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24
324
새벽에 잡화점을 운영하는 동안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루니아 누나가 제발 일어나지 않길 빌고 있는 것과 더불어, 새벽에 손님이 적어도 좀 와주길 빌어야 한다는 것이 된다. 당연히 손님도 제대로 된 사람이 와야 하지만, 몬스터까지 다목적으로 이용하는 이 공간에서 정상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당연히 최고 위험도를 자랑하는 루니아 누나를 지금 루시피나와 마리아가 잠이든 방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모두가 잠든 곳에서도 나는 열심히 새벽에 밤을 보내고 있으며, 나중에 잡화점의 규칙을 뜯어고칠 수 있다면, 최소 정기휴무일이라도 가지고 싶은 희망이 있다.
영업시간 1주일에 24시간으로 줄이고, 금요일은 정기휴무일. 화요일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영업이다. 그래도 돈을 많이 벌기를 바라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수입은 그래도 월마다 세무관이 요구하는 돈을 낼 수 있을 정도만이라면 좋겠는데, 애석하게도 지금 잡화점의 멤버들을 생각해보니 그렇게 벌면 단숨에 적자라고 생각했다.
“환상은 환상일 뿐...”
혼잣말로 새벽에 차오른 달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차 한 모금을 마셨다.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모든 생명체들의 욕구. 과연 트리니티는 이번에 무엇을 바라고 있기에 이런 정신 나간 규모로 일을 벌이게 된 것일까? 그래도 머릿속을 직접 꺼내서 볼 수 없지 않는 이상, 언제나 집안에 앉아서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다른 걸 생각해보도록 하자.
티르나 신인류들은 대부분 잡화점의 위치를 알고 나를 직접공격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번에 호문쿨루스 1만명이 박살이 난 이후로 절대적으로 이 곳에 직접 오지도 못했고, 다른 곳에서는 전혀 올 생각도 하지 못하다는 것을 근거로, 지금 잡화점의 경계태세가 풀 가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이라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지금 모두 잡화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지금 이것 때문에 손님이 오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번에는 검은 달의 여왕과 대립하고 있을 때, 멜시스 씨는 어떻게 이곳으로 침투를 할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아카드 가문의 권능과 힘이 멜시스 씨에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아니...지금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자.
지금 하란국에 있는 반대파 세력이 전부 날아갔고, 그때 담당했던 고문관은 나중에 자살한 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야 당연히 호문쿨루스는 아니었고 고문관 몸 속에는 보석 하나가 발견 되어있었으니. 과연 이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길래 이런 일을 벌였을까?
분명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의 공통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존재할 텐데, 지금의 신인류들의 움직임과 칸포리우스 제국의 움직임, 더불어 반대파의 움직임을 조합하면 절대적으로 알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륙의 통합인가?
혼란을 이용한?
-딸랑딸랑!
손님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오자마자 고찰하던 나의 눈은 활짝 열렸다. 눈보다 하얀 피부를 가진 메이드 여성. 와인처럼 은은한 눈동자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고, 이는 아카드 가문에서 한번 봤던 메이드라는 것을 머릿속에 뉴런을 타고 기억을 전달했...아니, 이 부분의 독백은 대체 왜 이런 거냐?
“유나 씨로군요.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온 건가요?”
검은 가죽 부츠에 눈을 툭툭 털고 우산을 접었다.
“당주님께서 혈액을 원하셔서요.”
“엘리시아는 분명 혈액팩을 안 먹는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카일 씨를 흡혈하러 왔답니다.”
아하 그렇...
“아니. 좀 이상하잖아요? 날 태클 걸게 만들 거에요?”
“농담이긴 하지만 역시 흡혈에 관련된 것은 민감하신가 보네요.”
“아니. 흡혈에 관련된 것이 민감한 것도 있지만, 유나 씨라면 사적으로 이렇게 나올 신분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부족한 물품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면 엘리시아가 멋대로 나타나서 가져가버리니까요.”
유나 씨는 내가 앉은 책상 앞에 앉고는 살짝 입을 열었다.
“몰래 유혹하러 왔답니다.”
“의뢰가 아니고요?”
“아. 잘못 말했네요. 의뢰하러 왔답니다. 무려 3천금을 보상으로 하는 고난이도의 의뢰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말이죠.”
3천금? 날 지옥 한복판에서 굴릴 생각인가? 돈의 액수가 높으면 그만큼 위험도가 큰 의뢰라는 것은 이미 용병시절에 다 겪어봐서 알고 있다. 여담으로 의뢰의 보상이 200금만 넘어가도 “너 나가서 죽어라.”라는 의미가 된다.
“아마 15번정도 죽는 의뢰인가 보네요. 그 정도로 비싼 것을 보면?”
“네. 사실 이건 카일 씨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있기도 하고, 제가 가장 믿고 있는 남성은 카일 씨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랍니다.”
차분하게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 유나 씨의 말은 달면서도 위험한 독약과 같았다. 오래 노출되면 저 사람 페이스에 어느 사이에 말려 들어가버리는 묘한 기분. 루니아 누나는 외면 속의 양면성을 띈다면, 유나 씨는 내면 속의 양면성을 띄는 그런 사람이었다.
“좋아요. 일단 듣기만 할 게요.”
“네. 그럼.”
뱀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양손이 내 양손을 붙잡고 고개가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를 한번만 안아주실 수 있나요?”
“그거 허그에요?”
“아뇨. 흡혈이에요.”
“잠깐!”
-콱!
나는 안아준다고 한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끌어당겨서 내 목에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진정한 유나 씨의 목적은 나를 흡혈하는 것으로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한 것. 그것은 힘을 나눠주기 위함일 수도 있고, 생명력이기도 하며, 쾌락을 전해줄 수도 있지만, 유나 씨는 나에게 ‘기억’을 나눠주기 위해 내 목을 물었다.
[가급적이면 비밀리에 전해주고 싶어서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저를 바라보고 있는 마왕님과 몰래 지하에서 엿듣고 있는 달 토끼의 귀에 들어가기에는 좀 꺼려지거든요.]
물릴 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바람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꾹 내려 참고 있었지만, 엘리시아가 물었을 때는 아픈 것과는 다르게 유나 씨가 물었을 때는 아픈 것보다는, 다른 감정이 먼저 밀려오기 시작했다.
[고통을 주는 것 대신 쾌락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네요. 그래도 처음 물었을 때 소리하나 내지 않는 귀여운 모습을 봤으니 다행이지만요. 지금은 배려차원에서 고통을 주지 않는다고 선택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미리 사과를 드리죠.]
아니. 이미 저질러놓고 미리 사과를 하는 것은 무슨 심보야.
[잡설이 길었네요. 지금 아가씨가 칸포리우스 제국에 몰래 잠입을 하다가 걸려버리는 바람에, 빛의 대성당 지하에 감금 당해있거든요. 그러니 이 일에 대해 최대한 발설은 하지 말아주세요.]
내 목에서 천천히 고개를 때는 유나 씨의 입에서는 붉은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나는 어떻게든 몸 안에 있는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총 동원을 하고 있었다. 속에 불덩이라도 집어넣었을까? 가슴속에 불이 쉽사리 꺼지지는 않았다. 알 수 없는 것에 갈망을 하면서도 천천히 중재를 하고 통제를 위해서 숨을 빠르게 고르고 있는 사이에, 유나 씨는 손가락으로 남은 것까지 핥고는 입을 열었다.
“카일 씨는 정말 대단하네요. 보통 그 정도의 쾌락을 주면 대부분 남성들은 단숨에 발정상태가 되어버리는데. 아직도 의식을 차리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요. 원래는 ‘보너스로 뭔가 얻어갈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리 쉽사리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네요.”
“보통이 아니라서 정말 미안하군요. 큭...! 제길...! 너무 많이 흡혈 당했어!”
덤으로 현기증도 추가라고 말해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지금 당장이라도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상당히 진한 맛. 당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이유도 있네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부디 저의 의뢰를 잘 부탁합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 내가 자기 위해서 바닥에 펴놓은 이불 위에 몸을 누웠다.
“...저기. 유나 씨? 지금 뭐 하는 거에요?”
“네? 이만 자려고요. 아카드 성은 넓기만 하지 당주님과 저 밖에 없어서 쓸 때 없이 외롭답니다. 게다가 이곳은 카일 씨가 자는 곳이지요? 제가 따듯하게 데워드릴 테니 일 끝내고 어서 이곳으로 오세요.”
그리고 유나 씨는 배게를 팡팡 두드렸다.
뻔히 보이는 함정에 들어가는 내가 아니다.
“그 자리는 오늘 주도록 하죠. 뼈아프지만 말이에요.”
대체 엘리시아는 어디서 뭘 하길래 빛의 대성당 지하에 갇혀버린 것인지. 사고를 치는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 이런 소식이 들려오게 되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 더미인데, 다른 것은 다 놔두고 우선 엘리시아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니까.
“주인. 괜찮은가? 짐과 주인은 페어링이 되어 있어서 굳이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는 있지만,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짐은 저 메이드 흡혈귀가 물었을 때, 애로 사항틱한 감정을 직접 체험한 것에 대해 괜찮은 것이냐고 물었...냐아아아앗!”
“몸 상태를 걱정하라고! 애로 사항틱한 감정은 대체 무슨 감정이냐!”
오른손이 레시아의 머리를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아이언 클로를 하고 있을 무렵. 유나 씨는 눈을 감고 조용히 있었다. 레시아를 놓고는 거의 죽은 것처럼 자고 있는 유나 씨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엘리시아는 우선 빛의 대성당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추측해볼까요?”
“흡혈귀를 보호하는 빛의 대성당이라. 이유는?”
“그야 엘리시아 독단으로 신인류의 위치를 알기 위한 정보전을 벌이다가, 파르온에게 시비가 걸려서 먼지 입자까지 털려버렸겠죠.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따지면 확실히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고대 흡혈귀 특징상 동화에서 나오는 약점 같은 것은 없으니 그리 치명상은 아니겠고, 격차가 너무 벌어진다면 알아서 잘 도망가니까요. 애초에 지금 칸포리우스 제국과 빛의 대성당의 교황은 서로 견제하는 사이로 변모했으니. 이거 일이 좀 늘겠네요.”
이는 엘리시아를 찾고 곧바로 빛의 대성당의 의뢰를 하게 되는 소리라고 볼 수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할 게 많네요. 레시아도 나중을 위해서...레시아?”
검은 고양이는 내 얼굴을 빤히 보고만 있었다. 뭔가 어색한 기류가 감돌면서 나는 레시아가 뭔가 말해주기를 기다렸고, 레시아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주인은 그리 생각하는가? 직접 안보고도?”
“가능 할만한 이야기니까요. 빛의 대성당에서 어디에서 나올법한 안드레센 신부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엘리시아는 의외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다만, 엘리시아가 빛의 대성당에 보호를 받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의미는...”
아카드 가문의 권능이 일시적으로 봉인 되었다는 것으로 추측된다.
“어차피 추측은 추측을 뿐이니까. 진짜 어떻게 되었는지는 빛의 대성당으로 가서 얼굴을 확인해보죠. 요즘 제 주변사람들이 감옥에 가거나, 갇히는 것을 너무 자주해서 골치가 아플 판이네요.”
“주인.”
“네?”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며 걱정되어 묻는 레시아는 느닷없이 고개를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짐은 벽난로 근처에서 눈을 감고 있을 테니, 시간이 지나면 주인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라.”
나와 레시아는 페어링이 이어져 있는데도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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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저 멍하니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다 쓰고 멍하니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