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98

FNL-Phantasm 2017. 4. 9. 10:11

398

 

 

 

모르는 토끼는 따라가지 않는다는 평생의 교훈은 우리들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 토끼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귀만 토끼 귀를 하고 있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통해 지상에 있는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만, 혀에 무슨 전격마법이라도 달아놨는지. 아니면, 치한이라도 퇴치하기 위해서 키스를 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그런 무시무시한 생명체의 제안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좋은 생각이긴 했는데...

현명한 판단은 되지 못했다.

 

주인님! 주인님! 놀아줘요!”

놀아주세요! 안아주세요! 핥아주세요!”

주인님!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요?”

 

어린 달 토끼들에게 둘러 쌓여서 레이드 몬스터가 되어버린 나는, 모든 대화에 태클을 걸고 싶었으나,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수가 나에게 붙어버렸다. 보통 밸런스를 위해서 24인이든 40인이든 하지만, 이곳은 그 인원수보다 더 낮은데도 불구하고 정예멤버처럼 나의 정신상태를 갈갈이 찢어놓았다.

 

그러니 저희 말에 얌전히 따라줬다면, 고생할 필요도 없을 텐데~”

 

하트는 옆에서 아직까지 날 포기하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농염한 목소리로 왼쪽에 찰싹 달라붙어서 입을 열고 있었지만, 이쪽에 남아있든, 저쪽으로 넘어가든, 지옥이 펼쳐지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본다.

 

어차피 이곳 저곳에서 고생할 거라면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나아. 그리고 대체 이 아이들은 뭘 보고 자라왔길래, 아까 위와 같은 이상한 대사를 붙여놓는 건지.”

 

자세히 보니 그 어린 달 토끼의 작은 손에는, 루나의 만화책으로 추정되는 붉은 색의 표지가 확연할 정도로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아이의 만화책을 뺏고는 아직까지 어린 달 토끼들과 엉켜있는 사이에서, 내용을 빠르게 훑고는 다시 그 아이에게 돌려줬다.

 

다행히도 그 책의 내용은 동화책으로, 옛날에 한 소녀가 길을 잃고 숲 속을 방황했는데, 올빼미 하나가 나타나서 울고 있었다. 소녀는 올빼미에게 올빼미야! 우리 집이 어디인지 알고 있니?”라고 묻자. 올빼미는 동화 속에 나오는 올빼미는 왜 다 말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왜 허구한날 너희들과 같이 바보 같은 아이들은 숲 속에서 길을 잃는 거야?”라고 화를 내며 그 아이에게 날아가서 눈알을 파먹...

 

어디가 다행이야! 내용이 완전히 잔혹동화잖아!”

 

오오, 독백에 태클을 거는 정열!”

 

오른쪽에는 다이아가 어린 달 토끼 하나를 쓰다듬으면서 나의 독백을 봤나 보다. 요즘 내 독백은 그냥 모두에게 공개되는 하나의 컨텐츠라도 되는 걸까? 요즘은 나 혼자만 있을 때 독백하는 습관이 늘었다. 지나가는 개도 읽을 것 같고, 밤에는 쥐가, 낮에는 새가 읽을 것 같고, 길가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마저 나의 독백을 읽을 것 같으니까.

 

그 전에 다이아와 하트라고 했던가? 너희는 대체 왜 쉬러 안가는 거야? 그렇게 열심히 춤추고 노래했으면 너무 피곤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머나? 관리자님을 놔두고 우리들에게 관심을?”

 

너희들은 플로니아의 후손들이잖아. 그러면 나와 생판 남은 아닐 거 아냐.”

 

그러자 하트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나를 마냥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그리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지인 6명만 거치면 모두가 간접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그런 이론도 존재하니까.

 

그렇군요. 관리자님이 좋아하는 이유도 다 있었네~.”

 

하트는 왠지 모르게 더욱 더 달라붙으면서 입을 열었다. 너무 붙어서 내가 다 불편할 정도라고 해야 할까?

 

주인님? 관리자님과 어떻게 만났는지 저의 침대에서 이야기를 해주실까요?”

 

뭘 침대에서 이야기 해! 이야기라면 여기서도 가능하잖아!”

 

정말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지금은 죽고 없는 루나 알파의 체세포로 계속 배양되고 있는 달 토끼들이라고 하지만, 비슷하게 생긴 외모에서 각자 다른 개성이 튀어나오는 것은 달의 기술력인가? 아니, 어찌 되었든 지금 매미처럼 달라붙어있는 하트를 떨어뜨리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까. 관심과 사랑에 대해 둔감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피하고 있는 거네요?”

 

하트는 위와 같은 말을 한 이후로 계속 나에게 붙으며 유혹을 하고 있지만, 다이아는 그런 나를 계속 바라보면서 상황을 파악했는지 말을 했다.

 

하트. 지금은 떨어지는 게 좋아. 주인님의 신부후보님들께서 무서운 얼굴로 보고 있으니까.”

 

무서운 얼굴로 보고 있다는 소리는 이쪽을 보고 있다는 소리이고, 고개를 뒤로 돌았을 때는 칠흑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레시아와, 순백의 천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시나가...말 그대로 엄청 무서운 얼굴로 보고 있었다.

 

주인?”

마스터?”

 

, 그러니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면, 우선 전부 설명할 수 있으니까 그 손에 있는 마법은 치우고! 얘들아 도망가! 너희까지 말려들면 안 돼! 여기는 나 혼자 막을 테니! 너희들은 어서 네팔렘을 찾!”

 

-파앙!

 

그래도 달 토끼들의 무고한 희생을 줄이고자 폭발은 작았어도, 아픈 것은 똑같으니 나는 저 멀리 날아가서 싸늘한 흰색 바닥에 누워야 했다.

 

주인은 어딜 가든 여자를 낚아 올려서 이쪽이 힘들군. 뭣처럼 짐이 주인을 픽업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다.”

 

픽업이라는 단어보단 데려왔다라는 단어를...”

 

-파악!

 

검은 구두로 들어올리고 있는 나의 머리를 짓눌러버렸다.

 

그 이상 시선을 올리면 속옷이 보이니 안 된다.”

 

그건 미리 말하라고!”

 

레시아 월드 했던 사람이 뭐가 부끄럽다고...

 

그보다 주인? 루나링의 말로는 이제 슬슬 태양을 정상화 하겠다고 들었노라.”

 

그거 정말 다행이네요.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밑에 내려가야...”

 

그런데 마스터. 지상에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가 항상 어디로 이동하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건 순식간이구나. 대체 이번엔 무슨 일이 터졌길래 나의 평화로운 앞길을 막는 걸까? 내용을 들어보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안 해도 되겠지.

 

다크 썬 카니발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전통이라고 하지만, 그 덕에 조각상의 크기가 너무 커졌다고 팔랑크스에서 보고가 왔습니다.”

 

제길. 나와 관련이 있는 일이잖아.

 

그보다 달과 잡화점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고?”

 

저는 창세의 여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모든지 할 수 있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천천히 일어서면서 정면을 바라보자, 사무적인 은색의 시선. 얼굴은 무표정을 하고 있는 백색의 소녀와, 자신감으로 입 고리가 살짝 올라가있는 연보라 빛의 소녀가 붉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어째서 토끼 귀?”

 

레시아에게는 검은 색의 길쭉하고 뾰족한 토끼 귀.

시나에게는 흰색의 널찍하고 축 쳐진 토끼 귀가 달려있었다.

 

그야 여기는 달이니까 말이다.”

여기는 달입니다. 마스터.”

 

아니, 여기가 달이라고 해서 레시아와 시나가 굳이 토끼 귀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건 뭔 나더러 토끼 귀를 착용하라고 나중에 재촉하는 것이 아닐...

 

그러니까 주인도 토끼 귀를...”

 

안 써요!”

 

레무룩.”

 

그래도 안 돼!”

 

실망으로 얼굴이 물들어가는 레시아에게 한 소리를 하듯이, 시나는 사무적이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마스터는 그런 토끼 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축 쳐진 토끼 귀를 선호하는 타입...”

 

그것도 아냐!”

 

시무룩.”

 

그래도 안 된다고!”

 

시나의 표정은 무표정이지만 서서히 그늘이 지기 시작하면서, 어두운 분위기가 서서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니, 지금은 조각상의 크기가 너무 커졌다고 했으니, 잡화점으로 빨리 돌아가봐야 할 때인가?

 

바니 걸 코스프레는 정말 잘 어울렸는데. 그렇지 않느냐? 비둘기?”

동감입니다. 그리고 올빼미 입니다. 냥캣.”

 

둘 다 구석에서 궁성거리지 말고 기껏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지금 당장 잡화점으로 내려가죠?”

 

싫다! 주인이 이걸 쓰기 전까지는 내려가지 않겠다.”

부정합니다. 저는 마스터가 이걸 쓸 때까지 여기에 있겠습니다.”

 

골치가 아프다 못해 새로운 암이 생성될 지경이었다. 단단히 삐쳐있는 저 둘의 마음을 어떻게 돌려야 할지 모르겠으나, 하트는 나의 어깨를 툭툭 건들이더니 귓속말로 전달했다.

 

저들도 여성이니까, 가끔은 남자답게 몰아붙여야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여성이기 이전에 마왕이고 여신이다.

보통 인간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박진감이 넘치는 상대인데...

 

하아.”

 

오랜만에 평범한 한숨 에디션을 해제했다. 가끔가다 보면 그냥 한숨을 쉬었다고 말하면 되는 걸, 왜 이런 식으로 서술하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한숨을 원동력으로 삼아 레시아와 시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선, 두 소녀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 순서는 상대적으로 키가 큰 레시아부터 그 다음은 시나에게, 뺨이라고 해도 최대한 입술에 가까운 위치였다. 군더더기 없이 나도 부끄러우니까 빠르게 작업을 끝낸 후에, 나는 빠르게 뒤를 돌아서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리고는 입을 열었다.

 

. 빨리 가죠. 시간은 금이니까.”

 

! 알겠노라. 주인이 그렇게 급하다고 하는데, 짐이 흔쾌히 나서줘야 하는 일이로군!”

명을 따르겠습니다. 마스터.”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기분이 풀렸는지 발걸음이 상당히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하트는 나를 바라보면서 엄지를 들어 올리고 있었고, 다이아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레시아가 귀환 마법진을 그린 후에 잡화점으로 날아갔을 무렵. 내 앞에서는 이프리트와 루시피나가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다가왔다.

 

신랑! 신랑! 큰일이야! 조각상이! 조각상이!”

카일. 조각상이 슈퍼파워.”

 

이프리트. 대체 슈퍼파워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데요? 그보다 루시피나. 진정 좀 해요!”

 

앞치마를 입고 나에게 달라붙으면서 진정하지 못하고 있는 루시피나와, 여전히 이불을 돌돌 말아서 다니고 있는 이프리트를 지나서, 아공간을 열고 조각상을 보았을 무렵.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전에는 내 손바닥만 한 것이, 내 무릎까지 커져버리게 된 것.

 

나는 잡화점 물품에서 청진기 모양처럼 생긴 것을 꺼낸 후에, 조각상에게 대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었다.

 

예예예예 예예예 예! 오호호호호!”

 

-빠빠빰! !


효과음 담당까지 호응을 해주고 있다니...

 

예예예예 예예예 예! 오호호호호!”

 

이건 대체 무슨 상태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나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나~”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서 혼돈으로 뒤섞여버린 정신상태를 수습한 후에, 나는 천천히 조각상과 교신을 하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트롤송을 부르고 싶으면 제발 다른 곳에서 불러주면 안 될까?”

 

난 조각상이라고 이 멍청아! 내가 어떻게 움직여! 네 목 위에 달린 건 장식이냐!”

 

여전히 독설이 강하구나.

 

그나저나, 네가 노래를 부를 정도로 신나는 일이 있는 건가? 급성장을 한 것에 대해 그렇게 기뻐?”

 

이 조각상을 성장시키는 요소는 어떤 특유의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감정을 먹고 살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조각상에게 물어보면서 대답을 기다린 끝에, 그 조각상에게 드디어 답장이 나타났다.

 

시끄럽고 저리가. 난 노래연습 해서 히든싱어에 나가야 한다고!”

 

잘도 심사하겠다! 이 자식아!”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조각상과의 대화는 여기서 끝을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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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 굴러도 힘든 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