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71
71
켈모리아가 떠나간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그야 마법학원에 없었던 것도 있고, 켈모리아는 절대로 나에게 어디로 가는지 텔레파시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마법 기동반의 일원임과 동시에 켈모리아의 비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말을 안 해주고 가니까 누군가가 “학원장님 어디 가셨어요?”라고 말해도 “저는 모릅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학원장님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겁니까?”라고 나에게 물어봐도 “저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해야만 한다.
덤으로 내가 심심하지 않게 서류로 산을 쌓아버리고 가니까, 켈모리아가 돌아오는 대로 이 노처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이를 갈고 있는 나의 모습을 세피르가 보며 말을 걸어왔다.
“글쎄. 지금은 아리엘이 몽마로 각성을 했다고 한들, 켈모리아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 각성을 시킨 이유가 이상하잖아! 귀여운 서큐버스 비서를 가지고 싶다고 나를 몽마로 각성시킨 게 말이 돼? 뭐 마신의 피를 이어받아서 어차피 마족을 거쳐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마족이 될 필요는 없었다고!”
“학원장님도 많이 외롭나 보네 뭘. 같은 여자끼리 서로 의지하고 잘 살아야지.”
“거기에 인큐버스인 너도 살고 있는 거다만? 그건 그렇고 여전히 사역마에 대한 계약은 깨지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아직까지 너의 주인인 것은 맞지?”
여전히 내 앞에 있는 소년과 페어링이 되어있다는 사실만 기억한 체, 서류도장을 쾅쾅 찍고 있는 나의 손에 맞춰서, 하얀 뱁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비는 총총하고 뛰고 있었다.
그리고 서류를 처리하는 와중에 밀리아의 처리를 확인해달라는 결제서류가 눈에 띄자, 내 왼손에 들려있던 도장은 천천히 멈추고 그 서류를 자세히 읽기로 했다. 켈모리아의 필기체로 이루어진 서류로 보아 자신이 개인적으로 작성했다고 볼 수 있는데, 밀리아를 학생회장에서 해임시키고 마법 기동반에 넣는 것을 동의해달라는 서류였다.
켈모리아는 이걸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잡일을 시켰던 것일까?
“어쩌면 말이야.”
느닷없이 내뱉는 나를 보며 세피르는 고개를 돌렸다.
“켈모리아는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을 알고, 밀리아를 자신의 비서로 둘 수 있었지만, 일부러 내가 오기까지 기다린 것 같기도 해. 이 서류를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학원장님은 먼 미래를 바라보고 행동을 하니까. 학원장님의 비서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편이 확실한 사람을 둬야 하는 거지.”
그래도 밀리아가 지금의 학생회장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그 서류를 주머니 속에 곱게 접어 넣었다. 남들은 이제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며 하교하는 학생들의 잡담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나는 비서의 특권으로 미리 시험을 봐버렸기에 큰 걱정은 없지만, 여전히 나의 키보다 3배정도 쌓여있는 서류에 도장을 찍느라 스트레스를 죽어라 받고 있었다.
“아르트리옴.”
“어라? 뒤에서 “누구게~”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벌써 맞췄잖아?”
뒤를 굳이 안 봐도 오묘한 위화감이 등 뒤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아르트리옴이라고 찍었을 뿐이지만 운 좋게도 맞았나 보다.
“그보다 꿈속에서 저에게 탈피를 하라는 그 의미는 대체 뭐에요?”
“음. 각성을 하면서 릴리스를 전부 흡수할 줄 알았거든, 색욕의 공작의 힘을 모조리 흡수하고 새로운 마계공작이 되는가 했는데, 아무래도 릴리스 쪽에 눈치가 더 빠른 것 같았어. 제대로 된 탈피를 한다면 마신의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중급마족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될 거야.”
내 귀가 제대로 작동하는 거라면, 아르트리옴은 방금 나를 이용해서 릴리스를 없애려고 했다는 의미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째서 릴리스를 없애려고 한 거죠?”
“그녀는 꽤나 많은 변수를 만들거든. 변수는 없어지면 좋잖아?”
“당신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각성할 이유도 없어요. 만약에 또 한번만 더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저의 남은 생애를 평생 당신을 죽이는 것에 몰두할 거에요.”
아르트리옴은 나의 협박에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야 마족이지. 다만, 아리엘의 경우에는 약육강식에 대한 인식이 박혀있지 않아서, 만일 마계로 간다고 했을 경우엔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곧바로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릴리스의 뒤를 이어 색욕의 공작이 되면, 너의 휘하로 몽마들을 모조리 조종할 수 있다고?”
“난 그런 거에 관심 없어요.”
여전히 마신이라는 이유로 자신들보다 밑에 있는 존재들을 소모품으로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장난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고, 밀리아라는 아이를 학생회장에서 내리자고 켈모리아 마그누스가 제안한 서류를 왜 주머니에 넣은 거야?”
내 어깨에 아르트리옴의 양팔이 올라오면서 내 왼쪽에서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이외에도 다른 상념이 들어간 듯한 불길함은 내 가슴속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불안함으로 변환시켰다.
“이건 켈모리아와 직접 이야기 할 거에요. 켈모리아가 이렇게 하자고 서류를 올려도, 이 건에 대해서는 직접 마주보면서 논의를 해야 되는 내용일 테니까요. 아니면….”
내 왼쪽에 있는 아르트리옴에게 고개를 돌리기엔 어려워서 눈동자만 옮긴 체 입을 열었다.
“이것도 당신이 세운 계획의 일부일지도 모르죠.”
“뭐. 나는 악신이 아니니까 그리 나쁜 신은 아니라고? 나는 아리엘이 걱정되니까 강경하게 도와주는 것뿐이야.”
“난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도와주고 싶거든. 아무런 이익이 없어도 리스크를 지불하는 것이야 말로 ‘봉사’라는 개념이잖아? 나는 아리엘에게 봉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마신이면서 행복한 삶이 필요할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행복한 삶이 있어야만 하는 걸까?
그럼 이곳을 창조한 창조신은 행복한 걸까?
“이상한 소리로 저의 집중을 분산시키지 말아주…….”
“후우~”
“꺗!”
귀를 간질거리는 바람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나도 전혀 몰랐던 귀여운 비명을 질러버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잉여신이!”
-콰앙!
뒤늦게 머릿속으로 차오른 분노로 인해 아르트리옴의 옷깃을 붙잡고 그대로 책상에 내려찍어, 애써 쌓여있던 서류들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트리옴은 그 상태로 팔짱을 끼면서 말하기를…….
“그건 그렇고. 정말 귀여운 비명 고마워. 덕분에 지루한 삶 속에서 어느 정도는 유희거리를 찾은 것 같아. 아르트 오라버니라고 불러준 건도 그렇고.”
저 머리를 밟아 으깨고 싶은 충동은 누구보다도 앞서나간다고 자부하지만, 내가 전력을 다해 아르트리옴을 배제하려고 해도 특유의 웃음과 함께 다시 돌아올 뿐이겠지. 내가 구드를 벗고 저 자의 머리를 밟는다고 해도, 내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으로 다가올 것 같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서큐버스 비서를 가지고 싶다는 마법학원장의 욕구라고 하지만, 의외로 무서운 몽마가 탄생해버렸는데? 청순하고 단아하면서도 남들을 빨아들이는 듯한 노을과 같은 눈동자. 달빛을 품은 듯한 긴 은발에 핥으면 달콤할 것만 같은 작은 입술. 거기다가 이제 몽마라는 타이틀까지 있다고? 몽마라고 하지만 개체는 서큐버스와 비슷하네. 뭔가 이상하게 변이가 된 거라서 문제지.”
“조용히 해요.”
내가 조용히 하라고 말을 해도, 아르트리옴이 나를 품평하는 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작은 키에 비하면 스타일도 좋은 편이고, 성격은 반전매력이 있을 법한 약간의 사디스트. 마신인 내가 접촉을 해도 인간들처럼 가슴이 설레게 되는데, 너희 주변에 있는 인간들은 괜찮을지 잘 모르겠다.”
“누가 사디스트에요? 저처럼 여린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여린 사람이 다 죽었다면, 너도 여린 것은 맞…카악!”
결국 예의상 구두를 벗고 머리를 지끈 밟았다.
“누가 사디스트라는 거야! 이 잉여신이! 한번 밟혀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여러 번 밟아서 제정신으로 들게 만들어주지!”
“마신님의 말대로 사디스트는 맞…”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아리엘!”
나의 고함에 세피르는 급하게 뭐라 말하려고 했던 것을 취소하고 없던 걸로 했다. 잠깐 세피르에게 정신이 팔리는 사이에 내 종아리을 더듬는 손을 감지하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음. 검은 스타킹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피부도 매끈한 것 같고. 말랑말랑해서 감촉도 좋군. 그보다 아리엘? 마법학원의 복장은 스커트가 짧아서 그런지 우연치 않게 봐버렸지만, 그래도 검은색을 입을 정도로 성숙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날 내 이성의 끈이 어떻게 끊어졌는지는 몰라도, 정신을 차려보니 반정도 죽어있는 아르트리옴이 깨져있는 창문에 걸려있었다.
***
곧바로 돌아올 줄 알았던 켈모리아는 내가 잡일을 다 끝내고 집에서 쉬는 동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밀리아는 약간 분위기가 저조한 상태로 1층에 내려왔는데, 그 이유는 검은 높새바람에 연관이 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체중이 0.2g이 추가가 되어버렸어.”
“어쩔 수 없잖아. 그때 충격을 받고 디저트를 폭식……읍읍!”
급하게 나의 발언을 막은 밀리아는 얼굴이 새빨간 모습으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디저트를 먹는다고 여자들은 살이 찌지 않는다고! 아리엘도 그때는 많이 먹었잖아!”
“그거야 밀리아가 많이 시켰으니까 그렇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시켜놓고 룬과 내가 그걸 다 먹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러고는 밀리아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실눈을 뜨고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리엘? 너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그거야 몽마로 각성해버렸거든.”
“아. 어쩐지 많이 다르다고 했……뭐어어어어!?”
밀리아는 “믿을 수 없어! 어째서!”라고 소리를 이리저리 외치면서도,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상세히 알아내기 위해 머리카락을 올리거나,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거나, 내 피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을 해봐도, 말만 몽마로 각성한 것이지 외견으로는 인간과 큰 차이가 없다.
다른 것은 나의 체질과 내부, 그리고 더욱 더 증폭된 페로몬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끌어당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별반 다를 건 없네. 그런데 너와 접촉할 때 붕 뜨는 듯한 기분은 뭐지?”
“숨겨왔던 너의 수줍은…….”
“조용히 해! 나는 그 분류가 아냐!”
나의 말을 도끼처럼 깔끔하게 잘라버린 밀리아는 다시 정신을 수습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 건 비밀로 감추는 것이 보통이잖아?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한 거야?”
“딱히 너에게 숨길 사실도 아니거든.”
밀리아는 영리하니까 늦던 빠르던 알아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에게는 비밀로 붙이기 전에, 미리 말해버린다면 나중에 있을 오해라던가 그런 것들이 없어지니까. 게다가 밀리아라면 다른 사람의 비밀을 멋대로 이야기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마법학원의 학생회장으로 학원을 위해 충실히 일하고 있으니까.
그런 책임감을 가진 애를 학생회장 자리에서 내리겠다니.
밀리아의 얼굴을 보면서 켈모리아가 나에게 직접 건의한 서류는 보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