말고! 검은 고양이로 돌아가라고요! 지금 팔이 숨을 못 쉬어서 죽으려고 하잖아요!”
“마스터. 저는 그럼 양팔을 날개로 변환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내 팔이 편해지는 게 아니잖아!”
사역마와 주인의 관계는 원래 척하면 척하는 관계가 아닌가? 좀 쉽게 말하자면 같이 지내온 세월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두 사람은 그냥 자신의 욕구만 충족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크다. 모두가 일어나서 이미 일하고 있는 시간에, 팔이 저려서 양쪽에 있는 사역마들을 모조리 일으켜 세우고, 서서히 더워지는 날씨를 의식해서 반팔로 된 셔츠를 입었다. 무난하게 검은색으로 된 옷을 입은 이후에, 아주 천천히 상황에 대해 예상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은 400번 이상 빛의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인이 그렇게 고민하는 것은 처음 본다.”
“오늘은 이프리트와 윈디하고 다녀올 테니 두 사람은 집을 지켜요. 페트리는 검은 높새바람으로 제 말을 전하러 갔으니 나중에 돌아올 거에요.”
윈디와 이프리트는 이름을 거론할 때부터 동화하고 있었다. 더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긴 바지와 부츠를 천천히 옮기면서 프리트론으로 이동했다. 바람의 정령왕인 윈디...진명으로는 실피드라고 하는 것이 좋지만, 어쨌든 내 시야는 단숨에 좁혀오기 시작하면서 20초정도 기다리니 아테리카 학원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두 발로 이곳에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손을 빌릴 수 밖에 없겠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올라가고 있지만...
[카일. 많이 조초해 보여.]
[초조해 보이는 거겠죠. 레테의 단검을 습득하고 돌아온 기억의 일부 중에 한가지 거슬리는 기억이 떠올라서요. 그래서 사실 확인을 위해 이사벨 씨에게 가는 겁니다.]
“선생님?”
학원장실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 위쪽 계단에서 의외로 잘 어울리는 청녹의 오드아이를 지닌 남학생이 나를 내려다 보았다.
“오랜만이야. 그 동안 키가 커지긴 했구나.”
“선생님이 작아진 거 아니에요?”
“이 자식을 그냥...아니, 지금 이사벨 씨는 어디에 계신지 알아?”
말을 들은 루크는 즉답을 하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지금은 휴식을 하고 계시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니! 선생님! 올라가면 안 된다니까요!”
루크가 뜸을 들인 것이 이상해서 계단을 올라가고, 위에는 학원장실이라고 크게 적혀있는 문 앞에 노크를 했다. 무겁게 3번을 두드려 내가 왔다는 것을 알렸지만, 아무런 말이 없어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실례할게요. 이사벨 씨.”
“......”
손님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뚫어져라 보고만 있는 이사벨 씨의 행동이 이상해서, 뒤늦게 나를 따라온 루크에게 물어봤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어째서 “아! 카일 선생이군! 오늘 연봉협상 하러 온 건가! 기대하고 있었다고!”라며 밝게 골치 아픈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거야? 제갈량이 아니라면 자신의 수명을 더 늘리겠다는 의식을 하지 않을 사람인데 말이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저번에 급하게 외출을 하는 것 같더니, 저렇게 된 상태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안에만 계세요.”
“그래? 그거 좀 이상하네. 이사벨 씨가 저주를 걸릴 사람이 아닌데. 가장 다행인 것은 이사벨 씨가 영창이나 입력대사를 넣지 않아도 되는 마법사인 것뿐인가?”
모든 저주가 시전자에게로 반사가 되는 어릿광대의 가면을 건네주고 말해보라고 했다.
“아아. 오! 이제서야 목소리가 나오는 군! 고맙네 카일 선생.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에 휘말렸는데...”
“켈모리아 씨가 공격한 거죠?”
“그건 어찌?”
“뭐, 평상시에 켈모리아 씨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서로 싸우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보니 전혀 다른 경우인가 보네요.”
말을 들은 이사벨 씨는 루크에게는 나가 있으라고 했다. 소년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학원장실에서 나갔고, 주변에 침묵마법을 깔아서 혹시 몰라 루크나 다른 이가 듣는 것을 방지한 이사벨 씨는 나에게 가면을 돌려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켈모리아라고 단정을 짓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애석하게도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이런 결투장을 받으면 언제든지 나와야 하는 것이라네. 당연히 카일 선생도 받아봤겠지?”
“아뇨. 그 종이가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는데요?”
“기묘하군. 분명 켈모리아는 카일 선생에게도 보냈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말이지?”
“저희 잡화점은 스팸편지를 안받거든요.”
“스팸?”
“아뇨. 그런 게 있어요. 마리아가 진짜 나에게 쓸 때 없는 말을 알려줘서, 그걸 이곳에서 쓰게 만들다니...”
나도 모르게 다른 차원에 있는 단어를 말했지만, 확실히 말해서 그 편지는 스팸편지라고 분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잡화점에도 편지를 받는 편지함이 있지만, 매번 확인을 해도 최근에는 채워지지 않고 계속 비어있는 상태.
“아무튼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에요.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겠다면 제가 지금 시체협회 건물에 다녀온 일화를 말씀드릴 텐데. 들으시겠어요?”
이사벨 씨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곧은 갈색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고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으니, 어떠한 말이 자신의 귀에 들려와도 충격을 받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 성원에 힘입어 집단자살의식을 시작으로 아직 제물 하나가 죽지도 못하고 살아있어서, 아직까지 의식을 끝마치기 위해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
다만, 레테의 단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줘도 나중에 다시 까먹어버릴 것 같으니까. 물론 레테의 단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는 싶은데, 그걸 또 보여달라고 말하면 보여주다가 기억을 잃고, 다시 레테의 단검을 보여달라는 무한반복은 하기 싫었다. 대신 물품이라고만 말했다.
“따라서 지금 켈모리아 씨에게 가보려고 합니다.”
“어째서?”
“과거에 물품을 주문한 사람이 켈모리아 씨니까요.”
***
내 돌아온 기억이 자연스럽게 켈모리아 씨를 저격하듯 떠나지 않았다. 내가 용병을 뛰고 있던 시절에 분명 만난 적도 있었고, 내 등에 단검을 찍어버린 것도 켈모리아 씨였다. 카멜롯 마법학원에 찾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와중에...
“카일 씨는 이럴 때만큼은 정말 생각도 안하고 돌격하는 거 아냐?”
“토끼 잠옷을 입고 밖에 나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에밀리. 아니면 뭐냐. 너도 달에 가서 아이돌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나처럼 귀여운 소녀가 아이돌을 한다면, 모두의 마음을 현혹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여신처럼 신봉하게 되거든.”
“아니. 그럴 일은 절대로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너는 외모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도중에 에밀리가 창을 겨누며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어디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고 있는 별의 아이에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나를 막는 거야? 아니면 조언을 해주러 온 거야?”
“둘 다. 레테의 단검을 소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가냘픈 내가 두 다리를 땅에 맞대고 있는 거잖아?”
“그럼 너의 목적은 나를 막는 거나 조언이 아니라, 그냥 레테의 단검을 회수하러 온 것뿐이잖아. 하지만 이건 네가 브류나크로 날 찌르던 지지던 볶던 줄 수가 없어. 이제서야 잃어버렸던 기억이 조금씩 수복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켈모리아에게 찾아가서 이게 무슨 일인지 따져야 할 것 같거든.”
“그래? 그럼 거기서 죽나 지금 죽나 별 상관은 없겠네?”
강한 벼락이 경고라도 주는 듯 내 바로 앞에서 떨어졌다.
“마지막 기회야. 카일 씨. 이 벼락을 맞고 여태까지 기절하지 않은 생물은 없어. 그만큼 내가 위력을 관리하고 있을 때. 순순히 꺼내는 것이 좋을 걸?”
“아까와도 말했듯이 지지던 볶던 못 준다고 했어. 그리고 이건 잡화점에서 봉인해야 할 물건이야. 너희들이 무슨 꿍꿍이로 레테의 단검을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날벼락을 맞아도 켈모리아와 무슨 말이라도 섞어야겠어.”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카일 씨는 고집이 너무 강해서 지금 죽을지도 모르니까. 힌트를 주면 좀 이해하기 쉬울까?”
“힌트?”
힌트를 준다는 것은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의미.
“의식을 부수려면 아직 살아있는 그 사람을 정화하면 그만이야. 카일 씨의 친구인 베가프 추기경에게 부탁하는 것이 어때? 레테의 단검이 없는 시체협회...정확하게는 시체협회의 건물은 아니었지. 그래 마신을 모시는 건물 안에서 정화를 한다면 좋은 결과를 맞이할 거야. 그럼 이제 보상으로 레테의 단검을 줄래?”
“역시 레테의 단검은 안 되겠어. 대신 마도서를 주도록 할게.”
나의 제안에 “마도서?”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라졌다는 금단의 책이잖아! 으음~ 어쩔 수 없네! 그걸로 봐줄게. 그런데 그게 왜 카일 씨의 손에 들어온 거야? 심연의 도서관에도 없는 물품인데?”
“뭐. 어쩌다 보니.”
마도서를 넘겨주고 겨우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상대하는 소녀는 오라클의 최고봉인 별의 아이였다. 그러니까. 내가 레테의 단검 대신 이걸 줄 것이라는 예지를 보고?
“너 설마! 이걸 노리고 일부러!”
“아하하! 이미 마도서는 내가 가져갔지롱~ 카일 씨?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식으로 나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별의 아이를 상대로 너무 식상하게 대하는 거 아냐? 레테의 단검을 줬다면 의아했겠지만, 다행히 예상대로 마도서를 얻었으니 이만 비켜줄게~ 그런데 내가 말한 경고에 위반된다고?”
“저주술사에게 눈에 띄지 말라는 거지? 그건 솔직히 나와 상관없는 말이야. 지금은 가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럼 켈모리아로부터 살아 돌아와!”
한 손에는 백은의 창과 다른 손에는 과거에서 아스모데우스의 보물창고로부터 꺼내온 금기가 가득 적혀있는 책을 작은 손으로 들고 있는 어린 소녀를 보고, 나도 내 갈 길을 가기 위해 윈디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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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