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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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모리아는 쪽지 하나를 부엉이 발에 묶고는 날려보내면서 입을 열었다.
“이번 학원제는 꽤 조심해야 할 거야. 검은 높새바람 때문에 성가신 일을 당하면 큰일이거든.”
“그 쪽지는 누구에게 보내시는 거죠?”
“그야. 잡화점이지. 사적인 마음으로 보내는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들의 힘이 좀 필요해서. 우리는 방어하는 것에 급급하잖아? 그들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는 견제를 해야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지금 잡화점의 주인 성격으로는 해결해줘도 나쁘지는 않지.”
밝게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켈모리아에게 나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 보단 카일 씨를 부려먹는 거네요.”
“그야 귀여우니까.”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굴려지는 카일 씨의 인생에 대해 애도를 표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기분을 잘 아는 나 또한, 켈모리아 옆에서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 이번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학원장들이 모두 모여서 하는 회의가 아니라, 마법협회와 마탑의 주인 등. 온통 마법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전부 의논을 하는 중이었다.
의제는 검은 높새바람에 대한 대처방법.
카멜롯 마법학원이 축제를 벌이는 것과 동시에 빈틈으로 파고들어 기습을 하는 검은 높새바람을 막기 위해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켈모리아가 주도하고 있는 이 회의에서 탈로스 씨는 마법 기동반의 선생이 아닌 마법사의 탑 대표로 참여했고, 의외로 마법협회 대표로는 밀리아의 아버지가 직접 참여했다.
검은 높새바람과 내통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이 말이다.
이건 마치 적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서, 어느 사이에 마음 속에서는 거북한 기분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높아져가는 불쾌지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표정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받는 스트레스는 몇 배로 뛰어오르기 마련. 이비는 내 팔에 날아들어서 “삑삑!”하고 울었다.
“나는 괜찮아.”
내가 걱정되어 찾아온 이비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해준 뒤에, 다시 원형으로 이루어진 책상 앞에서 말하고 있는 탈로스 씨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검은 높새바람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지 못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가 표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자신들의 계획을 방해하는 무리부터 먼저 제거하려고 들겠죠. 이번 마법학원에서 체육대회와 학원제를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장치를 착용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최소한의 장치를 착용해서 피아식별을 하거나, 검은 높새바람이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예방을 하자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 줄 알고 그 수많은 양의 장치를 준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켈모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통과나 기각처리가 아닌 보류로 남겨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여러 안건이 많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걸로 비상회의는 마칠 테니 모두 돌아가주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모두가 이야기를 한 것을 적어놓은 나는 커다란 한숨을 내쉬면서 켈모리아에게 전해줬다. 탈로스 씨 이외에도 예정 인원만 되면 커다란 결계를 쳐서 잠가버린다는 의견도 있었고, 기사학원이나 다른 곳에 지원을 요청해서 경계를 강화하자고 했지만, 유일하게 탈로스 씨의 의견만 보류하고 전부 기각이 되어버렸으니까.
“아리엘은 만약에 이곳에 참여를 했다면 어떤 의견을 내놓을 거야?”
“저요?”
켈모리아는 나에게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재미 삼아 물어봤다. 나는 이에 답했다.
“저라면 검은 높새바람과 내통을 할 거에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말이죠.”
“오? 의외인데? 이중 스파이를 제안하다니?”
검은 높새바람과 내통을 한다는 것은 적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신뢰를 얻고, 적이 우리들에게 정보를 토해내게 만드는 목적을 가진 것이다. 다만, 이것도 왠지 기각처리를 당할 것 같은 이유라면, 적과 내통한다는 이유가 아니라 검은 높새바람은 하나하나 신중하고 상위 존재들에 의해 통솔을 받기에, 정신교육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있다는 점으로 보아. 내통을 한다고 해도 정보를 교환할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오라클 계열의 마법사가 존재해서 들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이중 스파이를 한다면 꼭 적에게 붙잡혀서 이런 저런 일을 당할 것 같으니. 이건 그냥 못 들었다고 생각해주세요.”
켈모리아는 잠깐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무엇을 상상했는지 뺨이 상기된 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리엘이 붙잡혀서 이런 저런 일이라. 음…. 나중에 꿈에서 역할극이라도 해볼까? 내가 너를 붙잡은 적의 간부라고 하고…….”
“안 해요!”
가면 갈수록 켈모리아의 거친 숨소리가 내 미래에 여러모로 재앙이 되어버릴 듯해서 미리 거절했다. 마치 먹이를 잡아놓고 천천히 유린하려는 맹수의 눈빛. 이럴 때일수록 켈모리아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 된다.
“아리엘은 몽마잖아! 적어도 꿈에서 이루지 못하는 일들을 이루게 해줘야지!”
“그렇다고 켈모리아의 욕망을 해소하려는 수단으로 쓰진 마시죠!”
“칫. 내 비서는 깍쟁이야.”
다른 사람이 켈모리아를 상대하더라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켈모리아가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결국 켈모리아가 지금까지 결혼을 못한 이유는 성격 때문이라는 결론이 났다.
애초에 친하게 지낼 수 없다고 한다면, 레이나 씨라던가 매번 같이 술을 먹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가 없지.
“그러면 저는 트릭스 씨를 만나러 가볼게요.”
“오늘은 트릭스와 데이트인가? 나도 아리엘과 데이트 하고 싶다.”
“여자들끼리 노는 것은 데이트가 아니에요.”
어라? 그러고 보니 트릭스 씨는 남자였던가?
그 전에….
“데이트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저와 몬스터를 배회하는 숲으로 정찰하는 구간이 같아서 그냥 같이 만나는 것뿐이에요. 최근에 세피르와 이비가 저 대신 정찰임무를 해줬으니까. 최소한 세피르는 쉬게 해줘야죠.”
“그거 하나는 기억해둬.”
켈모리아는 고개를 살짝 꺾은 상태로 진득한 녹안으로 나에게 충고를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가만히 기다려서 켈모리아에게 어떤 내용을 들을지 조용하게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쐐기를 박아 넣듯이 이야기했다.
“사역마와 너를 따르는 신수는 항상 옆에 붙여놓는 것이 좋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켈모리아에게 인사를 한 뒤에 밖으로 나가서 마법 기동반의 상징이 되어버린 검은 망토를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날아가는 이비를 보내주고 나 또한 트릭스 씨와 합류하기 위해 마법진으로 들어가서 공간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
햇빛은 따듯했지만 그림자 속은 시원했다. 아직까지는 봄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환경이 주변에서 퍼져나갔고, 공기 속에 섞인 풀내음은 폐를 한 가득 채우고 난 뒤에 빠져나갔다. 트릭스 씨는 중갑을 입고 앞에는 거대한 방패를 내세우며 오우거의 몽둥이를 막은 것이 아닌, 역으로 밀어내며 부러뜨리기 시작했고 신기루의 병사 3명이 창으로 찔러 넣어 오우거를 즉사시켰다.
각각 목과 뇌 심장을 관통당한 오우거의 시신이 뒤로 넘어가면서, 확장시킨 거대한 방패를 한번 접은 트릭스 씨는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말 이곳은 몬스터가 난폭하다니까. 그래도 아리엘이 있어서 좀 더 수월하게 진행이 가능하니 좋네.”
정찰임무가 이렇게 전투가 있으면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것은 트릭스 씨가 여성처럼 곱고 연약하게 생긴 것에 비해, 방패를 이용한 돌파기술이라던가 굳건한 방어술은 어느 남자들보다 더 튼튼했다.
“저도 트릭스 씨를 다시 보게 되었어요. 의외로 든든한 사람이네요. 저번에 빅터가 트릭스 씨의 무용담을 이야기해주었지만 실제로 보니 영광이었어요.”
마지막 오우거를 쓰러뜨리고 나서 뒤에 싸늘한 시체가 된 오우거들을 돌아보았다.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는 불꽃에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지만, 오우거 4마리가 몽둥이로 트릭스 씨의 방패를 가격해도, 움직이지도 않고 오히려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라면서 도발하는 그 모습.
트릭스 씨 안에 있는 정기가 매우 탐스러워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니, 표현이 좀 잘못 되었는데 아무튼 트릭스 씨가 강하다는 사실은 이렇게 실물로 보게 되어 좋았다.
“이제 카페에 가서 시원한 음료라도 마시자. 정찰임무는 항상 30분 늦게 시작해서 30분 일찍 끝낸다는 것이 내 원칙이니까. 지금 이 시간이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시원한 레몬에이드를 마실 수 있어.”
“그거 좋네요. 그런데 작전시간이 총 합해서 1시간을 까먹고 시작하는 건데, 어떻게 지정된 목표까지 정찰을 할 수 있는 거에요?”
30분 늦게 출발해서 30분 일찍 끝낸다고 해도, 목표지점까지 전부 돌고 올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을 때는 트릭스 씨가 “그건 기업비밀이야.”라고 말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처음부터 전력질주를 한 것도 아니었고, 억지로 동선을 일직선으로 돌파한 것도 아니었지만, 지정된 시간 안에 모든 정찰임무를 끝낸 것이 신기했다.
동선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쉬지 않고 걸은 것만으로도 이런 기록을 내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학원제를 한다면서? 빅터와 같이 가줄까?”
“아뇨. 바쁘실 텐데 오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한가지 확인할 것은 있네요.”
트릭스 씨의 방패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나의 얼굴을 본 것일까? 트릭스 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상급마법도 막아주는 보호가 걸려있어. 축복까지 걸려 있어서 아리엘의 환술도 잘 걸리지 않게 해주지.”
“그렇군요. 어쩐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방패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정도까지 가공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트릭스 씨는 카페에 도착해서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또 하나의 이변을 알아차렸다.
“기업비밀은 혹시 신발에 달려있는 가속마법이 처리된 것 때문이죠? 게다가 개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영향을 받게 되어있네요?”
“어라? 들켰어? 확실히 이 신발 때문에 정찰할 때는 좋다고 하지.”
트릭스 씨는 자신의 머리를 살짝 긁으면서 실토하기 시작했다. 같이 걷기만 해도 착용자 외에 다른 사람들까지 발걸음이 빨라지는 가속마법. 너무 비싸 보이는데 어떻게 구한 것인지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최근에 레몬에이드에 중독이 되었는지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레몬에이드만 시키고 있었지만, 트릭스 씨는 나를 따라 레몬에이드를 주문하면서 등에 짊어진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무거운 게 몸통만 막아주는 줄 알았는데, 확장을 해서 온 몸을 다 방어해주는 구조였군요.”
“내 등은 아군에게 맡기니까 전방은 확실히 막아주는 거야. 예전에는 이걸로 드래곤이 내뿜는 브레스까지 막아봤어. 다만, 마법이 너무 강해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버렸지만.”
드래곤의 브레스까지 막았다면 전설의 아이템 중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방패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확인할 수 있을 때 확인해야 하지만, 지금은 내 앞에 있는 레몬에이드에 집중을 하면서 트릭스 씨의 다음 이야기를 들었다.
“아리엘은 내일 있을 학원제 때문에 많이 바쁘지?”
“체육대회와 학원제를 연달아 하니까 힘들긴 하죠. 하지만 제 경우에는 켈모리아를 보호하는 비서역할이라서, 학원제를 즐기지 못하고 끝날 때까지 켈모리아 옆에 있어야 하거든요.”
트릭스 씨는 나의 대답을 듣고 부드러운 미소와 눈빛으로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래서 아까 너무 바쁘면 오지 말라고 했구나. 아리엘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지?”
나는 레몬에이드를 입안을 적시면서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트릭스 씨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줬다.
“아리엘은 아직 어리니까. 응석부리고 기대도 되는 나이야.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그때는 빅터도 같이 힘이 되어줄 거야. 그러니 남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생각하지 말고, 도움을 구하고 싶으면 확실하게 구하는 것이 맞아.”
트릭스 씨의 말을 이해 못한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고집이 강해서 트릭스 씨의 말처럼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는 어색해서 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