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42
442
다시 1개월동안 지켜보았을 때. 과거에 있던 시간은 3개월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슬슬 내 시간대로 돌아가기 위해 몰래 준비를 할 시점이었다. 그 시간 동안 어느 정도 성장을 마친 레프리시아를 뒤로 한 체 잠이 오지 않은 새벽의 달을 창가에서 보고 있을 무렵. 여김 없이 일어나서 내 이불 속을 뒤척이고 있는 릴리스에게 마탄을 발포했다.
“아팟!”
“내가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할 것 같아?”
“4번 당했으면서 뭘 그렇게 쑥스러워 하는 거에요.”
“시끄러워. 너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후유증이 심하다고, 레프리시아가 아침에 일어나서 내 얼굴이 왜 이렇게 수축해졌냐고 물어볼 때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정말 고민되거든? 그리고 일부러 내가 되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방해공작을 하는 것까지 다 알고 있어.”
릴리스는 한숨을 짧게 내쉬더니 “이래서 눈치 빠른 인간은 싫다니까.”라고 중얼거렸다. 체념하는 듯한 릴리스는 내가 누워있었던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자는 척을 해버렸다.
옛말에는 ‘보내줄 사람은 보내줘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과거 시간대에 발언을 했으니까 현재로 돌아오면 옛말이 되는 것이 맞으니 계속 이야기 하자면, 3개월동안 잡화점에서 시간 잠금이 걸려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내가 시간여행을 한 그 시점에서 멈춰버렸기 때문에, 다시 현재로 돌아가서 시간 잠금을 풀고 살아가야 한다.
“과거에서 내가 할 일은 이미 다 끝났어. 티아. 이제 갈 시간이 된 것 같아.”
“알았어. 그나저나 미래에 있는 티아가 오자마자 무슨 일을 벌일 것 같은데?”
“제발 참아달라고 좀 말해줘.”
릴리스를 뒤로 한 체 밖으로 나가, 새벽의 달밤이 내려오는 바닥에 티아가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굳이 작별인사를 하지 않은 이유라면 어차피 재회를 했으니까. 생각을 해보니 이제 이런 금발 가발도 필요 없고, 내 몸보다 살짝 큰 붉은 옷도 전부 아공간 속에 집어 넣었다.
“그런데 카일은 매정하네. 그래도 레프리시아가 카일을 얼마나 잘 따라줬는데, 작별인사 하나 없이 떠나갈 생각이야?”
“내가 현재로 가게 되면 과거에 있던 나의 흔적은 전부 기억에서 사라진다며, 레프리시아의 기억 속에서는 내 이름이 아니라 ‘선생’으로 어느 정도까지만 남아있을 수 있겠지. 언젠가 레시아가 과거에 대해 알아볼 수도 있지만, 아니...알지 않는 게 더 좋을 테니 그런 일은 하지 않으려나.”
“아이와 했던 그 약속은?”
“어릴 때의 약속은 결국 깨지게 되어있어. 그저 내가 레프리시아보다 좀 더 어른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지금은 내가 레프리시아보다 좀 더 거짓말을 잘 한다는 이유로 말이지. 이제 내가 돌아가게 되면 정신적으로도 성장한 레시아가 마계의 모습을 보고, 마왕이 되겠다고 두 번 다시 다짐하게 될 거야. 기억에도 없는 남자와 같이 약속한 것이 아니라,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 말이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모두다 원상복구가 된다는 소리야.”
티아는 마법진을 그려가면서 입을 열었다.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시간적 모순이 남아있어.”
“시간적 모순이 남아있다고?”
그렇다면 그걸 해결하기 전까지는 떠날 수 없다는 소리인가? 티아에게 물어보려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내 허리에 작은 팔이 감기면서 물어볼 필요도 없어졌다.
“기척을 없애는 게 많이 능숙해졌네. 레프리시아.”
“안 돼요! 제발...! 가지 마세요! 선생님이 가면 저는 대체 어떻게 살아요!”
아직도 어린애 같다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 ‘3개월간 훈련이 모두 물거품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쓸 때 없는 생각을 하면서, 뒤를 돌아 레프리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야만 했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만남과 이별. 지금은 가장 중요한 이별을 맞이하면서 최고의 고비를 맞이한 셈이다.
레프리시아를 어떻게든 설득시켜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머릿속을 다 비우더라도 이야기를 해줄 수 밖에.
“애석하게도 내가 있어야 할 시간은 얼마 안 남았어. 확실하게 말하자면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해.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험이라도 들어 놓는 것이 좋긴 하겠지? 윤회의 조각을 잠깐만 줘볼래?”
그윽한 달밤에 내리 앉은 빛이 짙은 보라 빛을 내뿜는 보석은 레프리시아의 작은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다. 윤회의 조각을 들어서 뾰족한 부분에 손가락을 찔러 피를 머금게 하고, 다시 레프리시아의 손바닥 위로 올려다 줬다.
“언젠가 이게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줄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울어. 차기 마왕이 될 녀석이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은 거야?”
“흐으으...! 가지마...!”
“마왕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라.”
눈물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로 올려다보는 레프리시아는 한번 약속이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사실을 묻고 있었다.
“정말?”
“그래. 약속할게.”
여김 없이 나에게 찾아온 새끼손가락을 걸어주고 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애완동물로 고양이를 키웠어야 했는데 그걸 생각 못했거든? 나중에 마왕이 되고 내가 찾아올 때는 네가 고양이를 키웠으면 좋겠어. 죽는 것도 아닌데 울지 말고 웃는 얼굴로 보내줘야지.”
어린 아이가 앞에서 울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당당한 마음으로 이별을 고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내가 다 알고 있는 상태로 과거로 찾아가서 이별을 해도, 과거에 있던 일은 결국 나에게 있어선 한 순간의 꿈과 같다. 그런데도 꿈속에서조차 이별을 하는 게 마음이 찢어진다면, 지금 나와 이별하는 레프리시아는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측정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다.
눈물이 가득한 붉은 눈은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응...와하하하하하하!”
“기분 나쁘게 웃지 말고!”
억지로 우울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레프리시아의 노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내가 태클을 걸게 만들 줄이야. 천천히 떨어지면서 티아가 그린 마법진 위에 올라갔고 티아가 입을 열었다.
“이제 모순은 전부 없어. 그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돼.”
“과거에서도 도와줘서 고마웠어.”
“미래의 나에게 잘 해줘.”
“그건 노력해볼게. 느닷없이 나를 정지장에 가둔다거나 그러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그런데 이건 언제쯤 돌아가는 거야?”
그러자 티아는 말했다.
“지금.”
“지금?”
***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잡화점의 검은 나무바닥이 나를 반겨주고 있을 때였다. 내 앞에 있는 검은 고양이가 입을 열기 시작했으니.
“주인? 과거에는 다녀온 건가? 그런 것치고는 1초만에 다시 되돌아온 것 같은데?”
멀뚱멀뚱하게 보고 있는 레시아에게 대답했다.
“아? 네. 아마도요. 거기서 트리켈라톱스가 “봙봙!”을 외치고 있었는데, T-렉스가 “yee~”하고 외치는 곳이었어요. 그렇게 Yee.T 보드게임이 제조되는 공장에서 눈을 뜰 무렵. 너무 과거로 떨어진 탓에 급한 마음으로 다시 되돌아온 거에요. 그보다 여기서는 1초 안으로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이나 봐요?”
시간 잠금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던 티아는, 나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는 “거짓말쟁이.”라고 뻐끔거리고 고개를 돌려서 토라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기분을 풀어주는 것에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나중에 해결하도록 하고.
“아무튼 과거를 체험해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잡화점 청소를 하도록 하죠. 과거에 가면서 결국 알아낸 것이라고는‘이불 밖은 위험하다.’라는 것밖에 없어요. 페트리는 마당에서 청소를 해주고.”
“아. 넵!”
짙은 보라색의 앞머리로 자신의 눈을 가린 페트리가 허둥지둥 움직이면서 큰 빗자루를 찾기 시작했고, 시나와 레시아는 3층 청소, 루시피나는 주방청소를 시켰고, 티아와 나는 물품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나저나 많이 놀라웠어. 카일.”
태양 빛에 반사되는 듯한 황금빛의 머리카락으로 변한 티아는 내 주변에 있는 물품들을 좌표마법으로 옮겨주면서 입을 열었다.
“어떤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과거로 떨어져서 지금의 마왕님을 성장시킨 발판이 된 거잖아? 게다가 시간여행자 중에서 초보적인 실수가 모순을 남기는 것인데, 그것까지 생각을 하고 움직인다는 그 자체가 말 도 안되거든. 단순히 그건 운이라고 해야 맞잖아?”
“나도 여러 선택지에서 수도 없이 찍었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전부 정답이었다는 거야. 게다가 심연의 도서관에서도 사랑의 묘약을 만드는 거라던가, 설화를 제조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과거에 있는 마도서를 가져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 거고.”
“판단력만큼은 괴물이네. 그래서 과거에 있었던 일은 계속 가슴속에 묻어놓으려고?”
티아의 말에 나는 잠깐 고민이 들었다. 과거의 일에 대해 레시아는 제대로 나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릴리스에게 잘못 걸리면 큰일 날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레프리시아를 성장시켜준 것은‘선생’이라는 존재잖아. 굳이 내가 자처해서 나설 필요도 없어. 더 혼란스러워질 뿐일 테니까. 맨 처음부터 밝힐 생각이라면 내가 돌아오자마자 그런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겠지.”
“그래서 이제 다시 과거로 가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 거야?”
“과거로 갈 필요는 없어. 생각을 해보면 시간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 잠금을 계속 해야 한다면, 과거로 가는 그 자체가 위험한 행동이라는 소리지.”
“그러게 조금만 더 오래 있었다면 시간의 파수꾼들이 카일의 존재를 지웠을 거야.”
“맞...잠깐 뭐?”
티아의 말에 물품을 정리하다가 손이 도중에 멈추고 고개가 돌아갔다.
“어라? 몰랐었어? 시간적인 모순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시간의 파수꾼이라는 존재들이 있다는 말? 카일이 만약에 과거에 있던 그 소녀를 위해서 조금만 더 남아있었다면, 시간의 파수꾼이 찾아와서 카일의 존재를 지워버렸을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그야 당연히 카일을 대신할 사람으로 채워지겠지.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왕래하고 싶다면, 시간의 파수꾼들을 이길만한 능력은 있어야 할걸?”
그래서 시공간술사들이 섣불리 과거나 미래로 이동을 못하는 거구나. 종종 나는 시공간술사의 길을 걸어가면서 대부분의 일은 시공간이동을 통한, 과거와 미래로 이동해서 내가 유리하도록 힘을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무작정 바꾼다면 시간의 파수꾼들이 응징하러 오겠지.
잠깐만? 그러면 내가 3개월동안 과거로 간 것이 필연적이라고 말할 수 있잖아?
“시간의 파수꾼이건 뭐건, 우선 제대로 다 해결 되었으면 다행인 거지. 그보다 오늘은 잡화점에 가만히 있고 싶어.”
“그거 좋은 생각이니라 주인. 오늘은 짐과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닙니다. 냥캣은 우주 저 멀리 보내고 저와 같이 지내죠. 마스터.”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가 서로 나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서로 밀어내려고 힘을 쓰는 동안, 티아는 내 어깨 위에 앉더니 레시아와 시나 앞에서 대놓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카일은 오늘 내가 전세를 냈거든? 찾아오려면 알아서 하도록 해!”
“잠깐만 티아! 너 뭘!”
느닷없이 시야가 전환되고 내 앞에는 수 많은 요정들이 날아다니는 숲이었는데...
“오늘은 우리 숲에서 노는 거야. 알았지? 도망가면 정지장을 씌워서 두 번 다시 내 옆을 떠나가지 못하도록 하겠어.”
“...그래도 나는 저녁 8시에 잡화점을 열어야 한다? 통금시간은 제대로 지켜줘야 해?”
과거로 가든, 현재로 가든 고생하는 건 살아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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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49는 뭘 써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