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09
309
모든 연회가 똑같기만 하면 정말 재미없는 연회가 될 것이다. 이벤트가 항상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베이르노에 도착하고 있을 때였다. 어째서 가기 싫은 곳은 곧바로 보이고, 그나마 돌아가고 싶은 길은 느리게 느껴지는지. 당연히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잡화점에서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전지전능한 마법을 구사하려는 것은, 기존의 성별과 정 반대로 되어있어서 늘 위화감을 느낀다는 것.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던데, 이것은 어째서 베이르노에 정확하게 도착할까요?”
[그야 당연히 배가 아니기 때문이지 않는가? 주인은 가끔씩 엉뚱한 질문을 한다.]
“제가 말한 의도는 그게 아니잖아요.”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란 말이야.
[그렇다고는 해도 카일이여.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을 했을 때, 사공이 얼마나 많아야 우주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
“그 질문을 한 이유부터 설명해주세요.”
문이 열리기 전에 이런 사소한 태클로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이런 바보 같은 말에 태클을 걸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문이 열리고 나서 나를 맞이한 사람은 집사가 아니라 견습 메이드 루비였다고...
“베이르노에 오셔서 감사합니다. 류연 님.”
전에 사람을 많이 가리던 아이가 이렇게 친절하게 나오면, 위화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한다. 마중 나온 메이드들의 옷은 겨울외투까지 추가 되어 있었고,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는 나중에 루비에게 따로 물어보도록 하자.
“그럼 이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메이드들의 기본 걸음은 발꿈치를 살짝 들은 상태에서 걷는다. 그게 미덕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만, 사뿐사뿐하게 걷는 모습을 보면서 휴게실까지 이동하고 있음에도, 나는 마리아에게 루비의 정신상태가 어떠한지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고, 마리아는 잠깐 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겉모습만 멀쩡한 거다. 머릿속은 지금 엉망진창이군.]
[엉망진창이라면 어느 부분이요?]
[불안함, 공포, 초조함, 긴장감 등.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한 가득 쌓인 상태다. 조금 더 자세한 진단을 해야 한다면 접촉을 해야 한다. 지금 뭔가 안 좋게 되는 일을 알고 있는 아이임이 분명하니라.]
[제가 휴게실에서 알아보도록 하죠.]
겉으로는 밝은 척을 하고 있다고 감정한 마리아의 말을 토대로, 나는 우선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인도 받았다. 언제나 내 잡화점보다 넓어 보이는 휴게실에 들어갔을 때는, 루비가 내 적룡포를 받아들고 곱게 접고 있었을 무렵. 이때가 타이밍인 것 같아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루비가 나를 담당한 것인가?”
“네. 류연 님께서 저에게 적룡포를 씌워줬기 때문입니다.”
겨우 그런 이유로 날 담당하던 메이드를 바꾼 것인가.
“따라서 저는 몸도 마음도 류연 님께 봉사하기 위해, 오늘 연회가 끝나고 나면 같이 돌아가게 된답니다.”
...잠깐 뭐?
“방금 내가 들은 말로는 연회가 끝나고 같이 돌아간다고 들은 것 같다만?”
“네. 칸포리우스 궁중예법에는 마음에 드는 자를 자신의 옷으로 덮어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날 저에게 적룡포를 둘러주었을 때 그날은 그걸 빌미로 무서운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류연 님을 다시금 만났을 때 저는 그때 시중을 들기로 결정을...”
“기다려! 나는!”
루비는 나의 만류에도 느닷없이 볼이 붉어지면서 다음과 같은 말 했다.
“그래도 같은 동성이 취향이신 분은 별나긴 하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봉사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잠깐 말을 멈춰라!”
“네. 류연 님.”
전쟁선포보다 더욱 더 어처구니없는 말을 레시아와 시나, 그리고 마리아가 듣지 못할 리가 없다.
[역시 주인은 꽤나 극악무도한 자가 아닌가? 저런 어린 아이를 정말로 홀려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노라. 이따 잡화점에 돌아가면 주인과 이야기 할 시간이 늘어서 정말 좋군. 안 그런가?]
[마스터. 오늘 이후로 은팔찌를 착용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좋은 변명거리를 가져오셔서, 저를 설득시키는 것이 좋을 겁니다.]
[카일이여. 저 아이를 꼬드겨 넘어가게 할 정도면, 첩도 승산이 있다는 소리이겠지?]
아니. 대체 어떤 예법이 남의 집 메이드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겉옷을 덮어주고 그대로 데려가는 어딜 봐서 예법이야! 그냥 날강도지! 애초에 내가 그걸 알아서 했나? 그냥 추워 보이니까 덮어준 거지! 이래서 착한 일을 하면 안 돼. 선행을 베풀면 좋은 일로 돌아와야 하는데 더욱 더 꼬여버렸다.
“아. 그렇군. 애초에 적룡포를 덮어준 것은 그리 별다른 의미가...”
“만약에, 다시 칸포리우스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저를 데려간 류연 님께서 하인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간주하고 저는 처형을 받습니다.”
“알았으니. 나중에 따라오기나 하여라...”
“네! 류연 님. 아니, 아가씨라고 불러들이는 것이 좋을까요?”
어쩌다가 이런 개판이 되어버린 것인지...이걸 나중에 어떻게 다 설명한담? 내 본래 성별부터 시작해서 지금 칸포리우스 제국이 난리가 났다는 말까지. 애초에 끌어들이기도 싫은 아이가 덤으로 붙어버렸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류하 씨와 상담을 하도록 하자.
“그건 그렇고. 괜찮은 것인가? 저번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라 오히려 걱정이 된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실로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은가?”
“......”
이럴 때야 말로 헤븐즈 도어를 사용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내가 그런 스탠드가 없는 이상 실토를 하게 만들거나, 마리아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밝혀낼 비밀이 있을 것이라 본다. 그래도 저 굳게 다문 작은 입으로부터 나왔으면 좋았을 터인데.
[그냥 마리아가 헤븐즈 도어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알면 안 되나요?]
[첩은 스탠드가 아니니라.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나 있는가? 물론 저 아이는 몸도 마음도 이미 받쳐 충성을 맹세했으니 어느 정도 가벼운 명령은 가능하겠지?]
가벼운 명령? 음...
“루비.”
“아...네!”
“무릎베개를 해주겠다.”
무언가 충격을 먹어 굳어버린 얼굴로 루비가 아래와 같이 물었다.
“네? 제가 해드리는 것이 아니고요?”
루비가 의아해 하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것은 둘째 치고, 지금 레시아와 시나는 내 안에서 뭔가 광폭화가 된 상태로 쩌렁쩌렁한 텔레파시를 날려 보내고 있다.
“내가 할 터이니 빨리 오기나 해라.”
“네!”
그렇게 일단 얌전히 내 무릎 위에 루비의 얼굴이 올라간 상태로 있는 상황은 좋았지만, 마리아는 거기서 대체 뭘 더 요구하는지 몰라도, 다음 지령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음...의외로 마음의 문을 그리 잘 열지 않으니, 이 아이를 편안하고 진정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이개로 귀청소를 해주는 것이 좋다.]
요즘 극한직업이 대세인가?
한 숨을 저 멀리 떨어져있는 토끼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내쉬며...실제 저 먼 곳에 토끼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만큼 작게 내쉬면서 아공간을 뒤적거리고 솜털이 붙어있는 귀이개를 꺼냈다.
“어라? 류연 아가씨? 그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고개를 먼저 돌리고 싶은 쪽에 돌려라.”
나는 루비가 뭔가 더 따지기 전에 문답무용으로 고개를 돌리라는 말을 했다. 루비는 아무런 말없이 오른쪽 귀를 나에게 보여주었고, 작은 귓불과 함께 아직 작고 여린 귓구멍이 내 시야에 있을 무렵. 의외로 귀 안이 깨끗해서 청소라고 하기보단 마사지 형식이 되어버렸다.
“굳어있지 말거라. 어째 그리 딱딱하게 굳어있는가?”
“그야...오히려 이런 봉사는 류연 아가씨에게 해드려야 하는데, 어째서 제가 이걸 받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너의 정신을 침투해서 비밀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반 강제적으로 하면 정신적인 후유증이 심각하게 남아서, 그나마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후유증 없이 진행하려고 하는 거야.’라고 대놓고 말할 수 없으니, 뭔가 이 어린아이에게 희망차고 멋진 말을 해줘야겠다.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이러지는 않지만, 루비는 그런 모르는 사람이 적룡포를 덮어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법 아래에서 나의 것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 아닌가?”
“맞습니다.”
“그러니 내가 직접 친해지자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니, 그리 불안에 떨어야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가씨. 저는 항상 몸을 단정하게 하기 위해, 온몸 곳곳을 깨끗하게 하고 있어서, 굳이 귀청소를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저 루비는 청결을 중시하는...”
“후우~”
“히얏!”
계속 말을 진행해서 멋대로 귀에 바람을 살짝 불어 루비가 짧은 비명을 내게 만들었다.
“그 이상 더 말한다면 귀에 들어갈 것은 바람이 아니라 혀가 될 것이다. 애초에 귀이개의 목적은 청소의 목적도 있지만 그냥 받고 있다 보면은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쾌락의 목적으로도 쓸 수 있다.”
“아...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음...뭔가 잘못 말한 것 같다.
바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했어야 했는데, 왜 하필 혀라고 했을까?
[이건 전에 술에 취했던 주인에게 나타난 반전인격!]
[반전인격이라고 하지 마시죠. 그보다 반전인격은 또 뭐에요.]
[그걸로 초량을 쓰러뜨렸습니다. 마스터.]
[아. 그거군. 아니! 잊으라고!]
그 반전인격이니 뭐니 아무튼 흑역사니까. 최대한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버리고 천천히 손목을 돌려 바깥귀부터 약하게 살살 긁기 시작하면서, 마리아도 침투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생소하니까 불안에 떨고 있는 루비의 모습은, 천천히 긴장을 푸는 듯이 눈을 감고 즐기는 듯했다.
“하아~. 아가씨는 매우 잘하시는군요. 귀이개로 청소뿐만이 아니라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방법은 저도 나중에 꼭 배워야겠네요.”
목소리가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고 그 이후 마리아가 정신에 침투했다는 말은, 레시아가 텔레파시로 알려주기 시작했을 때, 오른쪽 귀의 안쪽을 힘을 주지 않고도 손목만을 이용해서 귀지는 없지만 긁어 올려서 안쪽의 벽을 자극시켰다.
“후앗! 아...죄송해요. 소리가...”
“뭘 그걸로 사과하는 것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다면 다행이지. 계속하겠다.”
계속해서 교성이 입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는 루비의 소리가 방안을 퍼트릴 때. 레시아와 시나는 각각 텔레파시를 다음과 같이 보냈다.
[주인. 돌아갔을 때 짐도 부탁한다.]
[마스터. 저도 부탁드립니다.]
손님이 늘면 안 되는데.
어쨌든 오른쪽 귀 약 20분, 왼쪽 귀 약 20분으로 약 40분간의 작업이 끝나고, 타이밍 좋게 마리아도 정신침투가 끝났는지 볼에 검은 달의 문양이 나타났다.
“음 좋군. 이 아이의 몸은 실로 잘 맞는다. 마치 3부에서 DIO가 죠스타 가문의 피를 흡수하는 것과 같군! 이걸로 시간정지도 9초! 로드롤러를 사용할 수 있...”
“그만 떠들고 슬슬 기억 속을 뒤적거리고 중요한 것은 빼내오라고요.”
나는 루비 몸에 침투한 마리아의 말을 잘라버렸다.
“칫. 알겠다. 그나저나 이 아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칠칠치 못하게 침을 흘렸나보군? 나중에 카일의 귀이개가 얼마나 좋은지 첩도 체험해봐야겠군.”
예약손님이 왜 이리 늘어나는 거야...
앞으로 연회 시작까지는 1시간정도.
그 안이라면 마리아는 거뜬하게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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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키보드 바꿔주려다가 쿨러에 살점이 날아갔네요.
어차피 다치는게 일상 다반사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