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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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학원제부터 여전히 회색이 곱게 물들어진 코트와 모자를 쓰고, 켈모리아의 부탁대로 윈디의 바람장막을 이용해서 모습을 감추고, 몸이 잘 감춰졌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몰래 솜사탕을 훔쳐서 입안에 넣고 있었다.
정말 확인하기 위해서지 절대로 솜사탕이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니까.
“그런데 마왕님과 여신님께서 또 요리하셨다면서요?”
윈디의 질문으로 머릿속에 잠깐 봉인해놓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독극물을 먹으라는 레시아와 시나가 눈 앞에 보여서, 초인적인 반사신경이 각성해 밥도 안 먹고 뛰쳐나와서 배가 좀 고팠다. 솜사탕이라도 먹어서 당분을 채우지 않는다면, 어느덧 뱃가죽이 말라붙어버릴지도 모르니 입 안에 녹아 들고 있는 구름 같은 솜사탕을 차근차근 음미할 무렵.
“카일. 오늘 걸신들렸어?”
솜사탕이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슈크림 빵이 내 손에 들려있었다. 이프리트의 말이 너무 늦었는지 이미 한입 베어먹은 상태였고, 어처구니 없는 나의 나쁜 손은 용병처음 들어갔을 때 소매치기를 배웠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프리트가 밖으로 나와서 나에게 말을 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나. 카일 씨에게 크림이 하얀 크림이 이렇게. 제가 깨끗하게 핥아드릴게요.”
“뭘 핥는다는 거야. 핥으려고 하지마.”
핥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입가에 있는 슈크림을 핥기 위해 점프를 한 윈디의 머리에 아이언 클로가 날아가면서 저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림에 대해 무슨 집착이 이리 심한지 어마어마한 힘으로 내 손을 밀어내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크흐흐. 단념하세요? 그간 아이언 클로를 많이 맞아와서 이 정도의 고통은 저에게 쾌락으로 작용한답니다?”
“대체 네가 왜 정령왕을 하고 있는 거야!”
이런 녀석이 바람의 정령왕이라...
이 세상은 뭔가 잘못 되었어.
그래도 이런 이유 하나 때문에 의뢰를 대충할 이유는 없으니, 서둘러서 크림을 닦아내고 학원제가 잘 되고 있는지 시찰하고 있는 아리엘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대부분의 경우 켈모리아의 옆에서 붙어 다닌다고 들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켈모리아가 하기 싫은 일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일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아리엘의 고운 이마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저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놀랍네요. 엘리트들만 모여있는 카멜롯이라서 그런가? 보통 아이들이라면 체력이 받쳐주지도 않을 일들을 수행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3발자국만 걸어가도 선물이나 사귀어 달라고 달라붙는 사람들까지 뿌리치니까. 아리엘이 받을 스트레스는 이만 저만이 아니죠.”
윈디는 아이언 클로를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말을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는지.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고 윈디가 말 한대로 아리엘을 알아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접촉을 하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쓰고 있었다. 나는 윈디에게 아리엘에 대해 지켜보라고 한 뒤 바람장막에서 빠져 나와 이프리트하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한 눈에 보이는 장소에서 아리엘을 노리는 검은 높새바람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이프리트도 슬슬 동화해주세요.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수색을 시작할 거니까요.”
이프리트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몸 속으로 증발하듯이 사라지고 있는 사이에, 레시아와 시나를 내 앞에 불러내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내 앞에 2개가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각자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가...
“크흐흐! 오늘이야 말로 주인에게 짐의 정성이 가득한 다크메터를 먹이겠노라.”
“오늘은 마스터에게 빛의 육포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대체 뭐 하는지 모르겠지만 독극물은 다른 곳에다 버리고 왔으면 좋겠다.
“여전히 아침에 들이댔던 독극물을 나에게 줄 심산인가요? 다른 곳에서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서 처리하라고 말했잖아요.”
“하지만, 이걸 처리하기 전에 핵분열로 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노라. 따라서 이걸 먹으면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니까. 이걸 주인이 먹으면 오늘 하루를 힘차고 건강하게 보낼만한 에너지가...”
“내가 어디 발전소인줄 알아요? 그걸 먹고 핵분열 시키게? 게다가 그게 핵분열 할 때 쓰는 재료로 쓰일 정도면 이미 먹을 것이 아니잖아요.”
레시아는 작은 앞발을 핥으면서도 “그런가?”라고 물었다. 이 세상에서 아직까지 나오지 말아야 할 물질을 레시아가 창조하고 있었다니. 이름만 암흑물질이지 완전히 우라늄아냐? 그걸 사람 입에다 집어넣으려고 하고 있는 건가?
“빛의 육포는 고대에 빛이 탄생했을 무렵 먹을 것이 없었던 여신이 먼저 창안해낸 것으로...”
“시나가 다른 곳에서는 창세의 여신이라는 건 알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육포라는 개념조차 없었잖아. 그 이상한 광선검처럼 생긴 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차라리 제다이에게 줘서 무기로 사용하라고 해.”
하얀 올빼미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꺾어서 갸웃거리고 있었다. 우라늄이든 광선검이든 우선 먹을 수 있는 물건들은 아니니까. 잡담은 이 정도로 했으니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검은 높새바람 소속의 스파이든 뭐든 찾아야 하지만, 너무 많은 인파로 하나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레시아와 시나를 이곳으로 소환한 것이지만...
“다크메터를...”
“빛의 육포...”
그 2개의 물건들은 아직까지 내가 집중을 해야 할 정도로 트집을 잡아야 할 요소들인가? 루니아 누나의 음식과 맞먹는 수준의 독극물을 먹고 이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라서 최대한 사양해야겠지.
“모두 그만하고 제발 저 좀 도와달라니까요?”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검은 높새바람은 아직도 없노라. 어제와 똑같은 상황인데 뭐가 불만인가?”
“그러니까 제가 레시아와 시나를 부른 거죠. 어제와 똑같이 습격하지도 않고 그저 평범하게 보내는 일상처럼 있는 것이 말이에요. 내부 상황은 이제 확실하게 알아냈으니까 이제 외부 상황을 둘러봐야죠.”
“외부 상황이라면 학원 밖을 말하는 겁니까?”
시나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안에서 학원제가 안전하게 진행되는 동안 외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해야지. 사실상 크로우가 학원의 대결계 내부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다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검은 높새바람의 입장으로 보고 그걸 역추적을 하자는 소리야.”
이런 견고한 대결계를 무슨 수로 침투할 수 있을까? 촉매제가 있다면 내부에서 부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밖에는 풍기위원들이나 마법 기동반이라고 불리는 켈모리아의 사설 병단에서 전부 감지하고 제거하기 때문에 별 다른 일은 없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어이 무식하게 수상한 녀석.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무식함을 뽐내면서 수상하게 행동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기분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양아치 같은 어조는 기억에 있었다. 마법 무투제에서 한번쯤 만난 적이 있는 카를로스라는 학생. 아리엘과 같은 검은 망토를 두르는 걸로 보아 마법 기동반 소속으로 변한 듯 했다.
“나는 무식하지도 않고 수상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켈모리아 학원장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 온 거니까. 그보다 여전히 상의는 일부만 노출하면서 다니는 건가? 여자들에게 좋은 어필이라고 생각하긴 한데. 역으로 신고 당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네.”
“이상한 고양이나 올빼미와 같이 다니는 댁보다는 자연스럽거든?”
“고양이와 올빼미가 뭐가 나쁘다고 그래? 그리고 이상하지 않아. 상당히 귀엽다고? 너도 고양이가 따라다니면서 애교부리면 마지못해 받아줄 녀석이.”
다만, 이런 호전적인 녀석이 마법 기동반에 있다면 실력은 진짜란 소리일까?
“소개가 늦었네. 나는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을 맡고 있는 카일이라고 한다. 너는 분명 아리엘의 친구인 카를로스라고 했었지?”
날카로운 눈이 커지고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머리에 식은 땀이 찔끔 나오는 걸로 보면 분위기로는 내가 압도하고 있는 상황.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라는 것보단 아리엘에 대해 알고 있다는 비중이 더 크겠지.
“정말로 잡화점의 주인이란 소리야?”
“그럼. 애초에 네가 흉을 본 고양이와 올빼미는 내 사역마야. 사과하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겠지만 다음에는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나에게 있어선 중요한 사람들이거든 결혼까지 했고.”
“그 사역마들은 그럼 본 모습은 따로 있다는 거네. 게다가 오히려 그 사역마들의 힘이 댁보다는 더 강해. 그런데도 어떻게 저런 사역마들을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거야?”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군.
아무래도 나를 무식하게 수상하다고 말한 것은 실질적으로 레시아와 시나를 감지한 카를로스가 나밖에 없으니 하는 소리였나 보다.
[주인. 이 아이는 이상하게도 발록과 유사한 피를 가지고 있다. 외견은 인간이지만 어째서인지 내부가 기묘하게 뒤틀린 것처럼 보인다.]
아리엘의 경우에도 외견은 인간과 다를 것이 없지만 마신의 피가 흐르고 결국 몽마로 각성했는데. 마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호문쿨루스와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호문쿨루스라는 것은 올바르지 않지. 선천적으로는 인간이지만 실험으로 인해 내부가 바뀌어버린 실험체라고 말해야 정확한 것을...
“너 할 일은 없는 거냐?”
머리를 완전히 갈대처럼 올라가 있는 카를로스는 잠깐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내가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다.
“그러면 너는 지금부터 나를 호위하도록 해라. 어차피 그 모습으로 이곳에 온 손님들을 호위하거나 대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양아치 같은 모습은 개성이 넘쳐서 좋지만, 그게 먹히는 것도 최소 1년밖에 안 될 거야. 그러니 머리라던가 분위기를 온화하게 만든다면 좋겠지.”
“댁도 아리엘 같은 말을 하고 있네. 스타일이나 분위기라던가 그건 내가 알아서 결정할 일인데 말이야.”
머리를 긁으면서 나와 거리를 살짝 좁힌 카를로스는 나를 따라서 대결계 외부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레시아와 시나는 내 양쪽 어깨를 모두 자리잡은 상태였고, 카를로스는 나에게 관심은 없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어색한지 침묵을 깨고 질문을 했다.
“당신은 약하지?”
“뭐. 솔직히 너와 붙어서 제대로 이길 자신도 없다.”
나는 순순히 대답을 하면서 카를로스의 기라도 살려주기 위해 최대한 내 자존심을 깎아서 이야기를 했고, 카를로스는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경계를 했다.
“거짓말을 얼굴표정 하나 안 바뀌고 말하는 건 처음 봤어. 당신 의외로 무시무시하구만? 게다가 필요하다면 체면을 깎아서라도 이득을 취한다는 그 정신이야 말로 무시무시해.”
“생긴 거치곤 정말 머리가 활발하게 잘 돌아가는 군. 적들이 너의 모습을 보고 겉으로만 판단하고 있을 때. 너는 적의 심리까지 읽는다는 소리인가. 확실히 카멜롯에 있는 애들이 왜 엘리트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
“그런데 왜 대결계 주변을 서성이는 거야?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사실 아리엘을 몰래 호위해달라는 켈모리아의 부탁을 받았지만, 지금은 윈디에게 맡기고 오는 길이거든. 그런데 말이야, 너는 만약 검은 높새바람이라면 이런 대결계를 뚫고 오고 싶으냐?”
카를로스는 자동으로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아무리 자신이 잘 숨을 수 있다고 해도, 혹은 결계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상대는 과거에 엘티노스가 한 것처럼 모든 마법을 전부 정복한 괴물이다. 절대로 정면으로 치고 오는 일은 불가능한 일. 나는 옆에 있는 카를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카를로스. 너 특기가 뭐야?”
“특기? 싸움은 제대로 하는데?”
“다행이네. 몸이나 풀어둬. 이것만 확인하면 곧바로 싸우러 가야 하니까.”
정면에서 뚫고 올 수 없는 결계를 상대하는 방법이라면, 내가 알기로는 공중이나 땅바닥에서 뚫고 오는 방법이 있지만, 조용히 한 곳에 구멍을 뚫어서 그 틈을 몰래 메우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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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쓰는 글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