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89
389
새벽의 잡화점은 언제나 조용하게 지나가며, 나 이외에는 모두가 자고 있을 시간임을 암시하는 새벽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직까지 나는 영겁의 노래라고 불리는 루멘의 유작. 초승달 문양의 고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그 사이에, 붉은 보석이 하나 박혀있는 걸로 보면, 하늘에 걸린 새벽달을 빼서 걸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잡화점에 맡긴 물품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 같이 위험한 것들을 봉인조치를 하고 있는 것이기에,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최소한 나부터, 최대는 이 차원까지 날려버리는 물건이 존재했다.
훗날에 멸망의 날이든 최악의 날이든 그 날을 대비해서, 엘티노스가 잡화점을 세웠다고 했고, 그 엘티노스는 예전에 자신의 동료인 티르가 무언가를 꾸미는 것을 알아차리며, 자신이 위험하다는 물품을 전부 긁어 모아 무기 창고 대용으로 쓴 것 같지만, 티르가 없고 실제 칸포리우스 제국이 일으킨 대륙반란이라고 칭하는 무의미한 전쟁에, 잡화점에 있는 물품 단 1개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죽기 직전까지 남에게 주지 않았던 검은색 오브를 하나 더 받아왔다.
“1+1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나는 가끔가다 2층에 봉인해둔 조각상의 크기를 재긴 하는데, 한번 시작한 것은 멈출 수 없다는 레이몬드의 말처럼, 오늘도 0.3mm정도 커졌다. 너무 미세한 수치로 커지는 이유는 당연히 영겁의 노래가 떨어져서 성장이 느린 거지만, 영겁의 노래와 같이 두면 아마 3mm커녕 3cm씩 자라날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속도를 자랑하겠지.
“신랑? 오늘도 조각상을 확인하는 거야?”
루시피나는 내 뒤에서 잠옷 상태로 말을 걸어왔다. 왠지 루나에게 받은 듯한 분홍색 토끼잠옷을 입고 있었으니, 맨 처음에는 루나가 장난치는 줄 알았으나 뒤를 돌아보니 루시피나였다.
“이미 한번 시작한 것은 걷잡을 수 없다고 하니까요. 제가 조각상에게 성장을 멈춰달라고 부탁해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성장을 하겠죠. 그 전에 이 조각상은 다 성장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글쎄? 우는 천사가 된다거나?”
“후 박사의 모험 보고 오신 길이에요?”
자신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다가오는 조각상도 있지만, 지금 내가 보는 조각상은 그러거나 말거나 성장을 계속해서 하고 있으니, 우는 천사나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루멘은 대체 무슨 이유로 나에게 이걸 맡긴 걸까? 의사소통이라도 했으면 가장 좋았을 터인데.
“텔레파시라도 걸어봐. 신랑.”
“텔레파시요? 루시피나가 한번 해보세요.”
“그럴까?”
루시피나는 내 옆에 앉아서 텔레파시를 걸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으나, 눈을 갑자기 뜨더니 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텔레킬<Tele-Kill> 당할뻔했어.”
“아. 그렇...네?”
드래곤마저 텔레킬을 당할 뻔했다고?
“대체 저게 뭐로 만들어졌길래 마법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드래곤의 텔레파시를 거부하고, 되려 텔레킬을 시도하려고 하는 거에요? 저 조각상 안에 V3라도 설치 되어있데요?”
“신랑? V3가 뭐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몰라도 되요. 아무튼 살아있어서 다행이네요. 이만 조각상 관람은 그만하죠.”
아공간 속에 있는 조각상을 가두기 위해 공간 자체를 닫아버렸다. 레시아와 내가 유일하게 잘 해놓은 일이 바로 아공간 속에 가두는 일. 물론 이 아공간 속에서 나오는 일이 완전하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움직일 수 없는 저런 조각상이 대체 무슨 수로 뚫고 나오겠는가?
“그런데 레시아도 시나도 별일이네요. 심연의 도서관에 가서 정보를 찾고 오겠다니. 덕분에 정령왕이라고 불리는 잉여들을 나에게 떠맡기고.”
보통 내가 자야 하는 1층 이불 안에, 바람의 정령왕이라고 불리는 실피드와 불의 정령왕이라고 불리는 이프리트가 나란히 사이 좋게 자고 있었다. 물론 실피드는 지금 현세에서 윈디 메르아라는 가명을 쓰고 있으나. 지금 그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라, 나는 대체 어디서 자야 하는 거지?
“루시피나는 안 자요?”
“요즘 불면증이라.”
불면증?
“아니. 루시피나? 불면증이라고요?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요즘은 너무 많이 자서 그런가? 아니면 출현을 너무 안 해서 그런가? 아무튼 지금은 자고 싶지 않아. 그러니 이야기하자! 이야기!”
“뭐. 대화정도면 괜찮지만요.”
“육체로 이야기를!”
“하지마!”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고비를 넘기기 시작했다. 1층에 있는 카운터로 다시 돌아와서 허브티를 끓이고 있는 루시피나에게 질문을 했다.
“텔레킬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텔레파시를 거부하면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 조각상도 분명 텔레파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텔레파시를 타고 들어가서 정신적인 부분을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문제는 드래곤의 텔레파시를 차단하고 역으로 죽일 생각까지 했다는 점으로 보면, 저 조각상은 드래곤보다 더 상위종족이란 것일 터인데. 저게 풀려나기라도 하는 순간, 잡화점을 중심으로 대폭발 한번 일어나지 않을까?
“저게 무엇이든 빨리 처분하는 방법을 알아내거나, 빠르게 피아식별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음성장치라도 달아주면서 이야기라도 할 수 있다면...”
음성장치?
“잠깐만요. 제가 뭐라고 했죠?”
“육체적인 이야기.”
“그거 말고! 난 그런 소리 한적 없어요!”
루시피나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2세 계획.”
“음성장치라고 말했잖아요! 잠깐 멍 때려서 듣지 못했다면, 저 위에부터 읽고 오세요!”
“아. 자아가 있을 법한 물품이나 생명체에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음성장치구나. 어쩐지 단체 채팅방에서 +6이 되어있다더니.”
“그건 대체 어디에서 나올 법한 상황인가요?”
카카오 나무에서 만드는 대화장치인가?
어쨌든 돌에게도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꿈의 의사소통 장치는, 잡화점 3층에 존재하고 있었다. 청진기 모양의 의사소통 장치는 샤머니즘을 굳게 믿었던 엘티노스의 동료가, 모든 것에는 신이 깃든다고 말하면서 나무와 이야기를 했다는 괴짜였다고 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나무의 목격증언으로 범인을 잡은 상황이 터져나가면서, 나중에는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이 의식을 가지고 있는, 동식물들의 말을 듣기 위한 것으로 제작되었다 한다.
3층에 뛰어 올라가다가 3층에 방 한 쪽에서 좀 조용히 다니라고 데모르테에게 한 소리를 듣고, 청진기처럼 생신 물품을 가지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러니까 이 청진기로 아까 그 조각상에 대고 질문을 하면, 저에게 대답을 할 거라는 거에요.”
“그보다는 의사 놀이가 더욱 적절하겠는데?”
“안 할거에요.”
“치이.”
루시피나가 계속 나를 유혹하려고 시도를 했으나, 칼과 같은 나의 거절에 약간 삐친 얼굴을 하며 단념을 했다. 애초에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조각상의 실체를 먼저 밝히는 것. 항상 모든 것은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알아야 다음의 행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층에서 아공간을 다시 열어 청진기를 끼고 루시피나에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일단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청진기를 조각상에 대보면.”
귀를 저절로 기울이게 만드는 청진기의 묘한 묘미가 내 마음을 설레게...
[청진기 치워라. 말 안 들리냐?]
한 남자의 목소리가 사나운 어조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뒤로 넘어져야만 했고, 루시피나는 나를 보며 “괜찮아?”라고 물어보았다.
“아. 네. 괜찮아요. 순간 엘티노스가 말을 걸어온 줄 알았네.”
저렇게 사나울 정도로 말을 걸어온다는 것은 엘티노스 이외에, 하멀 씨 정도가 있으니까. 하지만 조각상이 나에게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이 청진기는 작동이 되는 거지만...
“조각상이 저렇게 불친절하게 나오면, 질문할 거리가 있어도 대답을 듣지는 못하겠네요. 어쨌든 ‘조각상처럼 봉인이 되어있는 무언가’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다시 아공간을 닫고 나서 루시피나에게 부가 설명을 했다.
“성장을 전부 하게 된다고 할 지라도 봉인이 저절로 깨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설령 깨져도 스스로 아공간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을뿐더러, 조각상 근처에는 마법진이 설치 되어있으니까.”
허브티로 살짝 목을 축인 다음 느닷없이 말을 걸어온 청진기에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루시피나는 “신랑. 내일은 또 어디 나가는 거야?”라고 물어보았고,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럼 나도 신랑 따라갈래. 드라고니스에는 요새 용사들이 너무 많이 와서 혼란스럽거든.”
“용사들이 시련을 받으러 오던가요?”
용사들의 연회 봄 시즌을 맞이하여, 슬라임보다 더 양산이 되어버린 용사들의 인구가 밀집되고 있는 곳은, 파이론, 프리트론, 그 다음은 드라고니스다. 가끔 드라고니스에 돌아가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루시피나는 사람이 많은 곳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보인다.
“시련이라기 보단 프로포즈를 하러 오거든.”
“루시피나에게요?”
“아니. 다른 드래곤에게. 나는 이미 신랑과 용족혼인의 문양이 있으니까. 건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아직 해츨링이라서 어린 소년, 소녀로 폴리모프밖에 할 줄 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게 용기사의 문양이 아니라, 용족혼인의 문양을 바라고 있으니까.”
“그런 불한당 같은 사람들이 용사인 것은 좀 말이 안 되긴 하네요. 내일 아침에 역사학원 쪽으로 출발해서 볼일을 다 보면, 드라고니스로 바로 날아가서 상태를 확인해보죠.”
“응응!”
기쁜 표정을 하면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루시피나를 보며 안심이 놓였다. 만약 제대로 화가 난 루시피나가 용사에게 대화제의 시라도 읊는 날에는, 드라고니스가 불바다로 될 것이 뻔하니까. 가능성이 있는 것은 언제나 배제하는 것이 좋은 일인만큼, 오늘 아침부터는 루시피나와 같이 움직이는 걸로 하...
“음냐~ 도망가지마~ 마나의 공급원......”
지금은 새벽 5시이므로 문을 닫을 시간이지만, 항상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몽유병을 앓고 있는지 이프리트가 정확히 나에게 뛰어오거나, 날아오거나, 순간이동을 하거나, 때로는 무섭게 기어와서 이렇게 껴안는다.
“대신 문을 닫았다고 표시 좀 해주시겠어요? 저는 이 거머리 좀 때어놓을 테니.”
“아, 알았어.”
루시피나도 이 모습은 처음 보았을 터이니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나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목에 감겨 있던 팔을 풀고, 윈디의 옆에 가지런히 눕혀 놓았다.
둘 다 잘 때는 귀엽고 예쁘지만, 한쪽은 눈을 뜨면 느닷없는 헛소리로 인해 나를 ‘바람의 한숨 패키지’를 풀게 만들고, 다른 한쪽은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이다.
“그래도 오늘은 얌전하게 자서 좋다고는 하지만, 나는 다른 곳에서 자야 하겠네.”
내가 잘 자리는 이미 소녀의 모습으로 한 정령왕 둘이 자고 있었고, 다른 한쪽 방은 마리아와 루시피나가 자는 곳, 지하는 루나가 아직까지 만화를 그리고 있었고, 3층에 있는 빈 방은 운명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데모르테의 방이었다.
“가상 전투실에서 잠이나 잘까?”
잡화점에서 모의 전투를 할 수 있는 방이 하나 존재하는데, 그 방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붙어있었다. 훈련을 위한 방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휴식처로 좀 써도 되겠지?
-딸칵!
“기본적인 설정만 하면 괜찮...”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쾅!
오늘은 그냥 카운터에서 잠들어야겠다.
팔랑크스와 베니가 아직까지 잠도 안자고, 저 안에서 거룡을 잡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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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이 말을 했다!
카일은 혼란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