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67
367
브레체투스 가문은 대륙 최고의 자본을 가진 가문.
카멜롯 행정학원의 학원장을 하고 있는 사람은,
교묘한 화술과 철저한 이익만을 생각하며 상대에게 접근을 한다.
물론, 그의 아들 또한 그 피를 제대로 물려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파티장에서 대뜸 춤 신청을 하는 레이몬드 브레체투스를 본 카린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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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평온해 보이는 사파이어 색상의 드레스와, 코발트 블루로 바뀐 나의 긴 머리는 매치가 잘 맞는다고 볼 수 있을까? 그보다 대부분 저 도입부에서는 ‘카일의 생각’이라고 적혀야 할 것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카린’이 초청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쓰여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구름에 떠오르는 듯이 두둥실 추면서 스탭을 밟아가고 있는 레이몬드 브레체투스. 내 앞에 있는 남자는 미소년보단 미남에 가까운 외모라고 해야 하지만, 놀랍게도 행정학원의 학생회장을 맡고 있으니, 이는 분명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댄디한 금발은 어린 아이의 분위기보단,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한 가득 더 실어줬고, 나를 보면서도 황홀하거나 기쁨에 가득 찬 눈빛이 아닌, 여전히 냉정하게 상대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는 눈은, 어떻게 보면 괴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다른 관점으로 보면 절대로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돈이 많다고 해서 브레체투스 가문이 유명한 것이 아닌, 가장 뛰어난 무서움은 상대의 심리를 읽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협상기술이다.
“카린 씨는 맨 처음에 봐왔을 때도 그랬지만,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군요. 신비로운 여인 그 자체는 한 때 초창기 시절의 마녀를 떠올릴 정도에요. 모든 이를 마성으로 사로잡아 마음을 유린하고 능욕하는 기분. 그런 아찔한 기분은 제 목에 칼을 들이댄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상한 비유를 들어서 칭찬한 것은 고맙다고 생각하지만, 저를 전에 본적이 있는지?”
“그야 당연히 사진으로 보았죠. 윈디 메르아라는 정보상인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주고 사들였으니까요.”
언제나 윈디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윈디를 잡화점 멤버로 넣지 않은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언제 어디선가 알게 모르게 사생활이 찍혀나간다는 이유 때문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자면, 애초에 잡화점 멤버로 넣지 않아도 윈디는 계속 이곳 저곳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나에 대한 것도 찍으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하니까. 굳이 멤버에 집어넣지 않으려고 해도, 내 정보는 계속해서 문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수증기마냥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대륙에 걸쳐서 가장 신비로운 미녀와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준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접근하는 거라면, 분명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던가요?”
거대한 홀 안에서 모든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와 레이몬드를 보고 있는 와중에, 거대한 콘서트 장처럼 따로 만들어진 공간에서는, 한 명의 지휘자 아래에 수십 명씩이나 앉아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와중에, 레이몬드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나에게 입을 열었다.
“정말 예리하신 분이네요. 당연히 저희 가문에도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사정은 많습니다만, 카린 씨 같은 경우에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은 듯하니, 엘티노스 잡화점 주인에게 대신 의뢰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엘티노스 잡화점을 찾으려고 해도 못 찾는 사람이기에, 나에게 직접 말을 걸기 위한 접근이었다. 다만, ‘카일’로 변한 내가 진짜 주인인 것을 알고 있는 거라면, 레이몬드 이 사람도 한 때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의뢰라면?”
“제 목걸이에 착용한 것은 오래 전에 갑자기 별세를 한 루멘의 마지막 유작. ‘영겁의 노래’라는 작품이에요. 매끄러운 곡선 형태의 초승달과 더불어, 그 사이에는 아슬아슬하게 거대한 붉은 보석을 이어주는 듯하면서도, 튼튼하게 고정되어있지요. 다만, 이 목걸이에는 한 가지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해요.”
“비밀?”
음악은 고조로 달하고 있고 레이몬드는 그에 보폭과 발 빠르기, 움직임이 점점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리드 당하고 있는 나 또한 겨우 겨우 따라가고 있는 와중에도, 매우 자연스럽게 말을 걸며 나를 돌리고 팔에 감싸며 입을 열었다.
“사실 이 세공품은 반쪽자리라고 하더군요. 남은 반쪽은 잡화점의 주인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루멘이 예전에 나에게 줬던 그 세공품인가?
레이몬드는 나와 밀착된 상태에서 빠르게 남은 한 손으로는 목걸이를 풀고, 나에게 채워주며 스탭을 밟았고, 그 이후에는 나를 허공에 눕히듯이 내 허리만 받쳐놓은 체, 내 얼굴에 그늘이 질 정도로 레이몬드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고, 나긋나긋하게 내 귀로 속삭이는 말은 다음과 같았다.
“루멘의 유품 2개가 서로 모이면 어떤 비밀이 있는지, 나중에 저를 찾아와 알려달라 해주세요. 그럼 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음악이 멈추고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나는 리드를 당한 입장이기 때문에, 내가 대체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춤추며 이야기를 한다는 그 자체는 의외로 힘들다는 것만은 잘 알았다. 나와 레이몬드는 서로 인사를 한 뒤, 춤에 대한 남은 여운도 전부 뿌리치고,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가 거대한 만찬에서 대식가마냥 먹고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 나아갔다.
“선장님! 정말 아름다웠어요!”
“겉으로는 아름다워도 속에서는 그냥 전쟁이었어. 그래도 의뢰를 나에게 직접 말까지 걸어오면서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불러.”
하란복의 전통의상을 입고 온 마를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봐왔지만, 연한 녹빛의 저고리와 붉고 긴 다홍치마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잘 봐왔어요! 아저씨. 아니 지금은 언니인가?”
“설마. 이 목소리는.”
명량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리자마자, 내 고개는 자동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별빛으로 한 가득 꾸며놓은 듯한 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나와 당당히 마주하며 서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언니.”
“아이니스. 그보다...아니, 지금은 사람이 많으니까 딱히 태클을 걸지는 않을 게. 연락은 하고 살아야 할 거 아냐. 걱정했잖아?”
“어쩔 수 없었어요. 리벌트에 있는 마법학원에서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 보니, 게다가 매리와 마리 씨였던가요? 언니의 제자가? 대학원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마법 무투제에 대해 상당한 조언을 듣고 오던 길이었으니까요.”
“아. 그래? 잠깐? 마법 무투제?”
아이니스도 이번 마법 무투제에 참전을 한다는 소리인가?
“저번에 하란국에 있던 수모는 갚아주기 위해, 저도 열심히 염동술사의 길을 걸어왔답니다. 적어도 언니의 지금 제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아이니스도 평소에 신문을 매일 배달하는 것만 봐도, 성실하고 노력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염동술사의 경지가 어느 정도 올라갔는지 가늠이 안 잡혔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인 만큼 반가움에 악수를 해야 할지 안아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이야. 아이니...”
“오오! 아이니스! 짐의 참된 제자여! 육포는 가지고 있는가?”
“물론이죠! 스승님!”
검은 고양이인 레시아가 아이니스를 너무 격하게 반겼다. 어느 사이에 아이니스가 나를 무시하고, 레시아를 껴안으면서 어디서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니스 표의 육포를 입에 넣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대체 이 마왕은 주인이 누구일까?’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이니스와 재회하는 것은 오히려 레시아가 더욱 바라던 기회였으니,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면서 다른 한 곳에서 성숙하고 농염한 누나들에게 둘러 쌓인 루크와, 그 옆을 찰싹 달라붙어서 수 많은 누나들로부터 구해주고 있는, 아르메와 파르시아를 보고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찰칵!
“오오! 카린의 280도짜리 미소라니!”
“각도가 280도면 결국 100도란 소리 아냐. 그보다 100도의 웃음은 대체 어떤 웃음이야?”
“살인미소?”
“너부터 죽어볼래?”
이번엔 카렌과 한 가득 맞췄는지 카리스마가 넘치는 고스룩을 입고 있는 윈디는, 이곳에 온 목적이 단순한 정보수집으로 온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끝이 보이지 않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계속 채워나가는 집사와 메이드들을 보며, 파티의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어 가고 있을 때였다.
“거기 예쁜 언니? 나랑 술 한잔 안 할래?”
“죄송하지만 전 술은...”
“그러지 말고 카린. 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래.”
30대 초반의 농염한 외모와 우측이 살짝 노출이 되도록 제작되어있는, 붉은 드레스 그리고 왼쪽 어깨 부분에 거대한 장미라도 연상하게 만드는 장식이 달려있었다. 레이몬드가 짙은 녹안이라고 하면,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마법적인 요인으로 인해 연한 녹색으로 변색 되어있었으며, 파도가 생각나는 붉은 웨이브를 지닌 머리카락에, 앞머리는 왼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대담한 것인지 상의 마저 파격적으로 파인 것을 입었던 것은 둘째치고, 압도적으로 강인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마나의 양이었다.
“이렇게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던가? 고양이 귀는 빼서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모습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에 대해서는 언니에게 가장 잘 들었겠지?”
나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켈모리아 마그누스.”
호가 그려지는 성숙한 얼굴은 이윽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띄고 있었다. 그 옆에 붙어 다니고 있는 소녀는, 마치 노을을 연상하게 만드는 주홍빛의 눈동자와, 청순한 이미지가 물씬 풍겨져 왔지만, 내 감각 어디선가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달빛을 힘껏 머금은 듯한 은발의 길이가 좀 길었는지, 뒷머리에 한번 위로 묶어서 다시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넘기고 있었으며, 작은 체구를 감싸고 있는 연한 백색의 드레스에는, 하얀 꽃이 정 중앙에 피어 오르고 있었고, 드레스의 밑부분은 유연하면서도 큼지막한 주름들과 프릴이 달려있었다.
“아리엘. 인사하렴. 이 사람이 바로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 본명은 여기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니, 지금 그 모습을 명명하는 단어로 카린이라고 소개를 해야겠지?”
아리엘이라고 불려진 소녀는 과묵하게 양손으로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며 인사를 했다. 나 또한 똑같이 따라 하면서 입을 열었다.
“현재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카린이라고 합니다만,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격식은 다 차렸으니 느닷없이 친한 분위기로 돌아온 켈모리아가, 부드럽고 가느다란 왼팔로 내 목을 휘어 감싸더니...
“자자! 카린 우선 마시고 난 다음에 비즈니스를 시작하자고! 어차피 밤은 길고 우리 집에서 노닥거리면서 세월아 네월아 술이나 마셔보자고!”
“어째서 제가 집에서 자고 간다는 것이 전제인데요! 그보다 켈모리아 씨! 저는 애초에 잡화점에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조금 있다가 급하게 돌아가봐야 한다고요!”
“아잉~ 그러지 말고 자기야!”
“왜 호칭이 바뀐 거에요! 안 돌아와요?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린 정신 빨리 다시 회수하란 말이야!”
너무 느닷없이 막 나가는 전개에 태클을 걸어야만 했고, 켈모리아 씨와 정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는, 어디론가 끌려가서 와인 2병을 비우고 나서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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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41의 시작.
아마 본격적인 마법 무투제가 시작하리라 봅니다만...
이거 언제 완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