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09
409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깜짝 생일파티는 들어봤지만, 깜짝 결혼식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벤트는 못 들어본 것 같다. 그러면 적어도 내가 턱시도를 입어야지 어째서 웨딩드레스 하나를 입고 잡화점 멤버 사이에 서 있어야 하는 걸까? 뭔가 잘못 되어도 한 참 잘못 되어서 차라리 미래의 나가 “어째서 이 지경이 된 거냐!”라고 찾아와서 뺨이라고 후려칠 기세였다. 원래 다른 이야기에서는 모든 여성들이 웨딩드레스던 뭐던 아무튼 턱시도는 아닐 텐데.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결혼식을 치르지도 않을 것이고.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니까요. 이 상황.”
“주인은 좀 더 기뻐하거라. 오늘은 신부에게 있어서 행복한 날이지 않는가?”
“나는 남자라고!”
턱시도를 입은 레시아가 볼륨감 넘치는 몸매가 다 드러난 상태로, 자신 있게 나를 신부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싫지는 않는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나중에 시기가 정해지면 내 쪽에서 결혼하자고 말을 할 준비는 해뒀을 터. 하지만 루니아 누나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모두 하얗게 산화되어버렸다.
“그보다 왜 나를 자꾸 신부라고 부르는 거에요? 내가 여장해서 그런가? 아니면 이곳 세계관은 정조가 역전 되었다는 잠수함패치라도 했나요? 적어도 시공간술사인 저에게 있어선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무리 창조주라고 할 지라도 제멋대로 이 세상의 규칙이나 진리는 바꾸지 않아요.”
혹시나 해서 이 세상에 어떤 진리나 자연적인 면이 바뀌었는지, 한 번 쭉 훑어보았지만 전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공간술사의 길을 걸어오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조금 늘어났으니 이럴 때라도 한 번 써먹어봐야지.
“아서라. 어떤 형식이든 주인은 짐의 신부가 되면 그만인 일이었다.”
“아 글쎄! 남자는 신랑이라고 몇 번을 말해!”
“허나, 짐은 마왕이니라. 짐 보다 위에 있을 수 있는 자는 없노라. 그것이 설령 짐을 사역하고 있는 주인일지라도, 왠지 주인이 신랑이라고 부르게 된다면 형식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짐이 주인을 따라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사역마가 주인을 따르지 않아서 뭘 하려고요? 하긴 사역마로 소환했을 때는 수평관계로 소환을 했지만 결혼도 수평적인 관계에요. 가부장제는 옛날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뭔가 달라요!”
레시아는 나의 얼굴을 보면서 “대체 뭐가 불만인 것인가? 주인은?”이라고 답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스터는 어째서 지금 결혼 하는 것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인가요?”
하얀 턱시도를 입은 시나가 걸어와서 이야기를 했고, 혼란스러워진 내 머리를 억지로 정리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야 당연히 지금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위험이 되는 존재가 나타나면, 그것부터 해결 하...으웁!”
시나의 입으로 인해 순식간에 입막음을 당했고 그에 맞춰 루니아 누나는 이와 같이 말했다.
“자. 신랑과 신부는 키스...어라? 벌써 여신님께서 하고 계시네요오. 아무리 신부가 예쁘고 참기 힘들어도 카메라를 찍을 각도는 줘야죠오!”
“이 비둘기 녀석! 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주인 조금만 기다리거라! 짐이 뇌가 녹아서 없어질만한 키스를 선사할 테니까!”
레시아의 키스는 올드 스파이스에서 나오는 거와 같은 건가? 뇌를 없애버리겠다니.
“파하아...마스터의 쓸 때 없는 입을 일시적이나마 막았습니다.”
“막는다는 행동에 있어서 전형적인 다른 방법도 있을 거 아니냐.”
“내 신랑인데...”
뒤에서 울적해진 루시피나의 모습은 안 봐도 눈에 선명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마리아와 카렌, 루나는 그저 관전만 하고 있었는데, 루나는 아이돌의 신분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는 거고, 카렌은 내 세포로 만들어진 호문쿨루스이기 때문에. 마리아의 경우에는 은팔찌를 차는 위험감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라기 보단, 레시아의 견제로 올 수 없는 것뿐이었다.
“후후후. 짐의 차례로군. 주인이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우읍! ”
레시아는 자신만만하게 내 앞으로 다가서다가 기습공격을 당하고는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진하게 이어져오는 뜨거운 숨결과 달콤한 감각은 역으로 레시아를 미치게 만들기 시작했는지, 나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이 서서히 풀리고는 레시아를 지탱해주던 다리까지 풀려버렸다.
“방심했...우으으.”
다음은 루시피나였던가?
나는 고개를 돌리며 잘 세공 된 듯한 루비와 같은 붉은 눈과 마주했을 때. 뭔가 낌새가 수상하다고 판단한 루시피나는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신랑? 잠깐만. 그 눈 뭔가 이상해. 마왕님이 단번에 쓰러질 정도면 지금 보통이 아니란 소리잖아?”
“뭐, 당연히 보통은 아니죠. 여태껏 당해온 것이 얼마인데. 필살기를 얼마 맞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어떻게 해야 되는 지는 잘 알게 되더라고요. 그럼 실례할게요.”
거의 초 근접거리인 상황에서 루시피나와 입을 맞추고 입 안으로 침투까지 했다. 키스를 당한 루시피나의 눈에는 황당함과 당혹감과 기묘함 등. 지금까지 벌어질 수 없는 것을 전부 경험하고 있다는 듯이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이내, 레시아와 비슷한 반응으로 다리가 풀려서 털썩 주저 앉은 형식이 되었다.
“우리가 신랑을 너무 많이 괴롭혀서 신랑이 복수의 칼을 갈아왔...”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마, 저기 관전하고 있던 루나와 마리아, 카렌 뿐이겠지. 마리아는 이미 공간을 도약해서 사라졌는지 오래고, 루나와 카렌은 기계식 골렘에 몸을 맡긴 체 푸른 하늘로 올라가서 달에 가는 듯 보였다.
“봄의 신부는 이렇게도 무섭군요오. 이거 많이 공부가 되었어요오. 그러면 오늘은 간의 결혼식 겸, 백장미의 촬영은 그만두도록 할까요오? 우후훗.”
-덥썩
“어라아? 카일? 누나의 어깨를 붙잡은 이유가 뭐에요오?”
느긋하게 웃고 있으면서도 루니아 누나의 어깨가 서서히 떨려오는 것을 감지하며 입을 열었다.
“어디 가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으음. 아! 맞다! 카일! 오늘은 제가 바쁜 약속이 있어서 나중에! 읍!”
바쁜 약속이 있건 없건 사람을 지금 사지로 몰아넣고 이런 꼴로 만들어 놓은 게 누군데? 절대적으로 나는 이 일에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복수를 하기 전까지는 분이 풀리지 않는 성격인지라, 이 바보 같은 혼돈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루니아 누나의 어깨를 강하게 돌려서 내 쪽으로 바라보게 한 뒤에, 그대로 레시아가 혼절할 뻔한 키스를 집행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행동을 취하는 것에도 집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다니.
대략 5분정도 진행할 무렵. 루니아 누나는 땅바닥에 주저 앉고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카일은...무서운 아이...”
얼굴에는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빼면 집행은 성공한 모양이다.
이상한 형태이지만 복수는 전부 완료가 되었고, 간의 결혼식이라는 형식아래에 나는 레시아와 시나를 부부로 맞이했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멀쩡하게 일어서 있던 시나는 나에게 총총 걸어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마스터.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잡화점 멤버로 있을 때부터 가족처럼 지내왔잖아. 결혼에 관련된 거라면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도 그거야. 지금 이렇게 간의 결혼식이든 뭐든 해봐도, 지금의 관계에서 더 특별해지는 것은 없어. 그만큼 우리는 서로 잘 지내왔던 것뿐이야. 결혼은 연인관계를 굳히는 접착제와 같은 것뿐이라고?”
“그래도 모두 마스터에게 함락당한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인 듯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아직까지 땅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며, 이제서야 나는 후회하고 있었으니 아이언 클로를 사용해서 버릇을 고쳐놓을 걸. 괜히 다른 걸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스터의 키스능력은 마치 열풍참.”
“내 키스는 누굴 베어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거냐? 아니잖아.”
그보다 이야기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반지를 건네주기 위해 릴리스의 영지를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릴리스가 뭔가 한 것 같기도 하고...아니, 지금은 이 바보 같은 곳을 빠져나가서 하멀 씨를 만나야겠구나. 아공간에 손을 집어 넣어 내 옷을 꺼내고 탈의실에서 웨딩드레스를 어디서 빌려왔는지 모르겠지만, 깨끗하게 걸어놓은 뒤에 화장을 전부 지우고 남성용 옷으로 갈아 입었다. 하얀 티셔츠와 검은색의 가죽바지와 겉옷을 입은 상태로 나와, 일어나 있던 레시아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걸을 수는 있어요?”
“주인. 언제 색욕의 공작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온 것인가?”
화를 내지는 않고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듯한 분위기였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저번에 제가 반지를 주러 갔을 때요. 릴리스가 제 반지에 사술을 걸어놓은 것 같아요.”
“그렇군. 릴리스 이 녀석. 그런 쓸 때 없는 일을 하다니. 이래서는 짐이 주인을 공략할 수 없지 않는가!”
“대체 뭐에 화를 내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어린애 같은 이벤트도 끝났고 잡화점으로 잠깐 돌아가죠.”
그때 릴리스는 나에게 꼭 달라붙어서 “반지를 끼고 있으면 어떤 여자에게도 지지 않을 걸?”이라는 불길한 말을 남겼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의미였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몽마의 여왕이라고는 하지만 서큐버스 퀸이라서 그런지 반지에 이런 사술을 걸을 줄이야.
잡화점에 돌아왔을 때는 루시피나가 아직까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베니는 그런 루시피나에게 놀아달라면서 고무가 마찰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주변을 통통 튀고 있었다.
“카일. 집안에 들어옴. 인사함.”
“돌아왔어. 팔랑크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네가 지금 이 시간에 깨어있는 거야?”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는 팔랑크스는 굵은 남성의 목소리를 내며, 붉은 안광을 번뜩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일에게 변화가 생김. 마왕과 다른 차원에 있던 창세의 여신을 아내로 맞이함에 따라, 마기와 신성력이 누적되기 시작함.”
“뭐. 그 정도는 일도 아닌...잠깐만 뭐라고?”
마기와 신성력이 사람의 몸에서 누적된다는 터무니 없는 소리를 내가 방금 들은 것 같은데?
“이제 마계든 천계든 어디든지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음. 카일 또 성장함.”
“아니. 사람의 몸으로 마기와 신성력이 누적되면 위험한 일이잖아?”
“괜찮음. 사람은 언젠가 죽음.”
“그건 괜찮은 게 아냐! 이 멍청한 고철 덩어리가!”
“하.하.하. 농담임. 마기와 신성력의 부작용이 없어졌다는 뜻임. 죽지 않음.”
사역마와의 페어링이 강화 되어서 그런 건가? 마나와 마기, 신성력이 한 몸에 다 담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니.
“오! 주인이여! 정말 신기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듯 하다! 사람의 몸으로 3가지의 자원을 품는다는 그 자체는 실로 기적의 경지가 아닌가! 마검사로 알려진 영웅 또한 마나와 신성력밖에 담지 못했거늘!”
이제 내가 여신에게 기도를 드리면 강림하게 되고, 마기를 이용해서 마법을 사용하면 이른바 흑마법이 자연스럽게 나가는 건가? 아니. 3가지의 자원을 담을 수 있는 몸으로 되었다는 소리는, 시공간술사라는 직업에 한에서는 확실히 중요한 일이다.
나는 물체를 던지면서 외쳤다.
“감속.”
그리고 내가 던진 컵은 공중에서 유영하듯이 느긋하게 천천히 날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시공간술사의 길 중급부터는 자신이 의식하는 물체들의 시간을 조종하며, 자신의 신체를 과거로부터 백업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한다는 소리니까.
아직까지 나무늘보처럼 나아가고 있는 컵을 보며, 레시아와 시나는 충격을 받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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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 왕! 날아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