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79
79
“이래서는 얼마나 잠이 들 것 같아?”
“깨우지만 않는다면 1주일도 더 잘 거에요.”
곤히 자고 있는 류하 씨를 바라보는 초량의 눈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 하룻동안 자도 걱정이 되는데, 1주일 정도 잘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깨우지만 않는다면’이라는 말을 한 이유는 류하 씨의 꿈속으로 들어가서 깨우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은 불면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재우는 방법 밖에 생각나지 않으니까.
“류하 씨는 분명 한 나라의 여제로 신하들에게 많이 시달리나 보네요?”
“어라? 그건 어떻게 알았어?”
“신하들이 편을 갈라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면 어느 사람이라도 지치고 힘들기 마련이라고요? 저도 켈모리아에게 많이 시달려봐서 알아요. 지금까지 해줘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류하 씨에게는 그게 불면증으로 자리잡은 거고, 이 집안에 있는 부적들은 대략적으로 10개정도 되어있는 걸로 보면, 저주를 사용한다고 해도 침입은커녕 근처에도 오지도 못하고 부정한 기운들은 싹 날아가겠네요.”
그러면 이제 근본적인 문제로 넘어가서 불면증이 있을 법한 그 일에 대해 물어볼 시간이다.
“초량 씨는 어째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 알고 있죠?”
“이건 류하 님이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어. 비밀이라고 했다고. 나는 적어도 류하 님의 호위기사니까.”
“비밀이라뇨? 그 정도로 개인적인 일이에요? 그래도 제가 알아야 생각을 하죠?”
초량 씨는 내적 갈등에 휘말리면서 머리를 잠깐 긁적이더니, 한 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이야기를 할 마음이 생겼는지 실토하기 시작했다.
“류하 님은 의외로 공적인 일은 잘 해결하시거든, 하지만 의외로 카일에 대한 것만 집착을 해서 최근에는 마왕님과 또 한 명하고 공식적으로 결혼했잖아? 백장미 촬영하다가 느닷없이 결혼식으로 연결되어서 아무런 하객도 없는 초스피드 결혼식. 그것 때문에 지금은 또 다시 마음의 병을 앓고 잠을 주무시지 않아.”
그러면 카일 씨의 결혼 소식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있다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 드려야 해요? 카일 씨에 대한 집착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할까요?”
“그것도 좋겠지만,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천천히 생각을 돌렸을 때. 아무래도 류하 씨에게 걸린 암시는, 자신이 직접 걸었다고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을 통해 괴로운 것은 잊고 싶다는 류하 씨의 마음이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결국 카일 씨를 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 한 것밖에 없다.
“꿈으로 들어가볼 테니 잘 지켜주세요.”
“응. 알았어.”
평범하게 침투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량의 정기를 소모하기로 했다. 마음의 병에 대한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치료를 하면 되겠지만, 그 치료는 너무 예민한 부분을 다뤄야 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사실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정신을 집중하고 류하 씨의 꿈으로 들어갔을 무렵. 잠을 잘 때의 꿈으로 자동 침입을 하는 것과 달리, 지금 내 몸은 류하 씨의 정신으로 직접 들어가는 침투였다. 꿈속으로 류하 씨를 찾았을 때는 거대한 소나기가 내리고 있는 한 가운데에서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리엘의 재주는 신기하구나. 여는 이 소나기가 왜 쏟아지는지 이해할 수 없는데, 그대가 직접 여를 재웠으니 알고 있지 않는가?”
“그건 초량 씨에게 직접 들었어요. 카일 씨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싶지 않아서, 맹목적으로 일을 하기로 계속해서 암시를 했다는 것을 말이죠. 켈모리아라면 이 의뢰를 분명히 거절하려고 했을 거에요.”
“그렇군. 여는 지금까지 카일이 그리워서….”
나는 류하 씨에게 다가가서 우산을 만들어 씌우려고 했으나, 확실히 지금 이렇게 다 젖어있는 상황에서 우산은 필요 없어 보였다. 대신 나는 비를 거두기 위해 하늘로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을 무렵. 빗방울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류하 씨에게 말했다.
“카일 씨는 제가 만났을 때도 뭔가 끌리는 느낌이 있었죠. 류하 씨는 의외로 카일 씨를 많이 좋아했나 보네요?”
“당연하다. 만일 여제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관두고 카일에게 갔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여가 잡고 있는 자리는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라.”
류하 씨는 한숨을 내쉬고 있는 동안 나는 그나마 있던 정기로 카일 씨를 만들기로 했다. 꿈속에서는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고, 뭐든 것을 해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으니까. 공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켈모리아가 말하던 내 진정한 힘이라면, 이런 식으로도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꿈에서는 확실히 빌려드리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잠에서 일어나세요. 대신 현실에서는 카일 씨에게 확실하게 와달라고 말해주고요. 카일 씨는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리를 꼭 지키려는 멋진 남자니까요.”
“그래도 마왕의 텃세가 심하다. 현실에서는 자주 만날 수 없지. 그래도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듯이 꿈속에서만큼은 원하는 데로 즐기겠다.”
나는 다시 류하 씨의 정신 속에서 빠져나오면서 극심한 한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맞은 소나기나 그런 것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정기가 조금 부족했는지 서서히 온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리엘? 괜찮아?”
“지금 제 눈을 보면 안 되요. 초량. 조금만 더 있으면 괜찮아질 거에요. 그러니 지금은 이대로 놔두세요.”
“몸은 왜 이렇게 차가워? 게다가 많이 떨고 있잖아? 봄이라고 해도 지금은 오후라서 따듯하다고?
결국 내 말을 듣지 않은 초량은 나의 얼굴을 보기 위해 두 눈이 마주쳤을 때는, 홀려버린 듯이 눈빛이 탁해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입술을 빼앗아갔다. 나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서 눕혀놓고 계속해서 내 입술을 탐하는 초량에게 저항을 하고 싶었지만, 애처롭게도 지금의 내가 저항 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었다.
내 머리는 이제 그만 흡수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안에서 따듯한 온기가 온 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바람에 정신 없이 정기를 흡수해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잘 모르겠지만 뒤늦게 이성이 본능을 밀어낸 뒤에, 쇠약해진 초량을 밀쳐내고 겨우겨우 중단할 수 있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응급조치라고 할 것까지 없지만 마나를 초량의 몸에 불어넣어 회복력을 올리기 시작했을 무렵. 그나마 정신을 차린 초량이 “정말 무시무시하네…. 순간 나의 자제력을 잃어버릴 줄은 몰랐어.”라고 조용히 말했다.
“울지마 아리엘. 애초에 내가 아리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잘못이지. 몽마라고 해도 꽤나 복잡한 삶을 산다는 건 잘 알았어.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고?”
“기분 좋은 걸로 목숨을 내버리지 마세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잖아요!”
마신의 피를 이어받고 릴리트의 힘이 기반이 된 것인지, 보통은 정기를 흡수하면 상대방은 고통을 받아야 하지만, 쾌락으로 인식 되어버리는 알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상대는 계속해서 맹목적으로 정기를 주게 되니까. 결국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
내 입장에서는 상대가 죽는지도 모르고 정기를 흡수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아무튼 류하 님의 상담은 끝났으니까. 나중에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면 저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하세요.”
“그때도 내 키스 받아줄 거지?”
“초량 씨는 방금 죽을 뻔했다니까요!”
방금 전 상황에 대해 농담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담을 하는 것일까? 영문도 모르는 소리에 소리쳤지만 초량 씨는 뻔뻔하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래도 기분 좋았던걸 뭐. 의식이 혼미해져서 서서히 쓰러지기 직전까지 아리엘을 괴롭힐 수 있다면 좋은 등가교환의 법칙 아냐?”
“뭐에요? 그 팔, 다리 잘려나가는 등가교환의 법칙은?”
무시무시한 등가교환의 법칙을 제시한 초량에게 차가운 눈초리를 날려도,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이는 초량의 모습을 보고 마음 속에서는 거대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류하 님이 행복해 보여서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혹시 류하 님께 말했어? 내가 다 말했다는 거 말이야.”
“네. 그래도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으니 다행이지 않아요?”
꿈에서라도 행복하게 웃고 있는 하란국의 여제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초량에게 뒤를 맡기고 하란국 밖을 나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공간이동마법자체가 불가능해서 하란국 영역 밖을 나가야 가능하니. 이곳에서 그나마 최고로 빠른 출구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여. 꼬마. 일은 잘 됐냐?”
“하멀 아재는 잘 했….”
-탕!
“오라버니…….”
여전히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난폭한 남자에게 압도되어, 마음 속에서는 불만이 쌓여만 갔지만, 하멀 씨는 자신도 볼일을 다 봤다는 뉘앙스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번에 일은 그래도 손쉽게 처리되어서 다행이야. 큰일인 줄 알았더니 그렇게까지 큰 일은 아니더군.”
“하멀 씨는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거에요?”
“이곳에 숨어 지내며 살고 있던 어릿광대를 찾았다. 아주 그냥 죽는 줄 알았어. 강제송환을 붙여놓고 있으니까 지금쯤 수사실에 있는 감옥에서 울고 있겠지.”
“어릿광대?”
하멀 씨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넌 몰라도 된단다. 꼬마야.”라고 답했다. 나에게 몰라도 되는 일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어릿광대를 만나게 하지 않으려고 견제를 하듯이 쏘아붙이는 날카로운 말.
“꼬마라뇨! 저도 어엿한 숙녀라고요!”
“시끄러워. 그런 말을 하는 녀석치고는 발육만 좋지 성장은 잘 안 되어있더라.”
수사관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머릿속에서 화가 나서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날아왔는지 달려왔는지 모르는 검은 차가 하멀 씨와 나 사이를 갈라놓았다.
“로즈웰. 오늘은 2초정도 일찍 왔네?”
“만약에 하멀 씨를 태운다면 그 귀여운 여자아이도 같이 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보다 하란국의 옷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네요.”
여전히 얼굴은 안 보였지만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어린 아이에게 작업 걸지마. 수사관 앞에서 은팔찌차고 감옥 가고 싶어? 그리고 너도 이런 남자 꼬시는 거 아냐.”
“너무하시네요. 하멀 씨. 그저 딸 아이를 보는 것 같아서 좋은 것뿐인걸요?”
하멀 아저씨는 다시 보조석에 타고 나는 뒷좌석으로 탔다.
‘출발과 동시에 떨어져 내리는 물고기들은 어디서 내려온 걸까?’라고 생각을 하던 사이에, 정말 시공간을 가로질렀는지 프리트론에 도착했다는 로즈웰 씨의 말이 들려왔다. 밖으로 나가니 정말 프리트론에 있는 시장 앞에 내려다 주면서, 로즈웰 씨의 차는 다시 시공간속으로 사라지듯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고 안전한 곳까지 다시 뛰어간 뒤에서야, 하멀 아저씨는 나에게 용건이 있는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야. 꼬마. 오늘은 나 때문에 빠른 이동이 가능했으니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
그러고는 곱게 포장되어있는 작은 선물상자를 내 손에 쥐어주면서, 하멀 씨의 금색 눈동자를 올려다보고는 “이게 뭐에요?”라고 물어봤다.
“넌 알 필요 없어. 내 마누라에게 줄 선물이니까 제대로 가져다 줘라.”
그렇게 말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하멀 아저씨를 보며, 레이나 씨를 만날 생각에 왠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