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87
187
내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위한 릴리 기사단의 방문은, 상당히 껄끄러운 환영을 시작으로 “루니아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라고 말하자마자, “혹시 비밀연애 중이에요?”라고 자동반사적으로 물어보는 기사단원을 보며,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보통은 “손님인가요?”라거나, “의뢰 때문에 오셨나요?”라고 물어볼 수 있는 그 충분한 멘트임에도 불구하고, 비밀연애 중이냐고 물어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를 살짝 보고 지나가는 메르티아 맥커드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안 그랬다면 죽어서 불에 타 사라진 카린이 다시 재림하는 순간을 맛봤을 테니까. 근데 카린이란 이름은 흔하잖아? 동명이인이 얼마나 많은데 상관없겠지. 아무튼 루니아 누나를 만나기까지는 누가 왔다고 보고를 해야 하므로, 대략 5분이나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30분 뒤.
5분에서 10분은커녕 지금 30분 더 넘게 지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고 그냥 푹신한 하얀 쇼파에서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몇몇 기사단원이 내 옆에 앉아 가입 권유를 하고 있으니...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
“언니랑 비밀연애 안 할래?”
“안 해요! 그보다 얼마나 같이 옆에 붙어있는 거에요! 좀 가!”
“꺄아! 츤데레!”
“난 태클 거는 캐릭터라니까!”
조만간 내 캐릭터에 대한 정체성도 좀 확보하고, 이놈의 잡화점에서 해야 할 일을 좀 줄여나가, 이게 잡화점 이야기인지 아니면 잡화점을 기초 베이스로 하고, 모험을 떠나는 모험 일기인지, 혹은 그냥 잡화점 안에 있는 용병활동에 관련된 서적인지, 사방팔방으로 시끄럽게 다니는 나의 활동은 슬슬 하나로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가만히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잠깐 이동을 해볼까 생각을 했
“그러지 말고 언니랑 놀자?”
“아니! 진짜 대체 어디서 또 불쑥 튀어나온 거에요! 아직 근무 시간일 텐데 일하러 가요!”
“꺄아! 츤데레!”
“““꺄아아!”””
저걸 대놓고 화낼 수도 없고...
“역시 카린 양은 인기가 좋네요오. 멀리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30분만에 6명이 꼬시려고 들었으니까요오.”
옆에 루니아 누나가 나타나자마자 “아이 깜짝이야! 이게 뭐야!”라고 소리쳐버렸다. 얼마나 귀신같이 왔는지 방금 전에 없었던 사람이, 고개 한번 돌리자마자 나타난다면, 아무리 심장이 강한 사람이라도 이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저와 비밀연애 하러 왔다면서요오?”
“그 놈의 비밀연애가 요새 최신 인기품목 중 하나던가요? 게다가 제가 연애하러 왔다는 그런 근본도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온 거죠? 제가 여기에 온 것은 그냥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부른 거라고요.”
“제가 목욕할 때 먼저 씻는 부위요오?”
“그거 말고! 어째서 제가 물어볼 질문이 루니아 누나에 관한 걸로 굳어지는데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저번에 긴급출동명령에 관한 것이라고요!”
“흠...아깝네요.”
“뭐가!”
루니아 누나의 태클에 안 그래도 없는 체력을 더 쓰게 만들어서, 가파른 호흡을 잠깐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급기야 설상가상으로 빈혈까지 겹쳐져서 시야가 어두워지고, 몸에 힘이 풀려서 다시 쇼파에 앉아버렸으니...그걸 본 루니아 누나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
“오오! 연약한 카린 양! 이건 희귀도가 높아요오.”
“내 독백에 따라서 좀 걱정 좀 해줘라!”
사실상 오히려 더 신난 루니아 누나가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발을 옮겼다. 다시 소리친 이후에 안정을 취하고 싶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셔터소리에 불쾌지수는 높아졌고, 셔터소리가 도중에 끊어지자 마자 루니아 누나는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맡겨놓은 물건에서 흡혈귀라도 나왔나요오?”
“혹시가 아니라 정말로 나왔어요. 앞에 ‘고대’라고 등급을 먹여야 할 정도로.”
“고대 흡혈귀라...제가 갔던 장소가 알고 싶나요오?”
“네. 대체 어디에 가서 그 막장 모기를 꺼내왔는지 듣고 싶네요.”
루니아 누나는 내 머리를 살짝 밀어 자신의 무릎 위에 놓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간 곳은 실버 크라운에 ‘차원문’이 열려서 긴급출동을 한 거에요. 차원문 안에는 이 대륙과 전혀 다른 무언가가 계속 날아와서 피해를 주고 있으니까요. 기묘하게 생긴 몬스터들을 모조리 베어 넘기고, 지하 9층까지 내려가서 차원문을 닫고 난 뒤에 추가 수색을 하던 중. 관 2개가 발견 되었거든요오. 그 중에 하나는 잡화점에 맡기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잡화점에 맡기고 오는 길이에요오.”
2개?
하나는 엘리시아라고 쳐도.
다른 하나는?
“또 다른 하나라뇨? 거기는 안에 누가 들어있나요?”
“음...아직 그건 확인 안 해봤는데에...”
정신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니 천천히 일어난 뒤에, 검은 면 바지 포켓에 있는 기프트 피어스를 꺼내 들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게 엘리시아의 아버지인지 아니면 더 월드의 스탠드 술사인지 알 수 없을 무렵. 루니아 누나의 인도를 받아 왕국의 보물창고에 진입을 하기까지는 1시간가까이 소요가 되었다.
“평민이 이곳에 다 오다니. 오늘은 계타서 온 건가?”
“무슨 소리에요. 하멀 씨도 궁금해서 왔잖아요.”
여전히 사납게 노려보는 매서운 눈으로 자신의 총을 돌리면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서 비어있는 손으로는 머리를 짓누르듯이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 때문에 3일 걸리는 확인서와 통과허가증을 1시간으로 단축시킨 거에 감사해야 할 거 아냐.”
그러고는 억지로 손에 힘을 줘서 내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자. 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지저귀렴.”이라 명령하는 하멀 씨.
“어이쿠. 이거 감사해서 어쩌나.”
-딱!
“아팟! 그렇다고 그립으로 머리를 때리는 것이 어디 있어요! 하멀 씨 때문에 저의 소중한 뇌세포가 죽어가면 어쩌라고요!”
“그런 건 예토전생으로 되살려.”
“이 인간이 정말!”
귀따갑게 소리치는 내 목소리를 자신의 귀를 틀어막아 킥킥 웃고 있는 하멀 씨를 보고는, 루니아 누나가 나를 붙잡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많이 아프지요오. 괜찮아질 거에요오.”라고 말하며 욱신거리는 고통을 진정시켜줬다.
기묘하게 커다란 관은 흡혈귀가 자는 것보다는, 그때 당시 그 흡혈귀의 존재감을 뽐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보고 있는 관은 엘리시아가 잠들어있던 관보다, 최소 2배정도는 더 크니까. 저 관에 사람 5명정도 누워서 화장을 시킬 수 있는 규모에, 흡혈귀 하나가 잠들어있다는 상황이라면, 그 흡혈귀는 대체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일까? 혹시 최초의 흡혈귀라는 그런 No.1타이틀이 붙어있을지도 모른다.
뭔가 좀 기대가 많이 되는데?
“그럼 열게요.”
기프트피어스를 붙잡고 겨눴는데, 전에 비슷한 관을 한 번 탐색했기에 지금 열려고 하고 있는 관은 순식간에 잠금 해제했다. 천천히 열리면서 무슨 드라이아이스를 집어넣었는지, 하얀 안개 같은 것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고,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알고 그냥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놀라운 것이...
“없잖아? 텅 비어있어.”
하멀 씨가 입을 열었고...잠깐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고 입을 열었다.
“이건 미리 탈출해서 함정이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에 오기 전에, 어쩌면 루니아가 이 관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없어졌다는 거야. 그러니까 실버 크라운에 관 2개가 발견될 당시에 하나는 이미 깨어났고, 또 다른 하나는 평민의 집에서 일어나서 그나마 안전한 거지.”
엘리시아와 같은 고대흡혈귀라면 분명 엘리시아의 아버지였던, 전 폭식의 공작이라는 소리인가?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안 보이는 곳에서 요양하고 있다는 레시아의 말에는, 그 정보는 거의 최신이라는 소리다. 나를 만나기 수십 년 전에, 레시아는 이미 마계를 통합을 위한 가위바위보를 했다면 최소 60년정도. 이미 폭식의 공작을 탈퇴한 시점으로, 분명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줬으리라 생각했다.
그게 엘리시아가 아니라면...
다른 이가 아카드 가문의 모든 능력과 권능을 이어받았겠지.
“엘리시아에게 다른 형제가 있는지 물어봐야겠네요. 그리고 다른 곳에서 흡혈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요.”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긴급상황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여전히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는 두뇌로 하멀 씨와 루니아 누나에게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하멀 씨는...
“니가 그냥 수사관 할래?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 내가 잡화점에서 일할게.”
“아니...이건 정보량에 대한 차이잖아요. 그리고 하멀 씨가 잡화점에서 일하면, 느닷없이 ‘펜타킬!’이란 음성이 나올 것 같은데요. 뭐 어디 미쳐 날뛰고 싶은 거에요?”
“뚫린 입이라고 정말...”
-따악!
“아악! 또 때렸어! 대체 하멀 씨가 어떻게 수사관이 된 거에요! 그냥 마계에 가서 마왕이나 할 것이지!”
“애초에 나는 너처럼 사기적인 스펙이 아니거든. 네가 사역하고 있는 그 마왕도 터무니 없이 강해서 나 같은 건 손가락도 안 쓰고 죽일 수 있어. 난 그 정도로 가련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가련과 연약이 다 죽었어요?”
아무튼 지금의 할 일은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카일. 뭣처럼 왔으니 누나랑 놀아줘요오.”
“아니. 루니아 누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땡땡이는 안 되잖아요.”
“자! 그러면 오늘은 어디로 놀러 갈까요오?”
루니아 누나가 내가 사전에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고자, 팔짱을 낀 체 풀어주지 않았다. 신이시여! 난 여기서 탈출하고 싶나이다!
“응. 안 돼. 돌아가.”
“어디가요! 신님!”
“카일? 대체 누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오?”
“어라? 누구랑 이야기 하고 있었지? 아니 아무튼! 땡땡이는 안 좋은 거라고요!”
그러자 팔짱을 더 강하게 굳히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 침대에서 데이트라도오?”
“그건 데이트도 뭐고 아니거든요!”
“그런데...저와 비밀연애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오?”
“그거 아직도 진행 중이냐! 안 해요! 안 한다고! 거절한다고요!”
아무튼 대략 20분 정도 루니아 누나의 말에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장인정신을 담아 태클을 걸었던 나는, 다행히 풀려나 집으로 갈 수 있었고 그 즉시 잡화점으로 귀환마법을 사용해 바뀐 시야는 여전히 공중에서 거꾸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잡화점 일부러 나에게만 이렇게 좌표를 바꾸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티르빙을 변형시켜서 나타난 무기는, 6머리를 가진 뱀처럼 순식간에 튀어나와 천장에 매달렸고, 그것의 도움으로 내 신체는 머리부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리부터 떨어지도록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오오. 주인의 창의력이 여기서도 발휘되는 군. 오랜만에 땅에 추락하지 않는 주인을 보니 눈물이 나는 구나. 주륵.”
“‘주륵’이란 말까지 사용해가면서 건성으로 칭찬을 하지 않아도 되요. 그 전에 엘리시아에 관해 이야기 할 것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부 어디 있나요? 레시아.”
“지금은 전부 나갔고. 짐은 주인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노라. 그러니 그거를 시행하도록 하자. 그거.”
“뭐가 또 그거에요? 카드 성 쌓기?”
“낑낑.”
“하지마!”
바지 밑부분부터 기어 올라오던 레시아를 집어 올리고, 잡화점에서 창문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에, 나는 레시아와 눈을 맞춰가면서 아까 왕국의 보물창고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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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