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15
215
정확히 생각하고 말하자면...
내가 잡화점에서 일을 다 끝마치고 포근한 이불 속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얼마 되지도 않고 일어나는 늦은 아침에 오늘도 6번째 양이 울타리를 넘지 않고, 아예 날라차기로 부수려고 시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울타리의 재질이 뭔지 모르겠지만, 985헥토파스칼 킥을 가볍게 버텨내고 역으로 울타리에 다리가 나오더니, 6번째 양에게 986헥토파스칼 킥을...
“아니 잠깐만! 그만 두라고 너희들!”
정말 상당히 무서운 꿈이었어.
울타리에서 다리가 불쑥 나오더니 그대로 양의 머리를 날아가서, 그걸 맞은 양의 머리가 산산조각으로 사방에 아름답게 흩뿌려지다니...그나저나 여기는 매번 내가 자고 있는 1층바닥이 아닌데?
“아. 신랑? 일어났어?”
아무래도 붉은 눈과 거기에 맞춘 듯이 긴 붉은 머리. 엘리시아와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눈빛과 인상의 차이...아니 스타일에도 차이가 크다. 분홍색 앞치마를 두른 상태에서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 모든 이들의 넋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미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다면 정열적으로 불타는 사랑을 한다고 하는 레드 드래곤이다. 지금은 매력이 높은 여성으로 폴리모프를 했으니, 지나가면 한 번씩 되돌아보게 되는 외모랄까...
따지고 보니 종족도 다르구나?
“그나저나 어째서 제가 루시피나의 침대에 있죠?”
“신랑이 아침에 춥다고 하길래 데려왔어. 따듯한 곳에서 자야 감기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니까.”
루시피나는 늘 웃으면서 대해줬다.
대체 왜 이런 사람이 드래곤이지?
애초에 드래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마을을 습격해서 보물을 약탈하고, 뛰어난 외모를 가진 자가 타 종족에 있으면 멋대로 납치하거나 죽이고,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면서 포효한방으로 마을을 혼돈으로 빠뜨린다.
물론 스카이림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는 드래곤을 밥 먹듯이 죽인다는 시민들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루시피나 정도면은 천상의 외모를 지닌 현모양처가 될 수 있으며, 또한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개성으로는 요조숙녀라는 것이다. 레시아와 시나, 마리아가 틈틈이 나를 노리는 무서운 행동을 하고 있지만, 루시피나는 언제나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버티며 얌전하게...물론 한 번은 큰일날 뻔했지만 그래도 평소의 행실이 매우 얌전하니까.
“많이 배고프겠다. 오늘 새벽에도 일을 열심히 했을 테니까.”
“그나저나...다른 사람들은요?”
“마왕님은 회의. 쇼콜라는 프리트론에 잠깐 다녀온다는 말을 했고, 엘리시아는 마리아와 함께 검은 달의 여왕 본진으로 떠났다고 하더라고. 매리와 마리는 리벌트에 있는 마법대학에 갔는지 좀 되었는데 많이 바쁜지 연락이 없네.”
...뭐지? 저 설명을 듣고 위험하단 생각은 나만 하고 있는 건가?
음...아니 위험한 것은 없겠지! 하하하. 게다가 루시피나의 성격은 조금 더 얌전한 성격이라서, 나에게 무슨 짓을 할 일은 없을 거야. 어쨌든 기분 좋게 일어나
-잘그락!
“......”
“......”
루시피나와 나를 한 순간에 침묵으로 만들어버린 이 정체불명의 소리는, 곧 이어 내 양손에 강하게 구속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위를 올려다 보니까 양 손목이 8cm도 움직일 수 없는 짧은 쇠사슬과 침대 윗부분 기둥이 내 양손 사이에 있으니, 우선 정상적인 탈출은 불가능할 것이고...잠깐 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다가 결국 침묵은 내가 먼저 부수도록 하자.
“저기 루시피나.”
“왜 그래? 신랑?”
“제 양손에 달린 것은 뭐죠?”
“아. 그거? 2층을 청소하다가 꽤나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분명 사용설명서에서는 주인의 명령이 없는 이상 그건 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물론 엘티노스가 어머니와 밤에 자주 놀면서 사용하신 걸로 결론이 났지만.”
“아하. 그렇군요. 그러니까 2층 물품 중에 하나란 소리죠?”
“응. 맞아. 이렇게 신랑에게 사용해보니까, 책에서는 어째서 위험한 물건이라고 설명했는지 알 것만 같네.”
“당연하죠. 주인을 알아보는 구속기구들은 하나 같이 전부 무서운 전개에서만 활용되니까요.”
...
“이게 왜 제 손목에 있죠?”
“응? 아. 내가 채웠거든. 신랑에게 어울리는 붉은 가죽이라고 해야 할까? 무심결에 한 번 사용해봤어. 착용한 소감은 어때? 어디 불편하지 않고?”
“뭐 불편하지는 않네요. 어쩐지 기지개를 피고 팔이 안 돌아온다고 했더니, 설마 이렇게 구속당해있을 줄은 하하하!”
“그러게. 신랑은 어째서 눈치채는 것이 느린지. 그게 귀여운 점이지만! 후후훗!”
대략 10초동안 그렇게 웃었다.
...
“라고 넘어갈 줄 알았어요! 지금 이게 뭐에요! 제가 왜 여기 침대에 구속당해 있냐고요! 다른 사람이 보면 “안녕 카일.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지.”라는 전개가 생각나게 만들잖아요! 전 뭐 어디 톱에 썰려나가서 죽는 클리셰에요? 루시피나가 쏘우 하실 거에요?”
그러자 루시피나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하얀 얼굴에 빨갛게 그려진 입술과 볼을 가진 인형을 들고는...
“자네는 평소에 루시피나의 호감도를 소홀이 생각했지.”
“억지로 목소리 바꾸지 말고! 그 전에 호감도는 또 대체 얼마나 떨어졌길래, 제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고요!”
“99%?”
“어째서 레시아와 같은 수치야! 그보다 그거 거의 다 끝나가는 연애 시뮬레이션이잖아요! 이제 마무리로 연애 서큘레이션 부를 거에요? 그보다 그 인형 무서우니까 가까이 가져오지 말라고요!”
하지만 루시피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나의 말에 반박을 했다.
“기본적으로 얀데레 캐릭터는 주인공이 평소에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호감도가 90까지는 오른다고 해. 거기다가 어떠한 계기로 얀데레가 각성하면서 호감도가 99%를 넘어가는 순간, 남자 주인공을 납치해서 잡아먹거나 실제로 식인을 하거나 한다고 하더라고?”
“루시피나는 얀데레가 아니거든요!”
“오늘부터 할까?”
“무서워!”
그 전에 ‘잡아먹거나’는 무슨 뜻일까?
...아니 지금 이걸 고찰할 때가 아니라!
“최근에 마왕님과 시나가 술자리에서 알려줬다고? 신랑이 그 둘에게 키스를 했다는 말. 물론 신랑이 키스를 받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신랑이 키스를 했다는 것은 분명 위험한 상황이라고 내 머릿속에서 경보를 외쳤으니까.”
...대체 나는 레시아와 시나에게 키스를 했다는 그 자체로, 얼마나 더 많은 협박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따라서...신랑에게는 선택지가 나갑니다!”
루시피나는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 전에 선택지라니? 대체 무슨 선택지를 주려고 할까? 기대되기는커녕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다.
“첫 번째로 나랑 같이 목욕하는 것과, 두 번째로 지금 여기서 나랑 낮잠을 자는 일이지.”
“...세 번째는 없어요?”
첫 번째는 나에게 있어선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생략하고, 두 번째는 오후 1시에 있을 초량과의 약속으로 인해 힘들다. 따라서 나는 세 번째가 무엇인지 확인을 해야만 했는데...
“세 번째는 신랑이 잘 알고 있을 텐데?”
“...설마. 키스 해달라고요?”
“정답!”
우선...내가 지금 해야 할 일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요조숙녀나 현모양처라고 루시피나를 칭찬했던 말을 전언 철회하는 일이다. 아니 정말 드래곤에게 있을 만한 거대한 탐욕은 루시피나의 마음속에도 정말 잘 녹아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 전에 이렇게 구속당한 상태에서 키스를 해달라니...
“그래서 신랑의 선택지는?”
“전 네 번ㅉ...”
“차고로 네 번째부터는 전부 신랑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진행할 거야. 신랑은 다른 곳에서 잘려나가고 싶지 않지?”
사전차단 당해버렸다.
최소 3곳에서 잘려나갈 법한 무시무시한 말을 하고 있다니.
“루시피나는 독자들 사이에서 현모양처나 요조숙녀로 알려지고 있다고요? 이런 일을 한다면...”
“응? 전혀. 나를 투명 드래곤으로 보던데? 애초에 나보다는 마왕님이나 루니아 언니를 더 좋아한다고?”
“그 분풀이를 왜 나에게 하는 거야! 아니 애초에 처음부터 분풀이가 목적이죠?!”
“나 잔뜩 화났으니까. 신랑의 키스만이 나를 진정시킬 수 있다고?”
“루시피나가 무슨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도 되는 줄 아세요? 키스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게? 아니면 제가 멘토스에요?”
나의 거침없는 태클에도 불구하고 침대 위에 같이 올라온 루시피나는, 이윽고 나를 껴안으면서 입을 열었다.
“우아~! 특등석이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루시피나.
그보다 특등석은 또 뭔데...
“그래서 신랑? 이제 어느 선택지를 고를 거야? 시간을 오래 끌면 오래 끌수록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뭐...그렇다고 루시피나가 이대로 전개할 일은 없잖아요. 적어도 15세 이상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니까. 이거 연령층은 최대한 낮춰야 한다고요?”
“당연히 신랑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지. 하지만...”
루시피나가 나에게 보여주는 투명한 구체.
“안리아스의 수정구? 설마 지금...!”
“맞아. 늦으면 늦을수록 녹음하는 분량이 더욱 길어질 것이라 생각해. 아니면 녹화를 한다던가 말이지...이걸 마왕님이나 시나에게 보여주거나 들려준다면 정말로 위.험.한 일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침대 위에서 둘이 노닥거리고 있다면 말이야.”
아마 레시아와 시나의 반응이라면, 폭발마법으로 날 날려버리거나 발차기가 날아오겠지. 맙소사 나는 또 맞거나 구르는 걸 예측한 건가...
“알았어요! 녹화하지 마요! 녹음도 하지 말고! 세 번째로 하죠!”
하란국에서 격노했던 레시아를 진정시키기 위해 시행했던 키스가 도미노 현상의 주범이 되어버리다니. 루시피나는 잠깐 뒤를 돌면서 “좋았어!”라는 말을 외치더니, 다시 광속으로 나를 바라봤다.
“...빤히 바라보면 부끄러우니 눈이나 감으세요.”
“신랑은 부끄럼쟁이~.”
***
몽화관에 오는 날이면 예전에 마리아를 처음 보았을 때 생각난다.
“난 떼에에에미이이이!”
“그만 내 머릿속에서 나가!!!”
“호엑!”
아직도 내 정신 속에 있는 고양이 비슷한 캐릭터에게 태클을 걸고는, 연녹색의 개조 한복을 입고 있는 초량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애초에 카페나 음식점이나 공원이라던가 다양한 곳에서 만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내가 초량에게 지명 당한 것일까?
난 여기서 일한적도 없는데...
“어라? 다른 여자의 향기가 나는군...벌써 키스까지 해준 거야?”
“...넌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분명 샤워하고 나왔을 텐데...
“당연히 페로몬이지. 나는 독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생성하는 입장인데, 감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 그리고 마리아라고 불리는 여자애가 이걸 너에게 전해주래.”
초량의 손에 들려있던 건 안리아스의 수정구였다.
물론 복사본이긴 하지만...내 손에 잡자마자 자동으로 켜진 것이...
“후읍...신랑...잠깐만...으웁...!”
-콰지직!
내 손에 들려진 수정구를 바로 박살내버리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손으로 파편을 툭툭 털어냈다. 초량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음흉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키스를 하길래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만한 여지를 만든 거야?”
“소리만 녹음이 돼서 그래. 사실상 키스 이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무래도 마리아의 2차공습을 예상하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군.
마리아가 이걸 건네줬다는 소리는 분명...이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니까.
“지금은 날 지명한 이유부터 설명해주실까?”
초량은 보리차로 목을 축인 이후에 입을 열었다.
“하란국에 열릴 비무대회에 참가해줘.”
나도 보리차로 목을 축이려고 하다가, 초량의 말을 듣고 사례가 들려서 무지개를 뿜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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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밥좀먹고 게임을 해야겠군요.
흘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