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43
443
누군가에게 불행이 남들에겐 행복이 된다.
항상 이 세상은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는 순간이 많은데.
남이 행복하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지면 안 된다.
그래. 지금 바로 이 순간처럼...
-레시아와 가위바위보를 한 뒤에 천장으로 날아가고 있는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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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아. ‘용기 안에 뭐가 들었을까?’
너한테 말해줄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널...
“어이. 주인. 정신차리거라. 다른 곳의 대사를 여기로 가져와서 독백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독백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 없으리라.”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작은 앞발로 내 뺨을 툭툭 건들이면서 깨우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방독면을 쓴 6번째 양 앞에서 독백을 하다가 다시 의식이 깨어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적어도 잡화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더라? 고양이 어퍼컷과 함께 천장으로 날아갔다 온 뒤에 그 이후로 기억에 공백이 생겨버렸다.
내 옷이 정상인 것으로 보아 백장미를 촬영하는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어두침침한 공간 안에서 내 어깨위로 날아온 하얀 올빼미가, 이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에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시나.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내가 기절하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애석하게도 지금은 긴급상황입니다.”
지금은 6월의 첫 번째 주. 여름의 문턱을 앞서 진입한 시간에 잡화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피신이라도 온 듯했다.
“긴급상황이라니?”
“어쩔 수 없이 잡화점에 침입한 외부인 때문에 저와 냥캣. 그리고 마스터를 신속하게 옮겼지만, 남은 사람들은 끝내 대피하지 못하고 모두 당했습니다.”
모두 당했다고?
“설마 지금 잡화점 안에 루니아 누나가 있는 거야?”
검은 고양이는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의리 있게 나를 버리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네. 상황이 진정되기 전까지는 잡화점에 돌아가면 안 될 것 같고, 잡화점 내부 곳곳에 설치를 해놓은 안리아스의 수정구를 이용해서, 화면을 보고 있는 결과로는 우선 잡화점이 한차례 더 날뛰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 안에는 모두가 무지개 빛의 무언가를 먹고 기절했다는 것.
“레시아의 다크메터는 적어도 한번 버티기라도 했을 텐데. 역시 루니아 누나의 요리는 가차없구나. 모든 사람들을 한입만으로 보내버리다니. 그보다...”
익숙한 교복이 눈에 들어온 가 싶었더니, 켈모리아 학원장의 비서인 아리엘까지 잡화점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단세포 생명체인 베니도 독극물에 중독 되었는지 무지개 빛을 발광하면서 이곳 저곳을 부수고 있었고, 팔랑크스는 기계에 오작동을 일으켰는지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만 있었다.
“차라리 검은 높새바람이 잡화점으로 쳐들어온 게 더 편하게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대체 루니아 누나는 어디에 있는 거야?”
1층의 주방으로 옮겼을 때는 주방이 온통 무지개 빛으로 물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나타났다. 물 흐르는 듯이 흥겹게 흘러가는 콧노래와 천천히 국자를 휘저어가며 치명적인 유해물질을 만들고 있는 루니아 누나의 짙은 붉은 눈이, 서서히 내 쪽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움직였는데. 입술 모양으로 보아하니 “기다려요오. 카일.”이란 말이 된다.
“으아아아!”
온 몸에 소름이 내 손에 발작을 일으켜서 수정구를 땅에 떨어뜨렸다. 수정구로 보는 나와 정확하게 두 눈이 마주치면서 혼잣말이 아닌, 진짜로 나를 향해 말하는 그 메시지는 어느 누가 봐도 공포가 따로 없다.
“그렇다면 우선...잡화점부터 막아야 하네요? 지금 날 뛰고 있으니까 파이론 전역으로 난리 칠 것이 뻔할 테고.”
“그거라면 걱정 없다. 아직 짐의 대결계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 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긴 대체 어디에요?”
이제 좀 근본적인 것으로 넘어가서 내가 있는 위치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마왕성이다.”
마왕성?
“꼭 마왕성까지 대피할 필요가 있던가요?”
“그럼 주인은 잡화점에서 숨을 것인가?”
“생각해보니 마왕성도 아늑해서 좋네요. 네.”
마기로 가득 차서 사람이 제대로 살지 못하는 환경만 뺀다면야. 마왕성에 위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루니아 누나 또한 레시아의 대결계를 깨뜨리지 못하면 그곳에서 국자를 휘젓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입장은 바로 나. 잡화점의 규칙으로 저녁 8시마다 운영하는 것도 있고, 지금 잡화점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마을에 큰 피해가 가기 때문.
“이거 정말 큰일이네. 이리가나 저리가나 루니아 누나의 독극물을 피할 길이 없는 건가?”
“그냥 자처해서 백장미를 찍겠다고 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또 영양식이라고 저걸 먹일 거 아니에요! 누가 고생하는 걸 2배로 보고 싶어서 그래요!”
“마스터께서 충격적인 발언을 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서 결혼하자는 말이라던가?”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평생 저걸 먹어야 하는 지옥의 나날을 겪는다고.”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마왕성에서 이리저리 발을 움직이며 생각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뾰족한 수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공간 한쪽에서 흐느적거리며 나오고 있는 여성이 약간 높은 위치에서 떨어졌다.
“꺄악! 아우우...”
“페트리? 넌 살아있었구나?”
짙은 보라색 앞머리가 눈을 가린 상태로 나에게 뛰어와서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무서웠어요! 카일 씨! 이상한 사람이 음식을 먹으라고 달려왔지만, 그건 절대적으로 음식이 아니었어요!”
“알았어. 진정해. 그보다 여기에는 어떻게 온 거야?”
페트리는 훌쩍거리면서 “카일 씨가 사라진 장소에 공간이동 흔적을 보고, 그걸 수복해서 따라왔어요.”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무시무시하군. 그 찰나의 흔적을 바라보고 마왕성까지 따라왔다는 소리인가?”
“네? 마왕성? 으아아앙! 카일 씨!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에요!”
“그만 붙어! 마왕성은 무서운 곳이 아니니까!”
페트리를 진정시키는데 10분정도 투자를 하고, 겨우겨우 울음이 그친 페트리는 검은 고양이인 레시아를 안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이 마왕이라고 말하면, 또 다시 울음이 터져서 난리 칠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 이상 불필요한 사족은 덧붙이지 않았지만...
“그렇군. 또 한차례 전멸을 당한 건가.”
바쁘게 일을 나간 마리아와 달에 있는 루나와 카렌을 제외하고, 모조리 잡화점 안에서 정체불명의 유해물질을 먹고 기절했다고 페트리가 전했다. 문제는 루니아 누나는 그 독극물에 면역이 되어있다는 소리.
“저 괴물은 대체 누가 막아야 하지?”
“저기. 잡화점은 어째서 다리가 생겨나고 팔이 생겨난 거에요?”
“잡화점의 미스터리는 아직 다 밝히지 못했어. 엘티노스가 잡화점에 뭘 추가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이상한 것만 집어넣었다니까?”
어쩔 수 없이 정공법을 쓰기로 하자.
“레시아와 시나. 그리고 페트리는 제가 루니아 누나를 유인하는 동안, 잡화점을 진정시키고 안에 있는 사람들도 구출해주세요. 다만, 베니 같은 경우에는 확실하게 유해물질을 모조리 제거해야 하니까. 좀 성가신 상대가 될 수 있을 거에요.”
“주인이 루니아를 상대로 유인을 하겠다고? 3초정도 버티면 오래 버텼다고 해야 하는 건가?”
3초라니. 아무리 루니아 누나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3초이상은 버티겠지.
***
“싫어! 먹지 않을 거야!”
“카일은 정말 편식이 심하네요오? 누나가 애써 만들어온 특제 영양식인데, 빨리 먹지 않으면 누나가 억지로 먹일 거에요오?”
살인마중에는 정말 효율적으로 죽이는 살인마도 있고, 비효율적으로 숟가락으로만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있다. 그렇다면 루니아 누나는 효율적인 것과 비효율적인 것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 살인마일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3초 이상을 버텼다는 것과 불행하게도 잡혀버렸다는 것.
“카일은 정말 응석꾸러기네요오. 누나가 떠먹여줘야 먹을 건가요?”
“미쳤다고 그걸 먹어요? 그 전에 절대로 요리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은 어디다 버리고 온 거에요!”
“스틱스 강?”
“당장 거기서 찾아오란 말이야!”
스틱스 강에 약속과 양심을 자연에다 쓰레기를 버리듯이 투척해버리고, 정체불명의 스프가 작은 숟가락 위에서 “나를 삼키면 너는 신세계로 떠나는 거다!”라고 암시하듯이 햇빛에 반짝이며 비추고 있었다.
“사실은 프리트론 왕국에서 요리대회가 열리거든요오. 거기서 1등을 가져가면 카일도 누나의 요리를 인정하고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저의 자신 있는 작품을 만들었어요오~”
“그거 먹으면 루니아 누나는 프리트론의 반역자로 2초 안에 찍혀서...크웁!”
혀끝에 닿는 순간 어마어마한 고통을 지르지도 못하고, 온 몸이 들썩거리면서 식도와 모든 내장이 녹아 내리는 듯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대로 나는 죽어가는 것일까? 그 전에 이걸 요리대회에 선보이는 순간, 심사위원들은 무슨 죄이며 프리트론의 왕은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지.
“일어나요. 카일 씨.”
주홍빛의 두 눈이 나를 태양처럼 비추고 있을 때. 그 아이의 무릎 위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카멜롯 마법학원 복장을 하고 있으며, 달빛을 머금은 듯한 긴 은발을 가진 소녀. 내 주변에 은발을 가진 사람은 어느 정도 있지만, 주홍빛의 눈을 가졌다고 한다면...
“아리엘?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기는 내 의식세계라고?”
“저는 몽마라서 침입이 가능하니까요. 그보다 저도 이상한 스프를 먹고 기절한지 오래되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꿈속으로 그냥 놀러 간 것뿐이에요.”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사방이 돌로 이루어진 이름없는 무덤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태껏 잊고 살아왔는데 하필 내가 기절할 때 본 것이 이런 풍경이라니.
“여긴 이브센티아죠?”
“맞아. 이브센티아에 가본적이 있어?”
“거기서 로버트 씨에게 격투라던가 검술을 배웠으니까요. 덤으로 저는 이브센티아 민간학교에서 켈모리아 대신 선생으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하네. 나는 그 나이 때에는 용병을 뛰고 있을 시절인데.”
여전히 꿈을 꾸면 6번째 양이 반겨주지 않는 이상, 이브센티아에서 벌어졌던 악몽을 떠올리고는 한다. 수도 없이 내 손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또 다시 나의 자만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이 악몽이 괴롭지 않나요?”
“내 기억을 엿보았다면 알겠지만 상당히 괴로운 악몽이야. 한동안 돌무덤만 봐도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많이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다르게 생각을 해보면 지금 루니아 누나의 요리를 떠올렸을 때. 오히려 이쪽이 덜 아프긴 하더라.”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에요. 저에게 부탁을 한다면 이 꿈을 영원히 안보게 지워줄 수도 있는데요?”
“아냐. 그런 짓은 하지마. 나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기 위해 남겨놔.”
아리엘은 나에게 시선을 두다가, 수많은 돌무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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