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54
254
사람과 힘을 합하는 이유는 힘이 부족하기보단 개성에 달렸다.
사람들의 장, 단점이 서로 다르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에...
개인의 장점을 가지고 한 가득 모여서 한 일을 해내는 것.
다만. 엘티노스는 힘을 합하는 것이 아니라, 부려먹는 것에 더 가까웠다.
-마법식을 쓰는 와중에도 천사를 꼬시는 엘티노스를 본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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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 되어있던 항마의 축복을 다시 거둔지 1시간이 지날 무렵. 아직까지 지상에 있는 내 몸은 1시간 그 이상을 혼수상태로 보내고 있을 무렵, 엘티노스가 나에게 심어뒀던 항마의 축복의 마법식을 보여주고는, 그것을 그냥 따라 적고 있으라고 하면서, 다른 천사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가 두 명이 한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여기서 마법식을 따라서 쓰면 상관은 없지만, 마법식이라는 것은 수식을 닮았다고 하고, 이상한 과학문제를 닮았다고는 하지만...
엘티노스의 자서전 중 한 구절을 빌리자면, “마법을 마법식으로 문자로 풀어서 쓰는 것은 나도 못해먹을 짓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법을 해석하거나 해독을 하고, 혹은 자연스럽게 잘 알게 되면, 사람이 말을 배울 때 맨 첫 번째로 듣고 말하기만 하는 것처럼, 직감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마법식이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림이나 문자로 보여주는 것은, 글쓰기 연습부터 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이 글은 무슨 뜻인지 주어가 뭐고 동사가 무엇인지를 전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차라리 그림이 더 쉽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애석하게도 자기가 못할 짓을 1초만에 양피지에 가득 채워도 못 넣을 법한 양으로 전개해놓고, 나더러 받아 적으면 집에 보내준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켰으니.
“차라리 받아쓰기 점수가 낮았을 때, 틀린 글씨 50번씩 쓰기가 더 좋았지.”
혼잣말을 하면서 아직까지 20%정도밖에 쓰지 못한 나의 무력함을 눈물에 머금고, 내 노동력은 엘티노스로 인해 갈취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 의식을 영체 상태로 만들었다는 의미는,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유체이탈이 된 상태란 소리인데...
“어머나? 어머나? 전에 왔을 때는 반정도 신격화해서 오더니, 이번에는 영체로 이곳에 왔네? 오늘은 무슨 일로 이곳에 왔을까? 혹시 레시아보다 내가 보고 싶어서?”
뒤에서 성숙하고도 우아하게 말하고 있는 여성을 뒤돌아 보자마자, 한 순간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운명의 여신으로 자리를 잡은 데모르테. 레시아의 모친이라고도 하며, 뒤에는 6쌍의 검은 까마귀 날개처럼 활짝 펼치며,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을 무렵. 나는...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니까. 쓸 때 없는 말로 제 집중을 흩트리지 마세요. 그리고 천계에는 제 의지로 온 것이 아니라, 엘티노스가 강제로 불러냈으니 조용히 해주시고요.”
“여전히 까칠하네. 뭐...그게 매력이지만.”
다른 여신들은 하얀 베일을 규칙적으로 휘감고, 하얀 드레스를 입는 것과 달리, 데모르테는 레시아가 본 모습으로 돌아올 때 빛마저 없애버리는 드레스와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레시아의 드레스는 치마 부분에 다이아모양의 패턴이 존재했지만, 데모르테는 패턴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엘티노스가 불렀다는 것은 자신은 일하기 싫으니 대신할 사람을 찾았나 보네? 그래서 엘티노스는?”
“여성형 천사 하나 꼬셔서 집안에 데리고 간 뒤로 40분째 흘렀네요.”
“몰래 엿보고 싶지 않아?”
“아뇨. 저는 지금 지상에 혼수상태로 있는 제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급하거든요? 지금 저는 생사에 문제가 달렸다는 거에요.”
“음...나도 심심하니 가만히 지켜 볼까나?”
여신들은 왠지 한가함으로 소멸해버릴 만한 생활일지도 모르겠지만, 데모르테는 가만히 지켜본다면서 내 옆에 최대한 밀착해서 마법식을 같이 보고 있었다. 뭐랄까...엄청나게 부담스러운데?
“저기...제 집중력이 흩어져서 공허 속으로 날아가, 투명합창단에 입단하기 직전인...”
“그건 그렇고. 엘티노스도 꽤나 머리를 잘 썼네. 정신망을 막기 위해 정신 에너지를 차단하는 구역을 설정하는 것은, 즉 그 구역에서는 마법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소리이지만, 신인류의 호문쿨루스들은 전부 작동이 멈춘다는 소리겠지? 그걸 문에 걸어놓을 생각을 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방안이야.”
내 말을 버터자르듯이 잘라버리고 자신이 하는 말을 끝까지 하는 걸로 봐선, 데모르테는 꽤나 막무가내 성격이거나, 사람을 잘 휘두르게 만드는 성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저기 데모르테 씨...”
“어머나? 나를 타인을 대하듯이 하면 안 돼. 이름으로 불러주면 기뻐할 꼬얌.”
죽일까? 아니 상대는 운명의 여신이니 내가 오히려 죽겠구나.
20대 후반의 성숙한 외모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행동이라던가 말 끝에 귀엽게 보이려고 저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면, 완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뿌잉뿌잉.”
“하지 마요. 그거 유행 지났어요.”
“여전히 철벽이네. 카일은...우리 딸아이가 왠지 고생할 것만 같아.”
레시아의 표정은 항상 기고만장하고 자신감에 살짝 미소가 있는 얼굴이라면, 데모르테는 장난기가 많아 계속 히죽히죽 웃으면서도, 그 모습이 수 많은 영체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매력포인트와 같은 것이었다. 완전히 웃는 얼굴로 철판을 깔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해야 하나? 가느다란 손가락이 계속 내 볼을 찌르며 일을 최첨단으로 방해하고 있었으니, 나는 25%정도에서 작업을 하다가 펜을 놓고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에요! 대체!”
“놀자.”
매력적으로 웃으면서 나에게 하는 단 한마디의 소리로 인해, 무지막지한 허탈감을 천천히 맛봐야 했다. 그보다, 천계에도 계절이 있나? 날씨가 많이 춥네.
“일은 마무리 지어야 해서 안 돼요.”
“치이...”
아니. 좀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고!!!
“저기 엘티노스와 그 천사가 집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
“십자말풀이라도 하고 있겠죠.”
“으흠~”
나는 펜을 잡고 수식을 쓰는 사이에, 다시 따듯한 바람이 불어와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더니, 데모르테의 눈빛으로는 “설마. 정말 그런걸 생각한 거야?”라는 듯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진다면 일이 날듯한 상황에서 나는...
“왜요. 십자말풀이가 얼마나 어려운 건데.”
라는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항마의 축복이 없어져도 정신방어는 극에 달하는 내가, 이 정도로 무너질 일은 없으며, 왠지 모르게 데모르테는 내가 만난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위험하고 소름 끼치는 여성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계속해서 웃고 있어도 나를 관찰하면서 분석하는듯한 집중력. 이제 2번째 보는 사람에게 과도할 정도로 밀착해있는 행동. 이건 확실히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소식을 내 머릿속에 해석을 하고는...
“그럼 우리도 십자말풀이를 하자.”
이 사람은 정말로 심심해서 나를 놀려먹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 제발 일 좀 하자고요! 지금 제가 여기서 한가하게 받아쓰는 것 같지만, 지상에 있는 제 몸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동전을 던지고 있다니까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잖아? 어차피 엘티노스는 네가 이걸 다 못하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을까? 아니면...”
데모르테의 오른손이 강제로 내 고개를 자신 쪽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할 것 같아서 걱정이야?”
나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먹이를 노리는 눈빛은 그만둬 줄래요? 그리고 저는 놀러 온 것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내가 놀러 가면 놀아줄 거야?”
“레시아에게 물어보시죠.”
데모르테는 이내 다시 미소가 번지면서 검은 눈동자도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이 아니라, 다시 평범하게 호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럼.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볼까나?”라고 비어있는 왼쪽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앉아있었다.
이 사람...아니. 이 여신은 하는 일이 없는 것 아닐까?
혹은 천계에서도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여신들이 실업하고 일자리를 잃는 상태가 되었거나, 혹은 여신도 이제 다른 자격증이나 스펙을 증명해야 하는 것인가?
“미안하게도 운명의 여신은 보고 알려주는 것뿐이라. 내가 가장 한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내 독백을 읽은 건가...그보다.
“방금 전에! 타인 부르듯이 말하지 말라는 것도 제 독백을 읽었던 거죠!”
“아니야. 카일이 독백하는 장면을 내가 읽어버린 운명을 보고 말한 것뿐이야.”
“그게 독백을 읽은 거지 뭐겠어요!!!”
다시 마법식을 천천히 받아 적어가면서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양피지는 거의 반을 채워가는 것을 보며, 50%정도 채워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데모르테는...
“쿨...”
자고 있냐!
“50%정도는 했나 보네. 1시간 30분 정도에...”
천천히 내 등 뒤에서 나타난 엘티노스는 늘 그랬듯이,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상급신이면 좀 제대로 된 복장을 입을 것이지, 동내 아저씨 같은 티셔츠와 이상한 바지를 입고는,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데모르테를 보며 잠깐 한숨을 내쉬었다.
“넌 정말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뭐가요?”
“데모르테가 널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것은 맞아...”
엘티노스는 내가 쓰고 있는 펜을 낚아채고는 자신이 직접 마법식을 쓰면서, 대화의 내용을 이어가기 시작했는데...
“하지만 지금 너를 지켜보고 있는 검은 고양이가 이걸 본다면, 한 차례 천마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네.”
“...아무일 없길 빌어야겠네요. 그보다 데모르테와 레시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하지만 엘티노스는 내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건 네 고양이에게나 들어. 그리고 방해되니까 자고 있는 여신 깨우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네가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면, 나는 30분 정도에 다 받아 적을 수 있을 테니, 그때 꼭 찾아와라 집으로 항마의 축복도 다시 집어넣어야 하고, 집에도 돌려보내야 할 테니까.”
나는 데모르테를 천천히 흔들면서 깨웠다.
“이제 30분 정도 여유시간이 있는 거지?”
검은 눈동자에 순식간에 활기찬 빛이 들기 시작하더니, 내 목에 있는 목줄을...잠깐? 이거 언제 걸었던 거야?
“잠깐! 어째서! 목줄이 왜! 이건 또 왜 안 끊어져!”
“어이. 데모르테.”
“왜 그래? 엘티노스?”
나를 질질 끌고 가는 데모르테를 엘티노스가 목소리로 붙잡았다. 역시 엘티노스는 나를 구하기 위해 한 소리를 하려
“좀 살살해. 정신이 망가진 체로 돌려보내면 큰일나니까.”
“그리 가혹한 플레이는 하지 않을게♥”
“야이! 사악한 녀석들아! 너희들이 그러고도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녀석들이냐!”
그 후로 십자말풀이를 2번 정도 하고, 가위바위보를 10연속 했는데 10연속 다 져서 벌칙으로 “데모르테 펀치!”에 맞아 하늘에 오르락 내리락 한 뒤에, 체스 말이 먹히면 실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는 말도 안 되는 체스를 5번 했는데, 나이트만 쓰던 데모르테에게 5연패를 당했다.
모녀가 똑같이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똑같이 패배는 없고 완승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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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건전하게 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