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33
133
리비아를 잡화점에서 쫓아낸 주인의 얼굴은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고, 또 다시 한숨을 내쉬며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뭐라 중얼거리는 것은 짐의 귀로도 잘 들을 수 있으나,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가능하면 모든 것을 쓰고 싶지만, 지금의 중얼거리는 소리는 주인의 개인적인 소리가,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나온 것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어떻게 자신의 독백을 알아차렸냐고 물어본다. 아니면 독백에 멋대로 침범하지 말라고 하거나...
아직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혼잣말 하는 습관을 못 버린 것이 더 큰 실수이거늘.
그래도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리비아는 애초에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질투의 화신이 되어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마계공작이다. 게다가 개인 기량도 꽤나 우수하지만...아직 어린애와 같은 사고방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인이 손쉽게 도발해서 이길 수 있던 것이다. 게다가 좌표마법을 최단시간 내에 능숙하게 사용하기도 어려운데 잘 했노라.”
주인은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그만두고 짐을 보았다. 그리고 하는 말은...
“그래도 힘들었다니까요. 리비아라는 사람과 말을 하면서, 좌표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공간침식마법부터 몰래 했으니까요. 전개속도도 많이 늦는걸 봤잖아요? 티아는 이걸 1초 이내로 해야 한다고 하지만...저는 2분의 시간이 걸렸거든요.”
좌표마법으로 자신이나 상대의 좌표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최우선적으로 공간침식마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공간침식마법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야, 그 다음 단계로 뻗어나갈 수 있겠지. 게다가...
“짐이 알기론 공간침식마법은 부동마법으로 알고 있는데 맞는가?”
주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수긍했다.
“기초적인 공간침식마법은 움직이면 그 틀이 깨져서, 마법이 해제된다고 들었어요. 물론 그 점을 이용해서 티아가 난리 치려고 했으나, 그건 별로 상관없는 일이고, 그러고 보면 한 꼬마가 저에게 이걸 가져다 달라네요.”
“음?”
주인이 앞에서 물건을 올려 놓았다.
작은 글씨로 마왕님께. 라는 글...
“레시아. 마을에 돌아다녀서 자신이 마왕이라고 알려준 적 있나요?”
이건 대체 무슨 일인가?
마을에서 다른 이가 짐에 대한 것을 알아차리다니?
“아니...그런 적은...한 번 있다. 그래도 이건 주인을 잡화점으로 픽업하기 5분전에 일어난 상황이라 자세한 것은 잘 몰랐을 텐데...게다가 그 아이는 맹인이다.”
맹인이라서 짐을 보고 광기에 물들지 않아 죽지 아니하고, 또한 심한 경우 침을 흘리는 행위는 결코 없었다. 선물 상자와 같은 물품을 찢고 풀어보자. 거기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상당한 기술의 고양이가 존재했다.
“고양이? 레시아가 고양이 모습으로 말을 한 것은 아닌가요? 예를 들어 “어서 짐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거라!”라던가?”
“짐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생선가게를 약탈한 일은 딱 2번밖에 없다!”
“...2번 씩이나 있잖아요.”
중얼거리며 태클 걸고 있는 주인을 무시하고, 이 일은 루멘이라는 그 꼬마가 짐에게 가져다 준 것이다. 게다가 표지 뒤에는 “내일 다시 나를 만나러 오세요. -루멘”라는 글이 적혀있었고, 살다 보니 2번째로 커다란 혼란이 짐의 머릿속으로 점령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루멘이란 꼬마는 지금 세공사의 길에 들어서서 세공의 기초를 배워야 하는 단계인데...
믿을 수 없다.
“레시아? 레시아!”
커다란 혼돈 속에서 머물고 있던 의식을 주인이 깨워줬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 계속 나를 흔들고 있었다. 물론, 기절이 아니고 실제 시간으로는 30초도 지나지 않았다.
“주인 한 번만 짐을 불러다오!”
“레시아.”
“에로틱 하게!”
“뭘 시키는 거야! 이 고양이가!”
결국 날아온 것은 아이언 클로인가...정신이 말짱해지기 시작하니 다행이다. 지금 혼란 상태에서 겨우 벗어난 짐은 아이언 클로가 자동으로 풀리기 기다렸다. 애초에 주인에게 무엇을 말해야 좋을까? 그냥 직설적으로 말해야 하려나?
“주인. 루멘이라는 꼬마를 알고 있나?”
“루멘이요?”
손에 힘이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곧 아이언 클로를 풀어주고 신문을 가져다 줬다.
“최근에 뜨고 있는 천재 세공사?”
짐은 1면에 있는 커다란 제목을 홀린 듯이 읽었다. 작고 여린 아이의 모습에는, 이미 삶의 모든 것을 깨달은 현자의 얼굴이 사진에 찍혀있었다. 짐은 애초에 인간계에 대한 소식을 신경 쓰지도 않고, 관여하지도 않았으나...이 꼬마는 단순한 세공사라고 하기엔 다른 부분이 있다고 직감을 하기 시작했으나, 지금 당장 만나고 싶지만, 내일 만나자고 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저 아이하고 만났나요?”
“주인이 마법을 배우는 동안 할게 없어서, 잠깐 마을에 앉아 육포를 먹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찾아와서 육포를 먹고 싶다는 아이였다. 가늘고 여린 체형으로 12살이라는 나이에 천재적인 세공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 짐과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도 알 수 있는 만큼, 정신적인 노화가 상당부분 많이 진행되었음이라.”
“네? 정신적으로 노화가 되면 치매가 걸리잖아요?”
“짐의 뜻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상당히 성숙해져 있다는 소리다. 적어도 주인이 그 아이와 대화를 한다면, 주인이 오히려 어린 아이마냥 설득을 당할 정도지.”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맹인의 아이가, 짐이 고양이로 변한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아는지 아직도 모르겠군. 분명 물리적인 접촉 또한 없었을 터. 그렇다면 그 아이는 이미 천리안과 같은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해도 내일 만나자고 하는 글로 보아, 오늘은 레시아가 궁금해 하는 것을 못들을 것 같네요.”
주인은 그 이후로 아직 좌표마법을 풀지 않고, 1층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라? 주인이여.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문득, 주인의 모습을 보아하니 다른 궁금증이 생긴 것.
“뭔데요? 레시아?”
“좌표마법을 배운 이유는 혹시...잡화점의 물품정리를 하기 쉽게 하기 위함인가?”
“네.”
멍한 표정으로 짐의 눈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대답한 주인을 보며, 짐의 마음 어딘가에는 뭔가 스프링이 뒤엉키듯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마법을 필사적으로 배우는 이유를 실생활에서 사용하기 편함이 주 목표라...일단 다른 질문을 해보도록 할까?
“주인은 잡화점이 끝나고 뭘 할 생각인가?”
“저요? 글쎄요? 다른 일을 찾아서 떠돌아다니겠죠. 사람은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으니까.”
“주인은 야망이 없는 건가?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사실상, “엘티노스의 뒤를 이을 최고의 마법사가 될 거야!”라던가, “난 지상 최강의 듀얼리스트가 되겠다!” 라던가, “난 인간을 그만두겠다! 죠죠!”라던가,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저기 레시아? 하나는 카드를 잘 뽑아야 하는 직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직업이라기 보단 종족을 갈아타야 하는 대사인데요? 어째서 3번째가 실직 후에 할 수 있는 리스트에 등록되어 있나요?”
어째서 등록이 되어있는 가에 대해서 짐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주인의 태클을 무시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주인은 그럼 대머리로 깎고, 무림소설에 나온 고수답게 은거기인이 되겠다는 심산인가? 애초에 나이도 어려서 발전가능성이 높거늘?”
“무림소설에서 고수들은 대머리 안 깎아요! 어째서 레시아가 말할 때마다 쓸 때 없이 사족이 하나 둘씩 붙는 거에요!”
“그야 글쓴이가 쓴 것이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모든 것을 글쓴이 탓으로 돌리지마!”
“보거라. 지금도 배가 고파서 글을 이상하게 쓰고 있지 않는가?”
“글쓴이를 함부로 염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상하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레시아가 이상하게 말을 하고 있는 거겠죠!”
이쯤 만담은 그만두도록 하고, 아직까지 엉켜있는 스프링과 같은 복잡한 마음을 풀기 위해, 본래 질문하려고 했던 것을 물어보도록 하자.
“주인은 마법을 실생활에 이롭게 할 생각으로 배우고 있다고 아까 말했었나?”
주인은 자신의 검은 머리를 왼손으로 긁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야 마법을 배워서 실생활에 적용하면, 상당히 불편한 부분도 손쉽게 해결되기 때문이죠. 좌표마법도 단순히 이 안에 있는 물품을 정리하려는 목적으로 배웠어요. 물론 1순위가 그거고, 2순위는 혹시나 전투 중에 사용할 수 있다면, 위치변경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까요. 지금 한번 써먹긴 했지만...”
뭔가 가정적인 사고로 마법을 배우는 것인가?
조만간 주인의 마나가 자연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순간, 태풍으로 잔챙이를 쓸어버리기 위한 바람마법이 아니라, 먼지가 많으니까 먼지 털기나, 바닥을 쓸기 위한 청소마법으로 될 것이라 예상했다.
정말 소박한 꿈을 가진 인간이로군. 이래서, 짐은 주인을 마나창고로 항상 곁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경험이 적은 자가 부족한 상태로, 평범한 일상에 돌아간다는 것은 비참하기보단 재미없을 테니까.
“역시...주인은 짐의 마나창고가 되어야 한다. 인정?”
“...그건 또 뭐에요?”
“이번엔 또 어떤 쓸 때 없는 말을 배워온 겁니까?”라는 말을 눈빛으로 하듯, 짐을 바라보는 시선이 뭔가 꺼림칙하다는 분위기를 많이 받았다. 짐은 그 눈빛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입을 열었다.
“최근 어린 아이들로부터 유행하는 언어다. 뭔가 자신이 과하게 인정받고 싶다고 할 때, 말끝마다 “인정? 어 인정.”이라고 하더군. 초성으로는 ‘ㅇㅈ? ㅇㅇ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건 무슨 노인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포커를 하다가 스트레이트 플러쉬 터지는 소리입니까? 그리고 그건 단순하게 생각해서,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달라는 심층적인 의도로 말하는 거잖아요?”
“아무튼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저의 장래가 왜 마나창고인지 잘 모르겠네요.”
이래서야 단순한 남자는...아니 단순한 척인 건가? 어떻게 보면 더 질이 나쁜 남자이지 않는가? 저번에는 심술이 나서 억지로 첫 키스를 뺏었지만, 아무래도 연애세포라는 미지의 세포가 주인에게 없는 것이 아닐까?
“주인.”
“네?”
“혹시 연애세포는 어디로 폐기처분 했는지 알려줄 수 있는가?”
주인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세포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는 한들, 연애 세포라는 것은 사람에게 존재하지 않아요. 노파심에 말하지만 모든 생명체에도 연애 세포는 없어요. 그나저나 그걸 어디로 폐기처분 했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혹시 쓰레기통을 뒤져보면 나올지도 모른다.”
“쓰레기통에 연애 세포를 버리는 겁니까!”
드디어 고양이들의 습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은 인간들의 연애 세포를 쓰레기 봉투에서 구제하는 것일지도! 짐은 마왕이나 아직까지 미숙한 자로, 완벽한 마왕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는 법이다. 영웅은 공부하지 않는 다는 노래 가사가 있으나, 그건 둘째치고...고양이들이 연애 세포들을 찾아서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 그럼 쓰레기통을 뒤져보고 오겠...”
“민폐잖아요! 뒤지지 맛!”
여김 없이 아이언 클로인가? 그것은 이미 익숙...
“냐아아! 귀는 잡아당기지 말라고 했지 않았는가! 태초부터 고양이 캐릭터는 옵션->설정하기->귀 민감도->최상 이란 말이다! 놔라! 놓지 못할까! 아니면 수위를 올려버리겠다!”
“무슨 옵션하고 설정하고 같은 말이잖아요! 그리고 왜 단계적으로 알려주는 거에요! 손톱세우고 발버둥 치지 마요! 그리고 수위를 올리면 글쓴이가 곤란해 하잖아요!”
결과적으로.
장을 보고 온 마리아와 루시피나가 들어온 뒤에야 주인은 짐을 놔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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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히 보이는 분량 늘리기용 만담.