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88

FNL-Phantasm 2017. 5. 12. 16:06

88

 

 

 

나는 몽마이기도 하고 다른 이들을 잘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여장을 하고 있는 카일 씨만큼은 넋을 빼놓은 다음 어떤 장난을 해야 카일 씨를 나만의 장난감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불의의 습격으로 내 시야가 어두워졌고 온 얼굴을 마치 바위가 누르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다 꼴사납게 의식을 잃어버렸다. 동방불패 선생님의 다크니스 핑거를 맞는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겠지.

 

아파 죽을 것 같아.”

 

일어났어?”

 

세피르의 무릎에서 눈을 뜨고 주위를 눈으로 대충 흘겨보았을 때. 카일 씨는 없고 켈모리아가 녹색 병에 담긴 투명한 알코올을 작은 잔에 가득 채웠다. 너무 가득 채워서 흘러 넘치고 있는 잔을 바라보며, 나는 켈모리아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켈모리아? 잔이 넘치고 있는데요?”

 

? . 내 정신도 참. 도수가 강한 거라서 쉽게 취한 건가?”

 

노을이 지고 있는 체육대회는 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축제가 완전하게 끝난 것이 아니므로, 지금의 켈모리아가 잔뜩 취한 상태에서 훈시를 하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하지만 술잔이 넘치도록 채우는 것은 고민거리가 있다는 뜻이니, 집요하게 물어보도록 했다.

 

아까 카일 씨가 뭐라고 했어요?”

 

그러자 켈모리아는 나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아리엘은 지금 자신과 대면한다면 뭐부터 하고 싶어?”

 

? 그건 대체 무슨 질문이에요? 제 자신과 대면을 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물어본들, 그냥 자기 자신에 대한 선문답일 뿐이잖아요?”

 

켈모리아는 살짝 엉켜있는 머리를 잔잔하게 휘두르면서 아니. 말을 잘못했어. 역시 술이 들어가면 너무 감성적으로 변해서 탈이라니까?”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이번엔 나를 똑바로 직시하고 질문을 던졌다.

 

너는 지금의 너로 만족해?”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러자 켈모리아는 알코올 향이 가득한 한숨을 내쉬면서 다행이야.”라고 중얼거렸다. 생각을 해보니 켈모리아가 술에 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은 본 적이 없으니. 지금의 모습은 너무 생소한 나머지 전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지금의 나는 나로 만족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무슨 의도로 내는 걸까?

 

생각을 해보면 오랫동안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찾지 않고, 현실과 미래를 향해 충실하게 적응하고 있는 나에 대해 스스로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대면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간다고 한들 혼란만 올 게 뻔하다.

 

카일은 의외로 너를 걱정해주긴 하더라고……. 네가 어떠한 트라우마로 인해 자기 혐오를 겪지 않도록 말이야.”

 

카일 씨가요?”

 

나에게는 자비 없는 필살기를 감행한 사람이?

 

마치 동병상련을 하는 얼굴이었어. 하긴 그 남자도 생각을 해보면 엄청나게 고생을 했으니까. 과거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지금도 괴로워하겠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매우 애쓰고 있지만 말이야.”

 

잔을 입 안에 전부 털어놓듯이 한번에 마신 켈모리아의 입에서는 크흐!”하며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생각을 해보니 카일 씨에게 한번쯤은 하란국에 찾아가달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여장을 하는 카일 씨의 모습을 보고 폭주하는 바람에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내일은 카일 씨가 아리엘을 일정거리에서 보호하기 위해 곁에 머무를지도 모르니까. 또 다시 폭주해서 덮치지 않도록 해. 아리엘은 의외로 절제가 안 돼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절제는 잘 하거든요! 다만, 그때는 켈모리아가 협박을 해서 어, 어쩔 수 없이 제가 두 팔 걷고 나선 것뿐이에요.”

 

세피르는 방금 전에 상황을 봤는지 아리엘은 의외로 육식이라서 큰일이네.”라는 말을 내던졌다. 나는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인큐버스의 허벅지를 꼬집었고 육식이라 하지마!”라고 소리치자마자, 귀가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마법학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결과적으로는 축제든 뭐든 일밖에 하지 않은 나와 켈모리아,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 일을 떠맡아버린 학생회임원들에게 있어선, 축제가 끝날 때까지 쌓인 서류와 전쟁을 벌이는 일이겠지. 세피르의 무릎베개에서 일어난 후에 켈모리아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무렵. 조용히 술을 홀짝이고 있는 전혀 생소한 모습의 켈모리아에게 나는 말을 걸었다.

 

이제 돌아가요. 켈모리아. 안주는 집에서 만들어 줄 테니까. 빈 속에 얼마나 마신 건지 몰라도….”

 

아리엘.”

 

평상시에 부르는 톤이 아니다.

더욱 온화하고 부드럽게 흘러 들어온 목소리는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켈모리아가 어째서 이런 약한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비록 너에게……그리고 앞으로도 너에게 무리한 요구라던가,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시킬지도 몰라. 그래도 너는 그걸 굳세게 이겨낼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비록 막무가내로 나간다고 해도, 언제나 네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아줬으면 해.”

 

켈모리아.”

 

진지하게 흘러나가는 분위기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나. 그리고 세피르는 내가 부담을 갖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이 손을 꼭 잡아주고 같이 서 있어줬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책상 밑에 있는 술을 더 꺼낼 생각으로 그런 헛소리를 한 거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과하시죠?”

 

. 눈치가 너무 빠르잖아.”

 

숙연한 분위기로 만들어서 나를 퇴장시키겠다는 켈모리아의 속 깊은 계획은 나의 한마디로 무산이 되었다. 어째서 어른들은 술을 그렇게 마시는 걸까? 혀만 살짝 대기만 해도 날카롭고 떨떠름한 고통이 한 순간에 올라오는데…….

 

그래도 내가 한 소리는 전부 진심이니까. 마음에 새겨듣도록 해. 그보다 안주 만들어주는 건 진짜지? 오늘은 물고기를 구워줬으면 좋겠는데. 돼지고기라던가! 검은 달의 여왕에게 들었는데 이게 보통 고기와 같이 먹을 때가 좋다고 하더라고!”

 

알았으니 돌아가죠. 물고기든 돼지고기든 구워드릴 테니까.”

 

***

 

술에 취해 침대에 잠이 들어버린 켈모리아에게 조용히 얇은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온 세피르에게 수고했다고 말을 걸었다. 아르트리옴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아서 나의 궁금증을 유발시켰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아르트리옴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지금은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학원장님은 의외로 대식가였네. 도중에 이비까지 같이 먹으니까 어마어마한 양이 1시간만에 사라진 적은 처음 봐.”

 

너도 대식가잖아.”

 

세피르는 웃으면서 내 허리를 껴안고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하긴, 어마어마하게 쌓인 설거지를 전부 다 했으니 스트레스를 풀 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나에게 응석을 부리는 걸로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까?

 

세피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아까 언급했던 아르트리옴이 내 옆에 나타나서는 두 팔을 벌리며 이렇게 외쳤다.

 

오늘 일하느라 수고 많았으니 어서 오라버니의 넓은 가슴에 안기거라! 하하하!”

 

아르트리옴에게 안기지는 않고 정권을 지르며 날려보냈다. 허리가 90도로 숙여지면서 배를 감싸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르트리옴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딜 갔다가 지금 나타나는 거에요?”

 

그야. 검은 높새바람을 찾으러 돌아다녔지. 그 많은 인파로부터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지만, 그래도 아리엘이 그런 못된 사람들에게 다치거나, 납치를 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마신이라도 인파가 많으면 검은 높새바람이 정확하게 누구였다.’라거나 몇 명이 침입을 했다.’라는 말을 못하나 봐요?”

 

내가 차갑게 쏘아보는 눈으로 입을 열어서 그런지, 아르트리옴은 식은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나는 무능력한 신이 아니라고? 애초에 마법학원 안에는 검은 높새바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았으니까.”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보통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도 3명 정도는 침투시킬 줄 알았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아무래도 그들은 내일 학원제를 지내고 있을 때, 무차별 공격을 할거라고 봐. 첫 번째 날이 무사히 넘어가서 두 번째 날에 경계를 풀을 거라고 저쪽도 생각은 하지 않을 거지만, 아무래도 검은 높새바람은 뭔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오늘은 아예 찾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해.”

 

뭔가 기다리고 있었다?

절기나 시기에 따른 마법이 따로 있는 걸까?

지금은 5월 두 번째 주가 흐르는 시간대.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요?”

 

천체에 이상현상이 생기기라도 하는 걸까? 아르트리옴에게 다급하게 물어보자 멋들어진 남성의 목소리가 응답을 했다.

 

내일은 딱히 중요한 날은 아냐. 천체에 이상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검은 높새바람이 스스로 정한 기념일이라던가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날이겠지. 하지만 굳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지목한 이유라면, 의외로 잡화점의 주인을 겁내고 있다는 사실이야.”

 

카일 씨를 겁낸다고?

 

나도 그 잡화점의 주인을 생각하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해.”

 

뭐가 어처구니 없어요?”

 

잡화점 주인은 운명에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

 

운명에 기록되지 않는다면 예지능력이나 마법으로 보기 힘들다는 소리인가?

 

내 생각에는 검은 높새바람 측에서 잡화점의 주인을 차기의 리더로 뽑을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어째서 카일 씨를 검은 높새바람의 리더로 뽑는다는 거죠? 오히려 카일 씨는 검은 높새바람을 부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인데?”

 

아르트리옴은 나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아리엘은 운명이 어떤 거라고 믿어? 정해진 것? 개척하는 것?”

 

저는 당연히 운명은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개척하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착각을 주는 것은 자신이 진짜로 열심히 살기 위해, 모든 노력과 열정을 쏟아 부어 결실을 이룰 때이지만, 애석하게도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 실패와 성공마저 정해진 운명이기에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긴 운명의 여신이 있으니 정해진 순리대로 사람은 살거나 죽긴 하겠지만 다 틀려. 운명은 정해진 것도 아니고 개척하는 것도 아냐. 너의 선택에 따라서 정해진 결과에 따라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진짜 운명이야. 잡화점의 주인은 살아가면서 선택을 했고 결과가 나왔는데, 그 결과가 너무 커져버린 탓에 관측을 할 수 없는 거야. 수많은 가능성과 길을 가지고 있는 잡화점의 주인을 두려워하기에, 검은 높새바람은 오늘 카멜롯 마법학원을 건드릴 수 없었던 거지.”

 

그럼 왜 하필 내일이에요? 그것에 대한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잖아요?”

 

질문을 받은 아르트리옴은 허탈한 대답을 내놓았다.

 

오늘 만나보니 만만해 보여서 내일 한번 건드려보는 거겠지.”

 

겨우 그런 단순한 이유 하나 때문에?

기가 막혀서 자동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카일 씨와 검은 높새바람이 만난 건 어떻게 알고 하는 소리에요?”

 

그야 크로우라는 남성하고 이야기하는 걸 봤거든.”

 

별거 아니라는 듯이 시원하게 답하는 아르트리옴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짜증이 서서히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아르트리옴이 짜증난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켈모리아를 깔보는 듯한 검은 높새바람의 태도에 짜증이 파도처럼 밀려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