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03

FNL-Phantasm 2017. 4. 14. 00:31

403

 

 

 

아무래도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새벽에 잡화점이 그렇게 한산해서 무엇을 벌어먹고 사냐고 물어볼 수 있는데, 애석하게도 새벽에 잡화점이 그렇게 한산한 것은 아니고, 용사들의 연회 봄 시즌에는 파이론으로 인구가 대거 몰리기 때문에, 새벽에 약을 찾는 용사들도 이곳으로 오긴 한다. 당연히 엘티노스 잡화점답게 대결계가 사람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니 자주 오지 않는 것뿐. 그 외에는 코볼트와 슬라임과 각종 몬스터가 이곳에 들린다.

 

사람은 걸러내면서 몬스터는 걸러낸 적이 없는 것 같은 이 잡화점은, 인간혐오에 걸린 자아가 대결계를 작동시키는 것처럼 보여도, 오히려 도구를 찾는 몬스터의 모습은 찾기가 어렵고, 그들에게 얻어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돈보다 더 좋은 도구들이다. 지금 내 앞에서 도우미 모집 중이라고 푯말을 들어서 나를 한 없이 날카롭게 바라보는 저 여자는 왜 안 걸러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벌써 20분째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공간에서, 검은 고양이인 레시아도, 하얀 올빼미인 시나도, 아직까지 안자고 멀쩡한 윈디마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으니까 내버려 둔다고 해도, 어째서 이 애는 나를 이렇게 날카롭게 쏘아보는 것일까? 사신보다 더 한 죽음의 시선을 나에게 한 가득 보내면서 드디어 침묵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여기는 잡화점이지 도우미는 안 팔아요. 손님. 차라리 용병 고용소에 가서 찾아보는 게 어떨지?”

 

그러자 신경이 곤두설만한 사나운 어조로 응답을 했다.

 

그럼 널 살게.”

 

잡화점의 장부가 아무리 크고 넓고 목록이 많다고 해도, 그 안에서 카일이라는 물품의 항목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로 바뀐 사역마 둘은 텔레파시로 나에게 보냈는데...

 

[저 아이는 짐 앞에서 감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당장 내쫓거라. 아니, 주인이 손을 쓸 필요도 없다. 짐이 오랜만에 실력발휘를 해서 뼈와 살을 분리시키고 이번 년도 할로윈에 장식하겠다.]

[제 앞에서 마스터에게 무례하게 굴다니 뻔뻔하게 그지 없군요. 영혼을 뽑아서 영원히 빛으로 태워버릴 테니 허가를 부탁 드립니다.]

 

누가 보면 모탈 컴뱃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레시아와 시나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일 정도로, 극도로 잔인한 페이탈리티 기술들을 텔레파시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진정을 하라고 열심히 부탁을 하면서, 혹시나 진짜로 내 앞에서 그런 기술을 사용하는 걸 방지하고자, 모든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마나를 회전시키면서 내 앞에 있는 여성에게 입을 열었다.

 

저기? 저는 용병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도 없고.

 

공식적으로 유명하지 않아도 비공식적으로 유명한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잖아. 여기는 의뢰를 하면 받아준다고 하지?”

 

그 의뢰를 받을지 안 받을지에 대한 선택지는 저에게 달렸으니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안 받는 걸로...”

 

웃기지마! 이렇게 가녀리고 연약한 레이디의 부탁을 거절할 셈이야? 그러고도 남자 맞아?”

 

엘리시아도 이 정도로 거슬리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평범하게 넘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새벽에 한 여성의 목소리만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나에게 남자가 맞냐고 물어보고 있는 질문에 즉답으로 .”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면 손님 눈에는 제가 여자로 보여요? 그건 아니잖...”

 

내 앞에 손님은 백장미를 16호를 들이밀었다.

애써 생각한 문장들이 다 무너져서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그건 또 뭐에요? 장작?”

 

신성한 백장미를 보고 장작이라니! 아무리 봐도 당신이잖아요! 잡화점의 주인!”

 

저게 뭐가 신성해?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저에게 의뢰를 한들 그리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들어주지도 않는다고요. 잡화상인마저 용사의 도우미로 데려갈 정도로 급박한 상황은 손님 개인의 사정일지도 모르지만...”

 

시끄러워! 나는 꼭 너를 데려가야 할 이유가 있단 말이야!”

 

평소에 한숨을 많이 쉬어서 이제 한숨 중독자라고 불려야 할 정도로, 지금 내 안에 크나큰 한숨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고집을 너무 부려서 아무래도 사연 하나는 듣고 내보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허브티를 마시기 위해 창가 쪽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하고 물을 끓이러 자리를 비웠다.

 

총명한 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아이!”

 

총명이라기보단 너무 사나워.”

 

윈디가 내 뒤에 쫄쫄 따라와서 손님에 대한 감평을 하고 있는 사이에, 붉은 색의 마법진이 그려진 바닥 위에 물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왼쪽은 녹안에 오른쪽 눈은 보라색 눈이었던가? 꽤나 매치가 안 되는 오드아이는 내 생전 처음 봤다. 키는 나와 마주했을 때 거의 동등했으나 굽이 높은 걸 신었으니 약 3cm정도를 빼면 대략적인 키는 165정도.

 

그리고 대화를 했을 때도 위화감을 받았던 것은 아마…….

 

무서울 정도로 귀한 집에서 자랐나 보네.”

 

? 그건 어떻게 알아요? 머리가 금발도 아니어서 귀족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이곳이 언제부터 금발=귀족이 된 거야? 귀족은 애초에 금발이 아니어도 된다고. 어쨌든 기본은 검은 머리카락임에도 불구하고, 끝부분이 하얗게 탈색을 하기 시작한 거라면, 미약하게나마 강신을 해본 적이 있을 거야.”

 

피부는 누가 보면 알비노 증후군에 걸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하얗다. 아니, 사실상 알비노 증후군이 맞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귀족이라뇨?”

 

귀족은 근친이 가능하잖아. 눈만 붉은 색이 아닌 것뿐이지 알비노 증후군일지도 몰라. 아니면 그와 비슷한 무언가라던가. 열성유전자가 발현된 사람들끼리는 100% 발현시킬 수 있으니까. 사람들의 DNA속에는 무수한 열성유전자와 우성유전자를 내포하고 있는데, 근친을 하면 할수록 우성유전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열성유전자의 발현확률이 매우 높아지지.”

 

윈디는 나를 보면서 유전에 대해 살짝 핥아보셨나 봐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다시 입을 열었다.

 

핥았다는 소리는 또 뭐야. 읽을 책이 없어서 요즘 다른 곳에서 빌리고 있다고. 당연히 아직까지 얕은 지식일지도 모르고 말이 안 되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이렇게 지식을 습득한 이상 이렇게 생각해볼 수 밖에 없어. 적어도 책을 읽고 아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상세하게 질문하지 않아도 추측만으로 대략 알 수 있게 되니까. 일부러 차를 끓이는 이유는 저 아가씨가 정말 귀한 집에서 자랐다면, 내가 차를 끓였을 때도 한 소리를 하겠지.”

 

일부러 물의 온도를 생각하지 않고 끓이고 있는 거니까.

윈디는 그런 나를 보며 오오!”라고 감탄했다.

 

애초에, 너는 인간계에 오래 있었으니 다양한 사람과 만났을 거 아냐? 이런 걸 신기해하면 안 되지.”

 

그래도 뭐라고 해야 말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일 씨는 손님이 들어온 그 순간부터 정보전을 하고 계시잖아요? 카일 씨의 가드가 왜 이렇게 튼튼한지 엿본 기분이에요.”

 

걸음걸이라던가 이상한 푯말로 나를 쳐다보는 그 이전부터, 이미 정보전은 시작해야 맞는 거니까. 아무튼 싸구려 허브티 가루를 찻주전자에 먼저 넣고, 뜨거운 물을 쏟아 부은 상태에서 깨끗한 찻잔 2개를 가지고 나왔다.

 

기다렸...”

 

꺄아악! 슬라임이다! 슬라임이있어!”

 

연노랑 빛의 슬라임인지, 아메바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베니가 고무가 마찰되는 특유의 소리를 내며 손님을 몰아넣고 있었다. 분명 베니는 호의를 가지고 다가갔는데 상대는 저렇게 질색을 하면서, 어디서 꺼냈는지 모르는 단검을 허공에 휘젓고 있었다.

 

그 애는 애완동물이라 생각하세요. 적어도 해치지 않으니까 안심해요.”

 

이걸 보고 어떻게 안심을 해! 몬스터가 안에 있잖아!”

 

내가 분명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하라 하지 않았던가? 편견을 가진 눈으로 보아 몬스터를 책에서만 본 모양이다. 얼마나 갇혀서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몬스터를 평생 못보고 살아온 사람도 존재하니 그리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베니. 손님에겐 가지 마라. 싫어하신단다.”

 

나의 한 마디에 베니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서 머리 위로 올라오기 위해 등반을 시작하는 동안, 손님 앞에 빈 찻잔을 넣고 연 녹색의 물을 부어주기 시작했다.

 

백장미에 대해 그렇게 잘 알면서도 몬스터 하나 만나본 적도 없나 보네요?”

 

, 그건 아니야! 나도 많이 본 적 있다고! 걃스나 욟스 같은 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름을 가진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아. 물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거고. 그보다 저 걃스하고 욟스라는 이름은 발음도 어려운데 많이 퍼진 이유는 뭘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반응을 보기로 했다.

 

형편없는 차네. 딱 봐도 알겠어. 그리고 나는 홍차가 더 좋거든? 얼 그레이 같은 거 말이야.”

 

처음 만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군요. 그래서 손님이 왜 저를 데려가서 무슨 난리를 칠 것인지 이야기나 해보세요.”

 

의뢰를 들어주는 거지!”

 

이야기만요.”

 

혹시나 이상하게 끌려가는 상황이 나오지 않기 위해 사전차단을 했다. 나의 한 마디에 고운 이마가 일그러졌지만, 다시 활짝 펴지면서 좋아. 이야기를 해주지.”라고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애석하게도 고귀한 몸이라서 제대로 된 신분은 밝힐 수가 없어.”

 

가출했나 보네요.”

 

!”

 

나의 정확한 추측에 다시 한번 얼굴이 일그러진 손님을 보며, 잡화점은 이제 가출한 소녀까지 받는 거냐? 그런 짓을 하면 내가 오히려 불안해지잖아.

 

어떻게 그런 추측이 나오는 거지?”

 

그야 당연히 답답한 집안에서 조숙하게 있지 않는 소녀가, 세상은 어떠한 곳인지 궁금해서 남몰래 변장한 다음 가출을 해서, 어쩌다 보니 노예상인에게 잡혀가는 이야기가 50%. 몬스터에게 끔찍하게 당하는 이야기가 30%. 그 외에 남은 19%는 로맨스 쪽이고, 남은 예외 1%인 이곳에 오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나요?”

 

이곳은 그냥 예외 1%로 자리잡아야 하는 이유 따위 없지만...

아무튼 저 수치들은 단순히 내가 생각이 나는 대로 말한 것뿐이지, 정확한 수치가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 하지만 얌전하지 못한 영애가 답답함을 느끼고 가출하는 사건은 사방팔방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하고.

 

의외로 날카로워. 그 바보 같은 호위기사 같아. 기분 나빠.”

 

여기에 없는 남에게까지 독설을 퍼붓는 것은 그만두고, 이제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줄 차례인데요. 솔직히 이름을 몰라도 상관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부르기가 어려워서 이름 좀 알려주세요. 저는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을 하고 있는 카일이라고 해요. 그 바보 같은 백장미의 모델이름을 봤다면 익숙하겠죠.”

 

“‘르테라고 불러.”

 

가명이죠?”

 

왠지 당신은 더 싫어질 것 같아.”

 

나를 보는 눈이 이젠 적의로 바뀌면서 이젠 내가 경계를 당하고 있었다. 차라리 나를 믿지 못하고 그냥 떠났으면 좋겠다.

 

,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아버지와 관련은 없어 보이니까. 이야기나 해볼까?”

 

세상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또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경청하기로 했다.

=============================================================================================

화장실에서 담배피는 손놈들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