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51
51
무시무시한 깃털 세례는 하늘에 비가 내리는 것처럼 떨어져 내려왔다. 지금에 와서 문득 생각이 난 거지만, 하피들의 깃털은 1초만에 재생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종족이 아닐까? 아니면 깃털이 다 빠져서 날 수도 없을 텐데?
-피피핑!
지금은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 우선 살아남기 위한 생각을 해야 하는데, 무슨 하피 깃털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니.
“비겁하게 숨어있지 말고 나오란 말이야!”
거북이처럼 감싸고 싶은 마법방패지만, 애석하게도 내 몸은 마나를 품을 수 있는 용량이 적기 때문에, 뒤에 2개만 전개를 하고 나머지는 임기응변으로 생성해서 막아야 했다. 어차피 내가 직접 마나를 생성해서 사용하는 거니까. 자원은 무한적으로 있는 상황이니까. 무섭게 쏟아지는 하피의 깃털들을 뛰어다니기 바빴다.
비 사이로 뛰어가면 젖지 않고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헛소리 하는 사람들 전부 잡아와서 방패 없이 이걸 시켜보면 될 것 같았다. 아무튼 내가 도발처럼 외친 대사는 왠지 앞으로 2분 후에 처절하게 당하는 악당의 대사처럼 느껴졌고, 아니나 다를까 공중에서 하피 하나가 내려와, 그 상태로 예리한 바람이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마법방패화 더불어 주변에 있는 나무가 천천히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내 쪽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마법방패를 거두고 환영체를 만들어서 대피하기 시작했다. 이제 가장 크나큰 문제가 남았다면…….
“숲 밖으로 나간다면 분명 하피들이……있네. 큰일났다.”
포위당하고 말았다.
-피잉!
대체 이 날파리 같은 깃털은 어디서 날아오는 거야!
“이곳은 하피의 영토다! 침입자는 모습을 드러내라!”
게다가 하피들은 중갑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무기도 들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하피의 이미지와는 정말 이상하리만큼 색다른 이미지라서 그런지, 녹색의 깃털을 띈 하피의 말을 듣고 나는 천천히 숲의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카멜롯 마법학원장의 비서 겸, 카멜롯 마법 기동반장. 아리엘이라 합니다만, 이렇게 환영을 해주다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나는 일부로 허세를 부리며 천천히 나아갔다. 나의 눈빛은 “나는 언제든지 너희들을 도륙할 있어!”라는 눈빛으로 하늘에 있는 하피들을 바라보려고 했지만, 하필 태양 때문에 똑바로 볼 수는 없었다.
“저는 켈라이노 기사단장. ‘아엘로’라고 합니다. 순순히 따라오시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요?”
그제서야 나는 어째서 안 보이는 곳에서 깃털이 날아오고, 공간이 일그러진 이유를 알아냈다.
“빛을 굴절시켜서 몸을 숨기고 있었네. 하피라고 보기에는 꽤나 지능적이잖아? 그보다 따라가면 어차피 죽거나 노예로 부리거나 할 걸 뻔히 아는데, 내가 그 말에 따를 필요는 없지. 아직도 뒤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깃털을 휘두르는 것도 알고 있고.”
날카로운 소리로 미리 만들어낸 환영체에 몸을 숨기자, 일그러진 궤적을 그리며 알 수 없는 존재가 다시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어디선가 암흑 정무관이 생각나게 하는 움직임이네. 비록 아몬에게 전기구이 당해서 목숨을 거두셨지만.”
이런 안 보이는 적을 상대로 오래 끌어보아도, 시간만 흐를 뿐이었다.
“빅터는 어디 있지?”
아엘로라고 자신을 소개한 하피에게 입을 열자. 그녀는 나에게 아무런 정보도 말해주지 않았다.
“순순히 따라오지 않고 적의를 드러내는 적에게는 알려줄 의무는 없습니다.”
파이크를 나에게 겨누고 수직으로 비상하더니 마상에서나 나올법한 랜스 차지를 하고, 일직선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날개에 스쳐도 잘려나갈 것 같은데, 저런 공격을 정면으로 막는 바보 같은 일은 한다면, 0.4초 이내로 온 몸이 파편처럼 날아가리라.
세피르와 이비가 없는 것만으로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물러날까 보냐!”
조금 오버해서라도 죽지만 않으면 되겠지.
총도 살살 맞으면 죽지 않는다는 바보 같은 말이 있는데?
지금 당장 내 한계를 끌어올린다면.
지금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기루!<Mirage>”
환영체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 자리를 이동할 수 있는 몸이라면, 신기루는 그 장소에는 없지만 남에게는 보이는 몸. 환영체와는 정 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내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지만, 저들의 시점에서는 모두 내 신기루를 꿰뚫고 지나간 모양이다. 애초에 마나는 무한적으로 생성되고 내 몸에는 용량을 거의 꽉 채운 상태로, 계속해서 온 몸의 마나가 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심신에 동요가 있으면 신기루가 풀리거나, 역류현상으로 내가 자멸하게 되겠지만, 오히려 신기루가 풀리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너희들도 빛을 이용하고, 나도 빛을 이용하는 환영마법이야. 하지만, 너희들은 환영마법에 대한 대처는 잘 모르는 것 같네.”
날아드는 하피 5마리 중, 하나는 땅에 곤두박질치고, 오른쪽에서 날아든 하피의 랜스를 돌며 피하자,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하피들끼리 부딪쳤다. 아엘로는 그런 모습에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향해 랜스를 돌격했으나, 나는 신기루를 풀어버리고 상체만 뒤로 젖혀 그 상태로 주먹을 휘두르고, 동시에 하피의 발을 붙잡아서 땅으로 내리 꽂았다.
“그럼 슬슬 나와주실까? 아까부터 나를 지켜보던 암살자.”
나는 아엘로의 목을 들고 최면을 걸어 그 자리에 못 움직이도록 구속을 한 뒤, 정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역시 카멜롯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괴물보다 더 무서운 자들이로군요.”
푸른색 깃털을 보이며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드러내면서, 웃음을 짓는 여유를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 은색의 티아라가 있는 걸로 보아, 하피들의 여왕이라고 보면 되겠지?
“그 눈을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네요. 항상 자신 주변 사람들의 일만 집착을 하고, 절대로 포기할 줄 모르는 눈. 그나저나, 치사하게 인질을 잡는 행위를 하다니, 자신에 대해 부끄럽지도 않으신가요?”
“누가 먼저 치사했는지 생각해보시죠? 아엘로 전투준비.”
이미 자신의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나의 통제를 받는 하피는 자신의 여왕을 향해 창을 겨눴다. 하지만 하피들의 여왕은 순순히 두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제가 졌어요. 단순히 실력을 알아보고자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그런 여린 몸으로 주먹을 사용해서 때려 눕히는 난폭한 방법을 사용하다니.”
“그래도 보통인간보다는 튼튼하니까 괜찮겠죠. 그러니 당장 빅터나 데려오시죠?”
“아. 그 남자는 지금 일족을 위해 일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 말에 나는 차분하게 생각을 했다.
일족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소리라면, 그냥 건전한 의미로 어디 청소하거나, 건축을 하거나 그런 거겠지?
아니라면 KFC로 다 넘겨버리겠어!
“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요?”
“용사들을 막고 있는 수호자의 역할이라고 해야겠죠. 지금은 용사들의 연회로 이곳에 오는 용사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하면서, 저희들도 영토를 지키느라 꽤나 고생하고 있답니다.”
“포로로 붙잡아서 같은 사람들끼리 싸우도록 시키고 있다고요?”
“포로라기보단 암묵적인 거래였어요. 안전하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희들은 강자를 절대로 두 번 다시 건드리지 않으니까. 아엘로는 이만 풀어주시죠?”
“빅터를 데리고 나갔을 때 풀어드리죠. 지금 당장 인질의 해방은 못해드리겠어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용사와 당신이 찾는 그 남자가 혈전을 벌이는 곳으로 안내해드리죠. 적어도 살아는 있으니 안심은 하도록 하세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미소를 머금고 있는 저 말도 안 되는 철면피의 말을 누가 믿을까? 여전히 포위되어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한 명을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나에게 상처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일 터. 암묵적인 거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하피들의 여왕에게 입을 열었다.
“만약 빅터가 위험한 상황이라면 이 하피를 적진 한 가운데에 날려버릴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그럼 규칙위반이라서 안 돼요.”
규칙위반이라니? 애초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끌어드린 것 아닌가? 하피들의 여왕이 말하는 동족상잔이 일어나는 비극의 현장으로 이동을 했는데.
-봙! 봙! 봙! Yee~
…….
복선이 이거였어?
“큭! 또 져버리다니! 역시 하피들의 파수꾼이라서 강하군요.”
“용사님들도 꽤 강한 상대였습니다. 그럼 다음에……어라? 아리엘? 여긴 무슨 일이야?”
빅터의 반가운 얼굴을 뒤로하고, 나는 하피 여왕의 뒷목을 붙잡으며 거칠게 구석으로 끌고 갔다.
“지금 저게 뭐 하는 거에요!”
“모르셨나요? 보드게임이잖아요? 요즘 인기 많은 Yee.T 보드게임이요.”
“그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용사들의 시험과 저 바보 같은 보드게임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요!”
“그야. 시험 내용이 Yee.T 보드게임으로 이겨야, 하피의 언덕을 클리어 했다는 업적이 주어지는 보상…….”
지금 당장이라도 이 바보 같은 하피들을 KFC로 팔아 넘겨버리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에 KFC와 같은 가게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어떻게 보면 내가 걱정한 것이 바보가 될 정도로.
“그럼 아까 전에 포위를 한 이유는 뭐에요?”
“그야. 무서운 살기를 흩뿌리고 왔으니 침입자인 줄 알고. 게다가 저의 기사단장인 아엘로를 쓰러뜨리셨잖아요?”
난감한 상황에서도 활짝 웃으면서 입을 열고 있는 하피 여왕의 모습에, 머리를 움켜잡으면서 차라리 정상적인 전개가 진행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앞길 막는 장해물은 다 돌파하고, 빅터를 구출한 뒤에 귀환을 하는 것. 아니 잠깐만……. 설마 걱정하지 말라는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는 탈로스 씨가, 괜히 내가 세피르와 이비와 함께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던 건가?
“저희는 마계식 깡통차기에서 진 이후로 인간들을 건드리지 않았답니다. 당연히 카일이라는 마왕님의 미래 남편이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저희는 무자비하게 인간을 잡아들이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며, 악명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지금은 마왕님의 명을 받들어서, 저희도 인간과 공생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 인간의 문물을 받아들여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아, 됐어요. 아엘로의 최면은 풀었으니 데려가세요. 잠깐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한 뒤에 다시 이야기 좀 하죠.”
나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거대한 한숨을 몰아 내쉬기 전에,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삽질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삽을 들었을 때 한 방향만 파면 우물이 나온다고 하던데, 나 같은 경우는 한 방향만 팠더니 용암이 나온 격이었다.
“뭣하면 같이 보드게임이라도.”
“안 해요!”
지금에 와서 느낀 거지만, 나 정말 바보 같아…….
“그 전에 카일 씨도 이곳에 온 적이 있나요? 그러니까……이름이 어떻게 되시는…?”
“베르티아라고 합니다. 유일하게 하는 후회 중에 하나는 그 남자분을 저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 아아, 그래도 지금은 하렘을 건국하고 있으니, 부탁해주면 받아줄지도 모르겠네요. 조만간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
“대체 무슨 사고방식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에요.”
자세한 이야기는 저 보드게임이 완전히 끝나고 하도록 하자.
암묵적인 거래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저런 바보 같은 보드게임이 이곳까지 퍼졌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