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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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만 기절하고 다시 눈뜨는 것을 반복한 것이 많지 않던가? 매번 시야가 밝아지면서, 근소하게 바뀌어 나가는 것을 생각하는 게 놀랍기만 하고, 눈을 떠보니 엘리시아와 멜시스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으며, 시나가 내 옆을 유일하게 지키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물을 흡수했는지 피로를 흡수했는지 무거운 몸을 천천히 일으키면서,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아직까지 잡화점을 오픈 하지 않았고, 하얀 올빼미 상태인 시나는 바닥에서 총총 뛰어와 입을 열었다.
“마스터. 일어나셨나요? 잠에서 깨질 않아서 조금만 더 눈을 뜨지 않았다면 심폐소생술부터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CPR은 심장이 멈춘 사람에게 하는 거야...그 전에 시나는 CPR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잖아?”
“루시피나에게 배웠습니다.”
루시피나가 시나와 같이 있을 때가 있었던가?
그건 나중에 물어보도록 하고...
“그래서 CPR의 순서는 잘 아는 거야?”
“확실히 암기해놨습니다. 첫 번째로 의식의 확인을 물어봅니다.”
애초에 CPR...그러니까 심폐소생술의 순서는 의식을 확인 및 성당에서 사제를 불러달라고 요청을 해야 한다. 주변에 성당이 없는 구역도 많기 때문에, 사제를 부르는 것은 생략해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위급한 상황이 되면 다른 이들에게 자동으로 도움을 요청하니까.
“두 번째로는 심장이 있는 위치에 30회 압박을 합니다.”
두 번째도 정답이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찐~하게 인공호흡을 2회 정도 합니다.”
“잠깐만...어째서 인공호흡 앞에 쓸 때 없는 접두사가 붙은 건지 설명 좀 해줄래?”
“그거야 숨을 불어넣기 위한 행동이 아닙니까?”
...확실히 마지막에는 산소를 불어넣어 줌으로써, 심장이 다시 본래 기능을 하는 것이 주 목적이지만, 어째서 앞에 있는 접두사를 강조하는 것인지?
“그리고 응급처치라는 핑계로 좋아하는 대상과 키스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마음은 그거냐!”
그러면 아까 전에 시나가 나에게 CPR을 하려는 이유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담긴 일이라고! 응급처치를 우습게 보지 말란 말이야!”
-꽈아아악!
“마스터. 아픕니다. 이러다가 올빼미가 아닌 부엉이가 될 것 같습니다.”
아이언 클로는 20초 정도 지속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시나가 데미지를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알 수 없을 무렵. 마리아는 천천히 나에게 걸어와서 입을 열었다.
“의외로 멜시스와 엘리시아 사이에 있던...그 ‘700년 전의 푸딩 증발 사건’멜시스의 오해로 해결이 되었다. 수고했군 카일이여. 확실히 이번에도 카일이 큰 공을 세울 줄은 몰랐다.”
“제가 무슨 큰 공을 세워요?”
그깟 푸딩이 어떻게 되었냐는 말을 하자마자 멜시스에게 물려서 기절했는데...
“멜시스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것이 강탈당하면 싫어하는 아이니까. 700년전에 있던 분풀이 대상으로 되면서 앙금이 싹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물론 엘리시아도 본연의 관계를 되찾고 아카드 가문의 권능과 능력을 모두 멜시스에게 물려받았다.”
“멜시스에게요? 그보다 멜시스가 왜 권능과 능력을 물려주는 거죠?”
“애초에 첩이 등장한 이후에도 멜시스는 카일의 친구인 마일론에게 관심이 더 크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에는 그 힘이 많이 부담스럽다고 하더군. 오히려 자신보다는 더 오래 살수 있는 엘리시아가 아카드 가문의 당주로 살아야 한다며, 몰락한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로 엘리시아가 된 것이다. 고대 흡혈귀야 피만 잘 수급되면 영겁의 세월을 살 수 있지만...최근 멜시스는 흡혈을 거의 안 하다시피 하는 것으로 보아. 마일론이 죽을 때, 같이 죽을 심산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사는 최소 60년의 세월이 더 남았지만 말이지!”
그렇다면...
“엘리시아는 멜시스를 따라간 것인가요? 아니면...”
“기뻐해도 된다. 엘리시아는 잡화점에 남기로 했노라. 물론 그 이유는 짐의 직속부하이기 때문이다.”
검은 고양이가 올빼미 위에서 입을 열고 있었다. 그나저나 시나 위에 레시아가 있는 모습은 보기 드문 현상인데? 뭐 그건 둘째치고...
“그럼 저는 평생 빈혈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소리에요?”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렇다면 나에게 이런 맛없는 혈액팩이나 먹으면서 살아가라는 소리야?”
“좀 먹었으면 좋겠다. 숟가락에 떠먹여줄까?”
옆에서 항의하는 엘리시아의 말에 반박을 하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멜시스가 흡혈한 것은 처음이지만, 애초에 흡혈한 양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상쾌해진 기분이라고나 해야 할까?
“우리 언니가 그러더라고? 빈혈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서, 목으로 물었을 때 오히려 혈액을 공급해줬다고. 고대 뱀파이어는 모든 것을 ‘흡혈’로 할 수 있으니까. 언니는 오히려 짓궂은 장난을 친 것뿐이야.”
“또 내 독백을 읽은 거냐...”
“아니? 이번엔 표정으로 알아차렸어.”
사람의 표정만으로 내 생각을 읽을 정도면, 엘리시아 앞에서는 흑심을 품는 순간 바로 들키는 것이 아닐까? 혹은 이게 정말 아카드 가문의 능력 중 하나?!
“그거 그냥 단순히 네가 표정을 못 숨기는 거야...”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응!”
“조만간 8.2인치 대못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을 데려오겠어...”
엘리시아의 깜찍한 즉답에 피 바람을 부르는 각오를 한 나는, 그게 언제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꼭 시행하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전에 엘리시아는 이미 잡화점의 멤버로 소속이 되었으니, 상호간의 팀킬은 허용하지 않겠지만...
-콰앙!
“쇼콜라 뿅뿅할 시간입니다.”
문이 벽에게 박히기 전까지 1080도 회전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듯한 나무 파편들이 흩날렸다. 언제나 발차기로 문을 부슨 뒤에 사뿐하게 내려앉는 메이드 장. 쇼콜라 씨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여긴 완전히 꽃밭이 다 되었군요. 저도 여기에 참여하고 싶은데 1시간에 얼마입니까?”
“이 곳은 잡화점이거든요! 지명해서 노닥거리는 장소가 아니라!”
“에? 뭐라고요? 특별 서비스는 하룻밤에 10골드?”
“일부러 못들은 척 하지 마시죠? 얼어 죽을 놈의 특별 서비스는 대체 뭐에요?”
아르페 공주님을 보좌해야 할 쇼콜라 씨가 어째서 이곳에 찾아왔는지 의문이지만, 어째서 인지 옆에 들고 온 여행배낭을 보아 확실할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 들었다.
“특별 서비스라면 제 주변에 모든 인원이 누워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개인적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저에게 있어서는 더욱 좋을 듯 합니...”
“시끄럽고. 그 여행가방에 대해 이야기나 하시죠?”
더 이상 들으면 별로 좋을 것도 없으니 바로 본론을 넘어가려고 하니까, 쇼콜라 씨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제가 얼마를 더 줘야.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거죠?”
“뭘 유지해요! 이게 무슨 DLC인줄 알아요?”
“그럼 1개월 기간 연장이 100골드인가요?”
“진짜 그건 또 무슨 헛소리에요!”
이제 슬슬 항마의 축복에 누적되어있던 데미지가 전부 흘러갈 시간이 되었으니, 다시 남자로 되돌아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몇몇 사람들은 이 모습이 더 익숙해서 돌아가지 말라는 듯한 의도가 보인다. 애초에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야지!
“아쉽군요. 물론 당신이 남자로 되돌아간다면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이익이 있지만...”
“이익이요?”
“보디 블로를 마음껏 때려 넣을 수 있습니다.”
“때려 넣지마.”
조만간 남자로 변해도 목숨은 위험한 걸로...
“어쨌든 문제는 그 여행가방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주시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쇼콜라 씨는 한 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잘렸습니다.”
?
“네?”
모두가 침묵한 분위기에서 느닷없는 한 마디에 얼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제가 그만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요.”
...아니 이 일이 대체 어찌된 일인가? 가사능력도 발군이고 전투 능력도 뛰어난 쇼콜라 씨를 해고한다는 의미는 큰 손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프리트론에서는 그런 바보 같은 사항을 결정한 것일까?
“쇼콜라 씨? 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에요?”
그러자 쇼콜라 씨의 난폭한 눈이 마주하면서, 내 멱살을 잡고 눈높이를 억지로 맞추며 입을 열었다.
“전부 당신 때문입니다.”
“그러니까...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보란 말이에요.”
“...때는 바야흐로...”
쇼콜라 씨가 말을 하려던 찰나에 나는 잠깐 중지시켰다. 그 이유는...
“잠깐! 쇼콜라 씨! 목 막히니까. 이 멱살은 풀고 이야기 하면 안 돼요?”
“안 돼요. 그냥 들어요.”
“어이!”
“어쨌든 바야흐로...약 이틀 전에...”
“그건 바야흐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시끄럽군요.”
내 멱살을 풀고 억지로 의자에 앉히면서, 어느새 나를 내려다보는 포지션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고풍스러운 메이드 복을 입고 온 것을 보면 잘린 것 같지 않은데 말이지만...
“어쨌든 루니아와 내기를 했는데, 저는 당신이 신분상승에 대한 것을 받아 들이는 것과, 루니아는 당신이 신분 상승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내기를 하나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제가 졌습니다. 문제는 그 내기의 내용이 사표쓰기였는데, 이윽고 제 사표가 수리되면서 메이드 장의 자리를 반납하고 나온 겁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멍 때릴 수 밖에 없었다. 첫 번째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대체 뭐가 아쉽다고 내기를 사표 쓰는 것으로 내기를 하고, 두 번째는 루니아 누나와 쇼콜라 씨가 술친구라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세 번째로는 그 사표를 왜 받아들였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신은 강제로 저를 메이드로 둬야 합니다.”
“아니! 그건 쇼콜라 씨가 멋대로 내기하다가 자업자득으로 직장을 잃은 거잖아요! 마치 어떤 사장이 술 게임으로 회사 걸었는데, 그 술 게임에서 져버린 것 같잖아요?”
-콰직!
이 소리는 내 옆에 있는 벽이 쇼콜라 씨의 작은 주먹 하나로 움푹 파여버린 소리다. 눈에는 이미 분노가 서리다 못해, 지금 밖에 비라도 떨어진다면 그걸 눈으로 바꿔버리겠다는 의지로, 천천히 분위기를 압도하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늘 부로 당신의 전속 메이드인 쇼콜라 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주.인.님.”
마치 저 눈은 “그냥 승낙만 해. 다른 말을 하다간 죽여버리겠어.”라며 ‘눈으로 말해요.’코너가 생각날 만큼 확실하게 내 머릿속으로 전달이 되었다. 아무래도 너무 무섭잖아? 어떻게 이런 사람이 메이드 장을 한 거야? 아무리 봐도 살인청부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인데!
“어라? 그러면 주인님의 노예가 2명이 생기는 건가요? 하나는 S속성의 카리스마가 있는 메이드와, 다른 하나는 갈 곳 잃은 가련한 달 토끼의 조합이라니! 2차 창작의 아이디어가 뿜어져 나올지도!”
“루나. 네가 읽고 있는 책과 그림을 그린 책 전부 다 태울 테니까. 꺼내놔.”
“아...안 돼요오오!!!”
루나는 순식간에 지하 1층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버렸다. 어쨌든 지금 문제는 내 앞에서 엄청난 살기로 나를 보고 있는 메이드인데...
“어서. 승낙이나. 하시죠.”
“...아...알았어. 잘 부탁해. 그러니까 제발 오른 손에 있는 단검은 치워줄래?”
이윽고 모든 분위기를 거둔 후에 쇼콜라 씨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승낙을 할 것인데 그렇게 많이 튕기시다니...상당한 츤데레력을 보유하고 계시는 군요.”
“그 정도의 협박이면 누구든지 승낙할거라고 보는데요...”
순식간에 멤버가 불어나는 것을 느끼며, 내가 생각한 것은 식비에 대한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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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느닷없이 두통이 찾아와서 힘들게 하네요.
뇌가 부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