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32
432
포로를 잡아들인다는 것은 생각 외로 가장 골치 아픈 일중 하나다. 첫 번째로는 이곳은 지하감옥이 아니라 잡화점이라는 점과 두 번째는 그 포로의 정신상태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곳은 절대적으로 포로를 장기적으로 묶어놓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 유지비는 누가 줄 꺼야? 유지비는? 최대한 신속하게 정보를 뺄 것만 빼고, 기억 소거를 시키든 이중 스파이를 만들던 해야 하는데.
“와아...”
지금 2시간째 그 빌어먹을 잡지를 보고 있었다. 정작 여장이 너무 잘 된 나머지 보고 있는 사람이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집중해서 볼 정도인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루니아 누나의 옷 선택과 연출능력은 그래도 아주 조금 어느 정도만 티끌만하게 인정해야 했다. 정말 인정하기 싫은데 본인이 없을 때 이만큼이라도 인정해줘야지. 조용히 감탄하면서 읽고 있는 포로는 여전히 짙은 머리카락을 자신의 오른손으로 쓸어 넘기며 보고 있었다.
아. 의자에 구속하는 것은 어찌 되었냐고 물어본다면, 방금 전까지 백장미를 조용하게 읽고 있다가 베니가 슬슬 다른 곳으로 가는 바람에, 2층에서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고 루시피나가 올라가서 얌전하게 백장미를 보는 조건으로 의자에서 풀어줬다고 했다. 이 잡지가 한 사람에게 이렇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이걸 지금 이 대륙을 넘어서 천계에서도 관람하고 있다는 거지?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하군.
“재미있냐?”
“아, 에? 꺄아아악!”
남성공포증은 여전하구나. 시큰둥한 나의 한마디는 포로가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백장미라는 저주받아야 할 잡지 때문이었다. 대부분 저 백장미에 들어있는 것은 내가 여장한 사진들이니까.
“오지 마세요! 저는 맛 없어요! 먹으면 당뇨에 걸려요!”
백장미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면서 나와 거리를 조금씩 벌리고 있는 포로에게 슬슬 이름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카일이야. 이곳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고. 너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페트리’. 저는 페트리에요. 그러니까 제발 잡아먹지 마세요!”
“네가 생각하는 남자들은 전부 식인종이라 생각하는 거냐. 뭘 잡아먹어서 당뇨에 걸려? 네 구성성분이 설탕 99.5%냐? 이 대륙에서는 식인이 금기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겠지?”
나머지 0.5%는 잘 모르겠네. 뭐로 이루어졌는지.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남자는 언젠가 늑대로 변하니까. 잡아 먹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단다!”라고 말씀해주셨단 말이에요! 그러니 제발 먹지 마세요! 저는 맛이 없어요! 아까 전에 먹은 그 끔찍한 스프맛이 날 거에요!”
페트리의 부모님이 얼마나 겁을 줬는지 모르겠지만, 성격이나 사고패턴으로 잠깐 보면 매우 순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루나는 순진한 것이 아니라 아이돌이라서 가능한 순진한 연기라면, 페트리는 거의 천연수준으로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조금만 거짓말을 해도 구별하지 못하고 진짜로 믿는 그런 수준이었다.
“내가 무시무시한 비밀을 알려주지.”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보통 분위기가 반전이 되는 것을 감지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집중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실험을 시작하는 말은...
“몽골리안 웜의 필살기는 사실 몽골리안 춉이야.”
“그런! 무시무시한 일이!”
확정이로군. 너무 순진해.
“모, 몽골리안 웜의 필살기가 몽골리안 춉이라니! 그런데 몽골리안 웜은 뭔가요?”
“그건 남성공포증에 걸려있는 여자들에게 붙어사는 벌레지. 사냥감을 발견하면 우선 그 여성이 눈치채지 못하게 어디선가 붙어있다가, 남성에 대한 공포심을 흡수하며 점점 커져. 그리고 자신의 성장이 끝나면 그때부터 자신이 점을 찍었던 여성을 사냥하는 무시무시한 벌레야. 사냥감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필살! 몽골리안 춉!”을 사용해서 기절 시킨 뒤에 포식을 하지. 그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이 행방불명이 된 거고. 사실상 나는 너의 몽골리안 웜을 퇴치하기 위해 접촉한 것도 있어.”
이정도 거짓말을 했다면 솔직히 어느 누구나 다 알아야 했다. 참고로 이건 내가 5살짜리 어린 아이에게 말을 했는데 전혀 믿지 않고, 쓸 때 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돌멩이를 던지더니 내 이마 직격을 마고 난 뒤에,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봉인을 해놓은 이야기였다.
“정말 이 세상은 무시무시해요! 어떻게 해야 남성공포증을 고치는 거죠!”
다만, 페트리는 순진한 푸른 눈망울을 반짝이며 하늘에 녹을 것 같은 눈부심으로 날 바라봤다. 정말 내가 아까 한 이야기를 전부다 믿은 거야? 어린 아이가 메테오를 날렸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잖아?
“그거야 남성공포증을 고치면 되잖아. 말은 간단하지만 고치기는 어렵다고 소문나있는 공포증을 무슨 수로 고쳐야 할지는 개인에게 달렸어. 나는 이만...”
-덥썩!
내 검은 바지자락을 붙잡고 넘어진 페트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예정된 밀고 당기는 클리셰를 원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만만한 곳이 아닌가 보다.
“안 돼요! 그러면 제가 몽골리안 웜에게 잡아 먹힌단 말이에요!”
그런데 남성공포증이면 남자 근처에도 가기 싫어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 아마 나를 무의식적으로 붙잡은 이유라면 백장미를 보고 나서, 나에 대한 공포심은 많이 줄어들었다는 소리가 되겠지? 쓸 때 없는 곳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잡지가 할 일은 다 하는 군.
“그러면 네가 들어간 검은 높새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 그러면 몽골리안 웜에게 잡혀 먹히지 않게 치료를 해주도록 하지.”
“저, 저에게 배신을 하란 소리에요?”
내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페트리의 얼굴은 굳어지는 것과 동시에, 눈에서는 살기가 띄기 시작했지만 애석하게도 마나를 차단하는 팔찌 때문에,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처지를 깨닫고 곧 이어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너에게 간단히 ‘말하며 죽던가.’, ‘말하지 않고 죽던가.’에 대한 선택지를 주려는 것뿐이야. 어차피 내가 죽이지 않아도 몽골리안 웜이 알아서 너를 포식하는 비극적인 마무리가 되겠지.”
이쯤 되면 제발 거짓말이라고 알아차려라!
거짓말을 하는 입장에서 웃음을 참느라 너무 힘드니까!
“조, 좋아요. 말하도록 하죠. 대신 몽골리안 웜을 처단해주셔야 해요! 이건 약속이에요!”
“그래. 먼저 물어볼 것은 근거지부터인가?”
***
검은 높새바람은 신입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자신의 간부 이름도 죄다 모르고, 자신이 돌아가야 하는 장소의 좌표를 몰라서 그쪽으로 공간이동 또한 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공간이동 좌표 값이 매번 바뀌는 걸로 보아, 하늘에 떠있는 섬이라고 하기에는 공중정원이나, 아니면 공중에 날아다니는 거대한 비행선에서 생활하는 걸로 추측하고 있는데, 막상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봉사단체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과의 적대세력은 확실하게 적대하는 성향인데, 지금 검은 높새바람과 적대하는 세력은 이 대륙에서 단 둘. 그것은 바로 카멜롯과 내가 속해있는 엘티노스 잡화점이었다.
“난 너희들이 악신을 찾아서 난장판을 부릴 것이라는 취지 때문에, 지금 이렇게 고군분투하면서 싸우는 거야.”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당신이야 말로 악신을 찾아서 모든 이들을 멸할 준비를 한다고 했어요!”
어디서부터가 어긋난 건지 모르겠지만 매듭은 한번 더 꼬였다. 우리가 저들을 나쁘게 말하는 동안, 저들은 우리를 나쁘게 말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 악신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그 자체가 놀라웠으니까.
말만 들어보면 나와 검은 높새바람은 서로 싸울 이유가 모순 되어버렸다는 소리.
“그래서 크로우라는 녀석이 나더러 이끌어달라는 거였나? 결국 이념은 같으니 누가 통제권을 잡아도 소용없다는 그 소리였군. 다만, 카멜롯에 있는 아리엘이란 소녀는 어째서 납치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 소녀가 악신을 봉인할 수 있는 유일한 소녀니까요. 판도라의 빈상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이상, 그 소녀가 가진 특수한 힘으로 판도라의 빈상자를 소환해서 악신을 가두고, 이 세계의 질서를 다시 쓰는 것이야 말로 검은 높새바람의 존재의의에요.”
판도라의 빈상자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인형사가, 자신의 연인의 혼을 담아놓은 자동인형과 잘 살기 위해 빌려준 것뿐이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확실히 뭐든지 담을 수 있는 판도라의 빈상자라면 신조차 담아서 봉인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은 믿기가 너무 어려웠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니까. 저에게 붙은 몽골리안 웜을 퇴치하기 위해 도움을 주세요.”
저렇게 순진한 사람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아리엘에게 특수한 힘은 무엇인지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아무튼 내가 저질러놓은 거짓말을 내가 책임져야 할 때인가?
그렇다고 “모든 건 몰래 카메라였습니다!”라고 외치면서 화기애애하게 끝날 가능성이 없었다. 결국 가져온 것은 귀이개들과 마사지용 크림. 이걸로 대충 “몽골리안 웜이 퇴치되었다! 제 1부 끝!”처럼 대략 끝내기로 하자.
“그러면 내 무릎 위에 눕기나 해.”
“네?”
“‘네?’가 아니잖아. 내 무릎 위에 머리를 눕혀야 귀를 청소할 수 있으니까.”
“어, 어째서 느닷없이 제 귀를 청소해주는 겁니까! 설마 저의 작은 귓구멍에 저런 쇳덩어리를 넣어서 비좁은 곳을 엉망진창으로 들쑤시는...”
???
표현 방법이 좀 이상하다?
누가 페트리에게 저런 지식을 넣어준 거야?
“야. 잠깐만 기다려봐. 너 대체 귀 청소를 뭐라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닌 건가요?”
“내 의도는 네가 지금 남자와도 접촉할 수 없으니까, 억지로라도 접촉을 시킨 다음 긴장을 풀게 해서 네가 생각하는 남자들이 전부 늑대처럼 먹이를 노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인식을 바꿔주려는 거야. 나처럼 평온과 평화를 사랑하는 양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비록 내 평온과 평화 두 개의 단어는 이상한 사건과 사고로 저 멀리 떠나갔지만, 첫 번째 소원이든 세 번째 소원이든 언제나 평온과 평화를 외칠 것이다.
“그래도 남자와 같이 있다는 그 자체가 불편하다고요! 무섭다고요! 어째서 다른 여자애들은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면서 웃고 다닐 수 있는 거죠!”
“너만 못하는 거야. 잔말 말고 눕기나 해.”
내 무릎 위에 누워있는 페트리의 머리가 딱딱하게 굳은 것을 보면 잔뜩 긴장한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마사지용 크림으로 내 손에 발라서 예쁜 모양으로 붙어있는 귀를 마사지 하기 시작했다.
“웃. 으으. 흣...”
저건 아마 남성공포증과 싸우고 있는 내면의 갈등이 입밖으로 나온 소리겠지.
“지금 이걸 이기지 못하면 몽골리안 웜은 평생 네 몸에 따라붙으면서 성장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 이걸 받아드리면서 천천히 긴장을 풀도록 해.”
“아! 넵! 흐우우...”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10분 정도 마사지를 한 결과, 숨소리가 차분해지기 시작했고 눈빛이 몽롱해지면서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카일 씨는 의외로 능숙하네요. 자주해주고 있나 봐요?”
“그야. 내 주변에 있는 멤버들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늘 수 밖에 없어.”
긴장은 풀은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인데 본래 남성공포증에 걸린 여자는, 남자를 믿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던가? 내 말에 순순히 따라오는 이유가 비록 거짓말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사람의 말은 절대적을 믿어야 한다. 혹은 믿지 말아야 한다. 의 기준점이 애매모호했다. 고찰은 잠깐 집어넣고 나는 귀이개를 들면서 바깥에 있는 부분부터 긁어내기 시작했다.
“아프면 꼭 알려줘야 한다. 힘 조절이 필요한 부분이니까.”
“네에.”
그래도 나에 대해 경계를 허물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잠깐만? 이러다간 페트리가 길들여지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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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해보면 천연캐릭터가 이제 나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