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27

FNL-Phantasm 2017. 3. 5. 13:43

27

 

 

 

현실과 허상은 어떻게 구분을 하는 것일까? 허상 또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야 말로 현실이 되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가상의 존재에 동경하고, 가상의 생활에 수많은 부러움을 느끼지 않았던가? 눈물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세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편안한 장소. 우리는 그것을 과거라고 부르는 것일까? 미래라고 부르는 것일까?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현실이라고 일시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생활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한 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잘 잤어? 아리엘?”

 

여긴 어디냐고 물어볼 필요 없이 세피르가 나를 데리고, 켈모리아의 침실까지 인도한 모양이었다. 다시 귀여운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세피르가, 해님이 가득한 웃음으로 날 반기고 있을 때. 나른한 몸과 더불어 뜨거운 습기가 나의 온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일어나는 것마저 힘들 정도로 내 몸은 엉망이었다.

 

자면서 땀을 흘릴 정도로 나의 상태는 안 좋았던 걸까?”

 

자신도 모르는 힘이 개방되었으니, 그걸 견디질 못하고 아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나도 모르는 힘이라….

무의식적으로 나의 손바닥을 지켜보면서 이 안에 담겨있는 힘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되는 와중에 켈모리아의 방문이 힘차게 열렸다.

 

아리엘! 괜찮아!”

 

윗층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고 밖에서 문을 다급하게 열고 나온 소리로 보아. 부활동이 끝나고 곧바로 나에게 달려온 모양이었다. 네글리제가 아니라 학원의 복장을 그대로 입고 있는 나의 모습에 안심이라도 한 듯. 이윽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하면서 밀리아는 나에게 걸어올 때마다 기나긴 금발이 찰랑거리며 물결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당신도 마법 기초반의 분들과 같은 이어받은 자.’, ‘물려받은 자.’라고 칭하는 사람이라고 학원장님께 얼핏 들었지만, 불안전한 각성을 하게 되면, 학원 지부의 일부가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은 일도 아니네.”

 

그 정도는 나에게 식은 죽 먹기지.”

 

칭찬 한 것이 아냐!”

 

밀리아는 나의 대답에 소리치며 태클을 걸었다. 그래도 나에 대해 전혀 두려워하거나, 편견을 가진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기에, 밀리아에게 그래서 내가 무서워졌어?”라거나, “나처럼 비정상적인 사람하고는 가까이 지내지 마.”라는 한정적이고, 바보같이 진부한 대사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대신 이 말을 했다.

 

이번 이후로 언제 또 터질지 몰라. 하지만 밀리아는 잘 살아남을 거라 믿어.”

 

당연하지! 저는 마법학원의 학생회장이라고? 그런 일에 휘말려서 죽기라도 한다 해도, 너무 화가 나서 다시 부활할 테니 앞으로 아리엘도 몸조심 하도록 해.”

 

어쨌든 밀리아는 우선 아리엘의 상태도 확인했으니 슬슬 올라가볼까?”라는 말을 남기고, 들어왔을 때의 급한 발걸음하고는 다르게, 나가는 발걸음은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정말 좋은 친구를 둔 것 같아. 아리엘.”

 

좋은 사람이지.”

 

밀리아가 맨 처음에 비서의 자리를 놓고 잠깐 티격태격했을 때도, 그 사람이 싫어서 사회적으로 배척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 혼자서 정면승부를 하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쌓아 올리며, 자신의 힘으로 성취하는 것이 밀리아의 주된 생각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그런데 아리엘. 오늘은 켈모리아가 좀 늦을 것 같다는데, 지금이라도 키스 그 다음 거 이어서 해도 돼?”

 

바보도 아니고 내가 그걸 허락할 리가 없잖…….”

 

잠깐만?

 

너 그러고 보니! 아까 나에게 상이 필요하다면서!”

 

하하핫! 아리엘에게 키스를 한 것은 켈모리아와 빅터 이외에도 나까지 있으니까, 나는 신랑 후보에 들어갈 수 있는 거 맞지?”

 

웃기지 마! 당장이라도 뱀으로 변신해! 너의 가죽을 벗겨서 장갑으로 만들어 주겠어!”

 

정말 심한 소리를 잘 한다니까? 뭐 그게 아리엘의 매력이라면 나는 받아들여줄 수 있긴 해!”

 

어린 소년은 나의 단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튼 세피르에게 화를 내고 있을 무렵. 나의 위가 아무것도 들어간 것이 없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저녁까지는 좀 이르지만, 미리 만들기로 하며 주방으로 나아가는 사이에, 때 마침 빅터가 거실에 들어와서 병문안이라도 온 것인지, 과일을 한 가득 가지고 와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리엘?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괜찮은 거야?”

 

다친 기억은 없어.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언제 다시 뱀으로 모습을 바꿨는지 세피르는 내 목을 감은 상태로, 빅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뱀의 인상이 노려본다는 인상밖에 없지만, 실제로는 세피르가 빅터에게 해를 끼치려는 모습은 아니었으니, 사소한 걱정은 뒤로 하고 빅터가 사과를 깎아주는 동안, 나는 가만히 쇼파에 앉아 있기로 했다.

 

마법학원지부에서 폭발한 사고가 났다고 하길래 자세히 조사를 하던 도중에, 네가 그 사건에 휘말렸다고 해서 말이야. 그래도 엘리트는 엘리트라서 그런지, 크게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꼬마 아가씨.”

 

아니. 실제로 다치지도 않았어. 그보다 빅터는 어째서 조사를 한 거야?”

 

그야. 아리엘이 있는 곳이니까. 적어도 내가 제대로 된 오빠역할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 상관은 없지만…….”

 

오빠 역할이라.

마음 한 곳에서 따듯해지는 기분이다.

 

[그럼 난 남동생으로 할까?]

 

[넌 지금의 분위기를 꼭 찬물로 끼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세피르의 말 같지도 않는 농담으로, 다시 냉정을 되찾은 나는 천천히 사과를 깎아주는 빅터의 옆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과를 잘 깎네. 어디서 배운 거야?”

 

내 주변에는 다치는 동료가 좀 많아서, 내가 매번 병문안을 가기도 하거든, 과일을 깎아주는 것은 거기서 늘어난 실력인 것 같아. 맨 처음에는 나도 과일을 정말 못 깎았는데 말이야.”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듯한 말투는 빅터의 세월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줬다. 마법사도 많이 다친다고는 하지만, 기사학원만큼 직접적인 육탄전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임무라던가 연습이라던가, 혹은 전쟁 속에서 늘 죽거나 다치기 마련.

 

그렇구나. 미안해.”

 

아냐. 이건 사과 받을 만한 일은 아니지. . ~”

 

, , 먹여주는 거라고? 빅터가?

내가 포크를 들고 먹는 것이 아니라?

 

빅터…. , 뭐냐. 내가 알아서 먹을 수 있는데.”

 

그래도 지금은 힘들잖아?”

 

이런 유혹은 비겁하다. 그래도 조금만 응석을 부리자는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문장은, 입으로 옮겨서 나오기 시작했다.

 

, 어쩔 수 없네. 때마침 움직이기도 귀찮았고.”

 

-덥썩!

 

지금 소리는 내가 먹는 소리가 아니라 검은 뱀이 포크에 있는 사과만 쏙 빼가고는, 그대로 꿀꺽하고 삼켜버렸다.

 

[! 세피르!]

 

[. 미안. 무심코 먹어버렸어. 아니, 질투나 그런 건 아닌데, 사과가 정말 맛있어 보여서 말이야. 아파! 아프다고! 아리엘!]

 

이 뱀을 단숨에 찢어서 스테미너 보충식단으로 만들어야……!

 

저기, 꼬마 아가씨? 아무리 자신이 건강하다고 뽐내고 싶어도 사역마잖아? 머리와 꼬리를 분리시키려고 잡아 늘리는 것은 좀 아파하겠는데?”

 

나는 빅터의 말에 분노로 통제가 불가능한 몸을 가까스로 통제했고, 천천히 세피르를 바닥에 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다시 깎아서 다시 먹여줘.”

 

과일은 많으니까 느긋하게 있으라고.”

 

다시 사과를 깔끔하게 과도로 자르는 빅터를 보며, 나는 질문하고 싶은 것을 입에 꺼내기 시작했다. 질문의 내용은 내가 생각해도 좀 어처구니 없지만, 물어봐야 할 것은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빅터는 약혼자라도 있어?”

 

약혼자? 보통은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물어야 하는 게 순서인 것 같은데?”

 

나는 맨 처음부터 늘 궁금했지만, 아직까지 거론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약지에 있는 반지는 연인들이 자주 끼는 거잖아?”

 

. 이거?”

 

빅터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 첫사랑이었던 사람이 남긴 유품이야. 내 손가락이 좀 굵어서 그나마 들어가는 손가락은 약지밖에 없더라고.”

 

미안. 괜한 걸 물어서.”

 

괜찮아. 다른 누군가가 아리엘과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이야기 할 거라고 생각해. 과거의 상처를 안는 것은 무지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추억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은 반성할 수 있어.”

 

빅터는 사과의 남은 부위마저 깨끗하게 나누고 난 뒤에, 작은 포크를 찍어 내 입 앞에 가져갔다. 한 입에 다 먹을 수는 없기에 2번에서 3번정도를 베어먹어야 했고, 쓰라린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있을 수 있는 빅터를 보며, 나 또한 이번에 일으킨 사건에 대해 반성을 하며, 최대한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마음먹었다.

 

어머나? 빅터 씨!”

 

뒤에 느닷없이 밀리아가 내려왔는데, 힘껏 화장을 한 표시가 눈에 다 보였다. 속눈썹부터 시작해서, 아이 쉐도우와 더불어 파운데이션까지 바를 줄이야. 본래 시대적으로 없어야 하는 물품을 존재하게 만드는 이유는, 아르칸 제국의 뛰어난 과학력과 마법공학의 힘인가….

 

그나저나 저도 사과 많이 좋아하는데. 저에게도 사과를 먹여주신다면 보답으로 저희 가문의 기사로 입명해드릴 수 있는 명예로운 영광을….”

 

밀리아가 내 스트레스를 힘껏 올리기로 작정한 것 같으니, 나는 환각으로 밀리아의 몸에서 지네가 기어 다니도록 만들었다.

 

꺄아악! 아리엘! 너 나에게 환각을 또!”

 

그거 알아? 지네는 지네지네하고 운다고 하더라고, 밀리아가 그걸 직접 알아봐줬으면 해서 말이야.”

 

누가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한 거에요! 그보다 환각 안 풀어요!”

 

! 자력으로 풀어보던가?”

 

어째서 밀리아도 빅터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잘생겨서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내 앞에서 당당하게 화장까지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 우아한 분홍빛 드레스에 귀여움을 한 가득 발산하기 위해, 프릴까지 이리저리 달아놓다니, 가까이 있는 아군이 오히려 적이 되는 것은 이럴 때일까?

 

너희 둘은 역시 사이가 좋구나.”

 

어디가?”

어디가요!”

 

아직까지 비명을 지르며 돌아다니고 있는 밀리아의 모습은, 마치 머리에 불이 나서 불을 끄기 위해 허둥지둥 달려나가는 모습과 같았다. 환각을 풀어주고 밀리아는 사방을 뛰어다녀서 그런지 거친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고 있는 사이에, 나는 사과 한 조각을 더 달라고 그나마 행복하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밀리아. 오늘은 그 모습으로 빅터를 꼬시려고 하기에는 너무 화려하지 않아?”

 

난 빅터 씨에게 이 모습이 어떤지 감평을 받으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브레체투스 가문의 파티장에 수수한 옷은 입고 갈 수 없으니까 말이야.”

 

. 그렇구나.”

 

어라?

따지고 보니 나도 가야 하잖아?

드레스도 없는데 교복을 입고 갈지도 모르겠네.

 

그렇구나. 예쁘네. 충분히 귀여워.”

 

아리엘! 너무 대충 말해주잖아! 그리고 너에게 말해달라고 한 적은 없어!”

 

귀 아프게 소리치고 있는 밀리아의 말을 무시하고, 파티장에 갈 옷이 없어서 못 갈 것 같다고 켈모리아에게 말을 해두…….

 

어라? 잠깐만?

이 불길한 기분은 뭐지?

 

그런데 아리엘? 파티에 입을 드레스는 있어?”

 

밀리아가 나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을 때, 온 몸에서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해선 안 돼!”라고 경고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 그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밀리아가 순식간에 내 손목을 잡아 몸을 강제로 돌리더니 무서운 시선으로 내 눈을 마주쳤다. 눈빛이 마치 잘못을 한 범죄자를 추궁하려는 듯한 눈빛인데……?

 

어디서 거짓말을! 파티용 드레스를 받은 적도 없잖아! 이렇게 예쁜 애가 설마 파티장에서 학원에서 지급된 복장으로 갈 생각은 아니었겠지? 아니면 드레스가 없어서 파티에 못 갈 것 같다는 그런 바보 같은 변명을 늘여놓거나!”

 

언제 내 마음을 읽은 거야…?”

 

밀리아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엄청난 힘으로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파! 잠깐만! 밀리아!”

 

너란 여자애가 꾸미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파티장에 간다는 생각을 하다니! 잘 알아들어! 드레스는 사교장에서는 전투복이란 말이야! 내가 지금 당장 너를 끌고 올라가서 최고의 여자로 꾸며줄 테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아냐! 싫어! 그러지 않아도 돼! 날 그만 놔줘! 밀리아!”

 

끌려가고 있는 그 끝에는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절대 끝나지 않는 옷 입히기를 당하는 것, 그거 나름대로 체력에 부담이 가서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런 저항에도 불구하고 나를 잠잠하게 만드는 한 마디인 빅터에게도 봐달라고 해야지!”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 그건 그렇네.”라고 합리화를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