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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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프 씨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으로는, 맨 첫 번째로 카일 씨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것. 그리고 카일 씨의 과거를 그나마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빅터와 같이 옆에서 쿠키와 홍차의 향이 가득한 집무실에서 잡담을 나눴을 때. 베가프 씨는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카일은 어렸을 때는 너무 고집이 강하고 대담해서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훔쳤거든. 그러다가 ‘은빛 송곳니’라는 불리는 전설의 용병에 동경하게 되어서, 훔치는 것보다는 단검술을 연마한다고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어. 다짜고짜 마일론에게 결투를 신청해서 실전지향이라고 목검이 아니라 진검 승부를 하고 있었으니. 서로 상처가 이만저만 생긴 게 아니더라고.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았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너무 급변한 것 같아. 특히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 되고 나서 1년동안 너무 많이 바뀌었어.”
1년이라는 세월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급변했다고 하는 베가프 씨는 너무 많은 말을 내뱉어서 입 안이 건조해졌는지 홍차를 입에 적시기 시작했다. 행사까지는 앞으로 20분 정도 남은 상황에서 좋은 말을 전파하는 추기경의 모습은 긴장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베가프 씨는 자신에게 스토커가 붙었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던 거에요?”
“그건 아마 1주일 전에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알게 된 건데. 아랑이 내 근처에서 불길한 기운을 지닌 사람이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고 들었거든. 그 이후로 계속 아랑이 감지할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어.”
베가프 씨가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는 벌써 도망치고 없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장소에서, 신출귀몰한 스토커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아예 따로 설계 되어있어야 하는데. 20분 안에 그런 일을 생각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서 한가지 생각하는 것은 빅터가 눈이 좋으니까 관중을 속에서 표정이 다른 한 사람을 찾아주고, 나와 아리엘은 옆에 살짝 붙어있기만 해도 될 것 같아. 그냥 매우 가깝게 지내는 척을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연설하기 전에 제가 친근하게 다가가서 옷을 정리해준다거나 그런 거요?”
“아리엘은 눈에 잘 띄니까. 조금이라도 친하게 지내면 다른 사람들은 부러워할 거야. 하지만 나를 스토킹하는 사람은 표정이 그리 좋지 않겠지.”
그래도 이게 진짜 통하는 방법이라고 자만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으니.
“그 스토커가 베가프 씨를 꼭 좋아한다는 목적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요. 게다가 모든 사람의 반응이 전부 좋게 보는 것도 아니고요. 좀 더 단순한 방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아직은 15분 정도 남았을 무렵. 방문에는 노크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제 나가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오늘 하루는 날 지키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아. 나중에 카일에게 부탁해서 그 스토커를 잡아달라고 할게.”
“카일 씨는 잡화점을 운영하면서도 베가프 씨의 도움을 줄 정도로 시간이 있을까요?”
“그래도 그 애는 친구가 곤란해지면 다른 건 내팽개치고 오는 녀석이거든.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야.”
나와 빅터는 베가프 씨의 집무실에서 나와 입을 열었다.
“좋겠다. 서로 저렇게 신뢰할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아리엘도 친구가 많잖아? 마법 기동반에 있는 애들이나, 밀리아라는 학생회장도 친구 아냐?”
“친구이긴 하지. 하지만 신용할 수 있는 친구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그나마 의외로 세피르가 가장 신뢰가 높지.”
사역마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가까이 지내고 있음에도 나를 항상 도와주고 챙겨주는데, 인큐버스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다른 여자에게는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 몽마에게 있어선 정기를 흡수하는 것이 가장 큰 생존방식일 텐데.
“세피르는 인큐버스라고 하지 않았던가?”
“맞아. 최상급 인큐버스라고 했어. 하지만 오히려 내 옆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고...”
의외로 세피르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구나.
가끔 쓸모 없는 말을 할 때는 때리고 싶지만….
내 주변에는 그래도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있을 때. 15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베가프 씨를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이 베가프 씨의 연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집무실로 찾아간 나와 빅터는 안에 인기척이 없어진 것을 느끼고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베가프 추기경님?”
빅터가 좌우를 살피며 찾아보고 있지만 베가프 씨가 있는 자리에는 종이 한 장만이 남아있었다.
좀 빌려갈게~!
-???
친절하게 누구인지 모르도록 이름까지 쓰지 않았기에, 어처구니 없게도 납치부터 당한 베가프 씨를 먼저 찾아야 했다.
“역시나 이 몸이 떨어져 있으니 납치를 당했나 보군.”
분명 앞에 ‘역시나’라고 말하면서 나타난 아랑에게 소리쳤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왜 베가프 씨와 같이 있지 않은 거야!”
“그야 스토커를 가장 빨리 잡는 방법이 우선 미끼를 던지고, 그걸 물게 하는 거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그 수많은 군중 속에서 찾지 않아도 되고, 애초에 스토킹을 한다는 목적에서는 대다수가 연심에 의해 나오는 것. 살의는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안심하거라.”
“안심이 안 되거든!!!”
지금 당장 비상이 걸려서 이번에 있을 연설부터 취소해야 하는 건가.
“이번 크나큰 행사가 망하면 다른 곳에서는 큰일 아닌가요?”
나와 다르게 아랑에게 존댓말을 쓰는 빅터의 질문에 아랑은 “아. 그거?”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한 마디 했다.
“그건 거짓말이다. 애초에 그런 행사는 있지도 않았어. 단지 베가프가 일부러 자신을 미끼로 던진 것뿐이다. 나도 솔직히 그 방법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카일을 닮아서 그런지 자신을 아끼지 않아서 문제로군. 아무튼 빅터라는 청년은 나를 좀 안고 가거라. 아직까지는 그 스토커를 쫓을 수 있으니까.”
아직까지 쫓아 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아랑의 말에, 곧바로 뛰어나가기 시작했을 무렵. 아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달려나가고 있는 우리는 다시 20분이 지날 동안, 베가프 씨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쪽에 있는 거 맞나요?”
“당연하지. 어째서 아니라고 생각하는 가? 내가 여우신령이라서 믿기지 않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우리는 지금 한 곳을 돌고 있는 기분인데요?”
한 곳을 빙빙 돌고 있다?
“잠깐 멈춰!”
이건 분명 탈로스 씨가 예전에 나를 가둬놓은 결계와 유사성이 높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 멈춰 세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결계에 갇혀있는 것 같아. 하지만 이런 결계는 내가 풀지 못하는데.”
애석하게도 결계를 해제하는 방법은 마법진을 지우거나, 결계 자체를 날려버리면 상관은 없지만, 이렇게 무한적으로 방황하게 만드는 결계의 특징은 보호막이나 결계의 벽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결계라. 어쩐지 계속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꽤나 머리를 쓰는 아이들이로구나.”
아랑은 박수를 크게 두 번 치더니….
“자. 됐다. 결계가 해제 되었으니 계속 달려가거라!”
정말 그것만으로 해제가 된 건가?
아니. 지금은 쓸 때 없는 생각을 하면서 멈춰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빅터가 먼저 발 빠르게 사라지면서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빅터를 따라잡기 위해 온 몸에 마나를 한 가득 담아서 강화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를 빠르게 가로지르며 뛰어가는 빅터의 괴물 같은 신체능력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고, 나 혼자 뒤쳐져서 거친 숨을 몰아 쉬다가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주저 앉아버렸다.
“대체 저게 사람이야 동물이야….”
혼잣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나올 정도로 빠르게 사라진 빅터를 보며, 나는 좀 천천히 쫓아가기로 했다. 나 혼자 마라톤을 한지 10분정도 더 흘렀을 때는, 이미 제압되어있는 여성 한 명과 바닥에 기절한 베가프 씨가 있었고, 빅터와 아랑은 난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스토커는 잡은 거에요?”
“뭐. 성공적으로 잡았는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문제가 생기다니?
아랑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할 정도로 큰일이 무엇인지 듣기 위해, 빅터를 올려다 보았을 때. 빅터는 제압을 한 여성의 옷을 찢었다. 느닷없이 그 여성의 배 부분을 찢는 이유는 당연히 이유가 있기 때문.
“역시나 이 여자도 뭔가가 안에서 조종하고 있었어. 이 여자의 배에 있는 문양은 정신체를 옮기기 위해 그려진 마법진이야.”
정신체를 옮기는 마법진. 육체와 이탈을 하고 있는 영혼은 이동거리가 한계가 있기에, 저런 마법진으로 자신의 영혼을 조종할 수 있는 사거리를 늘릴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럼 우선 베가프 씨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하잖아?”
“아니. 이미 정신을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베가프의 몸이 장악되겠군.”
나는 서둘러 베가프 씨의 정신으로 뛰어들었다. 정기를 소비해서 들어가고 있는 환경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건물이었고 침투를 하고 있는 정신체는 걸어 다니는 토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설마 몽마가 이곳에 침입할 줄은 몰랐는데? 그보다 당근 있어? 당근은 가져온 거지?”
“당장 베가프 씨의 머리에서 나가. 이건 명령이야.”
“싫은데?”
“아 그래?”
주저 없이 검은 사슬을 소환해서 토끼를 향해 날아갔지만, 빠른 움직임으로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내 앞까지 바로 다가와 발차기를 날렸다. 겨우겨우 두 팔로 막아냈지만 어마어마한 힘 때문에 뒤로 날아가는 내 몸을 어느 사이에 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네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잠깐 죽어주실까?”
“남을 밟기 전에 네가 뭘 밟고 있는지 확인이나 하시지?”
-차르르르륵!
저 푹신해 보이는 발에 밟히기 전에 쇠사슬로 내 몸을 묶고 있었고, 나를 밟는 순간마다 사슬이 토끼의 발에 엉키게 만들었다. 천천히 토끼의 온 몸을 침식하고 있는 사슬이 올라가고 있을 무렵. 어마어마한 한기가 나를 급습했다.
“항상 정기가 부족해서 탈이야. 추우니까 빨리 너부터 날려야겠어.”
있는 힘껏 쇠사슬이 조이기 시작하면서 “안 돼! 멈춰! 나는 살고 싶어!”라고 외친 토끼의 몸에는 생생하게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역류하는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면서 생을 마감했다.
이걸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 토끼가 베가프 씨의 정신에 무슨 짓을 한 것이 틀림이 없어서, 또 다른 정신의 방으로 계속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을 이루는 공간을 찾기 위해 차가워지는 몸을 채찍질하며 나아가자. 생각의 중심으로 보이는 검은 바위에 당근 하나가 꽂아져 있었다.
“당근? 그 토끼가 해놓은 건가? 그렇다면 아직까지 살아있…”
-팡!
“꺄악!”
다시 날아온 발차기가 내 입에서 비명이 나오게 만들었고, 그 바보 같은 토끼는 이리저리 깡총깡총 뛰면서 나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하기 위해, 커다란 당근을 꺼내더니 이빨로 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당근과 마무리 일격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날카로운 창이 완성되고 있는 모습에 경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이해할까?
“애초에 네가 죽인 것은 내가 남겨놓은 파편에 불과하다고? 그렇다면 정의의 당근창으로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줄게♥”
나는 침착하게 여유를 가지고 다가오고 있는 토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느끼한 말로 그런 마무리대사를 하려고 하지마. 그거 사망플래그니까.”
“뭣?”
“크아아앙!”
위에서 거대한 여우. 하얀 꼬리가 9개씩 달려있는 구미호가 토끼를 덮쳐 누르고 목을 물어 숨통을 순식간에 끊었다.
“아랑….”
“용케도 잘 버텼다. 게다가 정신지배 장치까지 찾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연히 찾은 것 같지만 정말 잘했군.”
검은 바위에 박혀있는 당근을 물어서 뽑고 씹어서 형체를 알아볼 없게 부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일단락 마무리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